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은 역사(歷史) 속에서 계속 존재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사탄은 태초부터 진리를 왜곡하는 악한 존재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셔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이 계속 등장했습니다. 예루살렘부터 시작된 복음의 전파가 온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헬라 지역을 비롯한 이방지역에도 전해져서 복음이 전해지는 곳마다 거듭난 그리스도인들이 생겨났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교회들 안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왜곡하는 자들이 생겨났습니다. 에베소교회는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 때 에베소에서 복음을 전하여 생겨난 교회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3년이나 머물면서 가르쳤고, 그 이후에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맡기고 떠납니다. 그 후에 바울이 제4차 선교여행 중이었던 AD 64~66년경에 마게도냐의 빌립보에서 에베소교회에서 사역하는 디모데에게 편지를 보낸 것이 디모데전서와 디모데후서입니다.
바울은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한다고 하면서 편지를 시작합니다(1절, 2절). 디모데는 바울의 제1차 선교여행 중에 바울을 만나 거듭난 바울의 제자였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에서 사역하는 디모데에게 에베소교회를 맡긴 이유에 대해서 3절에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몰두하지 말게 하려”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절, 4절). 다른 교훈을 가르친다는 표현은 헬라어로 “헤테로디다스칼레인”(ἑτεροδιδασκαλεῖν)인데, 온전한 진리가 아닌, 왜곡되고 잘못된 가르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신화(神話)는 헬라어로 “뮈도스”(μύθος)로 꾸며낸 이야기나 전설(傳說) 등을 의미하고, 끝없는 족보(族譜)의 족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게네알로기아이스”(γενεαλογίαις)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신화를 만들어 내기 위해 끊임없이 꾸며낸 족보를 의미하는 것으로 성경에서 벗어난 신화를 만들어 그것에 집착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행태(行態)는 그 당시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는 영지주의(靈知主義, Gnosticism)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3절에 말씀하듯 “어떤 사람들을 명하여”라고 할 때 어떤 사람들은 바르지 못한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인데, 이들은 20절에 나오는 후메내오(Hymenaeus)와 알렉산더(Alexander)를 비롯한 무리를 일컫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올바르지 못한 교훈을 에베소교회 안에서 가르치려고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디모데를 에베소교회에 남겨두어 사역하게 했다는 말씀입니다.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경륜(經綸, Administration)이 아니라 변론(辯論, Argument), 즉 논쟁(論爭)이 몰두하며, 율법의 선생 노릇을 하려고 하지만 실상은 자기가 주장하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합니다(4절, 6절, 7절). 뭔가 논리적으로 그럴듯하게 말하고 있지만, 궤변(詭辯)을 늘어놓는 경우가 많고,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빠지기 쉬운 헛된 가르침입니다. 성경의 진리에 근거하지 않고, 인간의 논리에 짜 맞추려고 하니 결국은 복음의 진리에서 벗어난 가르침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신 율법 자체는 문제가 없습니다. 율법을 선하게 사용한다면 매우 선한 것입니다(8절). 이 율법은 옳은 사람들에게는 거치는 것이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어기고 제멋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 옳고 온전한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율법이 필요한 것입니다(9절, 10절). 그리고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우리 스스로 율법에 따라 의로운 삶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대신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시고,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믿는 자들에게 은혜로 의로운 자로 삼아주시는 복을 누리게 하셨다는 진리가 복음입니다. 하나님은 바울과 디모데에게 이러한 영광스러운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시도록 맡겨주신 것입니다(11절).
복음의 가르침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을 불러일으킵니다(5절). 그런데 다른 교훈, 올바르지 못한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은 오히려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자기 논리에 빠져 자기만족을 얻고자 하면서 헛되고 망령된 결과만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없는 자들은 경건하지 못한 삶을 살아갑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복종하지 않으면서 경건하지 못하게 살아가는 자들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정죄와 심판을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의롭지 못하여 악한 자들의 모습을 9절과 10절에 나열하고 있는데, 이 목록에는 남색(男色)하는 자들도 언급되고 있습니다. 남색하는 자는 헬라어로 “아르세노코이테스”(ἀρσενοκοίτης)라는 단어가 사용되는데, 동성애(同性愛)를 일컫는 단어입니다. 요즘은 동성애에 대해 관용적인 태도를 취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동성애를 분명히 악한 죄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물론 동성애자도 다른 죄를 짓는 자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할 불쌍한 영혼들이기에 그들에게 권면하고 주님께로 돌아와 동성애의 죄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야할 대상입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이 주님께로 돌아와 회복되도록 돕되, 동성애라는 죄에 대해서는 분명히 죄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고, 그 죄에서 회개하여 돌이키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그리고 동성애를 비롯한 여러 죄악들에 빠져있는 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 들어와 죄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고, 잘못된 가르침에서 벗어나 복음의 진리 안에 온전히 살아가도록 가르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지금의 시대도 왜곡된 진리가 난무(亂舞)하고 있습니다. 이단(異端)의 가르침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영광스러운 복음을 제대로 선포하고 가르쳐서 교회 안에 왜곡된 가르침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해야 할 사명이 우리에게 주어졌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주님, 영광스러운 복음의 진리가 교회공동체 안에 가득하게 도와주시고, 왜곡된 가르침과 바르지 못한 다른 교훈들이 교회공동체 안에 발 붙이지 못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안창국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