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그림자가 오래 드리웁니다 그리 많은 유산을 남기시지 않으셨지만 아버지의 이름으로 하신것과 가지고계셨던 것들을 자손들과 나눗는일이다 고향예천과 그동안사셨던 대구에서의 아버지의 귀한 소품들
저는 실물보다는 아버지가 쓰신글을 사진을 찍어 내핸드폰속에 담고, 작은 필통에 아버지가 쓰셨던 작은붓 여러자루를 보관하였다
깨달은바가 있어서 본당연령회에 가입했다 연령회에 들은것과 장례식장을 거치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해보니 비용이 만만치않게 들어서 장례예절을 지내지 않는이도 있다고 한다.
옛날 시골에는 마당에 상을 차려 손님을 받고 방한칸에 빈소를 차렸다 동네뒤산 선산에 모셨고 상주와 상주가족들이 일꾼들의 노고에 지갑을 열였다 일꾼들은 동네상조회청년들이었다
도시로 오는이들은 작은아파트에 살며 사람을 맞을 장소도 없고 맞을 빈소도 차리기가 어려워 장례식장을 찾는데 제대로하면 사흘장에 천만이 든다고한다 지방에서 가족들만 달랑 올라온이와 돈벌러 가장만 달랑 올라온 경우는 부의금을 낼이들을 부르지도 못한다
시흥성당에 다닐적에 갑짜기 연락을 받고 장례식장으로 갔다 문상객이 거의 없었다 시골에서 돈벌러 서울에 와있다가 하늘나라로 간것이다 분명히 교우이고 우리보당 관할지역에 살다가갔는데
본당에서누 도무지 관심이 없다 급히 지방에서 올라온 유가족은 장례비용이 걱정이다
장례식장에서 가만히보니 대부분이 비용을 줄이기 위해 2일장으로 치르고 빈소에는 하루만 찾아오는분을 받고 그 다음날 발인한다 코로나시기인지라 작은평의 빈소를 차리기에 정작 부의금만 내고 방문객이 적어 실제 장례비용은 줄어들지만 이 또한 부담이 되는 가난한이들이 있다는 것이다
저의집은 동생둘이 직장을 다니기에 찾아와서 적지않는 부의금을 내기에 별부담이 없지만, 돈이 없어서 장례식을 제대로 하지 못한 이들이 있다는 연령회부회장의 말은 나의 가슴을 아프게한다
과거 꾸리아간부시절에 서울구로3동성당에서 꼬미시움월례평의회회의가 있어 참석하기도 한다 제가 사는 시흥동교우가 멀리 떨어진곳에서 장례를 치른다고 하니 이상하다여겼지만 이를 이해할수 있었다
다들 병원에서 돌아가시면 고대구로병원이나 골목안 작은 성모병원이나 장례식장을 이용하지만 비용이 부담이 되면 구로3동성당을 이용한다고 한다.
냉동고가 마련되어 있고 빈소를 마련할수가 있고 꼬미시움이 있는 곳이라 연도를 바치는이가 많은곳이다
특히 이성당은 살레시오에서 관리하기에 비용이 부담되는이에게는 비용을 전혀 청구치 않는다고 한다.
과거 영등포구역내 오류동서 대림동 시흥동 구로동일대가 가난한동네여서 골목안의 성당에는 본당에 냉동고가 있어서 가난한 유가족의 시름을 덜어준다
제가 시흥성당에 다닐때 본당선배이고 그부인이 제아내의 대모셨는데 그 형제님도 본당에 시신을 안치하고 본당에 빈소를 차렸다 벌써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한데 2003년인가 2004년도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