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는 9월 28일 근사한 회동이 쌍용차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 앞에서 이뤄진다. 정치인들의 전유물처럼 쓰이는 ‘회동’이란 단어가 서울 한복판 거리에서 사람의 권리와 존엄이 연결되는 공간을 만들고, 변혁을 위한 공감대를 이루는 통로로 사용된다.
나이 스무 살을 맞은 인권운동사랑방 기념행사의 메인 타이틀은 ‘회동(會動)- 모여서 움직이다’다. 그러니까 창립 20주년을 맞이하는 행사가 근사한 회의실이나, 사랑방 사무실 같은 곳이 아니라 그냥 평소 집회하던 장소에서 집회처럼 진행된다는 것이다. 모토도 인권과는 관계가 없어 보인다.
“다시, 변혁을 꿈꾸자! 체제를 거스르는 관계를 조직하자! 변혁을 도모할 수 있는 관계, 사람 속으로 우리를 더욱 밀어 넣자!”
![]() |
모토에 인권이란 단어 자체가 없다. 사랑방답다. 한국사회에서 인권이 체제내화 되는 것을 끊임없이 경계하며 다양한 거리와 현장에서 인권을 위해 싸워온 인권운동사랑방스럽다.
모토만큼 문제의식이 깊었다. 단순히 모이자가 아니다. 왜 모여야 하고 왜 움직여야 하는지는 명쾌했다. 그리고 ‘회동’이 어떤 방식으로 발현될지는 이제 실험을 준비하는 상태라 매우 흥미로웠다.
사랑방의 지난 10년은 진보적 인권운동의 기치로 IMF 경제위기와 민주정부 시대 제도화 되지 않는 인권운동의 길이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자본축척의 위기가 상시화 되고 노동유연화를 위한 비정규직, 정리해고로 자본의 야만이 더 광폭해 진 시대에 진보적 인권운동이 다시 어디를 향해야 할지 고민할 때가 됐다.
“인권 의제, 인권 사안, 인권 현안들에 대한 대응을 넘어서 한국사회 혹은 그보다 넓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거냐는 전망을 늘 염두에 두면서 운동을 조직해 나가지 않은 채, 하다보면 바뀌는 그런 세상은 아닌 것 같다는 고민이 있었다.
그건 인권운동만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여러 운동들의 연결이 중요할거란 생각 들었다. 그렇게 운동들이 연결될 때 우리가 바꿔야 할 체제의 모순을 더 분명히 직시하고 그걸 향해 좀 더 힘을 모을 수 있을 거란 고민이 들었다. 운동들의 연결이 향하는 사람다움에 대한 감각, 인간의 존엄, 이걸 세우고자 하는 관계를 서로 만들고자할 때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미류, 사랑방 활동가)
사랑방이 운동들 사이 관계의 연결을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권의 울림 때문이었다. 사랑방은 창립 초기부터 인권이 언제나 저항의 언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권이 체제를 포장하는 언어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인권을 경계하고 긴장감을 놓지 않고 왔다. 그러면서도 인권이란 이름으로 20년을 걸어온 것은 인권에 대한 믿음이라기보다는 사람들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이다.
![]() |
사랑방은 20주년 사업 총론 문서에서 사람을 믿는 이유를 두고 “20년 역사 동안 만난 인간의 존엄을 깨우치는 목소리들이 우리에게 남긴 울림을 잊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썼다. ‘회동’은 20년 동안 사랑방에 울림을 던진 그 목소리들을 이젠 더 정교하고, 더 현장에 밀착해 조직화하겠다는 새로운 20년의 밑그림이 될 예정이다.
‘회동’의 고민은 인권운동이 처참한 현장의 마지막 보루처럼 여겨지는 그 헛헛함에서 시작된다. 인권활동가들은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넘게 비정규직. 정리해고 투쟁 현장이나 촛불투쟁 현장, 철거투쟁 현장 등에서 인권침해 감시활동 등을 진행했지만, 모두 인권이 무너진 후에 인권침해의 심각성만 확인하는 결과적 활동의 헛헛함을 경험했다.
사랑방은 이를 두고 “대부분 인권운동을 부르는 곳은 대중의 힘이 사그라지는 끝자락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사랑방은 스스로 너무나 무력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 사라진 것만은 아니었다고 평가했다.
2008년 광우병 촛불에선 스스로 두려움 없이 거리로 나서는 사람들이 집회시위의 자유를 실현하는 힘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인권’은 살아있는 언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용산참사에서 망루를 쌓고 ‘여기, 사람이 있다’던 목소리,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으로 향했던 희망버스, 서울학생인권조례 주민발의 운동,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 밀양 송전탑 주민들과 함께 살자고 힘을 모아 외치는 사람들이 존재했다.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집단적 저항에서 ‘인권’이 여전히 울림을 만드는 언어일 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는 버리지 않는다. 그러나 울림만으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삶의 위기에서 끊어질 듯 이어진 목소리가 대중의 관심을 넘어 결집으로 이어지고 세상을 논란으로 빠져들게 한 운동들과 사람들의 관계망을 재구성해 보자는 것이 ‘회동’이다. 그래서 모여서 움직이자는 것이다.
사랑방은 이런 고민에서 올해 초 20주년 워크샵 논의를 마무리 짓고 기존 권리영역별 팀 체계를 해소했다. 20주년 준비 팀과 중심활동 팀으로 재편된 사랑방은 ‘안산지역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 사업’을 중심활동으로 삼았다. 인권이란 울림이 생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권리로 인식되도록 하기 위해선 인권활동가들이 더 밀착해 들어가야 한다는 결론을 실행해 옮기겠다는 것이다.
“노동문제나 먹고사는 문제, 동시에 그 가치들에 대해 인권이 적극적으로 얘기해나가고 인권이 배부른 운동이거나 밥 먹여 주냐 이런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권리를 통해서만이 제대로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고민들과 맞부딪히고 싶었다. 우리가 체제를 변혁하자 세상을 바꾸자 얘기할 때 노동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직시하고 실험들을 해 보고 싶었던 거다”(정록, 사랑방 활동가)
‘회동’은 오는 28일 오후 4시 대한문 앞에서 소소한 전시를 시작으로 저녁 7시 30분부터 ▷이어말하다 ▷숨고르다 ▷샘솟다 등의 행사로 진행된다. 사랑방 20주년은 ‘회동’ 뿐 아니라 책으로도 기록된다. 일명 ‘세상을 뒤집을 조직책’이란 이름으로 책을 만들기 위한 후원자(http://socialfunch.org/sarangbang20)를 모집하고 있다. 사랑방은 ‘회동’에 오는 사람들에게 20주년 기념 멋진 수건도 나눠준다. 열악한 활동비로 생활을 이어가는 사랑방 활동가들은 각별히 수건 배포를 강조하기도 했다.
<참세상>은 추석 연휴 시작 전인 16일 홍대 정문 근처 고지대에 위치한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을 찾았다. 그날 사무실에 있던 민선, 미류, 최은아, 정록, 훈창 활동가와 떼로 토크도 하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사랑방 활동가들의 사랑방 운동이 나아갈 바에 담긴 고민은 수건 보다 더 ‘회동’에 가고 싶게 했다. 그 고민들이 풀리는 자리, 이번 ‘회동’을 놓쳐선 안 되는 이유다.
![]() |
20주년 메인 행사를 ‘회동’이라고 했는데 사실상 쌍용차 분향소가 있는 대한문에서 한 집회 같다. 근사한 행사를 해도 될 텐데 왜 집회인가
“세상을 바꾸려고 인권운동을 하는 건데 세상을 바꿀 수 있으려면 사람이 모여야 하고 모여서 같이 움직일 때 바꿀 수 있는 힘을 만들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회동’이라는 제목과 ‘모여서 움직이다’라고 정했다. 그런 걸 많은 사람과 제한 없는 장소에서 나누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모여서 움직이는 역동적 힘을 잘 보여줄 곳이 거리이기도 하다. 그랬을 때 대한문이 갖는 상징적 의미도 있고, 사랑방이 대한문과 연결되는 부분이 많다. 함께 살자 농성촌이나 ‘을’들의 이어말하기 등을 진행하는 그 상징적 장소에서 우리의 새로운 운동을 나누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에 대한문에서 하기로 했다”(민선)
모토가 변혁을 꿈꾸자다. 인권운동으로 바꾸고자 하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
“사랑방은 체제에 갇히지 않는 인권을 쭉 고민해왔고, 2000년대 초입에 진보적 인권운동론이란 이름으로 다른 인권운동과 그런 고민을 나눴던 것 같다. 인권운동이 어떤 의미에서는 규범화되고 일반화되는 만큼 체제에 포섭되기도 하는 이런 언어이기 때문에 그렇지 않은 인권이 무엇인지, 인권운동이 스스로 그걸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고민을 했던 것 같다.
지난 해 20주년 워크숍 하면서 돌아봤을 때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우리도 모르겠다’가 그 답인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다시 여러 운동들과 함께 변혁을 적극적으로 모색해야한다는 고민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인권 의제, 인권 사안, 인권 현안들에 대한 대응을 넘어서 한국사회, 혹은 그보다 넓게 어떻게 세상을 바꿀 거냐는 전망을 늘 염두에 두면서 운동을 조직해 나가지 않은 채, 하다보면 바뀌는 그런 세상은 아닌 것 같다는 고민이 있었다.
인권운동만으로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고, 여러 운동들의 연결이 중요할거란 생각 들었다. 그렇게 운동들이 연결될 때 우리가 바꿔야 할 체제의 모순을 더 분명히 직시하고 그걸 향해 좀 더 힘을 모을 수 있을 거란 고민이 들었다. 운동들의 연결이 향하는 사람다움에 대한 감각, 인간의 존엄, 이걸 세우고자 하는 관계를 서로 만들고자할 때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미류)
그런 고민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인가
“작년 한 해 20주년 워크샵에서 나름 진이 빠지게 고민했다. 팀별 평가가 아니라 인권운동이란 이름으로 전체적인 시야를 가지고 평가해보자고 출발하다 보니 점점 넓어져서 ‘한국사회 운동 속에서 인권운동은?’ 이란 물음에서 시야가 넓어 졌던 것 같다. 그러면서 이런 고민들이 적극적으로 시작된 것 같다”(정록)
회동에 관한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하기 전에 다른 20주년 행사부터 소개해 달라
“20년 기념 책자 ‘세상을 바꾸는 조직책’을 만들고 있다. 작년에 나눴던 고민들을 잘 정리해서 나누기 위한 책자다. 지금 우리가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사랑방이 하려는 운동, 같이 나누고 싶은 고민을 주요하게 담아 보려고 하고 있다. 비슷하게 그런 고민들을 저마다 하고 있던 분들과 당일 날 같이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메인프로그램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책자에 같이 담을 계획이다. 행사 당일에 배포할 예정이다”(민선)
“그리고 20년 동안 응원하고 지켜봐준 분들께 감사하다고 수건을 드린다. 현장에 오시면 수건도 드린다”(미류)
“수건만 받고 가면 안 된다고 꼭 써주세요”(훈창)
한국사회가 너무 많이 변해서 사랑방 10주년 때 고민과 20주년 때 고민의 차이가 클 것 같다
“저희가 진보적 인권운동을 이야기를 하던 때가 김대중 정부 들어서면서다. 인권대통령이나 국가인권위설립 등으로 인권이 제도화로 진입하는 단계에 있었다. 진보적 인권운동의 기치를 내걸고 의제 중심의 사회권 등을 진보적 인권운동의 중요한 화두로 삼았다.
이번에 워크샵 논의를 거치면서 진보적 인권운동이 특정 의제 등으로 설정되기 보다는 통합적 인식을 하면서 인권운동이 전체운동의 어떤 위치에서 자기 일을 해야 하나를 고민하는 과정이었다. 그것이 더 깊이 있게 아래로부터 들어가 조직 활동을 하려고 했던 그 고민의 문제의식과 맥이 닿는 것 같다.
지난 10년 동안 인권이 의제로 뜨기도 하고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어떤 한편으로 공중전을 열심히 해왔다. 그런데 허망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권이 규범화된 것들을 의제로서 얘기를 했지만 우리사회에 깊숙이 들어간 것은 아닌 것 같다. 그런 고민과 반성이 있었다. 인권이 더 삶과 관계에 밀착할 방법, 그런 가치를 중심으로 활동을 전환해야겠다는 결의가 작년 워크샵을 하면서 올해까지 이어진 문제의식이다.
인권이 어느 정도 제도화 되면서 ‘인권이 이런 거야’라고 얘기할 수 있는 진보적 인권운동의 가치나 제도화된 인권과의 경합도 이뤄지긴 했는데, 그 힘만으로는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는 자각이 평가 속에서 이뤄졌다는 판단이 든다. 사랑방은 더 중심적인 위치를 대중적으로 조직하고, 삶과 밀착한 관계를 인권의 이름으로 조직하려는 고민을 더하려는 것 아닌가 싶다”(최은아)
“IMF 경제 위기 시절과 민주정부 시절부터, 분할되면서 깨져나간 운동들이 있었다. 서로 모여서 싸우려는 운동이 사라진 조건에서 우리가 계속 인권 얘기만 해선 안 되는 거 아니냐는 고민이 있었고, 대중의 힘을 어떻게 변혁적으로 조직할 거냐는 질문들을 던지게 됐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서면서 세상이 거꾸로 가는 것 같다고 하지만, 이미 97년부터 변화해온 통치체제를 우리가 충분히 못 봐 왔던 것 아니냐 싶다.
독재의 부활이고 인권의 후퇴라고 쉽게 얘기하기 전에 실제 인권을 둘러싼 억압의 체제가 어떻게 변해왔는지 잘 봐야한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 스스로도 더 통합적이어야 하고 다른 운동과도 연결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흩어져 버린 관계나 장소, 조직들을 만들려고 스스로 도전하지 않으면 어렵지 않겠느냐는 이런 고민이 들었다”(미류)
인권운동이 어떤 형태로 일종의 대중조직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변혁을 지향하는 다른 사회운동들과 비슷한 지점도 있어 보인다
“지금 그런 운동들과 차이를 규명할 필요는 별로 없다고 본다. 같은 것을 많은 사람이 하는 운동이면 의미 있는 운동일거라고 생각한다. 다르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하지만, 기존에 선험적으로 가지고 있던 대중운동의 상이라든지 에서 우리 스스로도 자유롭게 출발하고 싶은 건 있다.
전선운동이나 구체적 대중조직에 대한 평가나 구상이 저희에게 있다기보다는 그 형식이나 대중운동을 가능하게 하는 혹은 유효하게 하는 핵심적 힘이나 관계가 뭔지를 더 적극적으로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있다. 전선체를 함께 만들 수도 있는데 예를 들면 ‘그 전선을 함께 구성하는 운동들의 관계는 어떻게 되어야 하지?’, ‘대중조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모이면 좋은 건 맞는데 그 모인 조직은 어떤 관계를 새롭게 만들고 그 조직은 다른 조직과 어떻게 서로 힘을 주고 받을수 있을까’를 더 고민해 보고 싶다(미류)”
사랑방의 굵직한 역사 몇 가지
인권운동사랑방은 1993년 창립했다. 그해 2월 서준식, 노태훈, 염규홍, 류은숙 등 초기 활동가들은 ‘인권운동사랑방’으로 단체 이름을 정하고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이름을 ‘사랑방’이라고 지은 것은 인권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문턱 없이 찾아올 수 있는 곳이 되자는 뜻이다.
초기 사랑방 역사는 ‘인권하루소식’이란 팩스 신문으로 대변 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시 노태훈 사랑방 활동가가 공안기관원들에게 연행되자 팩스를 통해 ‘인권하루소식’ 준비1호를 발행했다. 인터넷도 없고, 언론환경조차 좋지 않았던 시기 팩스신문을 통한 신속한 정보공유는 노태훈 사건으로 한건을 올리려 한 공안기관의 의도를 막아냈다.
‘인권하루소식’은 본격적인 창간 후 팩스에서 95년 PC통신으로, 96년 인터넷으로 진화하며 제도권 언론에서 보지 못하는 인권소식을 전달해 수많은 특종을 만들어 냈고 언론의 주요 취재원이 되기도 했다. 하루소식은 2006년까지 이어오다 진보언론의 성장과 인터넷 환경 발달로 종간하고 현재는 주간인권신문 <인권오름>으로 이어지고 있다.
사랑방 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됐던 진보적인 인권운동론도 사랑방 역사에서 짚어봐야 할 중요한 지점이다. 98년 서준식 대표는 민변 10주년 기념토론회에서 ‘진보적 인권운동을 위하여 - 21세기를 바라보는 한국 인권운동의 한 초상’이란 글을 통해 서구 중심의 자유주의적 인권과 결별을 선언하고 현 체제에 도전하는 진보적 인권운동론을 제기했다. ‘진보적 인권운동’은 담론과 내용을 생산하기 위해 인권운동연구소 설립 고민으로 이어진다.
사랑방과 인권영화제도 뗄 수 없는 관계다. 96년 인권하루소식 창간 3주년, 700호 기념행사를 맞아 1회 인권영화제를 기획했지만, 공연윤리위원회는 ‘사전심의’ 라며 모든 영상물을 검열했다. 영화제 내내 공안당국의 압력이 있었지만 11월 2일부터 8일까지 32편의 영화를 총 1만 5천여 명이 관람했다.
2회 인권영화제는 더욱 탄압이 심했다. 공안당국은 영화제 상영작인 ‘레드헌트’를 문제삼아 대대적인 탄압을 진행했고, 서준식 대표는 국가보안법, 보안관찰법, 공연법 위반과 주거침입 등 혐의로 연행됐다. 하지만 이로 인해 인권영화제는 더욱 세상에 알려지기도 했다.
이런 방향을 잡은 것은 기존 이슈 중심이나 팀별 체계라는 사랑방 운동의 한계를 느낀 건가? 아니면 10년 동안 해온 진보적 인권운동이 세상을 바꾸기엔 뭔가 부족했나
“그렇게 까지 평가했다기 보다는, 옛날에는 인권이 깃발을 꽂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에게 선명함을 주고 가치의 기준을 정함으로써 방향 같은 것들이 모아지고 그걸 할 수 있던 사회적 힘들이 존재했다. 더 이상 (대중들이)그 깃발을 바라봐 줄 상황이 안 되는 조건에서, 우리가 거리를 유지하면서 ‘이런 게 인권이야’ 얘기하는 것만으로 사람들에게 스며들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관계에 착목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공중전이 아래로 더 스며들지 못했다는 고민이 있었고, 그런 것들을 해보려는 마음이 강하게 움직였다. 인권을 실현하기 위한 우리의 관계라는 것들이 어떻게 재구성해야 하느냐에 포커싱을 하면서 운동을 조직해 보겠다는 고민이 있는 거다”(최은아)
대중운동적 방식의 인권운동은 예를 들면 노조 조직화에 같이 한다던가 이런 건가. 사례를 든다면
“저희가 중심활동 팀에서 올해 ‘안산지역 반월시화공단 노동자 권리찾기’라는 중소영세사업장 조직화 사업에 결합하기로 했다. 아직 걸음마 단계지만 왜 우리가 그 곳에 주목했는지 이유가 중요하다. 인권운동에서 인권의 가치라고 나열되는 권리항목들이 있는데. 예를 들면 노동권이라 할 때 실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노동권이 자기 권리로 인식이 되고 그게 주장이 될 수 있는가에 대해 저희도 답답하고 잘 모르는 부분이 많았다.
기존 노동운동의 조직화 방식이 전혀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공단지역에서 사람들과 어떻게 만날 수 있고, 그 사람들이 노동자로서 인간으로서 자신의 권리를 자각해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가는 조직을 만들 수 있을까라는 연장선에서 같이 고민할 것들이 많겠다고 생각했다. 권리항목으로 잡혀 있는 인권이라는 게 실제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속에서 살아나가고 자신의 언어가 될 수 있을지에 대해 구체적 운동 속에서 실험해 볼 수 있는 장소가 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에 안산지역에 결합하게 된 거다.
여기에 더한 고민은 노동문제와 먹고사는 문제, 그 가치들에 대해 인권이 동시에 적극적으로 얘기해나가고, 인권이 배부른 운동이거나 밥 먹여 주냐 이런 게 아니라 오히려 그런 권리를 통해서만이 제대로 실현해 나갈 수 있다는 고민들과 맞부딪히고 싶었다. 우리가 체제를 변혁하자 세상을 바꾸자 얘기할 때 노동하고 먹고사는 문제에 대해서도 정면으로 직시하고 실험들을 해 보고 싶었던 거다”(정록)
![]() |
그 외 더 준비하는 게 있나
“앞으로 안산 활동을 사랑방 활동의 구심으로 놓고, 다양한 고민을 할 계획이다. 물량에 따라 일이 불안정하고 임금이 낮아 그걸 보존해야하니까 더 일만 해야 하는 중소영세 사업노동자들에게 ‘쉴 권리가 있어요. 공정하고 유리한 임금의 권리가 있어요’라고 해도 안 먹힌다. 그 조건을 같이 부대끼지 않으면 인권이 무력한 언어가 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도 정권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싶어서 침해하는 게 아니다. 어떤 표현들을 막고 싶은 거다. 그러면 거기에 맞서는 힘은 ‘그 법과 제도가 잘못 됐어’라고 하는 게 아니라 그럼에도 모여서 같이 얘기하고 싶고 좀 더 행동을 도모하는 싶다는 기운을 만들어 내야저항이 가능하다. 인권운동이 그런 걸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대한문 앞에서 ‘이어말하기’를 하고 이런 것 들이 그런 사람들의 관계를 조직하고 운동들을 연결하는 또 다른 실마리를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미류)
“변혁적 대중조직을 한다는 게 어떤 조직을 만드는 게 목표가 아니라 어떠한 조직과 관계와 연결을 만들기 위한 사람들의 연결을 복원하는 것들에 대한 고민을 하는 건데, 정록 말처럼 권리로 호명될 때 들리지 않는 소리들, 충분히 연결 될 가능성이 있지만 그렇지 않아 왔던 오래된 운동 역사들이 있다. 반차별 운동, 노동운동 등 각 운동들이 각 운동으로만 떠있던 것들이 있었다.
이어말하기는 대한문이란 장소에서 반차별 활동가들이 그냥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다. 어떤 주제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 얘기를 하는 자리다. 자기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이야기만 나오는 게 아니라 서로 이야기들의 공통점이나 연결지점이 만들어 지는 것이다.
너는 너였고, 나는 나였고, 너는 노동자고 나는 장애인이고, 나는 성소수자고. 이렇게 그냥 불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이야기들 속에는 각자가 이 사회에서 어떠한 위치나 어떤 사회적 존재로서 어떤 차별 속에서 살아오고 있는지 들이 끊임없이 연결되는 거다.
그런 자기 얘기를 통해 ‘이건 무슨 권리야’라고 표현할 수 없는 거다. 그 사람의 얘기에는 그 사람 자신의 존엄을 유지하는 수많은 존엄성을 갖고 있는 거고 그건 그냥 하나의 권리로 호명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불리는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연결이 되어가는 과정들이다”(훈창)
“작년에 희망버스 사법탄압에 맞선 돌려차기 활동을 같이 경험하고, 공권력감시 대응팀 문제 의식도 발전한 건데, 구체적으로 집회시위의 자유라고 했던 권리항목들이 실제 투쟁하고 싸우는 사람들과 어떻게 결합될 수 있나 고민하게 됐다. 그게 진전돼서 굴러가는 게 현재 ‘집회시위 제대로’란 모임으로 굴러가고 있다.
집회시위에 의견서를 내고 현행법에 어떻게 틀렸고 이런 얘기가 당사자인 사람들의 언어로 스며들지는 못했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그 언어가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에게 이게 왜 나의 권리가 될 수 있는지, 이걸 가지고 내가 어떤 자신감을 얻고 경찰과 맞장 뜨고 싸울 수 있는지에 대한 느낌, 감각 이런 것들을 확실히 볼 수 있었던 경험이었다”(정록)
“언론이나 무작위 대중에게 말하는 방식보다는 더 밀착되게 사람들 만나는 기획들을 고민하고 있다. 이어말하기도 그렇고 집회시위모임도 그렇고 밀착된 관계로 스며들기다. 이런 부분에 더 초점이 가 있고, 그런 감각을 사랑방이 만들어 보겠다는 의지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최은아)
“이런 고민은 사랑방의 조건에서 나오는 것 같기도 하다. 사랑방은 인권단체 안에서 종합적 인권운동단체라고 불리는데 딱히 자기 주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고 하다 보니 때론 입만 살아 있는 단첸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다 보니 우리 스스로 우리를 더 붙들어 매야겠다는 고민을 하게 된 것 일수 있다. 이런 고민을 하기까지 그동안 사랑방과 함께한 운동들로부터 배운 게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미류)
“같은 얘긴데 조건이 바뀐 게 분명히 있는 듯하다. 초기에 사랑방이 만들어 질 때는 인권운동의 자리를 만들려는 시도가 있었고, 인프라를 구축하고 플랫폼들이 이용될 수 있도록 기여하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것들이 성과로 쌓여 10년이 지나고 20년까지 오는 사이에, ‘인권교육센터’, ‘인권영화제’, ‘인권연구소’ 모두 분리 독립했다. 그렇게 남아 있는 사랑방에서 앞으로 진보적 인권운동을 어떤 식으로 더 구체화 하면서 펼쳐갈지 고민할 수밖에 없다.
기존 활동은 권리침해 당사자들을 짧은 호흡으로 만나는 경험들이 주로 있었던 것 같다. 사람들의 조건은 다들 먹고살기 힘들어 뿔뿔이 흩어져 있는데 그런 조건 속에 사랑방 활동가들이 더 깊숙이 들어가 긴 호흡으로 사람들을 만나려는 노력들을 해야 하는 것 아닐까라는 것이다”(민선)
최근 진보운동의 트렌드와는 역행하는 것 같다. 오히려 진보운동은 지난 10년간 의회나 제도권에 진입해 공중전을 통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또 요즘은 진보정치 속에서도 변혁을 얘기하면 낡은 생각처럼 규정한다. 그런데도 사랑방 활동가들이 보기엔 변혁을 하지 않고는 바꿀 수 없는 게 너무 많은 세상인가.
“87년 이후 중간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고 사회에 절차는 마련되고 공간이 열렸다고 이야기 되는데 점점 조여지는 듯 한 느낌이다. 뭔가 (합법공간이)열렸다기 보다는 포위된다는 느낌이기도 하고 운동은 점점 더 안 된다는 것을 직관으로 느끼는 데 잘 모르겠다. 옛날엔 집회시위가 더 불법이었고, 더 빡세게 했다. 지금은 (합법적인) 공간이 열렸다고 하는데 여기까지는 합법이고 여기를 넘으면 불법이다”(정록)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운동도 제도화의 길을 걸었다. ‘공장이나 거리에서 안 싸우고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어’라며. 그게 굉장히 과대포장 됐고 운동이 분열되기도 했다. 실제는 싸운 사람들은 더 많은 억압과 궤멸을 당해야하는 그런 조건이 김대중 정부부터 있어 왔던 거다. 유별나게 이명박, 박근혜 정부 들어 더 난리치고 그런 게 아닌데 운동들이 그런 부분들에 대해 변화의 지점들을 잘 캐치를 못했다. 마치 싸우지 않고 쟁취할 수 있는 것이 굉장히 많은 것으로 착각하지 않았나 생각도 든다”(최은아)
“다만 제도화가 문제였다 이런 식으로 평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97년 김대중 당선이란 사건은 한국사회를 흔든 사건이라고 보다. 사랑방도 제도화나 체제내화 거부한다고 했지만, (김대중 정부가)국가인권위도 만든다고 하고 각 위원회도 만든다고 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부터 어디까지 해야 하나 이런 고민들이 있었고, 모든 운동이 다 그랬다.
그래서 더 어려워졌다고 말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언제나 그 시대의 감각이란 걸 가지고 현실과 호흡하면서 운동이 스스로 변해야 하는데 그런 게 좀 부족했던 건 아닌가 싶다”(미류)
“개인적인 생각인데 인권운동도 제도화 된 곳이 많지만 정부부처에서든 뭐든 구체적으로 따낼 것은 없는 것 같다. 인권조례를 만든다고 해서 정말 강제력을 갖는 것도 아니고 장신구화 되는 느낌이 크다. 우리 앞에 구체적 변화를 이끌 계기가 다가오면 고민이 많을 것 같은데 지금 각 구청에서 인권조례를 만들고, 어디서는 인권교육을 한다고 하는데 그런 게 세상을 구체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느낌으로 다가온다기보다는 이용당한다는 느낌이 강한 것도 있다”(정록)
의회나 야권 지자체 등과 제도와 합의를 통해 운동이 뭔가를 이룰 수 있는 힘을 갖는데 대해 부작용을 얘기하면 운동이 현실과 괴리됐다는 조롱 섞인 비판을 받는 경우가 갈수록 많아진다. 사랑방도 그런 비판에 직면하게 되지 않을까
“제도화 자체를 가지고 맞느냐 틀리느냐를 얘기하는 것은 별 도움이 안 되는 것 같다. 서울학생인권조례 운동을 예로 들면 조례가 제정되면서 제도화가 된 거다. 서울 시민의 주민발의를 모아낸 과정을 통해 힘들기도 했지만 청소년활동가들이 모일 수 있었던 힘을 봐야한다. 더 많은 청소년들이 모이고 함께 할 수 있게 만드는 토대다. 제도화라는 게 제도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서 안에서 위치나 성격을 바꾸면서 움직이는 거라면 제도에 들어가느냐가 핵심이 아니라 운동의 무게 중심을 어디에 둘 거냐가 문제의 핵심일 것 같다.(미류)
사랑방 초기 주요 활동가들이 대부분 각자의 인권운동 영역으로 독립해 나갔다. 그게 어떤 의미에선 영역이 넓어진 걸 수도 있지만 사랑방 역량이 축소된 건 아닌가
“사랑방은 단체 하나를 크게 키워서 다 해 보겠다기보다는 독립 가능한 여건이 되는 의제 사업들은 독립하는 것이 애초 구상이었다. 그때 많이 거론된 게 교육실, 영화제, 인권연구소였다. 자기 완성적인 자생력이 있는 활동으로 조건화될 즈음에서 독립을 한 것이다. 사랑방 자체로는 작아진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인권운동영역에서 봤을 때는 더 커지고 더 너른 인권운동의 마당으로 같이 가게 된 것이다”(최은아)
“실제 독립하면 휘청한다. 작은 단체가 되겠다고는 했는데 작아지니까 힘들다. 활동가가 부족하다. 언제든지 사랑방은 열려 있다. 그걸 몰라서 사랑방의 문을 안 두드리는 분들이 많다. 지금 전화주시라. 사랑방은 언제든지 열려 있다”(미류)
지원하면 받아줄 만한 재정은 되나
“누구에게나 열린 조직이 된다는 것은 재정문제가 맞물려 있다. 더 들어오면 활동비를 같이 나누게 된다. 활동비가 줄어들 수 있다. 활동가 지원기금 등을 적립해두기는 하는데 더 많은 사람들이 같이 하는 게 여전히 좋다고 생각한다. 사랑방은 재정 규모에 맞춰 사람을 모집하거나 공채를 하지는 않는다”(미류)
개인적으로 활동가들이 미래에 대한 불안감들은 없나. 4대 보험도 없고, 열악한 활동비로 생활도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활동가로서 개인적 고민들이 있다면
“사랑방뿐 아니라 모든 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일을 할 수 있는 조건들을 더 높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 9급 공무원 초봉 기본급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다는 게 개인적 바람인데 110만 원 정도에 4대 보험 정도는 돼야 한다. 그게 자본에 기대지 않고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가치와 맞아야 한다. 또한 저희가 인적 네트워크라 사이좋게 잘 지내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 그 두 가지를 잘 실현해보고 싶다”(최은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