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러스·스트레스 연관 추정 저칼로리 식단 쓸 수도 없어
평생 인슐린 주사 맞아야
경기도 성남에 사는 김선희(49)씨는 작년 한 해 동안 한 달에 한 번꼴로 요구르트 봉지를 챙겨들고 집 근처 초등학교에 뛰어갔다. 소아당뇨병을 앓는 외동딸 유미(가명·10)가 수업 도중 까무러쳤다는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김씨는 "유미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휴대전화 벨소리가 울리면 자지러듯이 놀란다"고 했다. 구급차 타고 응급실도 세 번이나 갔다.
김씨는 "딸이 당뇨병이라고 하면 '군것질에 빠져 살다 걸린 병'이라고 색안경을 끼는 사람이 많아 속상하다"고 했다. 유미는 치킨·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는 물론 사탕이나 초콜릿을 즐겨 먹지 않았다. 가족 중에도 당뇨병을 앓았던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3년 전 여름 유미는 갑자기 살이 10㎏ 가까이 빠지더니 추석 성묘 가던 길에 쓰러져 대학병원에 실려갔다가 '1형 당뇨병' 진단을 받았다.
당뇨병은 더 이상 성인만의 질병이 아니다. '1형 당뇨병'을 앓는 20세 이하 청소년 환자들이 4000명선을 넘어섰다. 한국소아당뇨인협회가 올 초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 4069명이 1형 당뇨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청소년 환자 수가 늘고 있는 것도 문제지만, 원인을 모른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우리나라 전체 당뇨병 환자의 90%를 차지하는 '2형 당뇨병'은 40세 이상의 성인이나 비만환자에게서 많이 발생하며 기름진 식습관, 운동 부족 등이 원인이다. 하지만 유미가 걸린 1형 당뇨병은 발병 원인이 '미스터리'에 가깝다.
삼성서울병원 진동규 교수(소아과)는 "1형 당뇨병이 5~7세 사이와 10~14세 무렵에 가장 많이 발생하는 점으로 미루어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바이러스에 노출되는 기회가 많아지는 것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호르몬 분비가 늘어나고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가 많아지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추정한다"고 말했다. 1형 당뇨병은 식습관이나 가족력 등과 큰 관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2형 당뇨병과 발병 원인이 다른 만큼 치료법도 다르다. 성장기 아이들은 골고루 영양을 섭취하는 것이 중요해 어른 당뇨병처럼 저칼로리 식단을 쓰거나 격한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권장하지 않는다. '인슐린 주사'만이 거의 유일한 치료법이란 얘기다(고대안암병원 소아청소년과 이기형 교수).
희귀질환이다보니 사회적 인식도 부족하다. 1형 당뇨병 환자들은 평생 하루 3~4번 인슐린 주사를 맞고, 5~6번씩 혈당 체크를 하며 살아야 한다. 이때 쓰는 주삿바늘, 알코올 솜, 채혈지 등의 소모품에만 한 달에 20만원 정도가 드는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경제적 부담이 크다.
한국소아당뇨인협회는 세계당뇨병의 날(11월 14일)을 맞아 15일 '소아당뇨 환자 처우 개선을 위한 2차 공개토론회'를 열고, 당뇨병 환자들이 사용하는 소모품에 건보 적용을 확대해 줄 것을 주장했다. 김광훈 이사장은 "최소한 환자의 생명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소모품에 대해서는 건보 적용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 1형·2형 당뇨병
2형 당뇨병은 체내에서 인슐린을 생산하지만 그 인슐린이 제대로 작용하지 못해 생기는 질환. 주로 40세 이상 성인이나 비만 환자에게 발병하고, 운동으로 체중을 줄이거나 혈당강하제를 복용하는 방법 등으로 치료할 수 있다. 반면 15세 미만에게 주로 발생하는 1형 당뇨병은 췌장의 인슐린 분비 세포(베타 세포)가 파괴돼 인슐린 자체를 생산하지 못하는 병으로 평생 인슐린 주사에 의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