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하는 자세에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간단(間斷)함이 없어야 합니다.
법당에 들어오면 제일 먼저 촛불을 켜고 향을 사루게 됩니다. 그 때 한 번 자세히 살펴보십시오.
촛불이 타다 말다 하거나, 향 연기가 끊어지는 적이 있습니까?
없지요, 우리가 참선을 하거나 기도를 할 때도 이러한 자세로 정성을 기울여야 합니다.
문에 구멍이 나면 찬바람이 새어 들어오듯이, 우리 마음에 틈이 생기면 번뇌 망상이 스며들게 마련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화두(話頭)나 불보살(佛菩薩)의 명호(名號)가 마음속에서 끊어짐이 없이 수행을 해야 합니다.
둘째, 고양이가 쥐 잡듯이 해야 합니다.
고양이란 놈은 쥐를 쫓다가 놓치게 되면 쥐구멍 앞에서 눈도 깜빡거리지 않고 기다립니다.
한 시간이 지나든 한나절이 흐르든 상관하지 않고 쥐를 잡기 전에는 꼼짝도 하지 않습니다.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도 돌아보지 않습니다.
참선하고 기도할 때에도 이와 같은 부동(不動)의 마음가짐과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셋째, 필마단기(匹馬單騎)로 백만대군을 대하듯 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삼국지에 나오는 것입니다. 관운장이 유비의 아내와 자식들을 모두 데리고 조조에게 사로잡혀 있을 때,
형님인 유비에게 가야 하겠는데 조조가 놓아주지를 않는 것입니다.
실랑이 끝에 "만일 큰 전공을 세운다면 떠나도 좋다"는 약속을 받아냅니다.
그때 때마침 알량문추라는 대장군이 백만대군을 앞세우고 조조를 공격해 왔습니다.
조조의 군대는 연전연패를 거듭하고 이름난 장군들도 추풍낙엽처럼 적장의 칼날에 쓰러져 갔습니다.
그때 관운장은 '지금이야말로 공을 세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라고 여기고는
청룡도를 둘러메고 홀로 말을 달려 적진을 향해 돌진해 갔습니다.
바로 이런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백만대군은 바로 마군(魔軍)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참선하고 기도할 때 생기는 일체의 마장을 향해 돌진해 가는 이런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 온몸을 내던지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옛말에 '정성이 지극하면 금석(金石)도 꿰뚫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모기란 놈이 몹시도 배가 고팠는데 어느 날 큼지막한 황소를 발견했어요.
사람 몸에서 피를 빨아먹으려면 자칫하다 목숨을 잃어버리는 수도 있는데,
이 황소란 놈은 손이 올라올 리 없으니 얼마나 다행이었겠습니까.
그래서 쇠꼬리가 닿지 않을 만한 거리의 등짝을 향해 부리를 곤두세우고는 하늘에서부터 돌진을 했답니다.
아, 그런데 그만 부리가 똑 부러져 버렸습니다.
이놈의 황소가 무쇠로 만든 황소였거든요. 하! 하! 그것도 모르고 이 배고픈 모기는 부리가 없어지자
이번에는 온몸으로 황소의 등짝을 파고들었답니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까 무쇠 황소의 등에 구멍이 빠꼼하게 생겼답니다.
여러분, 연약한 모기의 몸으로 무쇠를 뚫을 수 있는 힘이 어디서 나왔을까요?
또 옛날에 이런 일이 있었답니다.
관악산 자락에서 어떤 사냥꾼이 갑자기 호랑이를 만났답니다.
미리 호랑이를 보았다면 도망가든지 아니면 준비라도 단단히 할 수 있었을 것인데
갑자기 맞닥뜨렸으니 피할 겨를이 없었어요.
그래서 급히 화살을 뽑아서 겨누고는 호랑이를 향해 쏘았습니다.
두 발 겨눌 여가가 없었으니 그 화살에 온 힘을 쏟아 부었겠지요.
만일 이 한 발의 화살이 적중하지 않는다면 곧 잡아먹힐 것이 뻔했습니다.
화살은 적중을 했고, 호랑이가 꿈쩍도 않는 것을 보니, 아마도 죽은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살그머니 다가가 보았더니, 아니 이건 호랑이가 아니라 바윗덩어리였고 화살은 바위에 깊이 박혀 있더랍니다.
그래서 하도 신통해서 다시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 화살을 재차 여러 번 쏘아보았지만,
화살은 모두 부러지거나 퉁겨져 나올 뿐 박히지를 않더랍니다.
그런데 왜 첫 번째 화살은 바위에 깊숙이 박혔을까요?
이것이 바로 마음의 힘입니다.
'이 화살이 적중하지 않으면 나는 죽게 된다'는 그 생각이 큰 힘을 발휘하게 만든 것입니다.
이러한 자세만 갖추게 된다면 참선해도 도를 이루지 못할 것이 없고,
어떤 기도든 성취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백척간두에 서 있는 자세입니다.
그런 자세로 공부하고 기도할 때, 성취가 되었는지 안 되었는지는 본인이 스스로 알게 됩니다.
세상의 시험은 타인이 채점하고 당락도 다른 사람이 결정합니다.
하지만 깨달음이란 반드시 자기가 시험치고 자기가 채점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점수 매기는 것이 아닙니다.
타인이 알기 전에 자기가 먼저 알게 됩니다.
또 세상일이란 다른 사람이 점수를 주는 것이라 순위가 있게 마련이고,
내가 노력을 많이 했다고 하더라도 당락에 따라 회비가 엇갈리게 마련입니다.
그러나 불법을 공부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극한 정성과 간단없는 자세만 갖춘다면 합격하지 못할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바로 100%의 합격률이 당연한 것입니다.
백 척이나 되는 장대 끝에 올라앉았다는 절박한 심정만 갖는다면 누구나 견성성불(見性成佛) 할 수 있습니다.
불과(佛果)를 성취할 수 있습니다.
- 보광 큰스님(전 해인사 주지) -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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