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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수]

식문화와 슬로푸드 운동

한국농어민신문 2009년8월10일자 (제2167호) 윤석원 중앙대 교수

이 시대를 사는 현대 도시인들의 일상은 대부분 무척이나 바쁘고 빠르게 살아간다. 아침도 대충 먹거나 빵조각으로 때우기 일쑤이고, 점심은 회사근처의 식당에서, 그리고 저녁은 회식이 있거나 외식으로 이어 진다. 집에서 느긋하게 가족 모두가 오순도순 함께 식사할 여유도 흔치 않다. 식생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삶 전체가 여유가 없고 바쁘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스트레스와 긴장은 현대인들의 영혼마저도 황폐하게 한다. 아이들도 바쁘고 피곤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사교육 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우리 모두의 삶 전체가 바쁘고 빠르고 여유가 없는 초긴장의 연속이다.

`맥도널드화` 되어가는 식생활

거기에다가 우리는 세계 최고의 IT강국이고, 최단시일내에 이 만큼 경제를 성장시킨 세계 유일의 국가라는 자부심 또한 대단하다. 우리가 바쁘고 빠르게 살아 왔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바쁘고 빠르게 살아오면서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시대의 모든 것이 과연 절대선일까. 우리가 잃고 사는 것은 없을까.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일까.

먹을거리만 하더라도 빠른 세태를 반영하듯 빠른 음식 즉 패스트푸드가 일상의 우리 식생활에 깊히 침투하고 있고, 전통음식은 점차 그 자리를 잃어가고 있으며 획일화된 식생활이 보편화되고 있다. 어린 세대들은 밥보다는 햄버거나 피자가 더 입맛에 맞는다. 이러한 전통 식생활과 식문화의 쇠퇴는 단순히 먹을거리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미국의 사회학자 조지 리처(Georg Ritzer)는 `맥도날드 그리고 맥도날드화`라는 저서에서 맥도날드는 패스트푸드의 대명사로서 효율성, 계산 가능성, 예측 가능성, 통제 등으로 특징되는 현대사회의 비문화성과 비인간성을 그대로 보연 준다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다. 사회가 맥도날드화 된다는 것은 효율화, 합리화된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문화와 인간성을 잃어간다는 의미라는 것이다.

문화·사회·경제전반에 큰영향

이와 같이 식생활이나 식문화의 변화는 인간과 문화는 물론 사회·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근거하여 태동된 운동이 슬로푸드 운동이다. 슬로푸드 운동은 1986년 이탈리아의 유서 깊은 스페인광장 한 가운데 맥도날드가 진출하는 것을 본 카를로 페트리니 등이 전통음식에 대한 위협을 감지하고 미식의 즐거움, 전통 음식문화의 보존 등의 기치를 내걸고 시작한 식생활 문화운동이다.

그 후 1989년에는 프랑스의 파리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미국 등 15개국 대표들이 미각발전과 음식관련 정보의 국제적 교류, 즐거운 식생활의 권리와 보호를 위한 국제운동의 전개, 산업문명에 따른 식생활 양식파괴에 대한 비판 등을 내용으로 하는 이른바 ‘슬로푸드 선언’을 채택하였다. 이 운동의 심벌마크인 ‘달팽이’는 속도지상주의적인 성장에 대한 반대를 의미하며, 문화와 문명의 발전에 대한 본질적인 개선을 통해 깊이 있고 차분한 문화의 질적인 발전을 추구하고 있다.

슬로푸드 운동은 단순히 패스트푸드를 반대하는 차원을 넘어 패스트푸드로 상징되는 ‘효율지상주의’와 `맛의 표준화`라는 식문화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국제적인 문화운동으로 자리메김하고 있다. 슬로푸드운동의 대표적인 활동은 생물의 종 다양성 운동을 통해 유전자 조작, 환경변화 등으로 사라지고 있는 종자를 보호하는 일과 미각교육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의 음식이 만들어지기까지의 재배, 유통과정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좋은 먹을거리에 관심 가질 때

특히 중점을 두는 부문은 아이들에게 미각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아이들이 좋은 먹을거리의 맛을 알 수 있도록 하고 더 나아가 미래의 소비자로서 좋은 먹을거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또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간극을 좁혀 소비자 역시도 공동 생산자임을 자각하게 하여 모든 먹을거리의 유통과정과 재배환경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돕고 교육시켜 더 나은 먹을거리 문화를 정착시켜 나가는 일이다.

이러한 슬로푸드 운동이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의 슬로푸드 운동은 일부 운동가와 뜻있는 분들에 의해 이제 겨우 태동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속도와 경쟁, 효율로 상징되는 비인간적·비문화적 가치에 의해 매몰되어 가는 인간과 자연, 문화와 문명, 농업과 생태를 살려 내는데 크게 기여하는 인간적·문화적 가치 창출 운동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 일환으로 우리나라에서도 2009년 5월 국회에서 식생활교육지원법이 통과되고 11월 시행을 앞두고 여러 가지 실천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요즘, 슬로푸드 운동이 가지는 중요성과 의미를 다시 한 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