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이 짧은 시간 동안』(창비,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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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는 일생의 지표를 ‘너희와 모든 이를 위하여’로 삼으셨다. 모든 이의 모든 것이 되고자 하는 삶을 사셨고, 마지막 가는 길까지 그리 사시다가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용서하세요.”란 짤막한 말을 남기고 2009년 2월 16일 우리 곁을 떠나셨다. 가시기 전 그 생생한 모습이 지금도 눈에 어른거린다. 장례미사 때 강우일 주교께서 “추기경님 정도 되시는 분을 저리 족치시면 나중에 우리 같은 범인은 얼마나 호되게 다루시겠냐고” 하신 고별사에 눈시울이 붉어지고 코가 찡해졌던 기억이 생생하다.
당신께서는 가난하고 외롭고 아픈 사람들과 늘 함께하고자 했으며 그들을 위해 기도하였지만, 실상은 그렇게 잘 하지 못했다는 참회에 가까운 술회를 자주 했다. 스스로를 ‘난 바보야!’라고 하면서 아이처럼 웃으시는 일이 잦았다. 그는 항상 낮은 곳을 보듬으시며 종파를 초월해서 정의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었다.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길인가를 몸소 실천하고 가르치면서 우리사회 민주화 역사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다. 그 존재만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힘이 되고, 슬픔과 절망에 빠진 사람에게 위안이 되는 분이셨다.
정호승 시인은 시를 통해 밑바닥에서 고통 받는 사람을 감싸 안는 추기경님의 마음을 노래하면서 추기경님께 더 많은 치유의 손길을 요청한 듯 보인다. 하지만 그 손길은 민중들 가운데 서 있기만 해도 가능한 것이었다. 지금은 추기경님이 두 분이나 계시지만 아쉽게도 그 존재를 거의 느끼지 못하고 있다. 다만 우리들은 당신이 계시지 않는 적막한 세상에서 ‘기도하는 손’을 자주 그리워할 뿐이다. 도종환 시인이 “한 시대의 어른이신 당신이 계셔서 우리는 덜 부끄러운 역사를 살았다”고 회고한 바 있듯이 우리는 그분께 많은 것을 의지했다.
그런 분이시기에 떠나신 뒤의 상실감은 컸다. 지금은 추기경님뿐만 아니라 우리를 품어주고 가려주던 날개들을 모두 잃은 느낌이다. 불손한 비유지만 김응룡 감독이 만들어낸 유행어처럼 ‘김수환 추기경도 없고 법정스님도 없고...’ 어른이 그리운 시대에 어른이 통 뵈지 않는다. 그분들은 역사의 고비 때마다 억압 받는 이들과 정의의 편에 함께 섰기에 성직자로서의 직분이 더욱 빛났으며 사회적 존경을 받을 수 있었다. 특히 추기경님의 말씀 하나 하나는 한국가톨릭 수장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했다. 왠지 명동성당의 종소리도 예전 같지 않다.
과거 노무현 정부 후반기에 뻔질나게 추기경님을 찾아온 당시 한나라당 관계자들에게 덕담으로 “국민의 믿음을 얻는 정당이 되도록 노력하라”고 충고한 것을 두고, “다음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중요하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시면서” “국민이 믿을 곳은 한나라당 밖에 없다는 생각을 갖도록 잘해달라고 당부하셨다”면서 교묘하게 왜곡 날조하여 대변인을 통해 퍼트린 일이 있었다. 지금도 등 돌린 일부 진보 인사의 말들을 교묘히 이용해먹고는 있지만, 이젠 시민사회나 원로정치인 가운데 그렇게 '이용'할만한 분이 과연 계실까 싶다.
그러나 당신은 떠났지만 당신의 말씀은 지금껏 우리들의 가슴 속에 짙은 향기를 뿜어내고 있다. 평범한 생활 속의 명언도 몇 가지 생각난다. “웃는 연습을 해라. 웃음은 만병의 예방약이자 치료약이다.” “진정한 사랑은 이해, 관용, 포용, 공감, 겸손이 선행된다. 나는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데 칠십 년이 걸렸다" 지금도 추기경님에 대한 공과와 친일 논란은 있으나 사실을 왜곡하여 과도하게 폄훼되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유와 민주의 횃불 환하게 밝힌 이’ 거룩한 바보 김수환 추기경을 기리는 마음은 오래도록 식지 않으리라.
권순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