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님의 의동생이었던 병옥이 삼촌의 숙모님께서 세상을 떠났다.
두 분 연세가 각각 88세, 86세이신데다
숙모는 요양원에 가신 지 몇 해가 지났고
자주 병원 신세를 지셨다.
원래 직업이 교사였었고
육군 사관학교 출신으로 군장성이셨던 삼촌도 꼼짝 못하시도록
평소 꼬장꼬장 하신 성품이셨는데
시나브로 의식을 놓으시곤 치매라 했다.
자식들도 훌륭히 키워 둘이나 유학도 다녀오고
국내 최고의 대기업 기획실에서 근무하다 외국에서 근무중인데
그만 이 코로나 정국에 돌아가시니
부모님 장례식조차 참석이 불가능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우리 부부가 가끔 안부를 여쭙곤했는데
숙모가 돌아가시자 정신이 없으셨는지
발인 날 새벽에야 연락을 해 오셨다.
자다가 정신없이 장례식장에 가니
서울 사신다던 막둥이 아드님이
상조회사 직원이 시키는대로 마지막 인사를 하고
술잔을 올리고 있었다.
그곁에 연신 눈물을 흘리는 삼촌이 서 계셨다.
자식들 눈으로 보면 연세 드셔서 떠나신 어머니일테지만
아내를 잃은 삼촌께는
함께 한 지난 세월을 잃는 가슴 무너지는 슬픔일 것이다.
문득 부부사이와 부모 자식간의 간극이 극명하게 공감 되자
곁에 서 있는 남편을 돌아보며
"잘 살자, 우리!
남편 밖에 없구나."
하고 작은 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숙모님 떠나시며 내가 한 큰 공부다.
늘 자식을 우선하는 게 엄마지만
사실 무슨 일에나 애닯게 날 위하는 건 남편뿐인데
평소 남편을 그저 가깝다는 이유만으로
배려나 양보를 소홀히 하지 않았나 나를 되돌아 보며
숙모님의 영혼이 주님의 품안에서 평화를 누리시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