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속 사이다 한잔
'난 서울에 멍하러 간다'
홍제폭포 우렁찬 물소리 막힌 속 '뻥'
용마폭포공원 폭포 바람 땀이 사르륵
수락산 벽운계곡 테크 따라 걷는 산책
진관사 계곡 바위 사이 고즈넉한 풍경
청계천 디지털 바다에 하루를 보낸다
사람들은 왜 '멍'을 좋아할까.
술 먹다 두들겨 맞아서 생가는 퍼런 멍 말고 머리를 비우는 멍 말이다.
일상의 물리적 화학적 소음에서 벗어나 영혼의 피부를 촉촉하게 적시는 데는 역시 수분기 머금은 물멍이 으뜸이다.
가슴속에 사이다 한 잔이 필요한 오후 때 이른 무더위까지 덮쳐 머리가 지끈거렸다.
스트레스를 풀 겸 휴일에 청평이나 서해안 쪽으로 차를 몰고 나갈까 고민하던 참에 서울관광재단이 엄선한 6월 추천 명소 리스트를 보았다.
내비게이션을 시뻘겋게 물들일 정체선을 떠올리니 당장 목덜미가 뻐근해 왔다.
'차 막히면 도루묵'이라는 말은 진리다.
멀리 갈 필요 없이 서울관광재단의 안내에 따라 나 혼자만의 서울 물길 탐방을 떠나기로 했다.
첫 목적지는 서대문구 홍제폭포 홍계천 산책로를 걸어 둘어가자 우렁찬 물소리가 먼저 귓전을 때린다.
높이 25m의 거대한 물줄기가 절벽을 타고 시원하게 쏟아졌다.
인공폭포지만 주변 지형과 자로 잰 듯 완벽하게 어우러져 있었다.
하얗게 부서지는 믈방을을 보고 있으니 가슴속 막혔던 사이다 병뚜껑이 뻥하고 날아갔다.
이 폭포는 2011년에 조성됐는데 자연과 정말 잘 어울린다.
건너편 테라스 카페가 눈에 들어왔다.
원래 창고였던 공간을 개조해 '카페 폭포'와 '폭포책방 아름人도서관'으로 문을 열었다고 하는데,
요즘 SNS를 타고 외국인 관광객들이 엄청나게 찾아오는 이색 명소다.
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홀짝이며 잠시 폭포를 감상했다.
도심에 이런 수변 문화공간이 있다는 건 시민에게 큰 축복임이 틀림없다.
옆 건물 복합문화센터로 향했다.
1층 미디어전시관에서는 홍제폭포의 사계절을 담은 영상이 상영 중이었다.
푸른 물길과 꽃들이 어우러진 대형 화면이 눈을 즐겁게 했다.
다음으로 향한 곳은 중량구 용마폭포공원, 과거 채석장으로 사용하던 용마산 자락을 공원으로 탈바꿈시킨 곳이다.
광장에 들어서는 순간 깎아지른 암벽의 거대함에 압도당했다.
51.4m 높이에사 수직으로 하강하는 용마폭포를 중심으로 죄측에은 청룡폭포, 우측에는 백마폭포가 거대한 삼중주를 연주했다.
거대한 암벽을 보니 마음의 찌꺼기까지 다 쓸려 내려가는 것 같다.
거친 암벽과 푸른 숲이 선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 인공폭포는 평소 하루 두 번 가동하지만 무더위가 깊어지는 29일부터 8월31일까지는 오후 5시 타임이 추가돼
하루 세번 물줄기를 내뿜는다.
그늘에 앉자 폭포 바람을 맞고 있으면 에어컨이 필요 없다.
인공암벽장과 황톳길도 잘 갖춰져 있었다.
맨발로 걸으며 자연을 만끽하는 시민들의 모습에서 여유가 묻어났다.
세 번째 목적지는 노원구 수락산 벽운계곡, 지하철에서 내려 단숨에 청정 계곡의 품에 안길 수 있는 명소다.
바위에 새겨진 '벽운동천(碧雲洞天)' 이라는 글자가 세월의 깊이를 말없이 증명하고 있었다.
테크 산책로를 따라 걷고 있자니 맑은 물소리가 청아하다.
하류는 수심이 얕아 아이들이 놀기 좋고 상류 신선교 부근에는 선녀탕도 있다.
이어 은평구 북한산 자락의 진관사계곡으로 이동했다.
은평한옥마을을 지나자 고즈넉한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맑은 물이 바위 사이를 시원하게 흐르고 있었다.
당장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었지만 국립공원 보호구역이라 위쪽 계곡은 출입이 제한된다.
특히 매년 2월 말부터 6웛까지는 양서류 산란과 번식기라 통제된다.
본격적인 물놀이는 7월부터 가능하다.
아쉬움은 하류에 있는 마실길근린공원에서 달래면 된다.
가벼운 물놀이가 가능한 곳이다.
진관사는 역사적으로도 뜻 깊은 곳이다.
칠성각을 보수할 때 벽 안에서 3.1운동 당시 태극기와 독립운동 유물들이 발견됐다고 한다.
청정한 계곡 물 소리 아래 고이 잠들어 있던 역사가 비로소 세상에 알려진 것이다.
밤이 찾아오니 서울이 불빛으로 도시에 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오늘 투어의 대미를 장식할 곳은 청계천 광교 아래다.
미디어아트 '청계 소울 오션'이 연출하는 디지털 바다.
많은 시민이 수변 보행로에 앉아 빛의 향연을 즐기고 있었다.
요즘 상영하는 작품은 '봄 피어오름'이다.
노란 개나리와 벚꽃잎이 푸른 수면 위로 번지며 봄의 순간을 황홀하게 묘사하는 작품이다.
'도심 한복판에 이런 신비로운 바다를 숨겨두었다니!' 감탄이 절로 나온다.
6월 둘째 주부터는 간송미술관과 협업해 '조선의 풍류'라는 새 작품을 선보인다고 한다.
추천은 옳았다.
멀리 갈 필요 없었다.
휴일 고속도로 위에서 스트레스 위에 스트레스를 쌓는 대신,
서울의 물길을 걸으며 뇌를 맑게 리부팅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일 것이다.
서울관광재단이 정성껏 마련한 도심 물소리 지도와 디지털 파도는 지친 일상에 찰찰 넘치고 남을 위로를 건네고 있었다.
아주 좋았다.
이제 일하자! 양형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