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덕
김상덕은 1919년 최팔용·백관수·김도연 등과 함께 조선독립청년단 대표로 2.8 독립 선언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으며, 3월 21일 도쿄지방재판소에서 금고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2심에서 항소가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 1920년 3월 중화민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1922년 1월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동방혁명대표자대회에 한국 대표의 한 사람으로 참가하였고
1923년 2월에는 상하이에서 개최된 국민대표회의에서 개조파로서 선언서 수정위원으로 활동하였다.
김상덕 위원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방문해서 반민특위를 그만두면
장관 자리를 보장한다고 회유해도 끄떡없이 버텼다.
그러나 그의 의지도 헛되이 반민특위는 이승만 정권과 그 하수인인
친일 경찰들에 의해 처참하게 와해되고 말았다.
반민특위 위원장에서 물러나며 남긴 김상덕의 절규는
한 글자 한 글자가 눈을 찌르고 가슴을 저민다.
한 난관을 피하면 앞으로는 평탄한 길이 오리라 생각했지만
난관을 피하면 피할수록 오는 것은 더욱 큰 난관이었습니다.”
■쟁점1. 오컬트물이 크리처물로 변한다?
오싹한 오컬트물로 시작한 이 작품은 ‘험한 것’의 정체가 밝혀지기 시작하는 후반부부터 장르가 확 뒤바뀌는 인상을 준다. 장재현 감독은 의도한 것이라고 밝혔다.
“저는 시나리오 각색을 맡긴 적이 없어요. 마침표까지 하나도 제가 쓰죠. 이 시나리오를 쓰면서 작가의 목적이라는 게 있잖아요. ‘여우가 범의 허리를 끊었다’는 대사처럼 이 이야기 구조도 허리를 끊어버리고 싶었어요. 6장으로 구성된 영화 속 1장 부제가 ‘위장’이잖아요. 위장하듯 이야기를 만들었기 때문에 구성 자체에도 그 주제를 내포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죠. 필연적으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아요. 3막 구조로 깔끔하게 만들 수도 있었지만, 전 안 좋아하는 말이 ‘안전한 영화’거든요. 그래서 그냥 밀어붙였어요. 지켜준 투자배급사에도 감사하고요.”
■쟁점2. 일본 귀신은 어디서 착안했나
‘험한 것’의 정체인 일본 귀신의 생김새에 대한 의견도 분분하다. 장 감독은 이에 대해서도 친절하게 설명했다.
“그건 일본의 대표 귀신이에요. 우리나라는 미이라, 뱀파이어에는 관대한데 옆나라 대표 귀신은 잘 모르는 것 같아요. 그게 불편한 사람들이 크리처물이라고 하는데, 아니에요. 그 귀신은 대사도 엄청 많단 말이죠. 그 친구를 보자마자 느끼는 상징성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실제 정령 사상이 일본에 있기 때문에 실존하는 물체라면 자세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느껴서 대놓고 찍었고요. 실제 시체처럼 있던 존재라서 그렇게 표현하고 싶었고, 그 사람이 하는 말에 주제가 담겼으면 했죠. 베를린 영화제에서도 상영했는데 그 나라 관객들은 이물감을 못 느끼던데요. 동양의 뱀파이어라고들 생각하더라고요.”
■쟁점3. ‘검은 사제들’ ‘사바하’ 그리고 ‘파묘’, 장감독은 왜 신과 인간에 집중했나
그는 데뷔작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 그리고 ‘파묘’까지 신과 인간 관계에 대한 작품들을 연이어 내놓았다. 거기에 집중하는 이유는 무엇을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낀 게 있어요. 사랑과 의리와 인정을 말하는 곳은 종교 집단 밖에 없더라고요. 사회에선 ‘이 사람이 쓸모 있느냐, 없느냐. 아니면 얼마냐’ 이게 중요하지. 사랑과 의리에 대해선 말하지 않잖아요. 그런 눈에 보이지 않는 정서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사람에게 진짜 필요한 것들인데도 말이죠. 저도 교회를 다니는데요. 그럼에도 신은 교회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늘도 새벽기도를 가는 우리 엄마의 마음에 있다고 생각하죠. 그런 따뜻함을 제 영화에 녹이고 싶었어요. 호러 영화를 좋아하는 마니아들은 실망할 수도 있겠지만요. 누군가 제게 ‘당신은 호러 영화 감독이 아니다. 그로테스틱한 신비주의자다’라고 정의했는데, 그 말이 맞아요. 전 신비로운 걸 좋아하더라고요.”
https://v.daum.net/v/20240226090348312
도올선생님 기준 파묘해야 할 양반
첫댓글 첫 사진 아래 글 2~3행에 오타가 있는 것 같습니다.
'항소'를 '공소'로 잘 못 작성한 것으로 보이네요. 끝에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고 하니,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