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이웃 사랑과 환대의 집
PACOMIO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와 성 라자로 기념일
1독서: 1요한 4,7-16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복음: 요한 11,19-27 <주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
제목: 이웃 사랑과 환대의 집
1. 베타니아에 자리한 하느님의 사랑
초대 교회의 오랜 전통은 주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세 남매의 삶에 주목해 왔습니다. 거룩한 교회는 오랫동안 마르타 성녀만을 기억해 오다가, 전례 개혁의 여정을 거쳐 세 남매를 함께 기리는 축일로 새롭게 정립했습니다. 이는 주님과 나눈 깊은 우정과 환대, 그리고 그들의 신앙을 온전히 재조명하기 위한 전례적 용단이었습니다.
이 축일은 우리가 믿는 하느님이 저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우리 일상 한가운데로 들어오시는 분임을 일깨워 줍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외아들을 통해 인간의 우정을 친히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목 여정 중 피곤하고 지칠 때마다 베타니아의 작은 집을 찾으셨고, 그곳에서 따뜻한 밥상과 온기를 나누셨습니다.
2.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는 길
이처럼 예수님께서 베타니아를 찾으실 수 있었던 까닭은, 마르타와 마리아, 라자로가 자신들의 집을 기꺼이 개방하여 그분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환대는 단순히 손님을 대접하는 행위를 넘어, 하느님의 현존을 삶 한가운데로 모셔 들이는 거룩한 전례였습니다. 이처럼 이웃을 향해 마음을 열고 손을 건네는 바로 그 자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성전이 됩니다.
그렇다면 초월해 계신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우리의 고백은 어떻게 증명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요한은 이에 대해 매우 분명하고 직관적인 답을 제시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우리는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직접 만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곁에 있는 형제와 이웃은 지금 눈앞에 존재합니다. 결국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신앙은, 눈에 보이는 이웃을 사랑하고 환대하는 실천을 통해서만 비로소 검증되는 것입니다.
3. 세 남매가 보여준 신앙의 지평
오늘 미사의 본기도는 이 세 남매가 나눈 우정과 신앙의 신비를 아름답게 요약해 줍니다.
“하느님, 라자로를 무덤에서 다시 살려내신 성자께서
복된 마르타의 집에서 귀한 대접을 받으셨으니
저희도 형제들 안에서 성자를 섬기며
마리아와 함께 성자의 말씀을 묵상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본기도의 기도처럼, 세 남매는 각자 고유한 삶의 자리에서 이웃 사랑과 신앙의 조화를 보여주었습니다.
마르타는 집안일로 분주한 와중에도 굳건한 신앙 고백을 놓지 않았습니다. 오빠를 잃은 슬픔 속에서도 “예, 주님! 저는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믿습니다.”(요한 11,27)라고 선포하며 삶의 실천과 믿음을 조화시켰습니다.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 말씀에 귀를 기울이며, 세상의 소란함을 뒤로하고 주님의 현존 앞에 머무르는 침묵의 영성을 보여주었습니다.
라자로는 죽음의 어둠 속에 갇혀 있다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다시 걸어 나옴으로써, 하느님의 자비와 부활의 권능을 온몸으로 증언하는 살아있는 표징이 되었습니다.
4. 부활의 희망으로 다시 걸어 나가는 삶
따라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영성 생활 역시 이 베타니아 집의 모습을 닮아 가야 합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세 남매가 보여준 신앙의 지평을 모두 품어 안아야 합니다.
첫째, 마리아처럼 주님의 발치에 머물며 말씀에 귀 기울이는 침묵과 갈망이 필요합니다.
둘째, 마르타처럼 이웃과 공동체를 향해 기꺼이 손을 뻗는 헌신과 환대가 있어야 합니다.
셋째, 라자로처럼 주님의 자비에 희망을 두고, 매일의 죄와 절망의 무덤에서 돌아서서 다시 살아가는 부활의 신앙을 살아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도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우리 가정을, 그리고 우리 공동체를 베타니아의 집처럼 따뜻한 환대의 장소로 바꾸어 가야 합니다. 주님의 자비를 믿으며, 내 곁의 형제 안에서 주님을 섬기는 거룩한 일상을 살아갑시다.
[성 베네딕도회 요셉수도원; 최 빠코미오 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