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후공원 도당산
이 용 만
전주역 앞에 있는 인후공원은 산 이름이 도당산입니다. 건지산과 기린봉 사이에서 전주의 북동쪽을 지키고 있는 산입니다.
우아동과 인후동에서 살 때는 이 산을 자주 오르내렸습니다. 높지는 않지만 산으로서의 구색을 다소 갖추고 있는 산입니다. 오르락내리락 할 수 있어 산보하기에는 안성맞춤입니다.
북일초등학교 뒤 우아동에서 살 때는 매일 아침 이 산을 찾아갔습니다. 캄캄한 때에 찾아가서 산의 정상에 올라 체조를 한 다음 정수장으로 내려가서 정수장을 달려서 뱅뱅 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산을 돌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는 마치 토끼처럼 요리 조리 산의 옆길을 따라 배회하였습니다. 그러다보니 나를 따라오는 또 다른 토끼도 생겼습니다. 두 마리 토끼가 산을 배회할 때에는 한 쌍의 토끼였습니다. 우리는 작은 도당산 이 곳 저 곳을 헤집고 다녔습니다. 여름철에는 아예 신발을 산의 입구에다 감추어 두고 맨발로 돌아다녔습니다. 그 때에 주로 맨발로 다닌 곳이 북쪽의 편백숲이었습니다. 편백숲에서는 피톤치드가 많이 나와 사람의 몸에 좋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맨발로 한 두 시간 산을 돌아다보면 산의 기운이 발바닥 가득 느껴졌습니다.
정수장 주변에는 여러 가지 꽃들이 피었다가 지곤 하였습니다. 봄에는 개나리가 피고 진달래와 철쭉이 피고 이어서 목련이 하얗게 무더기로 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들이 지면 아카시아 꽃이 피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필 때는 아카시아 향기가 코를 찔렀습니다. 곳곳에 층층나무 꽃도 피었습니다. 봄이 다 갈 무렵에 피어나는 자귀나무 꽃은 가냘픈 꽃잎들이 꽃의 수술 같아서 보기만 해도 처연하였습니다.
가을이면 밤도 제법 많이 나왔습니다. 작은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제법 큰 것도 있었습니다. 김장할 때의 밤은 따로 사지 않고 도당산에서 주운 것으로 충당했습니다.
시립도서관 뒤쪽의 노루명당은 아침 산책길의 휴식처였습니다. 거기 벤치에 앉아 있으면 모악산 쪽 능선에서 올라온 비행기들이 하얗게 반짝였고 우리들이 어렸을 때에 비행기똥이라 불렀던 항적운을 내뿜으며 하늘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비행기가 참 많이도 나타났습니다. 도대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비행기들일까요.
비행기 한 대가 지나가면 금방 또 한 대가 나타나곤 하였습니다. 한 대가 사라지기도 전에 또 비행기가 나타나서 앞뒤로 날아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곳에서는 비행기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비행기는 똑같이 하늘을 날아가는데 왜 도당산 노루명당에서만 비행기를 볼 수 있었는지 의아스럽습니다.
전에는 한적하여 토끼들만 다니던 외길이 이제는 이리 저리 길이 나서 번들번들합니다. 그래서일까요? 나와 같이 산길을 다니던 또 다른 토끼는 이제 이 산에 오지 않습니다. 버찌가 새까맣게 익어가고 알밤이 툭툭 떨어져도 그는 오지 않습니다. 그와 같이 다니던 길들은 그대로 있는데 그는 이 산을 잊었나 봅니다.
매일 아침 토끼처럼 산을 뱅뱅 돌던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그도 가끔은 도당산 줄기를 바라보며 이 산을 배회하던 때를 생각하고 있을까요.
하루가 가고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더니 어느새 십 수 년의 세월이 흘러갔나 봅니다. 전에 아침마다 이 산에서 마주치던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디가 아프거나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한낮에 편백숲 아래의 벤치에 앉아 있던 나이 드신 분들도 낯선 사람들입니다. 전에 그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세월은 가고 사람도 갔는데 여전히 그 자리에 있어준 도당산이 고맙습니다. 언제 찾아와도 그 모습 그대로 맞아줍니다. 어쩌면 도당산은 나에게 이렇게 말을 할지도 모릅니다.
‘너도 이제 나이를 제법 많이 먹었구나. 정수장을 몇 바퀴씩 달리더니 이제는 한 바퀴도 뛰지 않고 그냥 가는구나. 그래 너라고 별수 있겠느냐. 세월은 무정한 놈이라 모두의 기운을 빼앗아 가는 놈이지. 걸을 수 있을 때에 한 번이라도 더 이 산에 오너라.’
오늘도 도당산은 나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