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 조선에 살다>, 제이콥 로버트 무스, 도서출판 푸른역사 2008
- 내일 일을 누가 아나
관청 건물들은 대부분 낡았고 곧 무너질 것만 같다. 이러한 상황은 대체로 오늘 해야 할 일을 내일만이 아니라 가급적 먼 시점까지 미루려 하는 조선적 원칙의 탓으로 돌릴 수 있다. 조선인들은 대개 이렇게 말한다.
"무슨 걱정이야. 오늘 괜찮으면 됐지. 내일 일을 누가 아나."
(수표교 근처의 지겟꾼)
- 감자바우 강원도
강원도에는 감자가 많이 나서 강원도인을 감자바위로 불렀다.
- 조선의 중심은 서울
서울은 조선에서 가장 높은 곳이다. 시골에서 서울로 갈 땐 올라간다고 하고 그 반대면 내려간다 한다. 여인숙에 묵으면 주모의 첫질문은 "올라 갑니까, 나리 갑니까?"이다.
- 여자 종만 있다.
남자노비는 볼 수 없고 여자노비만 있다.
[이 부분은 해독이 어렵다. 저자가 한국에 온 시기는 1893년이고 그로부터 25년을 이 땅에서 보냈다. 1801/1894년에 공노비/사노비제도가 폐지되었는데, 저자가 주로 생활한 시골에서는 관습적으로 노비제도가 잔존했는지? 그렇다면 왜 남자종은 볼 수 없었는지?]
- 장남의 권위
장남은 아버지 다음의 서열이다. 명령을 내리는 언어능력이 생기는 시점부터는 어머니 위에 군림한다. 동생들은 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 없고 "형님"으로 호칭한다.
-장가 안가면 애
11살에 장가가서 상투튼 소년은 47세에 미혼으로 댕기머리인 상대에게 하대를 했다.
-담배예절
"양반은 작은 방석에 앉아서 긴 곰방대로 담배를 오랫동안 피우지만, 그 사이에 그의 이웃인 서인들은 관대한 허락이 떨어지기 전까지는 그의 앞에서 담배를 한 모금도 피우지 못한다."
-일처다첩제
양반은 원하면 얼마든지 많은 첩을 얻을 수 있지만 정실은 단 한 사람밖에 둘 수 없다. 내가 아는 어떤 양반은 복음을 듣고 개종을 결정했는데, 그러면 세례를 받기 전에 첩들을 버려야 한다고 하자 그렇게 했다. 그러자 정작 그의 본처는 그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 몹시 화를 냈다.
[왜 본처가 화를 냈는지는 써있지 않다. 아마도 그 집에선 본처가 첩들에게 군림하는 구조였기에 그랬거나, 첩들이 생활능력이 없는데 위자료도 주지 않고 내쫓아서 그랬거나, 혹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는데도 무책임하게 생식을 포기해서?]
-여자의 지옥 조선
. 내 아내가 딸을 낳았다. 내 조선어 선생님은 아기가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큰 미소를 지으며 아들이오하고 물었고, 나는 아니요 딸입니다라고 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깊은 동정의 표정을 지으며 '참 섭섭합니다" 라고 말했다.
.조선에는 딸 이름이 "섭섭이"가 많다. 그 뜻은 sorrowful 이다.
. 죽음을 택하는 여인들
"이들 젊은 아내들이 흔히 자신들이 진 짐이 지탱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큰 것임을 깨닫고 삶을 마감함으로써 그 짐에서 벗어난다면, 얼마나 경악할 일인가? 그러고는 깊고 차가운 물 아래에 비친 밝은 별을 마지막으로 응시한 후, 그녀는 떠나간다! 다음날 아침, 그 누군가의 며느리가 마을 우물에서 건져져 가마니로 대충 싸여 산허리에 있는 낮은 무덤에 묻힐 것이다. 그리고 열흘도 안 되어 또 다른 며느리가 지체 없이 그녀의 자리에 앉혀질 것이다."
[17세기 작 강도몽유록의 4번째 원령은 청군이 강화도로 몰려오자 자신의 아들이 자신을 찔러죽이고는 가문이 열녀 배출로 표창받는 사태에 어이없어 한다.]
. "언젠가 나도 한 아들의 행복한 어머니가 될 것이고, 그래서 나 역시 며느리를 맞이하여, 나는 결국 세상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내 모든 원한을 풀 것이다. 내가 지금 받고 있는 모든 것을 똑같은 양으로 되돌려 줄 것이다."
. 여자는 결혼하는 날 이름과 정체성을 잃는다. 그 후로는 단지 누구의 아내, 누구의 댁, 누구의 엄마로 불리운다.
. 남자는 아내를 타인에게 칭할 때, "그것" 혹은 "아무개"로 말한다.
. 부인은 밥상에 남편과 함께 앉지 못하고, 남편의 식사 시중을 든다. 남편이 남긴 음식으로 부엌에서 끼니를 때운다.
. 이혼의 첫번째 사유는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이고, 두번째 사유는 시어머니에게 말대꾸를 하는 것이다.
. "매질하지 않고 어떻게 아내와 함께 살수 있습니까?"
.길거리에서 어떤 남자가 자신의 아내를 구타했다. 그녀가 쓰러지자 발로 가슴을 차고 질질 끌고 갔다. 곁에는 경찰이 있었지만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조선에는 코베인 여인을 많이 볼 수 있다. 투기를 했다는 이유로 그렇게 잘린 것이다.
.어떤 여성신도는 교회를 다닌다는 이유로 남편이 묶어서 발을 불태워 뼈가 다 드러났다. 그 남자의 직업은 우편배달공무원이었고, 모든 사람이 이 사건을 알았지만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다.
-암기에 뛰어난 교육
. 학생들은 수많은 책들을 모두 암기해야 한다.
. 성실한 조선신도는 신약전서가 챕터마다 번역될 때마다 그 편을 구해 차례차례 암기해 버렸다. 무슨장 무슨절! 하고 운을 띄우면 즉각 전문을 암송했다.
-쌀농사 기술
쌀을 주식으로 인구 1200만명이 먹고 살고, 일본으로 수출을 한다. 산꼭대기까지 계단식으로 논을 만들어 위에서 아래까지 빈틈없이 논물이 흐르게 한다.
[2010-2012년도 통계를 보면, 세계 241개 국가 중 한국은 인구수로 21위, 면적으론 110위다. 어떻게 이렇게 좁은 땅에-그것도 80%가 산지 - 사람이 많은지, 우리의 삶 자체가 불가사의다]
-장터의 흥정방식
주인은 장사에 관심도 없다는 듯 딴짓을 하고 있다. 손님이 들어서면 원하는 상품을 말한다. 주인이 상품을 꺼내 툭 던져놓고 역시 관심도 없다는 듯, 손님 얼굴도 제대로 안쳐다보고 퉁명스롭개 원하는 값의 두 배 정도를 부른다. 그러면 흥정이 시작되는데 별 육두문자가 다 나오고 누가 보면 흡사 싸우는 모양새다.
[닷냥이오. 원 이런 에미 뒈진 값을 보았나. 1냥!. 핫나~ 병자년에 뒈진 화냥년 각신 찾는 소리하네. 어딜... 4냥! 제에미, 이거 하나 바가지 씌우고 갑부될 일 있어. 내, 아버지 젯상올릴거라 고만 한다 석냥에 내놓든지 아님 관두오. 것 참 이 양반 조상 뫼시는데 헐값 후려치고 선대인이 묏자리에서 깨시겠소. 제사라니 내 오늘 인심 썼소. 석냥에 가져가쇼... 이런 식이다]
-천연두로 죽은 아이 시체
광희문 소의문은 사자문으로 불리우는데, 거기 성벽 틈에 막대기를 꽂고 그 위에 거적에 싼 아이 시체가 30여 구나 있었다.
-장례 문화
.한 조선인의 죽음을 목도하였다. 그는 집 방바닥에 누워 죽어가고 있었고 주위엔 그의 모친과 아내 친구들이 모였다. 그는 거의 의식을 잃고 있었는데 누군가가 그에게 열심히 말을 걸었다.
" 왜 그리도 고생하냐? 빨리 가라, 빨리 가거라."
그의 숨이 넘어가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으며 다시는 듣고 싶지 않은 그런 곡소리가 터져나왔다. 아이고~ 아이고~ 하는 숨넘어가는 소리.
.상여의 노래소리는 1킬로 밖에서도 들렸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이동했다. 상여꾼들은 대부분 망자와 아무 관계도 없이 술을 얻어먹으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싼 술을 너무 많이 마셔 갈짓자로 상여를 몰기도 했다.
-사법제도
. 중앙정부에서 일정한 세수 목표를 정하면 각도의 관찰사에게 할당되고, 여기서 다시 고을 사또를 거쳐 아전들이 백성들에게 세금을 부과한다. 대략 열가구가 한 조가 되어 그 집단에게 똑같이 세금을 내도록 요구한다.
. 재판의 피의자를 찾지 못하면 그 친척을 잡아 넣는다. 한 미국인이 채권회수가 안되어 사또에 고발했다. 재판 기일에 그 미국인이 출두하자 채무자는 없었고 대신 그의 아내가 죄수로 붙잡혀 와있었다. 그 미국인은 만정이 떨어져서 여자를 석방하라고 요청하고는 채권 회수를 포기했다.
첫댓글 조선이 문제야...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이러지 않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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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 죄다 여자욕인 것 봐 진짜 존나 소름돋아
여자들이 한이 맺힐수밖에 없는 구조네ㅠ 슬프다..
조선이 문제다 진짜
지금 이슬람쪽이랑 똑같...
방금이짤봣는데 개소름이야
이런 글 곧이곧대로 믿으면 안 돼 고려장이 일본에서 '외국인' 학자를 이용해 왜곡해놓은 거라는 게 밝혀진 게 이제 겨우 몇년 안 된 일이야(이마저도 오프라인에선 모르는 사람이 수두룩) 일본이 조선을 후려치기 위해 얼마나 치밀한 공을 들였는지 알면 소름이 끼칠 정도야 해방된지는 60년이라는데 불과 2년 전까지도 일본에서 출발한 '헬조선'이란 용어에 정신을 지배당한 게 현재 대한민국 현주소다 모든 것이 조선시대부터, 조선시대 유교 때문에, 성리학 때문에라는 생각 자체가 일제가 심고자 한 식민사관이야 유교 때문이라고 알고 있는 개같은 문화의 상당수는 군부독재시절 때부터 본격적으로 들어온
일본 문화야(한 두살 차이 가지고 선후배 깍듯이 따지는 센빠이 문화같은 거) 괜히 우리나라가 아직 과거사 청산 안 됐다는 게 아니야 일본이나 우리 역사 관련해선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기존의 것을 모두다 갈아엎어야 할만큼 아직 제대로 정리된 게 없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왜곡됐는지조차 파악 안 된 상태란 말야 부디 인터넷에서 본 역사 지식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마 나라에 대한 자존감을 어느 정도 가진 다음에 꼭 본인 스스로 서적과 자료를 통해 공부했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