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동을 찾는 사회
눅7:31-32
정채봉님의 '느낌표'란 글입니다.
느낌표를 사용하지 않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보아도 '그렇지 뭐'로 시들하게 생각하는 사람. 아름다운 음악을 들어도, 신록의 나뭇잎을 대해도, 쌍무지개가 떠도 감동할 줄 모르는 사람. 파란 하늘을 보고 감탄하는 친구를 보거나 하면 '원 저렇게 감정이 헤퍼서야' 하고 혀를 차는 사람이었습니다.
이집(사람)에 사는 느낌표가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렇게 쓰지 않으면 삭아 없어지고 말 것이 자명한 이치가 아닌가.' 느낌표가 제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도 이 집을 탈출하여야겠다고 별렀습니다. 그러다가 어는 비오는 날 밤, 마침내 느낌표는 이 사람한테서 떠나 버렸습니다.
느낌표가 빠져나간 줄도 모르고 있던 이 사람은 권태와 식욕부진에서 조울증으로 점차 발전했습니다. 보다 못해 가족들이 그를 데리고 정신과 의사를 찾아갔습니다. 그를 진찰한 의사가 처방을 일러주었습니다. "감동을 회복하시오. 뭘 보면 오! 하고 놀라고, 아! 하고 감탄하시오. 그리하면 당신의 기력은 쉬 회복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에게는 느낌표가 달아나고 없었습니다.
그는 느낌표를 찾아 유명한 산으로 갔습니다. 유명극장으로도 가고 유명 바닷가로도 갔습니다. 그러나 그의 느낌표는 그 어느 유명한 곳에도 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집으로 터벅터벅 돌아왔습니다. 목욕을 하고 한숨 잠을 자고 일어나니 문창호에 새하얀 빛이 스며 들어왔습니다. 그가 잠든 사이에 온 첫눈이 담장과 마당을 살짝 덮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오!" 바로 거기에 그의 느낌표가 숨어 있었습니다. "!"
인생의 행복과 즐거움은 감동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좌우합니다. 천지창조이후 하나님이 발하셨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는 감동을 우리도 되찾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같은 것을 보고도 느낌과 표현의 차이가 행불행을 만듭니다.
저도 마음의 표현이 모자란 사람이어서 답답하고 안타까움을 때가 많습니다. 이제부터라도 기뻐하시는 자와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는 자와 함께 우는 마음을 잘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일상 속에서 작은 일에도 감동하고 감사하는 마음의 여유와 너그러움이 있었으면 합니다.
그래서 느낌표를 찾으시기 바랍니다. 태풍 매미로 많은 사람이 용기를 잃고 힘들고 지쳐 주저 앉으려합니다. 이럴 때일수록 고마워! 사랑해! 감사해요! 등등... 느낌표를 찾으심으로 행복한 나날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