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그들이 서로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문제는 성경의 해석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을 잘못보고 잘못 해석하고 있기 때문에 서로 이단이라고 하는 것이다.
누구의 성경해석이 옳은가?
이쪽에 말을 들어보면 이쪽이 옳다고 하고 저쪽의 말을 들어보면 저쪽이 옳다 한다.
그렇다면 성경을 잘 보고 잘 못 보는 것은 어떻게 분별하고 판단할 수 있는가?
그렇게 물으면 그들은 둘 다 상대에게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하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해석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어떻게 성경해석을 해야 하나님의 뜻이라고 할 수 있는가?
여기서 문제가 생기는데 성경해석을 할 때 말씀대로 순수하게 하나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해석해야 된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데 과연 성경해석을 할 때 인간의 마음이 전혀 개입되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볼 수 있는가?
인간의 머리 속이 텅 비었는가?
성인이 된 인간의 머리 속에는 자기가 보고들은 경험이라는 것이 있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과연 전제 없는 성경해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겠는가?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인간은 보고들은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판단한다.(칸트의 오감이론)
그리고 성경해석을 할 때 객관적으로 해야된다고 하는데 과연 주관적 개입 없이 객관적으로 성경해석이 가능할까?
객관이라는 말은 사실 의미 없는 말이다.
인간에게는 어쩔 수 없이 주관만이 있다.
객관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수의 사람들이 보기에 보편 타당한 것을 말한다.
모든 인간은 주관적이고 성경해석 역시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싸움과 다툼 그리고 이단이라고 하는 문제도 바로 이러한 문제 때문에 발생한다.
각자 자신들이 올바른 성경해석을 한다고 주장하지 틀린 해석을 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기존 교회에서 이단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성경에 근거를 하고 있다고 하지만 자기 주관적 판단에 근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서 이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다수의 집단에 소속되어 있는 종교 지도자들에 의해서 결정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기득권 층에서 이단이라고 판정을 받은 집단이 스스로 이단이라고 생각하는가?
절대 자신을 이단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기를 이단이라고 한 자들이 이단이라고 몰아 붙인다.
그렇다면 과연 누가 이단인가?
다수결의 원칙이 따라야 하는가?
솟수의 원칙에 따라야 하는가?
놀라운 사실은 대다수의 기존 교회 교인들은 그들이 말하는 이단들에 비해 말씀에 대해 심각할 정도로 무지하다.
교인의 무지는 목사의 무지와 비례한다.
목사가 성경에 무지하니까 교인들은 당연한 것이다.
거저 풍설에 떠도는 줏어 들은 몇 마디로 이단이다 아니다 하는 실속 없는 소리만 할뿐이다.
그러므로 이단이라는 개념은 지극히 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둘 다 성경을 가지고 자신들이 올바른 성경해석을 한다고 주장하다 보니까 끝이 없는 이단 시비가 계속된다.
결국 누가 이단이고 이단 아닌지는 하나님 앞에 가 봐야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