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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2 : 7 은밀한 가운데 있는
고전 2 : 7 은밀한 가운데 있는 -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
그것은 ‘비밀한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지혜’ 곧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해 미리 정하셨고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던 것이다.
이 구원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의 모든 일들에 대한 완전한 설계자요 계획자이시다. 따라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인류 구원의 일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해 작정하신 방법이다.
1] 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오직'에 해당하는 헬라어 '알라'(*)는 강한 반의어 접속사로 바울이 언급하는 지혜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임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지혜'에 해당하는 헬라어 '데우소피안'(*)에서 하나님(데우)은 강조되어 앞에 위치되었다.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다는 점을 강조한다.
바울이 말한 '비밀'(*, 뮈스테리오)이란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다가 드러난 것을 의미한다.
* 엠 3: 3-4 - 3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 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 골 1: 26-27 -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이해를 초월하신다는 사실을 지적하기 위해 사용한 용어이다.
* 엡 5: 32 - 이 비밀이 크도다.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 '비밀'은 인간이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연구해도 그 비밀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없다(Morris).
하나님의 지혜는 십자가의 도를 가리키며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뜻하는데, 주님이 고난의 메시야로 오시는 것은 이사야 53장에서 보듯이 선지자의 예언을 통하여 미리 알려주신 것이기 때문에 사실 감춘 비밀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바울 사도 역시 같은 편지인 고전 15장에서 그리스도의 모든 사역과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이 성경대로였다고 하였다.
* 고전 15: 3-4 –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런데도 여기서는 은밀이라고 말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주님의 우리를 위한 대속의 죽으심의 원리가 성경에 나타나 있었지만, 성경에 박식한 서기관들과 율법학자들이 깨닫지 못할 정도로 아무도 그것을 구체적으로 알지 못함에 대하여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비밀로 감춰두신 것과 같다고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아름다움을 봅니까? 복음 안에서 사랑을 봅니까? 하나님 안에서 경이로움을 느끼십니까? 주님이 예비해 놓은 하늘 처소가 보이는가?
2]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본 구절은 헬라어 '헨'(*, '곧')을 사용하여 앞 구절을 설명한다.
하나님이 은밀한 가운데 오랜 세월 동안 비밀로 유지한 그 지혜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지혜로 곧 복음을 의미한다.
바울은 마침내 그 지혜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성도들에게 밝히 드러났다고 가르쳤다.
* 골 1: 26-27 - 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그 생명의 지혜를 그토록 오랫동안 비밀로 유지하셨는가?
그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바울은 하나님의 그분 자신의 아젠다(어떤 일의 일정 및 계획)를 가지고 계셨다고 확신했다.
하나님은 모든 세대에 걸쳐 다양한 방식으로 이 비밀을 나타내셨다.
* 히 1: 1 -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오시기 전에도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그들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 하지만 왜 하나님이 메시야 약속을 오랜 후에야 성취시켰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마도 하나님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보다 철저하게 깨닫기를 기다렸을 수 있다.
* 벧후 3: 8-9 - 8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9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3]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이라는 하나님의 지혜가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였는데 어떻게 그러한가?
영광은 헬라어로 <독사>이며, 히브리어로는 <카보드>이다. <카보드>는 원래 무겁다라는 뜻에서 가치 있다는 뜻으로 변하다가 영광의 의미를 갖게 되었는데, 영광이란 근원적인 최고의 가치를 뜻하는 말일 수 있다.
그런데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가치의 근원은 하나님께만 있으므로 모든 인간은 당연히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며, 따라서 영광이라는 말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해당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으심으로써 인간이 어느 정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진 존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불순종한 아담 안에서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형상이 깨어지고 그 영광도 동시에 떠나가고 말았지만,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됨으로써 언젠가는 완전한 영광을 되찾을 날이 오게 되는 것이다.
* 롬 8: 18 -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하나님의 지혜는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으로써 인류의 죄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공의를 실현하셨을 뿐 아니라, 주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인간을 버리지 않고 살려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심으로써 우리의 영광이 되게 하셨다.
'영광'(*, 독사)은 먼저 백성들과 함께하신 구약의 영광스런 하나님을 회상해 보는 것(출 24: 17. 40: 34. 민 14: 10)과 장차 백성들이 하나님과 함께 나눌 미래의 영광을 미리 맛보는 것(계 21: 10-11, 22-23)을 의미한다(Mare).
* 출 24: 17 - 시내 산에서 사십 일을 있다. -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 출 40: 34 -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 민 9: 15-23 - 구름기둥 - 15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곧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으되 16 항상 그러하여 낮에는 구름이 그것을 덮었고 밤이면 불 모양이 있었는데 17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 18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쳤으며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동안에는 그들이 진영에 머물렀고 19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오랠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행진하지 아니하였으며 20 혹시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무는 날이 적을 때에도 그들이 다만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영에 머물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였으며 21 혹시 구름이 저녁부터 아침까지 있다가 아침에 그 구름이 떠오를 때에는 그들이 행진하였고 구름이 밤낮 있다가 떠오르면 곧 행진하였으며 22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 23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
* 민 14: 10 - 가나안 정복 전 백성의 원망 - 온 회중이 그들을 돌로 치려 하는데 그 때에 여호와의 영광이 회막에서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나타나시니라.
이 영광이 계시록 21 장에서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다.
* 계 21: 10-11, 22-23 - 10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11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22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23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1) 거룩한 성 예루살렘 -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본 절 역시 계 17: 1-5과 병행된다. 요한은 계 17 장에서 성령에 이끌려 광야에 가서 심판받을 큰 바벨론 성을 보나, 본 절에서는 높은 산으로 이끌려 올라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게 된다.
이러한 병행은 의도적인 것으로 멸망당한 큰 바벨론 성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또한 요한이 '높은 산에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바라보는 것은 에스겔이 높은 산에서 본 성전 환상을 반영한다(겔 40-48 장). 여기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장차 영광을 받게 될 교회를 시사한다(Johnson, Hendriksen).
교회라고 굳이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 하나님과 흰 옷 입은 무리인 성도와 하나님의 종들인 순교자들이 있기 때문이다.
멸망당한 큰 성 바벨론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성령에 인도함을 받은 자들이 아니면 볼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반드시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만 볼 수 있다는 것을 크게 강조하고 있으니 약속의 성령이요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아 바벨론의 멸망과 새 예루살렘의 등장을 꼭 보기 바란다.
①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성령의 사역.
* 겔 40: 2 -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이스라엘 땅에 이르러 나를 매우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에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②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신앙의 높은 경지를 깨닫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
③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은 2절과 병행을 이루는 표현으로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성취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시사한다. (Mounce).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본부로 땅으로 내려와 하나님의 천년왕국의 사역을 이룬다. 천년왕국의 사역은 이기는 자들에게 상급을 주고, 유업을 누리게 한다.
그러므로 크고 높은 산에 올라갔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영과 진리와 겨루어서 이기고 정복한 사람들을 말한다. 그들의 신앙 위에 서서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을 보라고 하셨으니 산(山) 아래서 어린양의 신부를 보려고 하는 자들은 참으로 어리석은 자들이다.
2,000년 전(前)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지 않고 예수님을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안목으로 바라보았고 율법으로 정죄(定罪)하여 십자가에 죽이고 말았다.
마찬가지로 새 예루살렘성전도 오늘날 교회성전들이 가지고 있는 신앙의 안목으로는 결코 볼 수 없으며 오직 사도 선지자들의 영으로 성숙하고 장성한 자들만이 볼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2) 거룩한 성의 특징 - 하나님의 영광이 있어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이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소유한 것을 나타낸다. '하나님의 영광'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낸다.
* 겔 43: 5 - 영이 나를 들어 데리고 안뜰에 들어가시기로 내가 보니 여호와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더라.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 되었다가 돌아올 때에 하나님의 영광이 그들 위에 있었던 것을 반영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영원한 빛이 되어주시겠다는 약속의 성취를 의미한다. 이것은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상태에 있다는 것을 말한다.
* 사 60: 1-2, 19-20 - 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 보라. 어둠이 땅을 덮을 것이며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려니와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그의 영광이 네 위에 나타나리니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① 하나님의 영광- 교회를 통한 하나님의 영광
* 출 40: 34 -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② 그 성의 빛- 지극히 귀한 보석 같다.- 보배성.
③ 벽옥과 수정- 거룩성과 순결성 = 맑더라.
* 겔 1: 22 -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있어 보기에 두려운데 그들의 머리 위에 펼쳐져 있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에서 '벽옥'은 불투명한 보석인 반면에 '수정'은 투명한 것을 나타내 해석상의 어려움을 갖는다. 혹자는 벽옥이 다이아몬드를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Mounce, Morris, Johnson)
여하튼 본문의 초점은 그 성이 보석과 같이 빛난다는 점에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광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좌에 현현하신 하나님을 묘사하며(계 4: 3) 하나님의 본성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다. (23절, Morris).
따라서 예루살렘 성(城)의 빛(영)이란 보석(寶石)과 같고 벽옥(碧玉)과 같으며 수정(水晶)과 같다는 예루살렘 성이 가지고 있는 진리(眞理)를 말하며 영(靈)을 말한다.
(3) 성전 - 성 안에서 내가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① 성 안에 성전을 보지 못했다.
원형이 나타났으므로 그림자가 사라짐.
② 성전- 하나님, 전능하신 이, 어린 양. = 삼위일체의 모습.
구약 시대에 성막이나 성전은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이스라엘 백성과 교제를 나누는 곳이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성막이나 성전의 지성소에 계신 것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이제 거룩한 성 예루살렘에는 더 이상 가시적인 성전이 필요하지 않다. 왜냐하면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직접 하나님 백성들 가운데 임재하셔서 그들과 교제를 나누시기 때문이다. (Johnson). 그래서 요한은 본 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과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전이라고 선언한다.
새 예루살렘 성전으로 들어가 열두 진주 문을 통과하면 건물 성전이나 교회 성전이 아니라 사람 성전이요 육체 성전이 되고 이제는 사람 성전에 하나님과 어린양이 함께 거(居)하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말씀이다.
(4)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다. -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침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치고 어린 양이 그 등불이 되심이라.
① 하나님의 영광이 비췸
②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
본 절은 사 60: 19-20을 반영한다.
* 사 60: 19-20 - 19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추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원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20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원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거룩한 성 예루살렘은 성전이 따로 없는 곳으로 하나님께서 직접 임재하신 곳이다. (계 21: 22). 그곳에는 하나님과 어린양께서 직접 자신의 광채로서 비취시기 때문에 해와 달과 같은 처음 하늘에 있는 것과 같은 자연적인 것은 전혀 필요하지 않다.
* 슥 14: 7 - 여호와께서 아시는 한 날이 있으리니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어두워 갈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혹자는 해가 하나님의 광채나 어린양의 광채로 대체되었다고 주장하나(Bousset) 용납하기 어렵다.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선언하신 말씀을 상기시킨다.
* 요 1: 9 -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 요 3: 19 -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이것은 그리스도께서는 온 세상을 위한 구원의 근원이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현시하신 존재임을 의미하는 상징이다. (Beasley-Murray)
* 요 8: 12 -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요 12: 35 -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직 잠시 동안 빛이 너희 중에 있으니 빛이 있을 동안에 다녀 어둠에 붙잡히지 않게 하라. 어둠에 다니는 자는 그 가는 곳을 알지 못하느니라.
결국 이 말은 구원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익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뛰어난 모든 것과 복스러운 모든 것까지도 포함한다.
* 롬 5: 2 -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돋보이게 하고 있다.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라는 말은 구원의 목표를 보인다. 그것은 영화 즉 영광스런 상태의 회복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거룩하고 의롭고 영광스러운 자로 창조되었었다. 그러나 사람은 범죄 함으로 그 거룩하고 의롭고 영광스러운 형상을 잃어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셔서 그 본래의 영광스러운 상태의 회복을 주시는 것이다.
결국 본 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라 할 수 있는 구속 계획(球贖計劃)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만세전에 이미 구상되었고 복음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알려진 것임을 증거하고 있다(Hodge).
3] 만세 전에(*, 프로 톤 아이오논)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말은 문자적으로 '영원 전에'라는 의미로 시간이 발생되기도 전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복음이 후대의 고안물(考案物)이 아니었음을 명백히 한다. 우리가 말하는 지혜는 하나님의 지혜이다.
그것은 은밀한 가운데 있었던 하나님의 지혜, 곧 만세 전에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예정되었으나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던 내용이었다.
우리의 구원은 영광스런 상태로의 회복이다. 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영광스러운 존재로 창조되었었다. 사람의 본래의 형상은 하나님을 따라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이었다.
그러나 사람은 죄를 범함으로 그 영광스러운 형상, 즉 그 거룩하고 의로운 형상을 잃어버렸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본래의 영광스런 상태의 회복을 위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다.
이 구원 계획은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었다. 따라서 하나님은 완전한 설계자요 계획자이시다.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이 하나님께서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작정하신 대로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인 인류 구원의 일도 그러하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한 구원은 만세 전에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작정하신 방법이다.
하나님의 지혜가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고 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인간 역사 가운데 갑자기 발생한 우발적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에 따라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의 영광의 구원 역시 우리 자신의 공로와 우리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어떤 사건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곧 우리의 구원은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된 것을 깨닫고,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아야 함이 마땅하다.
무스테리온(μυστήριον)이란 헬라어는, 어떤 단체에 가입해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진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말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른 말로 어떤 결사가 의식이나 의례를 행할 때 그 의미가 그 결사의 회원들에게는 명백하지만, 제삼자들에게는 전혀 이해되지 않는 경우에 사용되는 낱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이 말하고 있는 뜻은 “그리스도께 마음을 드린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는 바”를 말한다. 그러면서 이 특별한 가르침은 지식을 통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은사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주어지는 선물이다.
모든 지식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다. 우리가 발견한 모든 것은 우리의 지성이 찾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의 노력이 필요 없다는 말이 아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만이 훌륭한 선생님으로부터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힘써 신령한 지식을 얻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도 같다. 우리가 힘써 구하고 이해하고자 노력하면 할수록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더욱 많은 것을 가르쳐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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