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3월 24일 [2]
나는 스물다섯 살 때 대학원에 입학하면서 뉴욕으로 이사했는데, 거기서 또래 가운데 존 버치 협회에 대해 들어봤다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난 적이 없다, 자라면서 본 협오와 편집증으로 점철된 정치에서 이제야 멀리 떠나온 드싶었다. 그런데 2010년대 중반이 되자, 진보 매체에서 이 단체가 다시 활동을 시작한다는 뉴스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어떤 기사는 이 단체가 공화당 안에서 영향력을 키우고 있고,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국의 민주주의에 커다란 위협 요소가 될 거라고 경고했다. 한편 다른 기사는 이들로 인한 피해가 이미 상당해서, 보수적인 미국인들 사이에 꽤나 뿌리를 내렸다고 주장했다. 한 시사평론가는 트럼프의 당선이 이 단체가 미국 정치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쳐온 증거라고 지적했다,
2018년 존 버치 협회 홈페이지는 미국으로 향하는 '이민 카라반 행렬'에 대해 "이는 침략이지, '인권'이 아니다"라고 선언했다. 해당 글은 독자들에게 대통령실에 전화를 걸어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쌓고, 국경에 군인을 배치하고 난민 신청을 받는 것을 중단하도록 청원하라고 부추겼다.
셔헤일리스와 같은 조용한 시골에서 빨갱이를 없애려는 이들의 은밀한 작전은 성과를 거두었다. 이제 협회의 다음 목표는 전국 단위의 법 제정이었다. 야호, 나도 이제 진정한 존 버치 협회원이야!
부모님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점점 더 서로를 못마땅해하는 듯싶었지만, 여전히 서로에 대한 의리가 어느 정도는 남아 있었다. 아버지는 엄마가 일을 마치고 집에 올 때마다 힘들어하는 걸 보고 직장을 그만두기를 권했다.
엄마는 결국 그린힐에 다니는 것을 그만두었고 지장 일도 채집일도 놓아버리면서 갑자기 종일 자리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새활을 하게 되었다.
엄마는 이전에는 시간이 없어서도 그다지 관심을 보이지 않던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했고,, 나는 좀 쉬면서 여가생활을 하는 게 엄마한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특히 「휠 오브 포천」이라는 퀴즈쇼에 빠져들었고 문제가 나오면 나지막하고도 생기 넘치는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어떤 때는 퍼즐 속 숨겨진 낱말을 맞히려 하기도 했고,그 안에 숨은 의미가 무엇인지 묻기도 했다.
저 사람들이 이 말을 하는 이유가 뭐지? 엄마는 마치 무슨 소리가 들리기라도 하듯 행동을 멈추고 텔레비전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엄마는 집 안 물건에 몇 마디 말을 속사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가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에게 얘기를 하는 듯했다. 나는 엄마에게 정신적인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걱정을 하다가도, 누구나 가끔은 혼잣말을 하니까 별일 아닐 거라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도 하며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하지만 엄마는 그냥 혼잣말을 하는 게 아니었다. 어떤 때는 들릴락 말락 한 목소리로 누군가와 말다툼을 하기도 했고, 거기에 푹 빠져서 현실에서 당신과 대화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신경을 쓰지 못할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엄마와 쇼핑을 하러 가다가 예금을 하려고 은행에 들렀다. 우리는 드라이브스루 지점에 차를 세웠고, 금발의 아리따운 은행 직원이 우리를 활기찬 인사로 맞이했다.
"좋은 하루 보내고 계신가요?
"네, 좋아요, 고마워요, 당신은요?" 엄마가 말했다.
"아, 다 괜찮죠, 남편분은 잘 지내시죠?"
엄마는 미간을 찌푸리며 직원을 노려봤다, "우리 남편 얘기 그만 둬요."
여자는 움찔했다, " 아, 저는......"
"그쪽이 상관할 바 아니잖아요." 엄마는 눈을 치켜뜨며 쏘아붙였다. "왜 맨날 우리 가족 주위를 맴돌면서 염탐하는데? 우리한테 원하는 게 뭐예요?"
"엄마 그만해요." 내가 애원했다, 엄마는 겁에 질린 듯한 젊은 여자를 잠깐 더 겨누어 보다가, 차를 몰고 그 자리를 떠났다.
"엄마 왜 그래? 저 사람이 도대체 뭘 어쨌다고?"
"저 여자가 네 아빠 얘기하는 거 못 들었어?"
"뭐" 그건 그냥 인사말이잖아, 세상에. 엄마! 대체 왜 그래?"
그 때 난 엄마가 젊은 금발머리 여자가 예순일곱 살 아버지한테 딴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했다. 하지만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아마 엄마 머리속에서 "남편분은 잘 지내시죠?"라는 말이 전혀 다르게 번역되어 들렸던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