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3.19. 강촌의 전원에서 살아가기,10개월 (20)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살아야 하나.!!
오늘은 옆지기에 대한 얘기를 좀 하려고 한다.
내가 전원생활을 하겠다고 벼르는 것을 알면서부터
옆지기는 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었다.
'산골에 가서 뭐하고 살건데...?? 멀리서 보는 것처럼 흙 만지면서
살지 않은 우리에게 시골살이가 그리 쉬울 것 같아.
멀리서 바라보고 하루 이틀 다니러 갔을 때 아름답게 보이는 거라네,
그저 꿈이나 꾸면서 사시게나ㅎㅎ.'
그렇게 나의 전원살이 꿈에는
생각 할 여지도 없는 일이라는 듯 늘 찬물을 끼얹던 그였다.
그렇다고 딴살림을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학연도 지연도 어떤 연줄도 없는 객지인 대구에
충청도 청년이 인생을 걸고 청춘을 보내고 장년을 살아온 대구,
40여 년을 그런데로 가족들 크게 고생시키지 않고 큰 풍파 겪지 않고
주변에 구차한 모습 보이지 않으면서 살아오느라 겪었을 그의 고독을
내가 왜 모르겠는가.
그 외롬을 다스리기라고 하려는 듯
그는 어떤 인연으로든 만나게 된 친구를 소중하게 여겼고
그 친구들과 술 한 잔 기울이기를 좋아했으며 바둑두기와 운동을 좋아했다.
나 또한 그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의 삶에 내가 걸림돌이 되지 않으려고 애쓰면서 살았다.
그렇게 살다가보니 언제부터인가
대구는 그에게 제 2의 고향이 된 듯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아내인 내가 '나의 꿈 어쩌고 ...' 하면서 대구 떠날 생각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기가 막히고 어처구니 없었겠는가.
그러나 옆지기가 퇴직을 하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그는 나에게 설득당하기 시작했다.
여가만 있으면 40년지기 벗들 만나(대부분 정년 퇴직자) 기원에서 시간을 보내기가
일쑤인 그의 생활 방식이 건강에 도움 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친구 좋아하는 그에게 친구들 자주 만나지 못하게 되는 삶이
얼마나 잔인한 일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그러나 친구보다 더 중요한 일은
큰 수술을 하고 난 뒤인 그의 건강을 보살피고 그를 지켜야 하는 일이기에
나로서는 무리수인 줄 알면서 둘 수 밖에 없었고 고집을 부리게 된 것이다.
그리고 방향 선택은 서울 살고 있는 큰아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서울 가까이로 오셔야 한다면서
서울에서 한시간 거리인 경기도 양평으로 주선을 해 준 것이다.
울며 겨자먹기로 나에게 손목잡히고
아들과 며느리들에게 등 떠밀려 오게 된 전원 생활이었다.
그런데.......
겉으로 보기에는 전원생활에 잘 적응하고 사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곁에서 함께 하고 있는 나에게는 적잖이 부담감을 주었다.
'이걸 꼭 해야 되나? 그건 사 먹으면 되지, 얼마 먹는다고...
이렇게 날 가두어 놓고... '등등...
이렇게 생각하면 절대로 해답이 나오지 않는 것이 전원 생활이다.
내가 지켜보기에 그는 적응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고
아이들처럼 사사건건 트집을 잡았다.
전원의 삶이 눈에 보이는 생산의 가치를 따져 가면서
살아가기 위해 선택할 삶은 아니지 않는가.
대구에서 오는 친구들의 전화를 받으면 울먹거렸다. 아마도 그리움이었리라.
강하게만 보이던 옆지기의 인간적인 모습도 보게되는 나날들이었다.
결국 그는
소원했던 동기들을 만나러 서울 나들이를 자주 하게 되었고
읍내에 나가 서예 학원을 기웃거리고 기원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도무지 풀과 나무와 흙을 벗삼아 살면서 행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노라면 딱한 생각도 들었으며
나의 선택이 무리했었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함께 살 사람이 뜻을 함께 해야만이 아름다운 그림을 그릴 수 있다.
차라리 그가 소일 할 수 있는 다른 취미꺼리를 만들었으면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지난 해 년말, 추위가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던 날이었다.
그는 '양평군,시니어 바둑 대회'에 나가 우승 했다면서
상금과 상패를 받아왔다.
며칠 후 '양평군 문화센터 기원'에서
'바둑 사범'으로 수고해 주었으면 고맙겠다라는 제의를 받았으며,
명사 바둑 대회의 초청도 정식으로 받았다고 했다.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모처럼 환하게 밝았다.
얼마만에 보게 된 그의 웃음인가. ㅎㅎㅎ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을...
그는 지금 문화센터로 주중에는 매일 출근(?)하고 있다.
작은 나라이지만 남쪽나라와 북쪽나라는 온도 차이가 크다.
마치 먼나라 이야기처럼 남쪽 지방의 봄소식을 듣기도 한다.
아직 서울 근교와 경기 강원 일대에는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을 눈으로 실감할 꺼리가 보이지 않는다.
지금쯤 나의 고향 대구에는 목련이 그 큰 봉오리를 피우고 있겠구나.
우리집도 아직은 겨울 풍경 그대로다. (오늘쪽, 파란 지붕)
연못에 얼음이 풀리기는 했다.
그리고 논둑에 불을 지르고 들에 거름을 실어다 놓는 등
사람들이 봄이 오고 있다는 몸짓들을 한다.
이 마을에는 목련이나 산수화 같은,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은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추위를 이기지 못하는 나무들인가보다.
우리집 뒤란에도 흙놀이할 거름은 쌓여졌다.
그것이 바로 봄이 오고 있다는 시골의 모습이다.
봄이 와도 옆지기는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함을 증언이라도 하듯이
문화센터를 들락거리겠지만 ,
나에게는 무엇이 솔잎이 되어 줄 것인지...
그러나 걱정없다.
나무와 풀꽃과 그리고 이름 모르는 새들의 푸드덕거리는 소리가
나에게는 분명 향그러운 솔잎이 되어 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들이 오는 길목을 지키면서 나는 오늘도
가슴 두근거리며 그들을 기다리고 그리워하고 있다.
첫댓글 나이가 들면, 아무리 부부 사이라도, 서로 다름을 알아야 하고
서로 다름을 인증하고 보듬어야 한다더이다.
어쩌겠습니까? 옆지기의 인생을 대신 살 수는 없는 일 아닙니까?
너무 마음 쓰지 마세요. 문화회관에 가서 행복하고 즐겁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을요...강촌 화이팅!
그래야겠죠,
하
이미 만들어져 있는 환경,
그러나 후회는 하지 않습니다.
그때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니까요.
봄이 오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는 날들,
옆지기가 나의 속내를 알면 얄미울까.
격려의 말씀 감사합니다.
남평 선생님,
새봄 맞아 늘 건강 건필하세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에구구, 오셨으면 국화차 한 잔 대접할껄요,
맞아요, 내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그리 서운할 것도 없죠,
늘 열심히 살아가시는 정임표 선생님,
관심어린 멘토 감사합니다.
행복한 날들 만드세요,
이 봄, 더욱 반가운 소식 듣게 되네요. 그러해서 그런지 모습마다 활기 넘쳐나 보입니다.
참으로 맘 붙일 곳 모처럼 찾으신 부군께 맘 다하여 축하합니다. 그간 얼마나 혼자 속 앓
이 하셨을까?
강촌 선생님, 밭 길목에 쌓아놓은 거름포대 보이네요. 저 또한 그렇게 해놓고 있습니다.
생기 도는 봄 들녘, 움추렸던 몸과 맘 한참에 부풀려 놓네요. 아무쪼록 두 분 건
강 지켜가시는 가운데, 신접살이 때의 그 향기 이어이어 풍겨 가시기 바랍니다.
국화차 향, 가득 머금고 갑니다.
적응하지 못하고 겉돌던 옆지기에게
가끔은 미안한 생각도 들었죠, 자책을 하기도 하고...
그러나 다시 취미생활을 하게 되고
거기서 서울에서 귀촌한 같은 처지의 사람들을 만나게 되어 대화가 되나봐요.
다행하게 강촌이 조금 부담을 덜었습니다.
욕심부리지않고 물 흐르는데로 살고 봐야죠,
공감의 글 감사합니다.
봄맞이 잘 하시고 농사 정보 좀 주세요.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 만드세요.
"사랑만큼 고도의 테크닉을 요하는 것은 없다"고 합니다.
사랑의 '거리 조절' 문제겠지요.
연줄을 좀 더 풀어드리세요.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시도록 --.
축하드립니다.
멋지게 사는 모습이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본래부터 연줄 잡고 있지도 않는데...
아름다운 멘토 고마워요, 小珍님,
봄이 오는 길목 지키며
오늘도 행복하세요,
선생님 반갑습니다. 늘 건강하고 보람되게 생활하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부럽습니다.
늘 청춘으로
거운 날들 되시길 빕니다.
열정적으로 사시는 이병훈 선생님, 멋져요,
봄이 턱앞에 다가왔네요,
늘
멘토 감사합니다.
강촌 선생님, 부군께서 새로운 돌파구가 생겨서 다행입니다. 남의 편이라 했듯이 다름을 인정해야 겠지요. 나도 결혼 전에 테니스하는 여자를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동적인데 비해 아내는 정적이어서 완전 딴판입니다. 그리고 나는 새벽형인데 비해 아내는 완벽한 저녁형입니다. 상극의 조화를 위해 항상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러게요,
일단 옆지기가 나를 바라보는 눈이 편안해져서 다행이다 싶어요,
세상살이가 어찌 제가 마음먹은데로 다 만들어지겠습니까.
마음 비우기하고 또 비우면서 살아가야되겠죠,
함께 사는 사람이 마음이 편안해야 저도 편하죠.
조화를 잘 이루면서 살아가시는 선생님의 봄날이
늘 풍성하시기를 기도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성병조 선생님,
꿈을 성취하셨군요 존경합니다. 그리고 부럽습니다.
문학하는 사람이면 거의가 다 그러하겠지만 형편이 모자라서 눈감고 참지요 호호호
에구구 러버라요,
멋지게 살고 계신 가송 선생님께서 부럽다니요.
관심 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