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에 대한 오해 (마 24:32-37)
32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33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34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나리라 35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37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이 시간에 “재림에 대한 오해”라는 제목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재림이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이 소식보다 더 복된 소식은 없습니다. 주님이 오실 때 온갖 아름다운 은혜와 복은 물론 우리의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암울한 심령에도 주님이 오셔야 해결되고, 지금 인간이 다스리는 세계, 온갖 전쟁과 난리와 고통의 현실을 바라볼 때 어서 주님이 오셔야 한다는 것밖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서 주님이 오십시오. 주님이 오시는 길만이 모든 것의 해결입니다.' 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재림의 약속은 신약에서만도 약속이 318번이나 나올 만큼 이 약속은 만고불변의 약속이요, 기독교 진리의 큰 기둥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재림만큼 오해도 많고, 재림만큼 온갖 사이비 이단들이 악용한 주제도 없을 것입니다.
재림에 대해서 오해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1. 재림의 시제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32-33절에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무화과 가지가 잎사귀를 내어 무성하다면 태양이 가까운 여름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여기 "이 모든 일"이 무엇인지가 중요합니다. 문맥을 보세요. 이스라엘의 회복? 아닙니다.
바로 앞의 구절, 마24:30-31에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그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의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이 자체가 재림이기도 한데, 한편 이런 일을 보거든 주님이 아주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는 것입니다.
여기 통곡을 사람들의 뒤늦은 후회로 볼 것인가? 아니면 회개의 눈물로 볼 것인가? 기록되지는 않았지만 택하신 알곡들을 모으시는 것을 보면 긍정적으로 봐야 합니다. 계1:7에 “볼지어다 그가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 사람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하심과 같이 지금도 주님이 성령으로 임하시는 현장에는 가슴 치며 통곡하는 회개의 역사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상이 주님이 우리에게 가까이 오신 현상이라는 것입니다. 참고로 주님은 초림으로 이미 오셨고, 성령으로 지금도 각인의 심령에 오셨고 오시고 계시며, 그리고 장차 육체까지 부활시키시기 위해서 온전히 오실 것이라는 것이 재림의 정설입니다. 이 재림 시재의 삼박자를 알면 혼란이 없습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장차 오실 주님만 알지 지금도 임하시는 예수님은 모릅니다. 그 결과 주님을 갈망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내가 속히 오리라” 하셨는데 왜 오지 않으시냐고 묻습니다.
문법적으로 보더라도, 계22:20에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셨는데 “속히 오리라”의 원문 ‘엘코마이’는 문법상 현재형입니다. ‘재림’을 의미하는 헬라어 역시 ‘파루시아’가 현재분사형으로 지금도 임하고 계신다는 의미입니다.
주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와 함께하실 뿐 아니라 더욱 충만하게 임하시기를 원하시고 재림으로 더욱 온전히 임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금도 날마다 부르짖는 성도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령으로 임하셔서 이 땅에 부흥을 일으키시며 하나님 백성을 강하게 하시고 소망을 주시고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고 계십니다.
막16:19-20에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제자들이 나가 두루 전파할새 주께서 함께 역사하사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언하시니라” 했습니다. 마24:48-50절에 재림의 미래성만 생각하는 사람들이 범하기 쉬운 죄를 주님은 경고합니다. “만일 그 악한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동무들을 때리며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게 되면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니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미래성만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의 믿음이 엉망이 되는 것입니다.
2. 재림의 시기를 오해하는 것입니다.
35-39절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분명히 그날은 아버지만이 아신다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도 그러신데 사람이 어찌 알겠습니까? 그런데 사람들이 시한부 종말론을 주장하며 예수님 오실 날을 선포합니다. 안식교는 1844년에 예수님이 재림하신다고 모든 것을 다 처분하고 기다렸으나 오시지 않자 그날 예수님이 하늘 성소에서 지성소로 들어가신 날이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성경에 온전한 속죄를 이미 이루셨다 하셨는데 예수님께서 그제서야 지성소에 들어가셨다면 더 큰 이설 아니겠습니까? 다미선교회에서도 1992년에 예수님께서 재림하신다고 했다가 큰 망신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재림의 날을 모른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이것이 주님이 말씀하신 의도의 전부는 아닙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 믿음으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이것이 진짜 주님의 의도이십니다. 한편으로 이 말씀은 우리를 언제 부르실지 모른다는 의미도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마24:37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하셨고, 42절에도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셨습니다. 늘 깨어서 신앙 생활하는 것이 바로 재림신앙이라는 말입니다.
3. 현실에 충실해야 함을 오해합니다.
44-47절에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뇨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의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저에게 맡기리라” 그러니까 주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지만 곧 오실 것처럼 준비하면서 맡은바 현실에 충성하시기를 바랍니다.
4. 주님이 임하시기를 갈망해야 합니다.
갈망하지 않아도 오시는 줄 알지만 성경은 사모하고 갈망할 것을 말씀합니다. 계22:20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오시옵소서’라는 말씀은 아랍어 ‘마라나-다’를 번역한 말로, 초대교회에서는 성찬예식 때 드리는 공식기도문이기도 했습니다. 왜 임하시기를 간구해야 할까요? 예수님은 간구하는 자에게 오늘도 성령으로 임하시고 또 온전히 임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기도는 지금도 계속해야 할 기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영으로 임하시든 장차 재림으로 임하시든 주님이 임하셔야 죄도 끝나고 시험도 끝나고 갈등도 끝나고 불안도 슬픔도 끝납니다. 믿음의 온전한 사람이 됩니다. 우리 주님이 답입니다. 주님을 모셨지만 아직 온전한 다스리심을 받지 못한다면 더욱 성령으로 충만하시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 주님이 온전히 함께하심으로 온전한 자유와 기쁨과 행복을 누리는 가장 복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