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기도)
주님,
토요일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주일을 잘 준비하게 하옵소서.
말씀 앞에 나아갑니다.
판단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십자가 보혈을 의지하오니 정결케 하옵소서.
성령님, 말씀을 조명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본문)
1.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2. 너는 모든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을 네게로 데려오며
3.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데려와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하게 하라
4. 지금부터 칠 일이면 내가 사십 주야를 땅에 비를 내려 내가 지은 모든 생물을 지면에서 쓸어버리리라
5. 노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6.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 세라
7. 노아는 아들들과 아내와 며느리들과 함께 홍수를 피하여 방주에 들어갔고
8.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과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은
9. 하나님이 노아에게 명하신 대로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며
10. 칠 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11. 노아가 육백 세 되던 해 둘째 달 곧 그 달 열이렛날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문들이 열려
12.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본문 주해)
1~5절 : 하나님께서 보신 노아의 의로움이란 방주를 지으라는 말씀에 순종한 것을 가리킨다.
노아가 방주를 완성하자 하나님께서 그 방주에 정결한 짐승의 경우 암수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의 경우 암수 두 쌍씩을 들이라고 하신다. (정결한 짐승은 후에 예배와 홍수 후에 먹을 것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7일 후에 40일 간의 대홍수로 지면을 쓸어버리실 것을 말씀하신다.
‘7일 후’는 방주 문이 닫히기 전 마지막 기회를 의미하고, 40일은 완전수로 홍수의 완전함 또는 대홍수를 뜻한다.
노아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순종하였다.
6~12절 :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 노아 가족과 동물과 새들이 방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짐승들은 스스로 방주로 나아왔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명하셨기에 그렇게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후, 노아 600세 되던 2월 17일에 홍수로 땅이 뒤덮혔다.
그날에 궁창의 윗물이 땅으로 40일 간 쏟아졌고, 땅 아래에 있던 지하의 바다가 위로 터졌다. 창조 당시 위와 아래로 분할되었던 혼돈의 원시 바다가 다시 통합된 것이다. 이 홍수심판으로 창조 이전의 혼돈 상태와 같은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다.
(나의 묵상)
중부지방 물난리 뉴스 때 아주 짧은 시간에 도로에 물이 가득 차 자동차가 잠기는 장면에서부터 사람을 헤엄쳐 구해내는 동영상도 보았다.
모든 것이 순식간이었다.
그런데 40일 간 하늘에서 비가 퍼붓고 땅에서 물이 터졌다면?
하나님의 심판인 노아 때의 대홍수를 얼마든지 두려움 속에 짐작할 수 있다.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지금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이 세상을 멸하실 하나님의 심판의 때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세상 사람들은 그렇다 쳐도 믿는 자들조차 이 심판의 때를 기다리며 사는 자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안일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만들 때 세상 사람들이 하듯이 시집 가고 장가 가고 먹고 마시는 일을 최우선으로 두고, 온 마음과 힘을 거기에 쏟아 붓고 사는 것이다.
올해 청년부를 맡으면서 나의 고민이 커진다.
복음을 몰랐을 때는 청년부든 학생부든 ‘열심히 노력(공부 등)해서 성공하자....그것을 위해 예배 잘 드리고 교회 봉사 잘 하자.....또 비전을 가지고 열심히 기도하자....하나님께서 그런 우리를 반드시 도와주신단다.....’ 하고 가르쳤었다.
하나님의 뜻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죄악 된 인간의 본성이 원하는 만족을 채우기 위한 바램을 신앙인 양 아이들에게 엉터리로 가르쳤던 것이다.
이제는 그렇게 가르쳐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가르칠 수가 없다.
창세전부터 영생을 주시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알게 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대속의 삶을 알게 하고, 구원받은 자로서 우리들은 지금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음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인간적으로 꿈이 많고, 이기적이며, 자기의가 펄펄 살아있는 청년 때를 지내는 이들에게 ‘영원한 삶’을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딴 세상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그러고 보니 정말 딴 세상이다!)
당장에 아들과 대화를 해 보아도 부딪치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답답할 때가 많고, 답답함을 넘어서 ‘우야꼬......’ 하며 두려울 때도 있다.
그럴 때마다 이 아들보다 주님을 더 몰랐던 나의 청년 시절을 생각해 보면 위안을 얻는다. 오늘의 내가 있음은 전적으로 주님께서 나를 인도하여 이끌어 오셨기 때문이다.
이 아들도, 청년들도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기만을 간절히 기도한다.
8월 26~27일 청년부 수련회가 있다.
주제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요17:3)’이다.
이 주제를 정하면서 생각했다.
‘이것이 도대체 청년부에게 어울릴 만한 주제인가?’ 하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비전과 꿈을 외치거나, 우리와는 또 다른 불행한 시대를 살아가는 이 청년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는 그런 주제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사실 청년들이 듣고 싶은 말도 이런 것들임을 나는 너무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들에게 이 진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실의 삶에서 어찌하든지 돈 많이 벌어 좀더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살고 싶어 하고, 또 이 각박한 세상에서 자신이 좀더 위로받기를 원하겠지만, 우리가 지금 그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우쳐 주어야 하는 것이다.
지금 우리는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 계속해서 나팔을 불어대야 하는 것이 나의 사명이다.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듣고 방주를 만드는 노아를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하셨다.(1절)
세상이 뭐라 해도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방주를 만들었다.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삶’은 죽음이 가까운 어른들에게나 해당하는 구절이 아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시키신 것처럼, 믿음을 가진 자라면 세상이 뭐라 해도 반드시 살고 또 누려야 할 삶인 것이다.
그러므로 믿는 이들은 세상에서 왕따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청년들은 세상 속에서 성공하고 싶어하고, 세상 속에서 인정받고 싶어한다.
그런 이들에게 나는 내일도 하나님 앞에 의로운 노아의 삶을 선포해야 한다.
세상과 소통하고 어울릴 것을 원하는 마음을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과 소통하며 관계하는 그 의로운 삶을 선포해야 한다.
(묵상 기도)
주님,
노아가 드디어 방주에 들어갑니다.
비바람이 불어치고, 땅의 물이 솟구쳐
온 세상이 잠길 때
방주 안에서 하나님을 찬양할 노아를 생각합니다.
‘영생’이나 말하는 나약한 인간이라는 이 시대의 비웃음 속에서도
아버지의 품속의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이 복음의 나팔, 진리의 나팔을 멈추지 않고 불게 하옵소서.
방주를 다 만들어 생명을 지켜나가게 한 노아처럼
제게 주어진 이 사명을 완수하게 하옵소서.
성령님,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