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묵상(0924)
“식사할 때에 보아스가 룻에게 이르되 이리로 와서 떡을 먹으며 네 떡 조각을 초에 찍으라 하므로 룻이 곡식 베는 자 곁에 앉으니 그가 볶은 곡식을 주매 룻이 배불리 먹고 남았더라…또 그를 위하여 곡식 다발에서 조금씩 뽑아 버려서 그에게 줍게 하고 꾸짖지 말라 하니라”(룻 2:14~16).
실천하는 믿음을 갖자~~~~~야고보서 기자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2:17)이라며 행함이 있는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참 신앙이란 머리로만 이해되던 말씀이 마음으로 믿어지고 그 믿음이 손과 발로 내려가는 실천하는 믿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보아스는 시모를 봉양하기 위해 이삭을 주우러 자기 밭에 나온 룻에게 호의를 베푼다. 즉, 룻의 시모에 대한 효행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보아스는 룻에게 볏단을 묶는 여인들의 옆에서 이삭을 줍게 하는가 하면, 길어온 물을 먹을 수 있게 하였고 또한 먹을 것을 풍족히 주는 등 온갖 호의를 베푸는 실천하는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 주었다. 보아스가 베푼 친절은 차고도 넘칠 정도로 풍성했다. 그러자 룻은 자신의 처지와 신분에 비해 베풀어지는 엄청난 친절에 놀라며 보아스의 호의를 감사함으로 받았으며, 그 과정에서도 남은 음식을 바구니에 담아 시모 나오미에게 가져다 주었다. 한 마디로 보아스의 친절은 우리 신앙인들이 말씀을 준행하는 신앙자세를 일깨워 주는 것이다. 즉 보아스는 모세의 율법에서 밭의 곡식을 벨 때에 한 묶음을 밭에 두고 잊어버렸다면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다시 가져오지 말 것을 권하는 것(신 24:19)을 넘어서 보다 한 차원 앞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했던 것이다. 그의 이와 같은 자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풀이해 그들 스스로 말씀의 올무에 빠져버렸던 바리새인들의 모습과는 대조되는 성숙한 신앙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들도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하며 그 말씀의 이면에 담긴 뜻까지도 실천하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어느 선교사가 한국교회 교인들을 향해 '대두증 환자'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대두증 환자는 전체적인 신체 균형이 맞지 않고 머리만 큰 환자를 말합니다. 이는 하도 말씀을 많이 들어서 머리로는 아는 것이 많은 데 실천을 하지 않아 손과 발이 자라지 않은 불균형의 형태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평균 사회봉사 비용이 교회 예산의 7%에 머무른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대부분의 교회가 자체 유지에만 신경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구나 최근에는 교회들이 경쟁적으로 건축을 하다보니 빚에 쪼들려 경매에 넘어가는 교회가 많다는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그런가하면 감자탕 교회로 불리는 서울의 광염교회는 교회 예산의 70%이상을 사회봉사를 위해 사용한다고 합니다. 그야말로 실천하는 믿음의 본을 보이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어느 것을 기뻐하실 것인가 다시한번 대사회적인 신뢰를 잃어버린 한국교회가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의 기도 : 우리에게 행함이 있는 믿음을 요구하시는 하나님! 신앙생활을 하면서 머리로만 하나님의 뜻을 알고 행하지 못하여 이웃들로부터 지탄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어리석음을 범할 때가 많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 하나님 사랑과 더불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들이 되어 몸으로 사랑을 실천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그래서 그리스도의 편지로써 세상에 좋은 향기를 발하는 우리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