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저도시? 제발 선거용이 아니길 바라제"
[조선일보 김정훈 기자]
지난 25일 전남 해남군 산이면 상공리. 이곳은 33조원이라는 사상 최대 금액을 투자해 종합 레저도시를 건설하는 일명 ‘J프로젝트’ 예정지 중 하나이다. 마을을 가르는 큰길 100여m에 시골 수퍼마켓과 슬레이트 지붕 집이 뒤섞여 있다. 농기계·농약 가게 등 빛바랜 간판 사이에 부동산업소 간판들만 선명하다. 조립식 건물에 2곳, 막 지은 듯한 1층짜리 하얀 건물에는 4곳이 함께 들어서 있다. 모두들 ‘J프로젝트 전문’, ‘J프로젝트 상담환영’이란 글귀가 창에 커다랗게 붙어 있다. 108가구가 사는 상공리에 부동산업소만 8곳이다.
외지인들 '투기 열풍'에 땅값 2~3배 올라
108세대 사는 상공리엔 부동산업소만 8곳
현지주민들 기대 커… 일부선 반대 움직임
그중 H업소의 문을 열었다. 산이면 일대를 마리나 쇼핑센터, PGA코스, 골프지구, 실버타운, 해수욕장, 호텔, 카지노 등으로 분류해 놓은 지도와 J프로젝트 관련 기사가 벽면에 촘촘히 붙어 있었다. 목포 출신인 업소 주인은 “J프로젝트의 성사 여부가 낙후된 이 지역의 마지막 기회”라고 잘라 말했다. 논밭 시세를 묻는 질문에 “값은 2배 올랐는데 묶여서 거래가 없다”고 했다. 머물던 1시간여 동안 시세를 묻는 전화나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이 일대가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인 2004년 8월 이전에는 ‘열풍’이 몰아쳤었다. 평당 평균 2만~3만원이던 논밭 가격이 개발 바람에 5만~6만원까지 뛰었다. 평소 한 달에 50~60건이 고작이던 산이면 전체 토지거래 필지수가 770건에 달하기도 했다. 초송리 J다방 안희숙(48)씨는 “지난해 7~8월 외지 사람도 안 보이던 마을 2차선 도로에 대처에서 온 검은 차들이 북적였다”며 “그땐 날마다 장날인 것 같더라”고 했다.
개발바람이 불었다지만 산이면 주민은 줄어드는 추세. 한 해 70여명씩 줄어 지금은 5700여명. 10대 였던 산이면 택시도 지난 여름이 지나자 6대로 줄었다.
땅은 묶여 잠잠해졌지만, 마을 풍경은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황조리 마을 너머 물가 밭 5000평도 무화과 나무밭으로 변했다. 벌건 밭에 30~40㎝ 정도의 묘목 2만여 그루가 촘촘히 심어져 있다. 주민 김모(62)씨는 “무화과 어디 팔라고 심었겄소. 보상 쫌이라도 더 받을라고 심었겄제”라며 “배추밭 갈아서 배고 매실이고 그런거 심는 것이 요새 유행이요 유행”이라고 했다.
‘J프로젝트’에 대한 주민들의 기대감은 높다. 밭일하던 상공리 서형태(74)씨는 “되면야 좋제, 골프장 김을 매고 살아도 지금보단 안 낫겄는가”라며 바지 흙을 툭툭 털었다. 그는 “내가 5000평 가졌대서가 아니라, 나중에 젊은 사람들 생각하면 개발돼야제”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찬성파는 대개 농협 빚 이야기를 꺼낸다. “트랙터빚 3000에, 주택자금 1600, 농민후계자자금 2000, 일반대출이 2000, 대충 합하면 8500만원되니까… 4000평 보상받으면 한 평에 5만원씩 잡고 2억원.” 상공리 이장 김성택(44)씨는 “배추농사 해서는 농자재값도 못 건지요. 물려주진 못해도 빚은 안 넘겨줘야 안 쓰겄소”라고 했다.
일부 주민들은 ‘안티J프로젝트’라는 인터넷카페를 만들어 환경단체와 연계,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성일(39)씨는 “말이 좋아 J프로젝트지, 산이면을 몽땅 골프장 도박장으로 만들어블겄다는 것 아니요”라고 했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가 과연 이뤄지는 것인지 하는 불안감에는 찬반이 없었다. 한 주민은 J프로젝트 이야기를 꺼내자 “J프로젝트가 제발 선거용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덕송리 박모(60)씨는 고구마줄기를 정리하다가 담배부터 꺼내 물었다 ‘진짜로 되는 거냐’고 몇 번이고 되물었다. 자기 땅 2000평에 다른 사람의 땅 3000평 빌려 밭농사를 짓고 있다는 그는 “되든가 안 되든가 언능 끝나부러야지, 땅 없는 사람은 언제 쫓겨날지 모른디 어디 불안해 살겄소.”라고 했다.
(해남=김정훈기자 [블로그 바로가기 runt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