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의 잣대는 무죄일까?
치과의사는 이를 보고 판단한다. 치아에서 그 사람의 건강과 습관을 본다. 담배를 피우는지, 커피를 자주 마시는지 정도는 기본이다. 어지간하면 그 집 식탁의 반찬까지 짐작한다. 고기를 즐겨 먹는지, 과일을 자주 먹는지 한눈에 알아본다. 세끼 꼬박꼬박 챙겨먹는지, 인스턴트식품으로 대충 때우는지, 그리하여 요즘 건강 상태가 어떠한지도 별로 어렵잖게 알아낸다. 노련한 의사들은 입 안에 조명기구를 넣으며 치아만 들여다보지는 않는다. 진료용 의자에 앉아 입을 벌리면 그때부터 그는 우리의 인생을 훑어 내린다. '흠, 어린 시절 부모의 관심을 못 받고 자랐군! 비뚤어진 성격 때문에 교우관계가 엉망이겠는 걸!' '쯧쯧… 양치질을 30초 이상 못 하는군! 어지간히 급한 성격이야!' '치과 검진을 꾸준히 받은 사람이군! 가정교육도 제대로 받았겠는 걸!' '오호라! 드물게 보는 고매한 인품인 걸, 골프는 싱글 정도 되겠어!'
구두닦이는 구두를 통해 사람을 본다. 그는 오로지 구두만 보고도 그 주인의 키와 몸무게와 체형을 짐작할 수 있다. 뒤축이 닳은 모습에서 걸음걸이를 읽어낸다. 활동이 많은 영업 사원인지, 주로 구두를 벗고 지내는 사무직인지 금세 추측해낸다. '깔끔하고 빈틈없는 성격이야! 이 정도면 과장급은 되겠는 걸…' '비싸지는 않지만 꽤 좋은 가죽이군! 이 사람은 공무원이 틀림없어!'
사람들은 저마다의 안경으로 세상을 본다. 내가 낀 안경은 마케팅이다. 마케팅의 눈으로 사람을 보고, 마케팅의 관점에서 세상을 해석한다. 마케팅 업무를 맡은 이후 세상에는 오직 두 종류의 뉴스가 있을 뿐이다. 평화방송 마케팅에 도움이 되는 뉴스와 그렇지 않은 뉴스다. 전자라고 생각되면 꼼꼼히 챙겨 읽고, 후자라고 생각되면 아예 관심을 끈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내년 초에 새 추기경을 임명한다고 교황청이 발표했다. 그때부터 나의 아침 기도는 지향이 정해졌다. '주님, 부디 한국교회에도 새 추기경을 주옵소서.' 그 뒷부분에 차마 덧붙이지 못한 나의 속마음은 이것이다. '주님, 가톨릭이 주목받고, 평화방송이 주목받는 그런 큰 기회를 꼭 만들어 주세요. 평화방송 시청률이 오르고, 평화신문 구독신청이 쇄도하고, 광고도 협찬도 쑥쑥 오르는 그런 잔칫날을 꼭 마련해 주세요.'
내년엔 또 하느님의 종 124위 시복시성운동이 결실을 거둘 가능성이 높은 해이다. 이 안건은 지난 10월 교황청 시성성 신학위원회 심의를 통과했다. 거의 마지막 단계 심사가 끝나자,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도 시복식 준비에 나섰다. 그때부터 나는 날마다 기도한다. '주님, 주님의 종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124위 시복식을 직접 한국 땅에 가서 집전하라고 일러 주십시오.' 교황 성하의 한국 방문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뛰는 일이다. 가톨릭 신자는 물론 온 국민의 큰 경사가 될 것이다. 더불어 나는 차마 드러내지 못할 기대를 품는다. '그렇게만 되면 평화방송 마케팅에도 큰 장이 설 것이다. 야호!'
마케팅 업무를 맡고부터 나는 두렵다. 한마디로 '겁도 없이' 들이댄 마케팅의 잣대는 용서받을 수 있을까? 거룩한 말씀도, 신성한 교회도, 신자들의 공동체도 온통 마케팅의 영역으로 본다. '신앙의 해'에는 '신앙'을 상품화해야 하고, '말씀의 해'에는 '말씀'으로 수익을 창출해야 한다. 이런 불경한 생각과 행동을 주님께서는 어떻게 보실까? 치아를 보고 사람을 판단한 치과의사나 구두를 보고 직급을 유추한 구두닦이는 행복하다. 그들은 성호경 한 번 긋는 것으로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거룩한 교회의 일을 늘 마케팅과 연결시켜 기도한 나는 과연 주님 앞에 온전히 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