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1:8]
만물의 피곤함을 사람이 말로 다 할 수 없나니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고 귀는 들어도 차지 아니하는도다
만물의 피곤함을 ... 할 수 없나니 - 혹자는 '만물'을 뜻하는 '칼 하데바림'에서 '데바림'을 '말'을 뜻하는 것으로 보고) '만물의 피곤함'이란 '모든 말들이 고통스럽다'는 뜻으로 이해한다. 70인역(도 '만물'을 '말'로고스로 취하여 '모든 말씀들이 피곤하다'로 번역하고 있다.
이럴 경우 상반절의 의미는 '모든 만물, 자연 현상들이 무상하므로 이것을 말하려면 피곤하여 다 말할 수가 없을 정도이다'는 뜻이 된다. 그러나 주석가 델리취, 바톤 등은 '만물'을 개역 성경처럼 그대로 '만물'로 취한다.
그리고 영역본들도 대부분 이렇게 본다. 이럴 경우 '만물의 피곤함'이란 앞절들에서 언급된 바와 같이 '모든 만물이 무상하고 헛된 수고로 인해 곤비케 되어 있다'는 뜻이다. 이중 후자의 해석이 더 자연스러운 듯하며,
이는 '피조물이 ..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이라는 구절을 연상시킨다. 눈은 보아도. 아니하는도다 - 만물이 무상하고 헛됨으로 인해 그것을 보고 듣는 자가 만족을 얻지 못하고 오히려 피곤하다는 의미이다.
[고후 3: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우리의 민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 바울은 자신의 확신이 자기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부터 말미암았다는 것을 알고 있듯이, 자기를 통해 일어난 모든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께 있음을 밝히고 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이 자기 자랑을 일삼는다는 비난을 의식하여 자기의 겸손을 의식적으로 드러내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은 언제나 자기 능력의 원천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었다 한편 혹자는 본절이 '여호와의 날이 크고 심히 두렵도다 당할 자가 누구랴'(욜 2:11)는 구약의 구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로 하나님 존전에서 인간은 자신의 연약함과 유한성을 인식하게 되며 그때 겸손한 태도를 취하게 된다. 왜냐하면 인간은 죽을 운명을 가진 유한한 존재에 불과하나, 하나님은 스스로 자족하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