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량을 높이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강태공(姜太公)이라는 인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강태공이라 하면 으레 낚시꾼을 의미하는데, 이는 강태공이 주(周)나라의 문왕에게 발탁될 때까지 낚시질로 세월을 보냈기 때문이다. 강태공은 실존인물이다. 성은 강(姜), 이름은 상(尙)으로, 그의 조상이 순(舜)임금 때 여(呂) 땅에 봉해졌으므로 여상(呂尙)이라고도 한다. 여(呂)는 봉지(封地)를 받은 후에 붙여진 나중의 성인 셈이다. 그러나 여상(呂尙)보다는 강태공(姜太公)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낚시꾼’ 이 아닌 ‘백가종사’ 강태공
중국인들이 강태공에게 붙여준 별칭은 백가종사(百家宗師)이다. 이게 무슨 말인가? 문자 그대로 풀이하자면 ‘백가(百家)의 으뜸가는 스승’이라는 뜻이 된다. 백가란 제자백가(諸子百家)라 할 때 그 백가로, 가(家)는 우리말로 하면 일종의 학파이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유가(儒家), 묵가(墨家), 도가(道家) 등 수많은 학파가 이었는데, 왜 중국인들은 그에게 이런 최고의 칭호를 붙여주는가? 그것은 그가 정치, 경제, 군사 등 다방면에서 탁월한 식견과 능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럼 강태공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유래했는가? 태공(太公)은 주(周)나라 문왕(文王)의 할아버지 호인데, 문왕이 사냥을 나갔다가 여상(呂尙)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 후 탁월한 현자임을 알아보고, 바로 할아버지께서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에서 태공망(太公望)이라고도 부른 것이다.
그럼 강태공은 처음부터 이렇게 유능했던가? 하는 일 없이 낚시질만 하고 살았는가? 아니다. 치열한 공부를 하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많은 직업을 경험했다. 이리하여 역량은 크게 높아졌으나 마땅히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지 못해 독서와 낚시질로 세월을 보내다가 문왕을 만나 발탁되었을 때 나이가 72세 정도였다. 오늘날의 관점에서 봐도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다. 그럼 강태공은 무얼 하다가 70세가 넘어서야 발탁되었을까? 강태공의 집안은 원래 귀족 집안이었으나 강태공에 이르러서는 거의 천민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쇠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강태공은 하는 수 없이 마씨(馬氏) 집안의 데릴사위로 갔으나 얼마 못가 쫓겨나고 말았다. 아마도 강태공이 돈벌이는 안 하고 공부한답시고 책만 들여다보니 홀대를 당한 것 같다.
장사꾼에서 군주가 되기까지
처갓집에서 쫓겨난 강태공은 그야말로 온갖 일을 하면서 호구지책을 마련했다. 밥장사, 짐승을 잡는 도살업자, 이런 저런 장사와 점원, 주점을 열고 술장사도 했다. 주점을 하면서 그는 많은 사람들과 접촉했다. 그러는 중 이 사람 저 사람 점을 쳐주면서 이름이 나기 시작했고, 상나라 조정의 대신인 비간(比干)이라는 사람을 만나 상나라 관료가 되어 주왕(紂王)을 섬기기도 했다.
주왕(紂王)을 섬긴 짧은 시간 강태공은 상나라의 난맥상을 직접 확인하고, 주왕을 떠나 자신과 뜻이 맞는 다른 인재들과 교류를 확대했다. 그 후에도 주왕의 폭정은 도를 더해 갔고, 민심이 상나라를 떠났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갖게 되었다.
상나라는 왕의 폭정과 사치로 망해가고 있었고 서쪽의 제후인 주족(周族)의 희창(姬昌)이라는 사람이 천하를 차지할 것임을 확신했다. 그러나 강태공은 자신이 희창을 찾아가지 않고 여전히 그를 기다렸다. 그는 이번의 기다림이 자신의 생애에 있어서 마지막 기다림이 될 것을 확신했고, 위수(渭水)에 낚싯대를 드리운 채 희창을 기다렸다. 그의 확신대로 희창이 직접 그를 찾아와 강태공을 군사(軍師: 군대의 총사령관)라는 자리를 주어 극진히 모셨다.
강태공은 고희(古稀)의 나이에도 군사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 주나라 문왕이 죽고 그의 아들 무왕(武王)이 상나라의 폭군 주왕을 토벌하고 천하통일을 달성하는데 있어 일등공신이 되었다. 그리하여 주나라가 건국되고 강태공은 오늘날 산동지방인 제(齊)나라를 분봉(分封) 받아 초대 군주가 되었다. 그야말로 강태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위업을 달성한 대기만성형 인물이었던 것이다.
‘때’와 ‘사람’을 보는 눈이 있어야
일반적으로 한 국가나 조직이 무너지는 것은, 얼핏 보면 외부적 요인에 의해 그리 된 같으나, 사실은 내부적으로 이미 무너지고 있었던 것이다. 최고 리더의 무능과 폭정과 부패가 원인인 것이다. 외부적 요인은 단지 무너지는 시간을 단축시킨 것뿐이다.
때만 만난다고 일이 성취되는 건 아니다. 일을 같이 도모할 사람이 있어야 한다. 때가 아무리 무르익었다 하더라도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다. 이는 희창이나 강태공이나 똑 같다. 희창은 강태공이라는, 문무를 겸비하고, 시대의 흐름을 읽을 줄 알며, 정확한 때를 판단할 줄 아는 참모가 필요했고, 강태공은 천하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도량과 식견과 인격을 가진 주군(主君)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강태공은 그런 인물을 만나기 위해 역량을 높이면서 고희가 넘도록 기다렸고, 희창도 강태공 같은 인재를 만나기 위해 찾고 있었던 것이다. 강태공은 끝까지 기다렸고, 결국 희창이 제 발로 찾아와 강태공을 군사로 모셔갔던 것이다.
애터미 멤버 중에도 생물학적 나이가 제법 많으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이에 합당한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75세에도 임금이 될 수 있다. 높은 역량을 가지고 있다면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나이만 먹는다고 현명해지지는 않는다. 그런 말은 어떤 종교 경전에도 없고 고전에도 없다. 그냥 나이만 먹으면 오히려 아둔해진다. 풍부한 공부와 경험이 누적되어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이성연박사
출처 : NEXT ECONOMY(http://www.nexteconom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