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1. 큐티
사도행전 1:15 ~ 26
말씀 해석에 대한 순종으로 제비 뽑아 맛디아를 열 두 사도에 포함시키다
관찰 :
1) 열 두 사도에서 궐이 난 상황 설명
- 15절. “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 성령의 강림으로 성령 세례를 받은 이들이 120명이나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상황에서 베드로가 성경의 말씀이 생각나게 되고, 그 말씀에 대한 해석이 이뤄지게 되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열 두 사도의 수에 한 명이 비게 되는 상황에 대한 것이었고, 그 직분을 다른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었다. 이 상황이 급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베드로는 성령의 강권하심으로 이 일을 순종하고자 하고 있다.
- 16절.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 가룟 유다의 배신과 그의 종말이 성경에 이미 기록된 대로 된 것이라는 입장이다. 베드로는 가룟 유다를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그가 예수님을 죽인 모든 책임자는 아니지만, 무리를 끌고와서 예수님을 붙잡는 일을 한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비록 가룟 유다가 자신의 죽음으로 그 죄책을 벗어나고자 했지만, 그렇게 해서 죄책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지만, 그렇게 한지 겨우 50여일이 지났을 뿐이지만, 진실한 회개로 말미암아 회복의 은혜를 입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자신의 판단대로 행했고, 그 결과는 자신의 죄과를 영원히 씻지 못하는 것이었다.
- 17절.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 => 베드로는 유다의 이름을 16절에 언급했지만 의도적으로 그 이름을 피하고자 하고 있다. 그만치 가룟 유다에 대한 긍정적이지 않는 태도를 베드로와 제자들이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역할은 예수님의 제자들 중에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 다음이라고 할 정도, 혹은 그 세 제자들 이상으로 다른 사도들에게 영향력을 크게 끼치는 존재였다. 그의 직무는 재정을 담당하는 것이었고, 그만치 예수님의 제자들 사이에서 그가 맡은 직무의 한 부분은 작지 않았다.
- 18절 ~ 19절. “(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 가룟 유다의 최후가 비참했다는 것을 기록하고 있다. 베드로 뿐만이 아니라 제자들, 그리고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이들에게는 이 비참한 소식이 다 알려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목을 매달고 자살을 했는데, 그 끈이 끊어지고 땅에 떨어졌을 때 배가 터지는 비참한 결과가 발생했던 것이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판 돈을 가지고 밭을 샀다. 그 밭은 그로 인해서 불의한 밭이 되었다. 이 밭은 피를 흘린 밭이 되었다. 가룟 유다는 자신이 죽어서도 불의한 행위와 그로 말미암은 이름이 지워지지 않게 되었다.
2) 성경의 말씀을 따르고자 하는 사도들 - 맛디아가 열 두 사도에 채워지다
- 20절. “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 앞의 구절은 시 69:25의 인용이다. 시편 기자의 원수들이 거하는 거처를 황폐케 해 달라는 간구의 내용이다. 베드로는 성령의 영감으로 이 구절을 유다에게 적용시키고 있다. 피 밭이 된 유다사 불의의 삯으로 지불한 땅은 공동묘지가 되었고, 거기 거하는 ‘산 자’는 존재하지 않게 되어 이 말씀이 응하게 되었다. “그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는 시 109:8의 인용이다. 원수가 제 명대로 살지 못하고 일찍 죽어 그 원수가 맡은 중요한 임무를 다른 사람이 맡게 해 달라는 기도이다. 베드로는 성령의 감동으로 이것을 12 사도 중에서 비게 된 자리를 채우는 것의 근거로 삼고자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12지파나 예수님의 12사도가 무의미 하게 주어진 숫자가 아니라는 것을 베드로는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 21절.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 베드로는 사도의 직분을 맡기에 합당한 자격을 제안하고 있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공생애 시작점을 세례 요한의 세례로부터 보고 있다. 그 때로부터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10여일 전의 상황까지 예수님과 함께 한 이들 중에 한 명이 사도의 자리를 계승해야 한다고 보고 있다.
- 22절.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 베드로는 사도의 빈 자리를 채우는 목적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언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 23절.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 함께 하고 있던 120명의 문도들은 베드로가 제시하는 조건에 맞는 사람으로 두 사람을 내세우게 되었다. “바사바”는 ‘안식일의 아들’이라는 히브리식 이름이고, 요셉은 흔한 이름 중의 하나였다. “유스도”는 ‘정의’라는 뜻을 가지는 로마식 이름이다. 이 후에 이 이름이 다시 언급되지는 않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일에 자신의 삶을 드린 삶을 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맛디아”는 ‘여호와의 선물’이라는 뜻을 가진다. 혹자는 이 사람이 여리고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라고 여기기도 하는데, 그러기에는 삭개오가 베드로가 제안하고 있는 조건에 부합하지 않는다.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맛디아”는 눅 10장에 언급되는 70인 제자들 중의 한 명이다. 맛디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다가 터어키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한 뒤, 참수되는 순교를 하게 된다. 충성스러운 삶을 살아낸 사도가 되었다.
- 24절.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 사도 베드로와 120명의 문도들은 예수님께서 세우신 열 두 명의 사도가 다 채워져서 주님의 지상명령을 감당하게 되기를 간절히 간구했다. 이 일이 얼마나 힘들고 고되고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라는 것을 이들이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럼에도 이들은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의 택하심의 은혜를 구하고 있다.
- 25절.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 사도 중의 하나로 채워져야 하는 이의 사명은 봉사와 사도의 직무를 감당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명예나 부를 위한 것이 아니었다. 철저히 자신의 내려놓고, 자신을 내어 드리는 직무가 사도의 직이었고, 가룟 유다는 바로 그 직무를 저버리고 죽었음을 하나님께 아뢰고 있다.
- 26절.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 제비를 뽑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으로 하나님의 뜻을 물을 때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120 문도들은 구약의 전통을 따라 사도의 궐이 난 자리를 채우는데 제비 뽑기를 동원한다. 그것은 사람의 판단과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중심을 보이는 것이었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순종을 의미하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사도의 자리가 채워지게 되었고, 주님의 몸 된 교회가 땅 끝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할 채비를 하게 되었다.
가르침 :
1) 사도 베드로는 성령의 영감을 받고 있다. 그리고 구약의 말씀을 해석하고 있다. 과거의 베드로의 모습이 아니다. 성령 강림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인도하시는 차원으로 해석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것은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혹은 제사장들 중에서 그 누구도 하지 못하던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고, 성경의 원저자이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말씀이 해석되게 된 것이다. 예수님께서 성령을 보내시고자 한 가장 크고 중요한 이유가 처음부터 그렇게 충족되고 있다.
2) 베드로는 가룟 유다의 죽음에 대해서 시편의 말씀으로 해석하고, 그 빈 자리를 채우는 것에 대한 근거도 시편의 말씀으로 찾게 되었다. 120명의 성령 충만한 무리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두 명의 후보자를 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을 철저히 신뢰하는 가운데 제비뽑기를 통해서 사도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된다. 이 일이 예수님께서 직접 행하신 것은 아니지만,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교회가 시작되는 가운데 이뤄진 첫 번째 교회 회의의 결정이 되었다. 맛디아가 사도의 빈 자리를 채우게 되는 일은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서 순종함으로 이뤄진 사건이었다.
3) 사도의 자리는 자신의 영광을 위한 자리, 권력과 부를 추구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주님이 맡기시는 책임의 자리는 언제나 그렇다. 이 땅에서 권력과 부를 취하고자 하면서 주님이 맡기시는 직분을 취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처음부터 그렇다. 120 문도들이 사도의 빈 자리를 채우고자 한 것은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해서 땅 끝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고자 함이었다. 그렇게 세워진 사도 맛디아를 비롯해서 나머지 10명의 사도들 모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순교하게 된다. 시간이 70여년 지나서 남은 사도 요한도 결국은 순교하게 된다. 주님은 이들 사명자들을 통해서 일하셨다. 오늘날도 동일하다.
적용 :
1) 주님의 일을 하고자 하면서 자신의 명예와 권세, 그리고 부를 추구한다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다시금 확인한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이 땅의 썩어 없어질 것으로 대체하는 어리석음을 경계해야 할 것이다. 주님이 내게 맡기신 사명을 다시금 깊게 묵상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한다.
2) 성령의 강림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해석의 차원을 달리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자의적인 해석이 아니라 성령에 의한 해석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대하는 자가 얼마나 성령의 내주하심과 계시의 정신으로 이끌림을 받아야 하는지를 명심해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자칫하면 내 원하는 것을 성경의 가르침으로 바꾸어 버릴 위험이 언제나 상존한다. 성령의 충만을 날마다 구해야 하는 너무나 중요한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