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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평 출신 뻥튀기장사 김덕길, 그는 문인이다 [연재] 이진우의 문학이 정읍을 만났을 때...삶이 글이 되는 남자, 다시 길위에 서다 이진우 ejw0255@naver.com ▲
2003년 11월 20일 도서출판 한솜에서 출간된 김덕길시인의 첫시집 문인들 중에는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이들이 많다. 그런 한편으로 독학으로 문인의 길을 연 이들이 있는데 정읍 이평 출신의 작가 김덕길씨가 그런 경우에 속한다. 정읍에서 고교 마치고 강원 사북에서 책 외판원일 시작
그는 1968년 생으로, 농사를 지으며 튀밥 튀는 일을 하는 아버지와 알뜰하고 부지런한 어머니의 8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이평서초등학교와 이평중학교에 이어 정읍고등학교를 다녔다. 새벽일찍 소 먹일 꼴을 베러 다니는 등 농사일과 아버지의 튀밥장사 일을 돕는 일로 어린시절부터 잔뼈가 굵었던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강원도 사북에서 책 외판일을 하며 사회생활에 눈을 떴다. 이후 3년간의 군복무를 마치고 컴백한 그는 군복무 시절의 하사관을 만나 시계건전지 방문판매업을 시작하며 본격적으로 세일즈계에 입문하였다.
군복후 본격적으로 세일즈업에 입문 처음에 걸어다니며 외판 일을 했던 그는 오토바이를 거쳐 소형차를 몰며 기반을 다져 나갔고, 그러는 사이에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는 기쁨도 맞이할 수 있었다.
그는 준수한 외모를 지닌 타고난 인상에다 승부사적 기질로 일을 시작하면 쭈욱 밀어붙일 줄 아는 집념의 소유자였다. 처음에 시계약을 팔던 그는 이내 시계줄과 카메라건전지, 카메라필름까지 팔아나가기 시작하였고 두발로를 거쳐 오토바이, 티코, 다마스 등 소형차를 몰며 서울을 누볐다. 아동복 가게를 차려보지만 매출 부진으로 다시 세일즈로 돌아오고 그렇게 하여 기반을 다진 그는 조금은 편하게 사업을 하고 싶어 경기도 용인에 아동복가게를 차리지만 매출부진에 허덕이게 되었다.
결국 아동복 가게를 정리하고 자신에게서 사업을 인계받았던 이로부터 다시 사업을 되물려 받은 그는 심기일전하여 외판사업에 열중하게 되었다. 1997년 구제금융사태를 맞이하여 물가가 급상승하면서 어제 사둔 재료가 오늘 가격이 오르는 일이 이어지는 등 그는 사업의 호기를 맞이하였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는 어느날 차에 물건을 가득 싣고 가던 중에 무면허 음주차량에 들이받치는 큰사고를 당했다. 차에 실려 있던 일천 여 만원 어치의 물건은 차와 함께 전소되었고, 그는 간신히 빠져나오긴 했으나 인대가 끊어져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그의 고백에 의하면 이때 병원침대의 베개만 쥐어 뜯어야 했다)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아프더냐/ 부도난 인생 길/ 절망의 그림자/ 헤진 가슴섶 풀어헤친 어제가 스멀스멀 기어 나와 / 저리도록 주리 틀어대는 고통에/ 온 몸 사시나무 떨듯 떨려도 / 그 고통 다독여 지지 않더냐 이겨야 한다/ 지친 영혼이 힘든 인생 포기하라 아우성쳐도/ 이겨야 한다/ 어디/ 가시없이 피어나는 장미꽃 본 적 있더냐/ 처음부터 다 가지고 시작한 적 있더냐/ 다 성공하여 시작한 적 있더냐/ 맨 몸뚱이 하나 믿고 이겨온 시간이 아니더냐/ 무일푼 빈 손으로 시작한 이 삶/ 힘들어 쓰러지고 넘어진들 어디 아프다 드러누워/ 신세 한탄만 하고 있을 수 있더냐 일어나라/ 분연히 일어서서 다시 그 길을 가라/ 우리 가는 길이 가시밭길인들 / 장미꽃 피지 말라는 법 없다/우리 가는 길이 진흙길인들 / 비단길 열리지 말라는 법 없다/새를 보아라/ 지나는 새를 보아라/ 발디뎌 걸어온 지난날 아프고 힘들어도 보석체인점 하면서 인터넷과 글쓰기에 주력
10여 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비교적 이른 나이에 경기도에 아파트를 장만하는 성과를 올린 그는, 그 무렵에 한창 인기몰이를 하던 14K,18K 보석체인점을 경기도 성남에 차리며 돈을 긁는 듯한 기분을 맛보았다. 그러나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은 이미 오래전 얘기요,
이 시대는 길어야 5년, 짧게 잡아 3년 이내에 사업패턴이 바뀌는 시대인가 보다. 2002년 월드컵이 끝나고 경기는 내리막을 탔고 사람들의 관심은 이미테이션 상품에 쏠려가면서 보석가게는 불황의 늪에 빠져 들었다. 그러나 보석체인점 기간은 그에게 소중한 기회였다.
이 시기에 인터넷과 글쓰기에 주력하면서 그의 인생은 변화를 겪는다. 인터넷 클럽과 각종 (시민)모임을 수없이 되풀이했고, 그가 좋아하는 시모임도 가졌다. 드디어 시로 등단하고 그는 2003년 12월 시사랑문인협회 주관 월간지인 [시사문단]에 시
"스치듯 오셨으면" "무의도 김삿갓" "그 이름 아내" 등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그 중에서 "무의도 김삿갓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비릿한 갯바람/ 파도 위 눕고/ 갈매기 칭얼칭얼/ 잿빛 하늘 가린다. 펼쳐진 날개/ 작아/ 못 가린/ 하늘 언저리/ 몸살 난 햇살 아프다. 햇살 거기 두고 / 호룡곡산 꼭대기/ 꾸역꾸역 올라/ 소무의도 해녀도 너를 모른 듯/ 눈마저 감아버린 나. 나는/ 그럼 자유인인가? "
"문학의 골은 깊지만 골 타고 흐르는 것은 자신의 몫" 그러나 등단은 어쩌면 허울좋은 것이리라. 그는 이때에 "문학의 골은 깊지만 얼마나 깊은 골을 타고 유유히 흐를지는 본인의 몫"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2005년 10월 라디오 "여성시대"에 글이 소개되면서 그는 보름사이에 5번 방송을 타는 호기를 누렸고 스토리문학 11월 호에 소설이 당선되면서 그는 시인겸 소설가가 되었다.
2006년 5월 5일 그는 보석가게를 정리하였다. 이 무렵 그는 뻥튀기 장사를 시작했는데 자신의 보석가게를 잠깐 뻥튀기장사에 활용했으며, 매출이 급상승하는 호기를 누렸다. 때마침 가게자리의 양수를 강력히 희망하는 이에게 그와 그의 아내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가게를 넘겼으며 그는 다시 거리로 나선다. 뻥튀기 장사로 다시 거리에 서다 뻥튀기 장사!
그는 왜 그 일을 하게 된 걸까? 지금은 폐교된 이평서초등학교와 집 옆에 있는 이평중학교를 다녔던 그의 작품속에는 이평 창골 주변의 이야기들,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니며 겪은 추억들이 담겨 있다. 스무살 무렵부터 시작한 거리의 장사, 외판원생활을 십 수년간 하면서 힘들게 세상을 헤쳐온 그는 한때 성남에서 보석가게를 운영하며 자리를 잡는 듯이 보였다.
그러나 이후 계속되는 경기부진의 늪은 그를 다시 한번 길위의 남자로 불러세웠고 그는 현재 전국을 돌며 뻥튀기 장사를 하고 있다. '길 위의 남자' 되어 전국 순회중 스스로 뻔뻔해지기를 다짐할 뿐만 아니라 그 뻔뻔함의 노하우(삶의 용기)를 친형과 친구에게도 전수해주길 마다하지 않는 그는, 튀밥튀는 장사였던 아버지의 대를 이어 그 길을 가고 있다.
뻥튀기 파는 시인 "열 살/ 학교 파하면 곧장 창골로 와 기계 좀 돌리라던 아버지/ 우리 반 순이 귀 막고 옆 짝궁 철이 뽀얀 수증기에 숨던 그 때/ 네가 튀밥장수 아들이냐 물으면 시무룩하게 고개만 끄덕이던 그 때 장사 그만 둔지 십년후에도/ 네가 그 때 그 튀밥장수 아들이냐? / 주홍글씨가 따로 없던 그 때 마흔 살/ 다시 가업 이어받아 / 나는 뻥튀기 파는 사람이다 노랠 불러도/ 네가 그 때 그 튀밥장수 아들이냐 묻는 이 하나없는 이 때 알뜰 장에서 30년만에 우연히 만난 동창/ 너는 시만 쓰는 줄 알았잖아 / 옛날에 너희 집 뻥튀기 장사도 했었니/ 기억을 못한 건지 기억을 숨긴 건지/ 두손모아 귀를 막던 그 때 그 순이 / 혹시 / 너 아닌지 묻고 싶은 이 때
" 뻥튀기 장사하는 모습, 여성지에 소개 되고 그는 최근에 노점상을 하며 겪은 내용을 담은 글이 라디오방송 "여성시대"에 소개되었다. 그리고 그가 뻥튀기노점상을 하는 광경이 어머니와 함께
(그의 시골집은 지난 5월에 전소되었고 84세된 그의 노모는 집을 잃었다) 방송을 탔으며, 여성시대 9월호에 지면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노점상이라는 직업은 늘 불안하고 위태로운 자리이다.
그러나 그는 한가정의 가장으로서 남편과 아빠의 역할에 충실하고자 하며 문학에의 열정도 이어나가고 있다. 이평중학교가 배출한 두 명의 문인, 배용제와 김덕길 "소치는 아이"에서 아버지가 이끄는 수레를 밀면서 이평중학교 옆에 있는 자신의 집을 나와 창동다리를 건너 길고긴 이평언덕(평령리 입구에서 면사무소앞까지)을 오르던 소년 김덕길... 그리고 말목장터의 감나무와 창동에 있는 이평중학교 사이를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학교를 다녔던 소년 배용제...
그 힘든 언덕길을 오르며 배용제와 김덕길은 문학을 생각했던 것일까? 오고가는 보이지 않는 인연속에서 그들은 서로를 인식하지 못한 채 소년시절을 엇갈려 지나쳤다.
그리고 그들은 힘겹지만 의연히 문학창작의 길을 걷고 있다. 창동다리, 이평언덕, 말목장터의 감나무...이평 문인들의 오브제 내장문학의 김영술 전이평중학교장 재임시 제자이기도 한 이들은 고향 정읍과 이평을 인연으로 하여 문인의 길을 가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다.
김덕길, 그는 지금 시련의 담금질 상태에 놓여져 있다. 주유천하하면서 그의 문학적 시야가 더욱 넓어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더욱 깊어져서 좋은 성취로 이어졌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첫시집 [내가슴에 섬하나]에는 어린시절 추억이 듬뿍 첫시집 [내가슴에 섬하나]에는 어린시절의 추억이 담겨 있고 산문을 통해 더 많은 내용들이 채록되고 있음은 소중하게 여겨진다.
그에게 섬은 그리움의 대상이다. 애타게 섬을 부르는 그 동인은 무엇일까? 제주도는 많은 이들에게 안기고 싶은 모성과도 같은 곳이다. 김덕길 또한 제주도 여행을 다른 곳에서 찬미하고 있다. 그에겐 청년기에 제주도에서 보낸 6개월이 있었고, 이때 나이들면 제주도에 들어가 살고싶다는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그의 시집 제목과 시속에 나타난 섬은 이런 그의 심리가 반영된 것이리라. 나도 섬하나 장만하여 '행복' 선착장에 사랑하나 정박시키고 싶다 하긴, 때로 이 글을 쓰는 이도 섬하나를 장만하여 행복이라는 선착장을 만들고 사랑하나를 정박시키고 싶어진다.
김덕길시인의 꿈과 사랑이 정박한 부두가 있는 곳을 `그리운 섬`이라고 본다면 시집 [내가슴에 섬하나]에 담긴 애타는 섬그리움의 정체가 어렴풋이 느껴진다고 하겠다. 그의 단편소설들에는 고향인 정읍과 이평 창골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담겨 있으니, "소치는 아이"와 내장산을 배경으로 한 "알퐁소 도테가 그리지 못한 별"(농민신문 기고)이 그러하다.
그의 단편소설로는 이밖에도 "태일이" "비옷" "질주본능" "킹콩2" "어떤 여행" "타락의 끝" 등이 있다. 'ㅇㅇ는(은)ㅇ지 않는다' 시리즈의 소설 써내고 2005년 11월 스토리문학에 중편소설 [거울은 먼저 웃지 않는다]가 당선되어 소설가로도 등단한 그는 장편소설 [탄창]과 [바다는 비에 젖지 않는다],
[새는 뒤로 날지 않는다] 등 {ㅇㅇ는(은)ㅇ지 않는다 }시리즈의 소설을 쓴 바 있다. 그의 시와 소설들은 아직 뚜렸한 결실을 거두고 있지 못하지만 고향인 정읍을 담아낸 그의 문학적 가치를 우리는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뜻있는 이의 이끌음으로 그의 작품이 널리 소개되길 고대하며 김덕길 시인겸 소설가의 문학적 성취를 기원해 본다.
입력 : 2007년 08월 19일 22:53:31 / 수정 : 2007년 08월 23일 10:12:00
첫댓글 당신이 더 작가 같구먼......
한참 후배인 것 같은데 잘 모르겠네
순간적으로 생각하기를....이평중학교를 너무 과장(펑티기)을 인정(시인)했다는줄 알았네......김덕길 "시인" 우리고장에 영광이구만...
우리 술한잔 안먹고 책사봅시다 *^^*ㅎㅎ
술은 먹어야지! 책도 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