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있어 감사합니다.
(사무엘하 22 : 1-7)
사람과 동물은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그 중에 하나가 사람은 특별하고 의미있는 ‘날’이 있지만 동물에게는 그런 날이 없습니다. 사람은 태어난 날이 있어 생일을 축하하고, 좋은 날이 있으면 그날을 기념하며 즐거워하고 행복합니다.
이처럼 좋은 날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날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동안에 잊을 수 없는 좋은 날들이 많이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다윗의 감사와 찬송을 통해 승리교회 성도들은 어떤 감사와 찬송을 해야 할까요?
1. 구원하신 그 날이 있어 감사합니다.
본문 1절에 “여호와께서 다윗을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에 다윗이 이 노래의 말씀으로 여호와께 아뢰어”라는 오늘 본문을 보면 다윗에겐 분명한 날이 있었습니다.
‘모든 원수의 손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하신 그 날’입니다. 많은 원수들이 있었지만 그 모든 원수의 손에서 죽지 않고 구원을 받은 날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죄와 사망에서 멸망이 아닌 구원받은 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있기에 감사한 것입니다.
축복의 그 날, 구원의 그 날, 승리의 그 날, 기적의 그 날, 응답의 그 날을 기대해 봅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을 노래하며 찬양할 수 있는 그 날이 이 땅에 이뤄지길 소망합니다. 좋으신 우리 하나님께 가슴 벅찬 구원의 감격으로 노래하며 아뢰는 그 날이 올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본문 2, 3절에 “이르되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시오”
“내가 피할 나의 반석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높은 망대시요 그에게 피할 나의 피난처시요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하셨도다”
다윗은 다양한 표현으로 하나님을 높입니다.
여기에 "나의"라는 표현이 나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다윗에게 하나님은 들어서 아는 하나님이 아니라 체험적으로 사랑하는 하나님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큰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선한 일을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표현을 사용한 것은 다윗이 하나님이 베푸신 그 구원의 손길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감사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반석, 요새, 자신을 건지시는 자, 피할 반석, 방패, 구원의 뿔, 높은 망대, 피난처, 구원자가 되신다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도와 그 모든 어려움과 위협에서 건져주시고 다윗은 그 하나님의 손길로 인해 최대한 하나님을 높이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18편 1절에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니이다.”
2절에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오 나의 산성이시로다“
사도행전 16장 31절에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구원받으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고, 천국백성으로 살고, 평안함과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권세와 능력이 있습니다.
2.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게 하시니 감사하였습니다.
본문 4절에 “내가 찬송 받을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리로다”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기서 '아뢴다'는 말은 여호와의 도움을 위해 '간구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뢰리니'와 '구원을 얻으리로다'는 미완료형(未完了形, imperfect tense)으로서 계속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구절은 '지금까지 내가 여호와께 기도할 때마다 구원을 얻었고, 또한 앞으로 계속해서 기도할때마다 나는 구원을 얻을 것이로다'란 의미를 지닙니다. 아직 완료되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간구하고 구원받다는 것은 계속하고 있습니다.
다윗의 시는 자신이 과거에 거둔 승리에 대한 자만과 자기도취가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내용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가 성공의 순간에 배워야 할 삶의 태도가 무엇이냐 하면 찬양이라고 하는 것을 오늘 이 고백은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욥이 많은 재산이 날라가고, 자년들이 죽고, 자신에게 질병이 있어도
주신 이도 여호와시오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배고픔, 고난, 아픔을 통해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기대하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가며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고 복이 흐르게 됩니다.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곡의 작곡가는 레아 밀러와 조지 비벌리 쉐아입니다 레아밀러는 시카고 나사렛 감리교회 목사 부인이었으며 그녀가 1922년에 쓴 시를 바탕으로 이 찬송가가 작사되었습니다.
조지 비벌리 쉐아는 캐나다 윈체스터에서 태어난 감리교 목사의 아들로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섬기는 교회 찬양대에서 찬양을 하며 신앙을 키웠습니다.
그는 미국의 경제공황으로 생계가 어려워 하우튼 대학을 중퇴하고 부모의 권유에 따라 뉴욕 상호보험회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방송국에 나가 노래하는 것이 소원이었고 22세가 되던 해에 NBC공개홀에서 당시 방송편성 책임자였던 프레드알렌의 안내로 노래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유명해졌지만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는 그가 저속한 라디오 프로의 가수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번민하던 어느 주일 아침 그는 어머니의 피아노 위에서 우연히 레아 밀러 사모님이 쓴 시를 발견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였습니다.
금과 은을 갖는 것보다 예수님을 원합니다. 막대한 부를 갖는 것보다 그분의 것이 되길 원합니다. 집이나 땅을 갖는 것보다 예수님을 원합니다. 그분의 못 박힌 손으로 인도되고 싶습니다. 세계적인 명성보다 예수님을 원합니다.
이 찬송은 그의 신앙적인 결단의 찬송이 되었습니다. 대중 가요를 불러 떼돈을 버는 것보다 예수를 소유하기로 결심한 것이었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기도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주님을 더 사랑하겠다는 그의 열렬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히브리서 13장 8절에 “예수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
예수보다 귀한 것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면 됩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원, 나의 기쁨, 나의 소망이다고 고백하고 신앙생활하고 원수들에서 구원받게 하시니 감사할뿐입니다.
이사야 43장 21절에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찬송속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할렐루야
3. 나의 부르짖음이 하나님의 귀에 들렸다는 것을 감사하였습니다.
본문 7절에 “내가 환난 중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아뢰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
“기도는 하나님이 연약한 자에게 주신 강력한 무기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야베스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이르되 주께서 내게 복을 주시려거든 나의 지역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내게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가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가 환난 중에서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때라도 우리는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야말로 연약한 우리가 가진 최고의 무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이 능력을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위해 기도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손을 의지하고 기도합니다.
사소한 일에도 늘 근심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찌하여 할지 몰라 스트레스를 받고 심적압박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계속 걱정하면서 손톱을 물어 뜯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나친 걱정은 몸과 마음에 모두 해롭습니다. 걱정을 많이 하는 사람은 병이 빨리 생깁니다. 고혈압, 위장병, 암 등 질병의 70% 이상이 불안과 염려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입니다. 염려를 기도로 바꿀 때 하나님의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절에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북한에서 탈북하신 정유나 자매가 있습니다. 정유나 자매가 있는 은혜받은 말씀은 에베소서 5장 8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북한 어두움에서 태어났지만 지금은 주안에서 빛이라라고 하십니다.
주님만이 왕이십니다고 고백합니다. 북한에서 김부자가 왕이고 신입니다. 우리가 찬양하는 하나님 자리에 모두 김일성 이름이 들어 갑니다. 북한은 그들이 주체사상이라고 하는 게 뼛속 깊이 박혀 있습니다. 하지만 바꾸기는 쉽습니다. 이념적으로 강한 자들에게 약한 것이 신앙입니다. 그것을 무너뜨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래서 북한은 말씀이 들어오는 것을 엄청나게 두려워해서 말씀만 접해도 재판 없이 공개 처형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주여 주여라고 외칠수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할 일인지 모릅니다. 우리는 마음껏 주님만이 왕이라고 외칠 수 있는 것이 감사할 일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요새시오 나를 위하여 나를 건지시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구원자시라 나를 폭력에서 구원에서 구원하시고 나를 넓은 곳으로 인도하시니 감사합니다.
“살아계신 주”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살아계신 주, 나의 참된 소망, 걱정 근심 전혀 없네.” “사랑의 주 내 갈 길 인도하니, 내 모든 삶의 기쁨 늘 충만하네” 이 찬양의 영어 제목은 “Because He lives”(비커즈 히 라이브즈),, “그가 살아계시기 때문에”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곁에 계셔서 도와주시니 더 나은 내일을 꿈꾸며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 갈 것입니다. 내일을 꿈꾸며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 가실 하나님을 찬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