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목포원네스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1) ♠ |
☞서론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고전1:21)
▶주후 2002년 11월 어느 날, 우리는 한 시대를 숨쉬며 살고 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그리고 무엇 때문에 우리는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 수많은 지식인과 과학자, 예술가, 정치가들이 이 해답을 찾고자 했으나 하나님을 떠난 세상 속에서는 윤리와 도덕, 철학, 종교 이상의 해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인간의 존재와 세상,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존재, 천사와 사탄, 그리고 그 안에 벌어지고 있는 근본문제의 해답을, 삶을 살아가는 키를 말하고 있다.
창세기 3장 인간의 타락과 창세기 3장 15절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으로 이어지는 성경의 세계관 속에서 노아부터 아브라함, 요셉, 다윗, 다니엘, 바울 등과 중세, 근대에 걸쳐 일어났던 전도자들은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안에 감추어진 보화와 비밀을 전달하는 사명을 가졌던 인물들이다. 그 언약을 이어 20세기 말부터 현장에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다락방 전도운동이 한국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됐고, 15년 동안 복음과 언약을 중심으로 한 성경적인 전도방법의 기치를 들고 21세기를 달려가고 있다. 그동안 다락방 전도운동은 오해되어져 왔던 복음과 전도에 대해 의미를 생명과 사명으로 그리고 우리 삶으로 회복시켰다.
▶그러나 이 시점, 많은 일꾼들이 다락방 훈련과 집회에 참여하고 있으면서도 실제 ‘다락방’이 잘 되어지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5-6년 내지 7-8년 동안 다락방 훈련을 쫓아다녀도 ‘잘 모른다’든가, ‘안 되어진다’고 한다. 다락방, 팀 사역, 미션 홈, 전문교회, 지교회 등 5가지 기초와 1천만 요원과 세계복음화를 외치고 있지만 가장 기본이 되는 다락방이 안 되어지고 있다는 것은 사실상 커다란 내적인 손실이다.
▶그래서 본지에서는 다락방 전도운동의 기초인 현장 다락방을 회복하고자 하는 취지에서 88년부터 14년 동안 류광수 목사(21세기 세계선교연맹 총재·임마누엘교회 담임)와 청년시절부터 현장에서 함께 동거하며 청년·공단사역자로, 그리고 현재는 부산 임마누엘교회의 부목사로 섬기고 있는 백운규 목사(임마누엘교회)가 체험했던 영접의 의미에서부터 다락방의 시스템 즉 사역자, 조장, EBS, TBS, GBS 요원의 생성과 역할에 대해 실제 현장에서 체험 내용들을 실제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들어보고자 한다.
◆ ‘나’ 개인을 살리는 다락방 운동
다락방 전도란 전도활동을 펴기 위한 생명운동을 말하며 이 운동은 초대교회 마가다락방에서 시작된 운동이다. 쉽게 말하면 다락방을 한다는 것은 ‘나’라는 개인을 살리는 운동이다. 내가 먼저 살아나야 하고 ‘나’라는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되어야 할 것이 영접운동이다. 다락방 전도운동에서 ‘영접’을 강조하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영접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강압적인 주입이 아니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구원을 받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필요성이 발견되어져서 영접하게 되는 운동이다. 그것이 생명운동이고 치유운동이다. 영접운동은 바로 생명과 치유 운동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락방에서는 예수 생명, 예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일꾼은 생명 운동 속에 나오는 것
이 운동이 되어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이 일꾼이다. 지금 전도에 대한 필요성을 전달하기 위해 객관적으로 일꾼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것이지 실제로 생명운동과 영접운동을 하게 되면 현장에서는 일꾼이 나타나게 된다. 나타나면 이들이 조장, EBS(Evangelism Bible Study: 개인 양육), TBS(Team Bible Study: 기능 양육), GBS(Group Bible Study: 그룹별 양육) 일꾼 등의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우리는 현장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볼 때 일꾼이 필요하다고 말을 한다. 그러나 일꾼은 나오는 것이다. 거기서 조장, EBS, TBS, GBS 일꾼들이 나오는 것이다. 그 운동이 한꺼번에 이뤄지는 것을 다락방 전도라고 한다.
그래서 다락방 전도가 실제로 되어지면 실제로 파급효과가 크다. 다락방 단위의 파급이 이루어진다. 류광수 목사가 초창기 다락방을 얘기할 때 ‘다락방 파급단계’라는 것을 얘기했다. 다락방 단위로 이것이 퍼져가는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개인을 살리는 의미로 축소되어 개인, 개인으로 확산되어지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다락방 단위로 확산된다. 일꾼들이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현재 제일 안 되는 것은 다락방 단위로서의 파급이 안 되어 진다는 것이다.
◆인생의 가치관을 바꾸는 영접 운동
앞에서도 얘기 했지만 일단 다락방에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영접운동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진짜로 영접했다는 의미, 즉 영접에 대한 정의를 생각해야 한다.
아직 아무도 영접이란 이런 것이라 꼬집어 말하지 않았지만, 성경 요1:12에는 영접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류광수 목사가 예전에 설명을 한 적이 있는데 ‘이름’이라는 것을 예를 들었던 것이 있다.
만약 우리가 중요한 서류를 만들 때 인감도장을 찍는다. 바로 그것이 ‘나’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름이란 그런 의미를 갖고 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그런 개념이라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리와 하나님 자녀의 권세가 주어진다. 어마어마한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에 대해 성경에서는 굉장히 위대하고 중요하며, 그 권세는 굉장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보통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 되세요’라고 말할 때 너무 단순하게 생각할 때가 많다.
▶영접을 너무 강조하다 보면 강요가 될 수 있다. 특히 나이 어린아이에게 주입하는 경우가 있는데 주의해야 한다. 어린이들도 정말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한다.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야 한다. 영접은 강요할 만큼 정말 중요하다.
▶현재 내속에 있는 그리스도는 제사장, 선지자, 왕 되신 그리스도이시다. 전에는 이 사실을 제대로 설명하기가 참 힘들었다. 그저 나를 위해 피 흘려주신 그리스도였는데 이제는 내속에 있는 그리스도는 진짜 제사장이다. 피 흘림 없이 죄 사함이 없다(히9:22)는 말씀을 성취하신 그리스도이다. 우리는 과거에 양과 염소를 수없이 잡아야 했다. 그러나 내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피는 단번에 죽으심으로 그가 흘린 피가 나를 비롯하여 우리 모든 인류를 구원하신 것이다.
또 내속에 있는 그리스도는 진짜로 선지자이다. 요14:6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갈자가 없느니라.’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앞뒤 배경이 있다. 쉽게 말하면 ‘아버지께 갈자가 없느니라’는 뜻은 ‘지금 못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못가고 있는 이유가 무엇인가? 창세기 3장으로 인간들이 길을 다 잃어버리고 영적으로 사탄의 손에 잡혀 있다는 것이다. 사53장 모두 제 각 길로 갔다는 것이다. 길이 없다.
▶그런 인생의 길을 각자 제 길로 간 것이 사람 나름대로의 인생관이다. 그리고 제 각 길로 가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것이고, 겨우 인생 끝에는 극단적으로 표현한다면 집 한 채 남겨놓고 가는 것이다. 실컷 공부 해놓고 가는 것이 집 한 채이다. 그것도 빚을 지고 그 아들에게까지 넘겨주고 가는 것이 불신자들의 인생이다. 진짜 우리 인생이 밥 먹고 남기고 가는 것이 집 한 채인가? 그러한 현실을 알면서도 인생들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다. 왜냐 뚜렷한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자기가 죽으심으로 새롭고 산길을 여신 것이다. 죽으면서 휘장을 끊으면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그 구원의 길은 인생이 새롭게 살아야 할 가치관까지 여신 것이다. 그 그리스도이다. 우리 인간은 힘이 없다.
▶그런데 어느 정도로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가 나를 변화시키고 남을 변화시킬 수 있는가? 예를 들면 내가 귀신들린 사람을 쳐다만 보아도 내가 겁을 먹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겁을 먹는 것이다.
저는 예전에 내 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보여주기가 부끄러웠다. 전에는 내가 토라지면, 예수님도 같이 토라졌다. 나에 의해 컨트롤 되는 예수였다. 그러니까 힘이 없는 예수였다. 그러면서도 양심의 소리로 남아있던 예수였다. 나쁜 짓을 하지 않도록 뒤에서 양심의 소리로 남아 있는 예수.
그러나 이제는 내 삶을 컨트롤 하시는 주님이시고, 구원자이시다.
▶그래서 다락방에 와서 내가 제일 은혜 받은 것은 ‘그리스도는 누구이며’, ‘전도란 무엇인가?’라는 것이 내 일생을 바꾸었다. 내속에 있는 그리스도를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내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그리스도였다. ‘진짜 예수 그리스도가 무엇인가?’라는 이 질문, 내가 다락방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이 속에 다 들어있다.
▶무엇 때문에 영접을 얘기하며 가치관을 얘기하는가 하면 내가 처음 다락방을 접하고 청년들과 계속 사역을 하고 공단복음화를 하며 함께 뒹굴어 왔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이 복음 안에 가치관 형성이 안 되어 있다. 복음을 받아도 복음에 뿌리를 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바울과 같이 천국 시민권을 가진 백성으로서 이 땅을 평가하는 가치관이 아니라는 것이다. 신자들이 불신자들이 만들어 놓은 가치관을 기도하면서 따라고 있는 형국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과 타협을 본다. 예를 들어 신자인 아가씨들이 결혼하는데 불신자를 선택하는 경우이다. 또 그것만큼 사업가들도 어떤 일을 선택할 때 불신앙을 선택한다. 우리의 일상사가 그냥 묻혀서 그렇지 아마 이런 경우들이 많을 것이다.
다락방이 되었다가 안 되었다가 하는 이유는 아마 이런 이유에서 연유하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중심이 문제인 것이다.
◆ 발견되는 조장, 다락방 확산의 중요한 역할
그런데 일단 다락방의 역사에서 전도는 생명에 대한 것이다. 이것이 실제로 가슴에 와 닿아야 한다. 류광수 목사가 15년 동안 아파하면서 현장에서 영혼들을 구원하고 싶어 했던 마음이 공감대를 이뤄야 한다. 그래야 다락방 정신이 시작되고 일꾼이 필요해도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다락방에서 일꾼을 다락방 확산을 위한 도구로 생각한다.
▶조장이라는 것은 사실 별로 크게 두드러진 역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중요성이 별로 없다는 것이 아니라 조장이 대단한 훈련 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류광수 목사가 다락방을 16군데에서 30군데 뛰다보니 누가 자기 집을 오픈하고 자신의 집에서 다락방을 해달라고 하며 주인의식을 가진 이가 나타났다. 목사는 메시지를 전하지만 내가 모시고 있는 사람이 메시지를 잘하는 것 같고 괜히 우리 집에 오는 목사 때문에 내가 괜히 ‘으쓱’해지기도 한다. 당시 류 목사는 그런 대상이었다. 병자들도 일어나고 치유되니까 자신도 힘을 얻고 그것이 우리 집에서 일어나니 자신이 괜히 기분이 좋아서 차라도 한잔 더 내놓고, 자연스럽게 아는 사람을 끌고 오는 역할을 하게 되었다.
▶다락방 수가 늘어나고 류 목사의 입장에서는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중요했다. 단지 다른 칭호를 주기 위해 쓴 단어가 ‘조장’이었다. 물론 자기 집을 오픈 한 사람이 다 조장은 아니다. 그러나 류 목사는 그런 마음이 있는 사람, 조장들을 불러서 이 사람들에게 특별하게 ‘복음으로 실제 어떻게 지역을 살려야 하는가?’하는 주제로 기도회를 시작했다. 당시에는 금요철야 직전에 이 기도회 모임을 가졌다. 그래서 나에게도 아직까지 금요일은 중요하게 생각되어진다.
▶금요일은 조장이 모이는 시간이었다. 다락방에 생명운동을 실제적으로 체험한 증인들이 모여서 기도하는 것이다. 이때 류 목사는 조장들에게 어떻게 역할을 해야 할 것이며 역할이 무엇인지 메시지를 주었다. 그러면 이들은 자기 다락방에 오는 사람들의 명단을 놓고 기도하고 전도대상자를 놓고 기도하고 다음주에 데리고 올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금 다락방에 이런 조장의 역할이 사라지고 있다. 어떻게 사라지고 있는가 하면 안타까우니까 교회에서 조장훈련을 해서 조장을 세우고 있는 입장이다. 이것은 조장의 원리는 사라지고 조장의 직무만 남는 것이다. 조장이 부담이 되는 것이다.
▶조장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나와야 한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온 조장에게 강의하는 것이 다락방에서 나온 기본 14권중의 하나인 ‘평신도가 읽어야 할 전도훈련 교재’이다. 평신도가 읽어야 할 전도훈련 교재를 조장이 읽어야 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런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까 류 목사가 주었던 메시지였고, 조장용 교재하면 그 책을 이야기 하는 것이다.
▶조장의 역할은 크다. 우리 임마누엘교회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대표적인 김금애 집사가 이 조장 출신이다. 조장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조장의 축복을 누려보지 않고서는 사역을 해도 끊어진다. 이어지지 않는다. 7-8년, 10-14년 다락방을 유지하는 사람이 조장출신들이다.
▶왜냐 중요한 것은 그 중심이다. 그 조장 때의 마음으로 메시지를 한다. 조장 때의 마음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자기 지역을 위해 기도하고 다락방 멤버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조장이라는 것은 메신저의 조수가 아니다. 메신저라고 조장역할을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조장의 의미는 조수의 역할이 아니라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 역할을 하는 사람이 요즘에 별로 없다는 것이다. 이 역할이 없으면 다락방 확산이 절대로 안 된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2) ♠ |
▶"다락방은 현장에서 직접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이 당시 조장들은 생명이 살아나는 현장을 보았고, 복음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전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조장, 기도제목을 찾고 모으는 역할
백운규 목사(당시 전도사)가 공단에서 다락방 사역을 할 시기가 때마침 교회에서 류광수 목사(21세기 세계선교연맹 총재·임마누엘교회 담임)가 조장을 훈련시키는 시기와 동일하게 맞아 떨어졌다. 지난 호에서도 밝혔듯이 매주 금요일은 조장들이 모이는 날이었다. 이 사람들은 91년도에 시작된 13군데 선교관을 인도하던 리더들이었다.
조장들에게 "이러한 역할을 이렇게 해라"고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되었다. 류 목사가 일주일에 다락방을 30군데 뛰었으니 사실상 바빴다. 한 다락방에 류 목사가 가서 자리에 앉아 일어날 때까지 모든 것을 40-50분 안에 다 마쳤다. 그리고 류 목사가 다른 다락방에 가야하므로 따라갈 사람 가고 나머지 역할을 조장이 했다. 집을 오픈 한 사람이 거의 조장역할을 했고, 그러다 보니 류 목사가 가고 간 뒤에 자연스럽게 대화가 되어졌다. 대화내용은 주로 그날 류 목사가 다락방에서 전한 메시지가 주제였다. 거기서 자연스럽게 기도제목을 찾는 분위기가 되어졌고, 조장은 그 기도제목을 찾고 모으는 역할을 담당했다.
'조장은 이런 것이다'라는 훈련을 받고 조장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류 목사가 바빠서 30분 안에 일어서니까 다락방에 참여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너무 아쉬웠다. 다락방에는 지역중심으로 30-40 대 초반의 아줌마들이 주류를 이뤘다. 그러니까 할말이 많았다. 자연스럽게 메시지 중심으로 기도가 움직여졌다. 그런 역할로 조장이 탄생했다. 한 두 명은 리더가 되어야 하므로 주로 집을 오픈한 사람이 그런 역할을 했다. 그런 가운데 류 목사가 다락방을 하면서 성도들의 기도제목 적어내도록 했다. 다락방 시작하기 전에 종이를 돌려서 기도제목 나누고 류 목사가 기도해 주었는데 그 역할을 자연스럽게 조장이 하게 된 것이다.
◆생명이 살아나는 현장을 직접 본 증인들
지역다락방 중심이고 다락방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나이가 젊었기 때문에 지역에서 집사가 아니라 '새댁' 또는 '누구 엄마'라고 불려지던 사람이었다. 그러니 은혜를 받다보니 옆집 상황을 잘 알고 있으니까, 심지어 영도 지역의 사람들은 옆집의 수저가 몇 개인지 알 정도였다. 다락방에 참여한 사람은 은혜 받을 수록 어려운 사람들에게 신앙의 권유를 했다.
"한번 와서 들어봐라. 당신에게 제일 좋은 메시지이다. 어쩌면 당신의 문제에 해결책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살살 이웃들을 데려오게 된다. 은혜 받고 옆 사람 소식을 아니까 그 사람이 안타깝게 여겨지니까 데려온다. 그러면서 은혜를 받을 수록 전에는 "와 봐라"고 말 하다가 그 다음에는 복음을 전하고 복음에 대한 설명적인 부분이 약하면 "와서 말씀을 들어봐라"고 얘기를 한다. 때로는 개인적으로 영접을 하고 데리고 오기도 했다.
▶단지 조장은 다락방에서 은혜를 받고 조금 세월 지나니 책임감이 생기고, 옆의 사람을 신경 쓰고 기도해주고 하는 것이다. 또 데리고 왔던 사람이 다음에 빠지면 메시지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 나중에 지나고 나니 이렇게 하는 것이 조장역할이 되었다.
▶조장은 현장에서 자연히 나오는 것이므로 뭐 특별한 절차와 훈련을 거치는 것이 아니라 빠른 사람은 빠르고, 센스 있는 사람들은 기도하면서 잘 인도 받았다. 다락방에 들어오는 이유 자체가 복음 때문에 들어온 사람은 빨리 양육되는 경우가 있었다. 서수복 집사(임마누엘교회) 같은 경우는 몇 달만에 조장 역할을 하게 되기도 했다.
▶기간보다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조장이 되고 메신저가 되었다. 현장에서 많이 보기 때문에 조직적이거나 논리적인 것은 없었다. 학습화되고 주입된 것이 아니라 당시에는 이 은혜 받은 메시지를 전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명이 불탔던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요즘 그런 현장을 볼 곳이 없다는 것이다. 특별한 훈련을 위해 불러서 훈련한 것보다 스스로 훈련을 받으러 온 것이다. 현장에서 메시지를 통해 살아나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하나님의 역사를 보기 때문에 성도들은 류 목사를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 분위기가 동삼제일교회(현 임마누엘교회)의 바탕이 된 것이다.
▶류 목사는 다락방에서 기도제목을 구체화하는 작업을 했다. 금요철야에서 일일이 성도들의 기도제목을 불러주었다. 5명 단위로 적어서 합심기도 했다. 10시에 모여서 2-3시에 헤어지는 것이 예사였다. 다락방 현장이 있어서 기도는 간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한 주간 메시지 성취를 보고 오기 때문에 뜨거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게 기도제목 놓고 자녀문제, 가정 문제 등에 대해 아주 뜨겁게 기도했다. 응답이 거의 없는 적이 없었다.
▶공단의 청년들도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고 금요철야에는 뛰어왔다. 그리고 나서 기숙사 문닫으면 35평이었던 임마누엘교회 지하에서 몇 시간 자고 출근하고 토요일 밤에는 다락방을 뛰고…, 그래도 조는 사람들이 없었다.
◆전도는 삶 자체였다
이렇게 교회의 시간표와 동일하게 공단사역을 진행하며 조장들이 일어섰다. 우선 전도는 백 목사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었다. 부산 임마누엘교회의 성도들이 사는 원리가 전도였던 것처럼 전도는 백 목사에게 삶이었다. 백 목사는 처음 공단사역에 마음을 먹고, 전도하기 위해 공장에 취직을 했다. 의류계통에 있다가 옮긴 곳이 신발을 만드는 회사였다. 전도를 위해 사는 것이 목표였기 때문에 그렇게 들어가서 전도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날마다 전도만 생각했다. 눈치보고 있다가 틈만 나면 전도하려고 했다.
▶무조건 말씀운동을 펼치라는 말에 공단 사람들 앞에서 '성경 펼치기'를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런 식으로 눈에 띠게 되자 공단의 청년들이 백 목사를 찾아왔다. 그렇게 그들에게 성경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설명해 주다가 처음 영접한 청년들이 6명이었다. 교회를 다니던 사람도 있었기 때문에 굳이 영접기도를 따라할 필요가 없다고 해도 영접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다락방이 시작됐다. 그 6명중 대부분이 불신자였는데 영접되어 있던 청년이 허연화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였다. 그리스도에 대한 뿌리는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았지만 4영리를 통해 영접을 하고 있었다.
▶1988년 당시 한국사회의 분위기는 노동자 운동이 한창 고조되어 있던 직후라 근로자들이 모이는 것 자체를 탄압했다. 그런 속에서 백 목사 팀들이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잔디밭에서 다락방모임을 진행하자 공장의 운영자들은 우리를 관심 있게 주시하고 있었다고 한다. '혹시 운동권의 위장취업이 아닌가?'라는 의심을 받게 되어 우리는 다락방을 할 장소를 찾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락방을 할 공간을 위해 회사 앞 슈퍼마켓 지하를 얻게 되었다.
▶그곳에서 복음을 듣고 영접을 한 청년들이 천여 명이었다. 이후 몇 개월이 지나 물세도 쌓이고, 방세를 지불하지 못하게 되자 주인이 쫓아내서 우리는 길거리로 나오게 되었다. 우여곡절도 많았던 '공단 길거리 다락방'이 시작된 것이다. 공단 옆, 군부대 경비를 위해 켜놓은 희미한 불빛을 조명 삼아 경부선 철도 옆길에서 말씀을 나누기도 했다. 낮보다 밤에는 기차가 더 많이 지나갔는데 2-3분마다 기차가 많이 지나갔다. 그런 가운데서도 다락방은 끊어지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참으로 많은 복을 주셨다. 전도의 실제 현장에서 뒹구는 다락방 전도를 청년들이 보면서 자란 것이었다. 백 목사가 류광수 목사에게서 실제로 배운 것처럼 이들도 이론적이 아니라 실제로 익힌 것이다.
◆다락방은 현장에서 직접 전달되어지는 것
다락방은 현장에서 직접 전달되어지는 것이다. 길거리에서 다락방을 진행했는데도 20여 명의 청년들이 끊이지 않고 참석했다. 40-50명 정도가 모였을 때 어느 날인가 날씨가 추워지는 계절이었다.
어느 날 김경희 자매가 자신의 친구들이 추운 날씨에서 길거리에서 모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무엇을 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다락방'이라고 했더니 "다락방이면 다락방에서 해야지 왜 길거리에 서 있느냐?"고 대답을 해, 웃음 짓게 했던 에피소드가 있기도 하다.
후에 불신자였던 김 자매는 자신의 자취방에서 다락방을 할 것을 허락했는데, 그 좁은 장소에서 청년들은 책상에도 앉고 여러 곳에 끼어 앉아 말씀을 들었다. 김 자매는 처음 다락방을 하던 날 문밖에서 메시지를 듣고 있다가 마지막에 "영접할 사람 누구냐고?" 물었을 때 방문을 열고 들어와 영접을 하기도 했다.
▶백 목사가 다락방을 시작하게 되면 '현장복음메시지'만 4번 이상을 전했다. 다락방을 인도할 때의 메시지는 자율적이었다. 형식이 특별히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공단 청년들이라 시간이 없었다. 점심시간을 이용하여 10-20분 정도밖에 시간이 없었다. 어떤 때는 성경책도 못 가지고 갈 때가 많았다. 종이 한 장을 돌려주고 대화식으로 하기도 하는 등 형식에 매일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정식 자리가 마련되면 퇴근 후에 청년들과 1시간 정도 다락방을 했다. 순서는 시작할 때 찬송하고 서두에 청년들에게 맞도록 짧은 간증을 한다. 이후 메시지는 30-40분 가량 전했다. 그리고 찬송하고 주기도문으로 마친 뒤 차 한잔 마시고 일어서면 딱 한 시간이 소요된다.
▶다락방에서 개개인의 문제는 그렇게 많이 나누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에 빠져 있기 때문에 문제 치유에 방향을 맞추면 그쪽으로 매이게 된다. 전도라는 방향에 맞추었을 때 문제에 초점을 맞추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 문제가 이러한데 무슨 전도인가?'라는 생각을 주로 한다. 그러나 그 당시 우리 청년들은 고민할 틈이 없을 정도로 전도에 모든 방향을 맞추었다.
김 자매의 집에서 다락방을 진행하면서 백 목사는 중복되지 않는 다락방을 14군데 뛰었다. 처음 다락방을 했던 6명을 기점으로 한 명 한 명에게 연결되어 영접되어진 영혼들을 중심으로 다락방을 뛰었다. 청년들은 백 목사가 늘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있으니 자연스럽게 찾아왔다.
◆태화 고무에서 만난 최선숙 자매 조장 사역
1989년에 백 목사와 다락방을 하기 시작했던 자매들은 17세에서 18세 정도 나이였다. 가정형편 상 산업체에 들어갈 수밖에 없던 청소년 시기. 육체적으로 그리고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알아 가는 다락방 시간이 가장 행복했고, 삶의 힘이 되었던 것이다.
▶그중 최선숙 자매(33·임마누엘 서울교회)는 김연화 자매를 통해 백 목사가 인도하는 다락방에 참여하게 되어 예수를 영접하고 공단에서 다락방으로 인도 받아 은혜 받고 조장으로, 그리고 사역자로 세워졌다. 1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최 자매는 여전히 세계복음화의 언약 속에 비전을 밝히고 있으며 현재는 글로벌 미용학원에서 미용강의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얼떨떨했어요. 정말 이 예수 그리스도가 맞을까? 너무 외로웠던 시기였어요. 그런데 누군가 나를 위해 기도해준 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 때문에 많이 울었던 것 같아요." 최 자매는 당시 구원받았던 처음을 회상하며 얼굴이 밝게 상기됐다.
당시 다락방은 A팀과 B팀으로 나뉘어졌다고 한다. A조는 태화여상, B팀은 경희여상에서 이뤄졌는데 당시에 수 백 명이 영접을 했다고 한다.
"힘든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어서 그리스도의 유일성을 빨리 깨닫게 된 것 같아요." 최 자매는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 그 자체에 그냥 좋았다고 말한다. 그때 당시 '전도를 해야 된다'는 의무감에서가 아니었다. 좋아서 전도를 했던 것이었다. 최 자매는 기쁘고 즐거웠기 때문에 불신자 영혼을 보면 안타깝고 복음을 설명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러면서 최 자매는 다락방의 조장역할로 사역자로 서서히 세워지게 되었다.
"조장 역할을 하면서 은혜 받지 못한 아이들과 일대 일로 만나 메시지를 전달해 주었어요. 또 교회에 안나오는 아이들도 챙기고, 힘든 아이들은 다락방으로 연결시키고요." 조장역할을 1, 2년 정도 했다고 하는 최 자매는 당시 복음편지, EBS(개인양육일꾼메시지), 현장복음메시지 등을 다락방을 통해 인도 받았다고 한다.
한편 최 자매 등 몇 명의 일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공단 복음화를 위해 파송이 되기도 했는데 그 이후 얘기들은 다음 호에 들어보기로 한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3) ♠ |
▶다락방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세가 선포되는 전도의 장이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를 고백하는 곳에 흑암의 권세는 떠나갔다. 시들었던 화초가 다시 물을 공급받듯 사망의 권세로 죽었던 영혼들은 다락방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통해 살아났다. 87년 12월부터 류광수 목사(21세기 세계선교 연맹 총재·임마누엘교회)가 인도하는 지역 다락방에서 5년 이상 말씀을 받고 3여 년 동안 조장사역을 해왔던 김금애 집사(임마누엘교회)는 이러한 고백을 했다.
▶"복음만 들어가면 생명이 살아났어요. 우울증, 정신병, 중풍병자도 치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재생 불능성 빈혈도 치유되는 것을 보았지요. 뼈와 피, 정신, 마음 생각이 전부 치유됩니다. 다락방은 바로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는 중요한 현장입니다."
▶창세기 3장에서부터 인간 근본에 뿌리깊게 자리잡은 죄와 타락의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 가 아니고서는 치유되지 않았다. 사탄의 권세 아래에서 사로잡힌 한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을 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처럼, 다락방 전도현장에서는 생명을 바친 영적인 전투가 벌어졌다.
◆사망 권세에서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마음이 중요
백운규 목사(당시 전도사)가 류 목사의 다락방을 따라다녀 보면서 느낀 것은 류 목사의 중심이었다. 즉 다락방에서 말씀을 전하는 메신저의 중심인 것이다. 사역자가 다락방에서 정말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로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마인드였다. 그냥 다락방을 하는 시간이 되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사탄과 한판 싸움을 한다는 결의와 같은 것이었다. 그런 자세였으므로 눈빛도 달랐다. 정말 사탄에게 포로 된 사람을 살려내야 한다는 심정이었다. 복음만이 이 사람을 살려낼 수 있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대리인으로 세우신 것이다. 백 목사는 다락방 현장을 직접 따라다니며 류 목사의 철학과 그 스피릿을 보았다. 그래서 백 목사 또한 복음에 대한 열정과 중요성을 뼈 절이게 절감할 수 있었던 시간들이었다.
◆다락방 말씀운동은 복음 조직의 바탕
백 목사가 1988년 3월 임마누엘교회에 갔을 당시만 해도 류 목사는 20군데 이상에서 다락방을 뛰고 있었다. 류 목사 혼자서 다락방을 진행하고 있었고, 백 목사가 제일 많이 따라다녔던 다락방은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에 하던 K 대학의 K 교수 다락방이었다. 이곳에서는 30여명이 넘게 모이기도 했고, 주로 엘리트들 쪽으로 문이 열렸다.
▶또 백 목사가 은혜를 많이 받았던 다락방 현장은 이영애 권사와 우옥분 권사의 집에서 열린 현장이었다. 동해다락방이라고 불렸던 곳인데 다락방에 계돈을 받으러 왔던 우 집사가 복음을 받고 어머니 이 권사에게 복음이 증거 되었다. 이영애 권사가 복음을 받고 먼저 자신의 영적인 문제가 치유됐고, 집안의 고질병과 지병 등 병마들이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모두 떠나갔다. 특히 이곳에서는 동삼동에서 유명했던 알코올 중독자가 복음을 듣고 치유되어 현재 임마누엘교회의 권사가 되기도 했다. 이곳에서는 타종교를 믿고 있던 사람들이 난생처음 보는 메신저 앞에서 복음을 받고 눈물 콧물을 흘리며 예수님을 영접했다. 복음 메시지의 위력을 볼 수 있었던 현장이었다.
▶전신전화국에서도 다락방이 되어졌다. 당시 평신도였던 지산옥 전도사가 그곳에서 근무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지 전도사를 통해 연결되어 다락방이 되어지고 신우회가 동참되어지는 등 많은 역사가 일어났다. 이곳에서는 고급인력들이 연결되었고 특히 전신전화국 국장이 자신의 자녀의 문제 때문에 복음을 받고 13군데 선교관 운동을 할 때 동참했었다.
▶다락방을 가기 위해 잠시 들렸던 커피숍에서의 일어났던 일은 메시지로도 많이 알려져 있는 에피소드이다. 류 목사와 백 목사는 전신전화국 앞의 작은 커피숍에서 다락방시간을 기다리고 있으면서 커피를 서비스하는 자매에게 복음을 전하는 기회가 있었다.
류 목사는 그 자매에게 말을 건넸다. "많이 걷겠네. 그런데 하나님을 만나면 멋진 여자가 될텐데…, 그런데 백날 십리를 걸어봐라, 그래봤자 다방레지다." 백 목사는 옆에서 깜짝 놀랬지만,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말을 듣고 그 자매는 주체하지 못하며 눈물을 펑펑 흘리는 것이었다. 나중에 백 목사가 그 자매에게 몇 번 복음메시지 테이프를 전달해주었고, 그 자매는 이후 일을 그만두고 고향으로 내려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지산옥 전도사의 집에서 어린이 다락방이 되어졌는데 '희락' 다락방이라고 불려졌다. 류 목사가 지속하다가 지 전도사가 그 다락방을 인도했다.
초창기 멤버였던 나경숙 집사와 김필자 집사의 집에서도 말씀 운동이 열렸고, 동삼여중 다락방, 김종구 목사, 이동휘 권사, 김금애 집사, 정애순 권사, 서수복 집사, 박원규 장로의 집에서도 다락방이 열렸다. 동삼동 자체가 영적인 문제와 가난이 심각했기 때문에 다락방을 통해 그런 문제에 대한 치유가 되어졌고 단순히 영접하는 것이 아니라 영접 후에 증거들이 일어났고, 이러한 마인드가 교인 전체에 파급되었다.
▶중요한 것은 류 목사의 다락방의 역사들을 성도들이 지켜보면서 본인들에게도 같이 끓어오르는 전도가 연결되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그 분위기가 연결되어 고등학교 복음화는 직접 학생들이 뛰기도 했다. 초창기 고등학생이었던 김유찬 전도사도 복음에 대해 열정을 가지고 학교에서 다락방을 하는 분위기였다. 어린이 여름 성경학교 할 때에도 지역으로 10-20군데의 다락방을 들어가니 어린이만 700-800 여명이 일어났었다.
▶이처럼 지역다락방이 활성화되지 않으면 전문화 쪽으로 연결이 안 된다. 지금 현재 어린이, 청소년, 대학, 청년, 렘넌트 등의 전문사역, 산업선교, 지교회 등이 구체적으로 나뉘어졌는데 이러한 복음의 영적인 밭이 지역다락방이다. 은혜 받은 한 사람 때문에 남편과 자녀들에게 영적인 영향이 간다. 지역을 장악하고, 영적인 분위기가 형성되어 구체적으로 조직화되었고 교회 조직이 아니라 복음 조직들이 형성되었다. 지금의 청소년 사역이 있기까지 당시 학생들의 역할이 컸다. 부산 역 찬양전도에서 어른들이 청소년들을 통해 무릎꿇고 영접을 하기도 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하신 작업이었다. 하나님이 우리 교회 영적인 분위기를 그렇게 만들어 가셨다. 이 속에서 사역자, 조장, EBS 요원들이 성장해갔던 것이다.
◆성경·현장을 배경으로 한 현장복음메시지
이때 하나님이 주신 메시지가 현장복음메시지이다. 성경과 영도구 현장을 배경으로 해서 나온 메시지이므로 영적인 부분에 대해 정확하게 제시된 교제이다. 1과부터 15과까지는 류 목사가 임마누엘교회에 오기 전에 형성되었고, 그 이후 52주 동안 다락방 현장에서 선포된 말씀으로 엮여진 것이 이 현장복음 메시지이다.
▶1-5과 까지 메시지는 전도의 첫 문을 열 때 응용되어지는 것이다.
저도 5과 까지의 메시지를 가지고 공단 사역의 문을 열었다. 또 같은 교제라도 메신저와 대상이 누구냐에 따라 차별성이 있다. 어느 선교단체에서든 처음에는 '구원의 확신'에 대한 메시지가 나온다. 그런데 예를 들어 구원의 확신이라는 주제로 메시지를 전할 때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는지는 상황에 따라 달라진다. 이미 구원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구원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하는 흔들리는 신자들에게는 구원에 대한 근본적인 메시지를 전달해주어야 한다. 또 구원은 받았지만, 신자의 축복과 성령의 인도에 대해 불확실한 사람들에게는 확신과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권세와 신분을 잘 전달해주어야 한다.
▶현장복음메시지는 구원의 확신, 기도,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 교회관, 예배관, 성령이란 무엇이며, 성령충만을 왜 받아야 하는가, 그리스도인들의 전도에 대한 사명에 대한 구체적인 신앙생활의 지침서나 마찬가지이다. 사역자라면 이 현장 복음메시지를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다락방은 하나님과 다리를 여는 전도의 장
예수는 그리스도, 복음을 확실히 알면 모든 문제는 해결됐다. 사탄의 실체를 알게 되고, 인간의 세 가지 문제가 완전 해결되었다. 김금애 집사(임마누엘 교회)는 87년 12월 류 목사와 처음 다락방을 시작한 멤버이며 조장에서 사역자, 팀 사역자, 미션 홈 사역자로 지속적인 복음의 일꾼으로 성장해왔다. 10년 이상을 다락방 합숙훈련에 참가한 이들을 위해 참관 다락방이 김 집사의 집에서 지속됐으며, 집에 오는 모든 이들에게 정성껏 보리밥을 제공하는 수고도 아끼지 않았다. 현재 김 집사는 영도구의 신선동, 봉래동, 염선동 등에서 전도캠프를 하며 지교회를 세워가고 있다.
▶"다락방을 하기 전에 류 목사님은 구역장, 권찰 기도회를 하면서 다락방을 해야 하므로 시간과 장소를 정하라고 하셨어요. 우리 집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후 2시에 하기로 결정됐죠. 1시에 식사하고 2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시작했죠. 저희 구역은 5-6개로 나뉘어 있었는데 류 목사님은 다락방을 3년만 지속하면 하나님이 증거를 주신다고 하셨죠. 저희 집에서 저는 조장을 3년 정도 했어요." 당시를 회상하며 김 집사는 만약에 지역다락방을 시작하려고 하면 이처럼 구역에서부터 다락방을 시작해 볼 것을 권유했다.
▶"다락방은 조장이 움직이지 않으면 문이 닫힙니다. 현장이 없어지는 것이지요. 다락방이 바로 전도의 장입니다. 무당들이 대나무를 꽂아놓고 자신들을 선전하며 사람들에게 해답을 주듯이 다락방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아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해보셔야 합니다." 김 집사는 다락방의 중요성을 이렇게 표현했다.
▶"당시에 류 목사님이 복음편지는 구역공과로 주셨고, 3년 동안 현장복음메시지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복음편지는 메시지를 주시면서 다른 이들에게 이 메시지를 편지로 보내라고 하셨어요." 다락방이 3년 지속되자 김 집사에게는 다락방 문이 열렸다고 한다. 멀리 있던 개척교회의 사모였는데 김 집사에게 도와달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김 집사가 처음 다락방을 하러 갈 때 사용했던 메시지 또한 '구원의 확신', 현장복음메시지 제 1과였다고 한다. 김 집사의 작은 집에서 열린 다락방에는 처음에는 12명으로 시작했는데 40-50명이 몰려왔다.
"전도를 너무 하고 싶었는데 안되었어요. 그런데 류 목사님 만나서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정말 알게 되었어요. 사람들을 다락방에 데리고 오면 처음 보는 목사님 앞에서 영접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전도가 얼마나 쉬워요. 보리밥을 준비하고 우리 동네의 사람들을 초청했죠. 우리교회의 어떤 집사는 불신자였을 당시 무당을 찾아갔다가 무당이 예수 믿으라고 해서 우리 다락방으로 연결되었는데 복음 받고 모두 회복됐죠. 또 지금은 제주도로 이사를 갔지만 우리 위층에 살던 미용사였는데 계속 복음을 전하고 싶어서 기도를 하고 있었죠. 어느 날 보리밥을 만들어놓고 아파트를 내려가는데 만나서 다락방에 초청을 했죠. 그런데 이분이 목사님 말씀을 받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자신의 아들과 딸이 다 죽고, 아들하나가 남았는데 절에 팔았다고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에 스님이 북쪽으로 이사를 가면 죽는다고 했는데 앞으로 이사갈 전셋집이 북쪽인데 어떻게 하면 좋으냐고 질문을 하더군요. 목사님이 답을 주셨고, 영접을 했어요. 시어머니와 남편이 교회 가는 것을 방해해도 다락방에 참여했어요. 지금 제주도로 이사를 갔지만 그분에게는 정확한 생명이 들어갔지요." 이외에도 김 집사는 이 다락방에서 우울증, 정신병 등 가문에 내려오는 영적인 저주로 고통받던 많은 이들이 생명을 얻었다고 말한다.
◆다락방은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는 현장
"조장은 영혼구원에 대한 마음이 있어야 해요. 그래야 초신자들을 위해 기도도 하게 됩니다. 기도 안 하면 사탄에게 모두 노략질을 당합니다. 초신자가 처음 영접을 하게 되면 그 배경이 모두 사탄이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쓰러뜨리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한편 김 금애 집사는 다락방을 하기 위해 몇 가지를 당부했다. "다락방을 귀중하게 여기기를 바랍니다. 다락방이 전도의 장이예요. 전도 신학원, 선교사 훈련원 졸업해도 다락방 현장이 없으면 메시지는 끝입니다. 문제 만나면 넘어지게 되죠. 하나님의 능력을 볼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는 지속 안 되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다락방에 대한 귀중함을 알고 지속하려고 해야 살아 계신 하나님 역사와 말씀이 내 것으로 됩니다. 둘째로 메시지를 사용하지 않아요. 저 같은 경우는 메시지 준비할 것이 없습니다. 교재만 들고 가면 되죠. 메시지를 준비할 것이 없다. 류 목사님 메시지는 잘 되어있습니다. 서론부터 결론까지 다 들어있습니다. 하루에 10군데 가도 시간만 있으면 됩니다. 메시지 준비하려고 따로 시간을 준비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팀 합숙 할 때 참관하는 사람에게 현장복음메시지 30과 정도하고 하고 오라고 합니다."
▶5년 동안 다락방을 통해 성령의 실제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체험하게 된 김 집사는 지교회도 다락방이 되어져 하며, 다락방을 하는 가운데 전도제자를 찾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4) ♠ |
◆증인들- 15년 지나 환갑 넘은 권사님들…, 여전히 복음의 파수꾼으로...
15년전 류광수 목사와 다락방 말씀운동을 시작한 평신도들. 복음의 가치와 능력을 현장에서 직접 본 이들에게 그 구원의 감격이 남다르다. 렘넌트 운동의 뿌리가 되는 이들은 10여년이 넘게 다락방을 하고 있으며 참관 다락방으로 전국의 사역자들에게 모델이 되고 있다.
▶1987년 다락방 같았던 12평의 교회에 모인 16명의 교인들을 상상해 보면 세계복음화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다. 교인들도 40대 중반이 넘어선 중년 여성이 대부분이었다. 영도 동삼교회에서 쫓겨나듯이 그저 교권과 싸움이 싫어 바보처럼 훌훌 털어 버리고 나온 임마누엘 성도들은 새로운 목회자를 맞이할 사택도 없을 정도로 열악한 상황이었다. 12평의 다락방에서 피아노 학원으로, 그리고 주위의 이웃들의 핍박으로 쫓겨 삼원스포츠 건물의 창고로 이동을 했다. 성도들은 먼지를 닦고 수리하고 예배를 드리기 위해 정성을 쏟았다. 그들은 그 모든 손길 하나 하나가 오늘날 세계복음화를 위해 일어나고 있는 렘넌트 운동의 물결로 이어질 것을 과연 상상이나 했을까?
▶50만원을 주고 산 중고 피아노를 놓았던 자리는 내려앉아 바닥에서는 삐그덕 삐그덕 소리가 났다. 작은 공간에서 예배를 마치면 함께 밥을 해먹으며 교제를 나누었다. 그곳에서 류광수 목사(임마누엘 교회 담임·21세기 세계선교연맹 총재)는 "세계복음화, 전도운동을 해야 한다"며 교인들을 일깨웠다.
▶과거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릴 지도 모르는 역사를 돌아보며, 한행순 권사(66)는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전도운동이 일어나자 교인들이 불어났죠. 공간이 너무 작아 35평으로 이동을 했지만, 금요철야를 할 장소가 없었어요. 교육관도 몇 번이나 불이 났고, 기도원을 빌려서 철야예배를 드리기도 했죠. 그래도 목사님은 괜찮다며 믿음의 말씀들을 하셨어요. 성도들은 목사님을 따라 고신대학교 뒤의 외등 밑에서 메시지 듣고 흩어져서 기도했답니다." 한 권사는 또한 버스를 빌려서 철야예배 할 때도 발 디딜 틈이 없었고, 복음메시지가 너무 은혜가 되어 아무도 불평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락방'은 성도들에게 처음에는 생소했기 때문에 그저 류 목사가 하는 대로 성도들은 따라다녔다. 류 목사가 전하는 복음 메시지를 들으며 당시의 성도들은 자연스럽게 이웃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역자로 세워질 수밖에 없었다. 또 복음 때문에 다락방 현장에서 살아난 우리의 어머니와 같은 분들이 지금은 환갑을 넘은 권사님들이 다 되었다. 그래도 이들은 처음 시작한 그 다락방 현장 현장에서 다락방 조장으로 EBS요원으로, 사역자로 10여 년 동안 복음의 파수꾼이 되어 다락방을 면면히 이어오고 있다.
▶한행순 권사도 10년 이상 다락방 사역을 해오고 있다. 89년도 구역식구 7명과 다락방이 한 권사의 집에서 시작됐다. 당시 전도사였던 이성훈 목사가 다락방을 인도했는데 복음편지 메시지가 주로 선포되었고 새 신자들이 제법 많이 몰려들었다. 사람들이 많이 몰려와 때로는 메신저는 문갑 위에 앉아 다락방을 인도하기도 했다고 한다. 이 다락방은 현재 부산 합숙훈련 참가자를 위해 참관 다락방으로 선정돼 있으며 40-50여명의 전국의 일꾼들이 다락방을 참관하며 은혜를 누리고 있다.
"다락방에 찾아온 새 신자들 가운데는 영적으로 고통을 당하던 이들이 메시지를 들으며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구토를 하기도 했답니다. 복음이 들어가자 사단의 세력이 발악하는 현장을 많이 목격했습니다." 현재 한 권사는 당시의 집을 아예 미션 홈으로 내놓아 그곳에서는 다락방을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고 있다. 또 한 권사는 10여 년 동안 부산 교도소 사역을 지속하고 있다.
▶이옥연 권사(56)는 보통 사람들이 겪을 수 없는 사실적인 영적인 체험을 했던 증인이다. 한행순 권사와 동역하고 있으며 합숙훈련 시 참관 다락방이 열릴 때 이 권사는 전국의 사명자들이 영적인 눈이 열리도록 간증을 주로 한다.
"사단과 싸우다가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집안은 우상을 많이 섬기던 집안이었습니다. 너무 너무 고통을 당해서 무당을 찾아가면 무당들도 나에게 온 신이 너무 세서 함께 무속 일을 하자고 했습니다. 그러면 부산 시내의 돈은 다 내 것이 될 것이라고 말했죠. 그런데 나는 무속 일을 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우리 외할머니가 무당이었는데 결국은 쥐약 먹고 돌아가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지요. 귀신의 주특기는 가족과 분리시킨다는 것을 옆에서 많이 보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은 나에게 사람들의 과거를 보여주며 모든 것을 알아 맞추게도 했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내가 정신을 잃고 귀신이 들려서 거리를 헤매고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잠을 안 재우고 늘 귀신과 대화를 했어요. 늘 귀신과 같이 웃고, 지껄이고…, 귀신은 늘 내 옆에 있었습니다. 귀신은 내가 원하는 것을 다 보여주며, 자동차도 타게 하고, 버스도 타게 하며, 나를 데리고 다녔습니다. 사단은 자기 말만 들으면 차도 태워주고, 호화롭게 해준다고 속였습니다. 그런데 귀신이 떠나가면 나는 그 순간 차비도 없이 덩그러니 남아 버렸죠. 그러면서 그때 교회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동삼교회를 나가게 되었는데 집에 혼자만 있으면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했고, 교회만 가면 편안했습니다. 하나님은 교회와 하늘에만 계신 줄 알았지요. 그래서 밥만 먹으면 교회로 갔습니다. 교회당을 청소하고, 빨래하고, 그리스도 없으니까 절에 다니는 것과 같았습니다. 11년 동안 그렇게 교회를 다녔어요. 성경구절 하나도 못 읽으면서 말입니다. 설교시간에는 말씀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고, 잠만 오고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교회가 편하니까 교회에 붙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11년만에 임마누엘교회에 따라와서 철야예배 때 류광수 목사님을 만났어요. 한 권사가 소개를 해줬는데 솔밭에 모여서 철야기도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 날 목사님이 오신다는 얘기를 듣고 갔는데 류 목사님이 솔밭에서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는 순간 내 머리카락이 위로 솟구치며, 몸이 떨리기 시작했어요. 철야 예배를 드리며 내가 얼마나 울었는지…, 한 권사님이 나를 류 목사님에게 데리고 가서 일대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습니다. 기도하고 말씀을 받은 순간 몸이 얼마나 시원하던지, 마치 어린아이를 여름에 업었다가 내려놓은 것처럼 몸이 가벼워졌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말씀이 얼마나 꿀맛 같은지 읽고 또 읽어도 너무 좋았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속에 깊이 영접하고 성령 충만을 위해 기도하면 모든 문제는 다 해결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고 영적인 눈을 열게 해주신 류 목사님께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이 너무 감사합니다. 영접하는 순간 내가 하나님의 자녀 된 것이 확신이 들고 사단이 물러가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권사는 전국의 사명자들이 영적인 눈을 뜨게 하기 위해 자신이 먼저 이러한 고통을 당했다고 말하며, 참관 다락방이 열리면 교회의 식당에서 봉사하다가도 언제든지 달려온다.
예수님을 영접한 뒤 이 권사의 집에서는 류 목사가 인도하는 중고다락방이 열렸다. 처음에는 5명이 시작해서 10명, 15명, 30명까지 모였다. 그러다가 이 권사의 집이 좁아 교회 옆에 천막을 쳐서 다락방을 옮겨갔다.
"청소년들에게 밥해주고 라면 삶아주는 것부터 했습니다.
주님밖에 몰라서 모든 것을 드리고 싶었어요. 처음에는 쌀 한 되도 살만한 돈이 없었지요. 빚을 내서라도 라면을 삶아서 아이들에게 주었는데 하나님은 물 붓듯이 그 모든 것을 몇 배로 우리 집에 갚아주셨습니다." 이 권사는 그렇게 자연스럽게 다락방에서 조장역할을 해내었던 것이다.
한편 이권사의 남편 최두식 집사는 배를 타다가 쓰러져 뇌졸중으로 뇌출혈이 일어났는데 17일 동안 육지에 도착할 때까지 아무 일도 없었으며 한쪽 무릎이 퉁퉁 부어 잘라낼 상황이었는데 다락방 식구들의 기도로 모든 것이 응답되어 다리도 잘라내지 않고 현재까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
▶우분옥 권사(54)도 당시 다락방 말씀운동을 하고 있는 지산옥 전도사의 가정에 우 권사의 어머니 이영애 권사의 계돈을 돌려 받기 위해 찾아갔다가 은혜를 받았다. 창세기의 메시지를 들으며 우 권사는 자신의 어머니 이 권사도 이 메시지를 들으면 간염이 나을 것 같은 희망을 갖게 되었고, 확신을 가지고 어머니를 다락방에 모시고 갔다.
용한 점쟁이가 있다고 하여 어머니를 모시고 갔지만 '죄, 사단'의 이야기가 나오자 이영애 권사는 '내가 무슨 죄를 지었냐'며 화를 벌컥 내며 일어서려고 했다. 그러나 다락방에 모인 이들은 이때 기도하며 우 권사의 가정 복음화를 위해 기도했고 이 권사는 이튿날부터 정말 평안한 잠을 청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가 살길이 이 길이 아니냐'며 은혜를 받기 시작한 이영애 권사는 우 권사와 함께 류 목사를 메신저로 동해다락방이 열렸는데, 우 권사는 이때부터 은혜를 받고 이웃의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다.
▶최일순 권사(63)는 영도 동삼동에서 소문난 여자였다. 술도 잘 마시고, 놀기도 잘했고, 남자들까지도 최 권사에게 급소를 얻어맞을 정도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을 마시고 한참이나 답답한 심정으로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마침 지나가던 우 권사는 최 권사에게 말을 건네며 함께 점심을 먹으러 가자고 다락방으로 초대했다. 최 권사도 웃으면서 권유하는 우 권사의 인도를 따라 다락방에 어렵게 참가하여 3, 4번 계속 따라가게 되었다.
어느 날 최 권사는 수요예배에 참가하게 되어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는데 누르고 있는 듯했던 무거운 짐이 가벼워지면서 울면서 주님을 영접하게 되었다. 1989년부터 90년까지 2년 동안 최 권사는 다락방에서 메시지를 들으며 많은 은혜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후 하나님께 기도했어요. 나도 다락방을 하게 해달라고요. 그래서 우리 집에서 다락방이 92년도 열리게 되었는데 그때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매주 화요일 지속하고 있습니다." 웬만해서는 밝히고 싶지 않다고 했지만 간암으로 94년도에는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었다.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하면서도 최 권사는 다락방을 한번도 건너 뛴 적이 없을 정도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지켜갔다. 다락방에 갈 수 있도록 환갑까지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최 권사는 환갑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락방을 인도하고 있다.
"협심증에 간도에 문제가 있었고, 혈압이 높아서 거의 죽은목숨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저를 다락방에서 복음 전하라고 살려 주셨습니다. 전도 때문에 제가 살고 있는 것이지요." 최 권사는 그러면서 영적으로 힘든 6명과 다락방을 인도하며 조장과 사역자 역할을 감당해왔다. 현재도 환상과 환청으로 잠을 못 자며 고통을 받고 있는 김정임 자매와 8년째 사역을 하고 있다.
"조장사역을 할 때는 함께 다락방을 열고 있는 집의 청소도 함께 하고 참관인들 차 대접하고 구역원들 점심대접을 하는 등 사람들이 은혜 받도록 돕는 역할을 주로 합니다." 최 권사는 그러면서 목사님들은 슬슬 조장들에게 메시지를 전해보라며 권하며 사역자로 세워지도록 도왔다는 것이다.
"다락방 현장은 갈급한 영혼들이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지요. 그곳에서 자신들의 답답한 것들을 풀어놓고 같이 기도하는 시간입니다. 화요일 다락방에서는 현장 복음메시지로 계속 돌아가며 주기도 하고 구역예배에서는 창세기부터 차례대로 모세 오경, 역대기서 등을 차례대로 풀어줍니다." 최 권사는 그래서 다락방은 하나님과의 언약이며 그 시간에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선포하는 시간이라고 말한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5)- EBS ① ♠ |
◆EBS는 한사람을 복음으로 확립시키고, 그 현장에 전도 문 여는 것
EBS는 '되어지는 다락방'에 속한 새신자를 현장에 직접 찾아가 복음으로 확립하고 전도의 문을 새롭게 여는 역할을 말한다.
▶다락방은 살아있는 생명체와도 같다. 다락방에서는 한 메시지로 4계층의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다. 불신자에게는 구원의 메시지가 되며, 새 신자는 그 메시지 속에서 양육되어진다. 기존신자들은 '내가 정말로 복음에 뿌리내려야 한다'고 은혜를 받는다. 그리고 사명자는 들으면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방향이 잡힌다. 이 네 계층의 사람들에게 동시에 영향을 주는 것을 다락방 메시지다.
▶그 속에서 조장, EBS(Evangelism Bible Study)·TBS(Team Bible Study)·GBS(Group Bible Study) 일꾼들이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하나의 유기적인 조직이 되어 자연스럽게 그 역할들을 해 나가는 것이다. 지난 호까지 우리는 조장의 역할 대해 알아보았다. 이 번호부터는 EBS에 대한 개념과 역할에 대해서 들어보기로 한다.
▶"전도할 마음이 없는 사람에게는 아무리 많은 훈련과 강의를 해도 필요가 없다. 다락방의 메시지는 전도할 마음이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이다. 요즘 안타까운 것은 다락방이 안되고 있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전도에 대한 열정이 아니다. 정말 죽어 가는 영혼에 대한 이론적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Feel'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진정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복음을 너무 누렸기 때문일까? 백운규 목사(부산 임마누엘교회)는 우리의 무디어진 마음에 하나님의 애타는 영혼구원의 심정이 회복되길 기도했다.
◆타 선교단체의 EBS 개념
EBS는 선교단체에서 만든 용어이다. 선교단체에는 대부분 EBS가 다 있다. Evangelism Bible Study라고 하는데, 불신자에게 7주정도 복음을 전한 뒤 7주 후 영접하도록 메시지를 정리해놓은 성경교재를 보고 EBS 교재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QT 등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것은 PBS(Personal Bible Study)라고 한다. 다락방의 EBS의 개념은 선교단체의 EBS와 PBS 개념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다. 사실 선교단체에서 말하는 EBS의 개념은 불신자에게 복음을 설명하는 성경 공부이다.
◆다락방의 EBS는 전도를 전제한 개인양육 및 현장변화
다락방에서의 EBS는 선교단체에서 하는 복음을 설명하기 위한 성경공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 GBS(다락방을 인도하는 메신저) 일꾼이 인도하는 다락방에 새 신자가 들어왔다고 하자. 그러면 다락방의 시스템의 한 일원인 EBS 일꾼이 복음의 비밀을 가지고, 복음을 받은 새 신자나 한 개인의 현장으로 가서 그 사람을 복음 메시지(다락방 교재 - EBS 기초훈련 개인양육 메시지)로 확립시키고, 현장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최종적으로 전도의 문, 다락방이 열릴 때까지 사역을 하는 것을 보고'EBS 사역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EBS는 다락방이라는 전체 시스템 속에서 이해해야 하므로 다락방을 설명하면서 EBS의 역할을 찾아야 하겠다.
만약 어떤 A라는 사람이 '다락방에 가야지…'하는 생각을 언제 하게 되는가? 저 다락방에 가야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저기 가면 이익이 되니까'라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바쁜 삶을 산다. 그 바쁜 현대인들이 무엇 때문에 우리가 하는 다락방에 와줘야 하는가? 아무리 바빠도 다락방에 가야 하는 이유는 자신의 유익 때문이다. 영적인 유익, 기도의 유익이 있다. 그러면 그런 유익을 끼칠 수 있도록 하는 현장이 다락방이다. 다락방은 전도라는 개념과 양육이라는 개념을 동시에 포함하고 있다. 이런 내용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다락방 교재가 그렇게 만들어진다.
▶다락방은 '현장, 복음, 전도'라는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아무 매력이 없다. 구역예배처럼 하면 아무 매력이 없다. 다락방은 성도들이 주일 강단말씀을 통해 받았던 은혜를 그대로 삶에서 확인하는 현장이다. 다락방에는 기존신자와 새 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다락방에서는 새 신자가 계속해서 양육되어질 수밖에 없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에 대한 비밀이 계속 증거 되므로 교회도 빠지지 않는다. 이미 현장에서 영접하고 오기 때문에 떨어져 나가지 않는다. 계속 양육이 되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다락방이 되어질 때 EBS 일꾼은 다락방에서 양육되고 있는 새 신자의 삶의 현장에 가서 여러 가지 각도로 복음메시지를 전달하며 전도의 문을 여는 데까지 돕는 것이다.
◆EBS의 개념 오해는 다락방이 안 되어지기 때문
그런데 다락방 안에서도 EBS의 개념을 새 신자를 위한 '개인양육'으로만 오해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다락방 교회 안에서도 새 신자를 담당하는 사람을 EBS 일꾼이라고 하여 그저 단순히 새 신자가 교회 안에서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돕는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EBS는 '전도가 되어지는 다락방'이라는 개념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EBS의 개념이 잘못 이해된 것은 사실상 '전도가 되어지는 현장인 다락방'이 제대로 안되어지기 때문에 일어난 문제들이다.
▶그러면 먼저 다락방에서는 몇 가지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다락방에 참여했을 때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역사가 보여지고 하나님을 만나도록 하는 것이 다락방이다. 어떤 형태의 다락방이든 간에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을 나누는 목적은 하나님의 임재를 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임재는 구약에서 쉽게 찾아 볼 수가 있다. 구약에서는 벼락도 치고, 불도 나고 하니까 하나님이 임재 했다고 알 수 있다. 그러나 지금 성도가 모이는 곳에 하나님이 임재 한다고 하지만 어떻게 알 수가 있는가? 자욱한 안개가 확 일어나면서 하나님이 나타난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알 수 있지만 그렇지가 않기 때문에 알 수가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가 있었다는 증거로 다락방에 나타나는 증거가 기도응답이다. 이 기도응답이 반드시 일어나야 한다. 그렇게 되어야 다락방이 전도의 대한 부분과 연결되어져서 또 다른 다락방으로 확산된다. 안 그러면 결국은 제2의 구역예배 밖에 안 된다. 같은 교인끼리 모여서 하는 것 밖에 안 된다. 그렇게 되면 조장의 개념은 있을 지 몰라도 EBS의 개념은 없어지는 것이다.
▶물론 다락방 안에는 EBS 일꾼들이 있기는 있다. 다락방다운 다락방이 아니고 전도가 되어지지 않는 우리끼리의 구역예배처럼 되어버린 그 모임에도 EBS 일꾼들이 있다.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가 하면 앞에서도 말했듯이 EBS는 새 신자를 양육하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이미 다락방의 사역이 몇 가지 잘못된 것이다. 전체적인 다락방 사역이 제대로 안되어지고 있는 것이다. 다락방에서는 이미 앞에서도 말했듯이 메시지가 선포되면 불신자, 새 신자, 기존신자, 사명자가 모두 은혜를 받게 되 있다. 어린 새 신자들은 자연스럽게 양육되게 되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새 신자를 또 다시 양육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EBS 개념이 '새 가족, 새 신자 양육'으로 인식된다는 것은 결국 다락방 자체에서 새 신자를 위한 양육이 안되고 있다는 증거다. 그래서 새 신자를 위한 개인양육이 또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EBS 일꾼을 '새 신자 양육하는 일꾼'이라고 오해하는 것이다. 심지어는 교회에서도 EBS 사역을 개인양육이라고 생각하고 진행하고 있는 곳이 많이 있다.
▶EBS 개념이 제대로 이해되려면 먼저 '전도가 되어지는 현장인 다락방'의 개념이 올바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다락방에서 하나님의 임재와 기도응답이 있어야 한다.
▶현재 다락방 전도운동에 참여하고 있다는 국내와 세계 교회들을 살펴보면 다락방을 정확하게 하고 있는 곳이 많지 않다. 다락방 세계 속에서 다락방이 사라지고 있다. 과연 지금의 다락방들이 전도와 관계된 것인가? 아니면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재미있는 모임을 하는 현장인가' 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 물음표를 던져야 한다.
◆EBS는 새 신자의 불신 배경을 변화시키는 것
그렇다면 다락방에서의 하나님의 임재와 기도응답이 되어지고 새 신자가 양육되어진다면 무엇 때문에 EBS가 필요한가? 말 그대로 EBS는 개인양육은 맞지만 목적이 개인양육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다락방에서 개인양육이 되어지고 있기 때문에 굳이 개인양육을 따로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 사람이 필요한가?
▶쉽게 이해하기 위해 다락방 사역자가 만난 새 신자 B가 있다고 하자. 이 B는 자기가 살고 있는 불신앙이 가득한 작은 사회, 즉 불신자 세계를 배경으로 안고 들어온 사람이다.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어야 EBS가 시작된다. 그 B가 있는 현장은 말씀운동이 안 벌어진 곳이다. 하나님이 이 현장에 복음 전할 좋은 기회를 허락하시려고 B를 보낸 것이다. 그러면 B의 변화 때문에 그 사회에서는 문화충격이 일어난다. 저 B가 예전에는 교회를 안 다녔는데 기도하는 것을 보니 '교회를 다니기로 했는가?'하고 생각한다. 이 작은 사회에서 B의 변화는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온다.
▶문화적인 충격이 오는 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아가는 문화 속으로 신선한 문화가 들어 온 것이다. 그 신선한 문화가 B를 통해 불신자들에게 들어가니 불신자들은 B를 핍박, 조롱하기도 한다. 그 말은 이 B가 안고 온 문화에 대한 불신자들의 관심이다. 그렇다면 한 사람의 변화가 그 많은 사람에게 새로운 충격이 되는데 그 B 한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가? 그렇다면 B가 어떻게 변화되어야 하는가? 이런 각도에서 B가 변화되고 발전되도록 돕는 일꾼이 EBS 일꾼이다. 이 B 한 사람을 데리고 EBS 역할을 하면서 이 사회에 복음운동이 일어나게 해야 한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새 신자를 변화시키는가?
EBS 일꾼은 먼저 새 신자의 현장에 가서 새 신자에게 'EBS 기초훈련(개인양육메시지)' 교재로 메시지를 전하며 새 신자를 양육한다. 이 교재에는 훈련 1과부터 12과까지 있다. 1과에서 7과까지의 훈련은 한 사람이 7가지 방향으로 복음이 뿌리내리도록 설명하는 것이다. 어떤 문제를 만나도 흔들리지 않도록 복음의 뿌리를 내리게 하는 것이다. 이 사람이 현장에서 나타내 보이는 빠른 변화에 사람들은 굉장히 관심을 가진다. 그 때 사단은 이 사람을 이렇게도 찔러보고 저렇게도 찔러본다. 사람들을 통해서 공격한다. 그러나 말씀으로 무장되면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내린다.
▶그 이후 이 사람이 양육되어지면 훈련 8부터 훈련 12까지 메시지를 전하는데 '하나님이 쓰시는 일꾼은 무엇인가'에 대한 내용이 나와 있다. 원색적인 신앙에서부터 전도까지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이 메시지는 지난 2002년 2월부터 5월 평신도 지교회 집회에서 류광수 목사가 강의했다.)
▶그러다 보니까 이런 EBS 일꾼들이 많이 움직이게 되었다. 그런 일꾼들이 하나님 앞에 무장되어야 하고 발판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EBS 일꾼을 위한 훈련도 되어졌다. GBS 일꾼이 EBS 일꾼을 직접 양육하게 되는데 그때 사용되는 교재가 'EBS 기초훈련교재'를 가지고 훈련하게 된다. (이 메시지는 2002년 6월부터 2003년 2월 평신도 지교회 집회에서 강의 됐다.)
▶한 사람이 전도되기가 어렵다. 그런데 자기 발로 왔다. 이것은 기적중의 기적이다. 그러나 한국교회에서 다 놓치고 있다. 단지 무엇을 하는가 하면 새 신자가 왔으니까 새 신자에 대해 양육을 해주는 것이다. 내가 이 지역에 가서 전도해서 발견해도 놀라운데 이 B가 자기 발로 왔다. 그러면 이 B는 그 지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을 볼 수 있는 사람이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EBS 일꾼인데 이러한 요원들은 말씀운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그런데 잘 안 나타나니까 현재 교회에서는 EBS 일꾼을키우기 위한 훈련을 하는 것이다. EBS를 찾아내겠다는 것은 나쁜 의도는 아니지만 EBS의 개념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상태에서 EBS가 양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한 사람 변화를 중요하게 인식하는데서 시작
EBS 일꾼도 다락방을 진행하다보니 나오게 된 것이다. 다락방을 하는 과정에서 조장 역할을 하는 사람이 스스로 나왔듯이 그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나왔다.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해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처음에는 교역자들이었기 때문에, 부산 임마누엘 교회 교역자들을 중심으로 먼저 EBS 훈련이 되어졌다. 그리고 이것이 핵심모임으로 발전된 것이다. 주일날 교회의 모든 순서가 끝나고 밤 10시에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EBS 훈련을 시작했다. 그 때에 사용한 것이 'EBS 기초훈련 개인 양육 메시지'였다. 처음 모임을 가졌을 때 류 목사님은 참석한 교역자들에게 "양육 메시지를 대상자에게 설명하듯이 직접 나와서 해 보라"고 하셨다. 그 당시 분위기는 전도가 확 일어나고 있는 상황이어서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었다.
▶류 목사님은 교역자들이 앞에 나와서 메시지를 전하는 것을 점검하면서 가르쳤다. '이런 설명은 좋았다. 그런데 이런 부분은 약하다' 등등 꼭꼭 집어서 지적해 주었다. 그러니까 한 사람의 변화에 대해 아주 중요시 여겼다는 것이다.
▶EBS 일꾼은 일단 전도하고자 하는 사람이었다. '전도가 되어지는 다락방'을 하는 사람, 또는 다락방에 포함된 사람들이었다. EBS 역할을 특별히 잘하는 이들이 있었다. 이 사람은 한 사람을 변화시켜 놓고 다락방을 열어 놓은 뒤 그 다락방에 머무르지 않고 다른 사역자를 보내도록 상위 사역자인 GBS에게 요청한다. 또 다른 새 신자의 양육과 전도의 문을 열기 위해 새로운 곳으로 움직이는 것이다. 어떤 면에서 EBS는 다락방의 백미이다. 그런데 현장에 이 사역 제대로 안되어지고 있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6)- EBS ② ♠ |
◆새신자를 복음체질로, 전도제자로 양육하는 EBS
복음이 전달되는 가운데 EBS는 새신자의 불신적인 체질을 치유하고 창3장과 그리스도로 옷입혀 새로운 전도제자로 키우는 중요한 사역이다.
▶우리는 지난 호에 다락방전도운동을 펼칠 때 새 신자를 양육하고 전도의 문을 여는 EBS(Evangelism Bible Study)에 대해 개념을 살펴보았다.
▶'예수가 바로 인간의 근본문제를 해결하신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믿는 믿음, 그리고 부활하셔서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다락방이 되어지면 불신자 상태에서 돌아온 새 신자의 영적인 배경을 볼 수 있는 EBS 일꾼은 자연적으로 생기게 된다. EBS 일꾼은 예수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서 사명감 있게 새신자를 지속적으로 양육하여 새로운 전도의 문을 여는 일꾼이다.
▶백운규 목사(부산 임마누엘교회 부목사)는 지난 호에서 "다락방에서의 EBS는 선교단체에서 하는 복음을 증거하기 위한 성경공부가 아니다. 예를 들어GBS(다락방을 인도하는 메신저) 일꾼이 인도하는 다락방에 새 신자가 들어왔다고 하자. 그러면 다락방의 시스템의 한 일원인 EBS 일꾼이 복음의 비밀을 가지고, 복음을 받은 새 신자나 한 개인의 현장으로 가서 그 사람을 복음 메시지(다락방 교재 'EBS 기초훈련 개인양육 메시지')로 확립시키고, 현장에서 여러 가지 문제에 부딪히더라도 흔들리지 않고 뿌리를 내리도록 돕는 것이다. 또한 최종적으로 전도의 문, 다락방이 열릴 때까지 사역을 하는 것을 보고 'EBS 사역을 했다' 라고 말할 수 있다"라며 EBS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그러면 우리는 이번 호에서 다락방 사역을 하는 일꾼들이 전도의 문을 열어 가는 과정 속에서 진행된 실제 EBS 사역을 찾아, 그 EBS 사역을 통해 하나님이 하신 구원과 전도의 역사를 살펴보기로 한다.
◆복음전하며 자연스럽게 새신자 양육하고 전도 돼
영어교사인 김정숙 집사(부산임마누엘교회)는 92년경 학교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민하던 중 35평이었던 부산의 임마누엘교회에 학생들과 찾아오게 되면서 다락방메시지를 접하고 93년도 동삼여중으로 발령을 받고 교사들과 기도회 모임을 시작하며 본격적인 하나님의 언약과 전도를 체험하며 훈련된 일꾼이다. 김 집사를 통해 많은 현직교사와 청소년들이 복음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그 사역 가운데 대표적인 EBS 사역을 요약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김 집사는 92년 청소년들을 데리고 어떤 전도사의 소개로 영도 동삼동에 위치한 임마누엘교회를 스스로 찾아갔다. 아이들에게 복음을 듣게 하기 위해 찾아간 교회에서 아이들과 예배를 마치고 교회 마당에 서 있는데 당시 전도사였던 백운규 목사가 아이들에게 말을 건네며 말씀운동을 하자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다락방이 처음으로 김 집사의 집에서 백 목사가 메시지를 하며 청소년 다락방이 열었다. 다락방에는 백 목사 외에 몇 명의 사역자들이 바뀌며 김 집사의 집에 들어왔다. 김 집사는 초기에는 아이들을 위해 음식을 하고 챙기느라 메시지를 구체적으로 듣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 이후 1년 정도가 다락방이 진행됐고, 93년도 경 학교에서 복음을 전해달라고 하는 학생들의 요청으로 김 집사는 말씀을 전해주려면 본인이 말씀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에 집에 서 예전에 다락방을 했던 복음편지를 찾아내어 아이들에게 전하면서 김 집사는 스스로가 은혜를 받고 그때부터 하나님이 응답하시고 인도하시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그래서 김 집사가 살고 있던 아파트는 늘 시끌벅적했다. 항상 아이들이 많았고, 그곳에서 복음운동이 일어났다. 그때 김 집사의 아래층에 살고 있던 박은희 교사(현재는 워싱턴에 살고 있음)가 이 현장을 보고 자신도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김 집사처럼 청소년들에게 복음전하지 못 하는 것에 도전을 받고 김정숙 집사를 관심 있게 보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김정숙 집사가 기도원에 가게 되었는데 다락방을 하고 있는 어떤 집사와 만나 학교에서 학생들을 통해 일어나고 있는 복음운동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마침 또 박은희 집사도 우연히 그 기도원에 있다가 그 이야기를 모두 듣고 놀라게 되었고, 며칠 후 김정숙 집사의 집에 또 다른 교사와 함께 찾아왔다.
그러면서 여러 가지 신앙에 대한 궁금증들을 물어보기도 했다. 그래서 김 집사는 아래 위층으로 살고 있으니까 매일 가서 박은희 교사와 양혜은 교사에게 복음을 전하고, 자주 가서 메시지를 전했다. 자연적으로 김 집사는 이때 이 교사들에게 다락방도 하면서 동시에 박 선생이 전도자로 세워질 수 있도록 개인양육 및 전도의 문이 열리도록 도운 것이다.
그러면서 양혜은 교사가 다락방에서 지속적으로 훈련받게 되었고, 얼마 안 가서 자신의 학교의 교감 선생님 전종태 집사에게 복음을 전해 전종태 교사도 현재 다락방에서 말씀운동을 지속하며 다락방 말씀운동을 지속하고 있다.
▶또 박은희 교사를 양육하다가 박 교사의 제자인 이우련 자매(현 아주대학병원 근무)가 예수님을 영접했고, 김 집사는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 자매를 영적으로 도왔고, 대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도 이 자매를 양육하기 위해 대학에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또 밥을 먹으며 이 자매의 친구들에게 시간이 되면 복음을 전했다.
결과적으로 이 자매를 통해 호주 현지인 쉬메르 교수가 복음을 받고 또 김 집사를 통해 개인양육 및 다락방으로 연결되었다.
▶이순남 교사는 김정숙 집사와 고2때부터 절친한 친구였다. 김 집사는 복음에 은혜를 받고 전교조 운동을 하던 이 집사가 하나님을 만나 복음을 깨닫게 되기를 늘 기도했다.
때로 친구에게 전화해서 "네가 사회운동 한다고 세상이 바뀌냐?"라고 말을 건네기도 했지만 이순남 교사는 "시끄럽다"며 전화를 끊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집사가 김 집사에게 찾아오겠다고 전화가 왔다. 그래서 김 집사는 다락방 하는 시간에 이 집사를 오게 해서 복음을 전했다. 이 집사가 이때 다락방에서 영접을 했다. 새 신자가 된 이 집사는 일본으로 잠시 가 있게 되는데 그 동안 김 집사는 이 집사에게 지속적으로 말씀 테이프를 공급해주며 이 집사가 은혜가 떨어지지 않도록 도왔다. 그리고 일본에서 돌아온 이순남 집사는 현재 김정숙 집사와 동역하며 함께 학원사역을 하고 있다.
"사실상 그때 당시에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했기 때문에 '이것이 EBS 사역이다' 하며 사역을 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대로 사역을 했어요. 예를 들면 다락방에서 영접한 사람들 가운데 유학가면 컴퓨터로 이메일을 통해 복음을 지속할 수 있도록 자료 테이프를 보내주던가, 맨투맨으로 양육을 하던가 상황에 따라 되어지는 대로했어요. 그리고 자신이 은혜 받은 만큼 전도의 문이 열리고, 자기들의 집을 오픈해서 다락방이 열리고 그렇게 연속적으로 일어나는 거예요." 김정숙 집사는 복음을 전하자 자연스럽게 새신자는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고 그들을 통해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은 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임을 밝히고 있다.
◆복음누리고 기도의 비밀 있는 EBS 일꾼
곽명석 사모(안양 동부교회·34)는 92년도 신학생 때 광주 남교회(이건성 목사)의 전도사로 시무하고 있을 때 다락방을 접하게 되어 은혜를 받았다.
곽 사모는 94년 경 광주여자 전문대학교에서 다락방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때 완전 불신자였던 A 자매가 다락방에 오게 되어 예수님을 영접을 했다. 그때 A자매에게 맞는 사역자를 개인 양육자로 붙여주었다고 한다.
"EBS일꾼으로 새신자에게 붙일 때 EBS일꾼은 복음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실제 기도가 되어지는 응답을 누리고 있어야 합니다. 불신앙을 가지 사람은 안됩니다."
곽 사모는 당시 복음에 대해 감사와 기쁨이 있는 일꾼가운데 선정하여 A자매에게 매일 개인양육을 하도록 했다. 그리고 동시에 곽 사모가 인도하는 다락방에 A 자매를 참석하게 했다. 복음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A자매는 집안에서 갈등 문제를 해결하기가 힘들었다.
그런데 영접이후 EBS 사역을 통해 삶을 도와주었고 자연스럽게 자신의 남자친구도 데리고 와서 전도의 문이 또 열리게 되었고, 교회와 연결될 수가 있었다.
지금 현재도 곽 사모는 한 지역에서 전도캠프를 지속하고 있는데 최근에도 새 신자가 3명이 영접하여 개인양육을 할 수 있는 EBS 일꾼을 모두 연결시켰다고 한다.
"어떤 새신자가 와도 사역을 할 수 있을 만큼 일꾼들이 준비되었습니다. 가정적으로 남편과 문제 있으며 거기에 맞는 일꾼을 붙이고, 태·영아와 관련된 일꾼이며 태영아 사역자를 붙이고 있습니다." 곽 사모는 영적 관리가 되어지고 기도의 비밀이 있는 일꾼을 EBS 사역을 하도록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구원의 비밀 지속해주고, 전도 현장까지 연결
임정희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는 94년도 경에 피아노 학원을 경영하고 있을 당시 최혜경 전도사가 학원에 복음을 전하러 오면서 처음 다락방 메시지를 듣게 되었다. 어린이 사역에 대한 비전으로 마16:16의 메시지로 어린이에게 복음을 전하며 어린이들이 변화되는 것을 현장에서 체험할 수 있었다. 그 이후 지속적으로 전도운동을 펼치고 있는 임 집사는 현재 두 군데 5인 1조 기도회 모임과 지교회 운동을 하고 있고 교회 안에서 잘 양육되어지지 않는 새신자를 잘 찾아 개인 양육하여 삶을 돕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을 전달하고 있다.
임 집사는 2년 전부터 박춘희 집사를 중심으로 6명의 기존신자들과 다락방을 하고 있다. 다락방을 하면서 이들은 모두 응답을 누리고 있는데 박 집사가 기도의 비밀을 누리고 있고, 말씀을 잡고 기도하는 가운데 어떤 집사는 3년째 가출을 했던 아들이 돌아오고 둘째 아들은 대학에서 장학금을 타고, 어떤 성도는 캠프를 하는 가운데 가족이 백혈병이 치유되는 기도응답들을 체험하고 있다.
▶그러면서 박춘희 집사는 자신의 미용실에 불신자들이 찾아오면 임 집사에게 늘 연결을 시켜주었고, 임 집사는 아예 목요일 오전 하루는 미용실에 가서 불신자들을 만나 영접운동을 벌이고 있다. 임 집사는 이 다락방에서 연결된 새신자 박진숙 성도, 김보연 성도, 전인숙 성도에게 직접 EBS양육을 하고 있다. 목요일 오전에는 새신자 가정을 중심으로 개인 다락방을 하고 오후 8시 30분에 6명이 모이는 다락방을 인도할 때 새신자들도 참석하기도 한다.
▶새신자 중 박진숙 집사는 교회 안에서도 5주차 새신자 교육을 마치고 오후 다락방에 참여하고 있다. "새신자에게 '구원의 길' 메시지를 가지고 좀더 정확하게 전달해준다. 그 사람의 수준에 맞게 몇 번에 걸쳐 전달한다. 창3장과 그리스도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이후에 복음편지 메시지를 시작한다." 임 집사는 이후 새신자가 양육되어지면 그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새신자가 온전히 세워질 때까지 도운 후에 실제 현장에 가서 영접하고 전도가 되어지는 것을 보여준다고 한다.
"새신자는 메시지에 은혜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자신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불러오게 됩니다. 그러면 최소한 10명 이상 관계된 사람들에게 제가 영접메시지를 통해 전도되어지는 것을 보여주고, 어느 정도 새신자가 눈을 뜨게 되면 직접 복음을 전하도록 합니다."
이렇게 새신자였던 박진숙 집사는 이렇게 옆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응답을 보면서 남편과 자녀들이 모두 하나님을 만나고 전도 신학원에 다니고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새신자 만나야
백운규 목사는 이러한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현장에서 진짜로 다락방을 해보라고 말한다. 개인 다락방을 시작해서 일대 일로 영접한 사람이 다수가 되었을 때 그들을 모아 다락방을 시작해야 무너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새 신자가 영접을 하게 되면 그 다락방으로 초청을 하면 된다.
▶"다양한 종류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도 한 메시지를 가지고 모든 사람에게 충족할 수 있는 것이 다락방 메시지이다. 첫째로 새 신자들은 반드시 다락방으로 초청하라. 다락방을 만나고 이 사람을 가능하면 일주일 안에 만나주는 것이 제일 빠르다. 48시간 안에 만나라고 한다.
▶왜 그런가? 진짜로 영접의 의미를 안다면, 정말로 예수 그리스도 알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마귀입장에서는 이 사람을 죽이려고 한다. 분명히 조금 전에 마귀의 자녀였는데 진짜 예수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마귀입장에서 배신자이다. 마귀가 결국 가만히 두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말씀의 뿌리 없으면 사단에게 이리저리 터진다. 그 상황을 안다면 새 신자는 일주일 내에 만나야 한다." 백 목사는 한편 새신자가 치유되는데 더 효과적으로 그룹형 다락방에 이 새신자를 초청하여 많은 사람과 어울리며 복음적인 교제를 하면 더 빨리 치유의 역사를 보게 된다고 덧붙인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7)- TBS ♠ |
◆TBS(Team Bible Study)란 무엇인가?
기능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계복음화할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는 TBS(Team Bible Study)는 평신도를 깨우는 종교개혁과도 같은 것이었다.
'교회'와 '삶'이라는 이원론적이고 종교적인 신앙에서 벗어나 평신도들은 '그리스도'라는 관점으로 성경을 보게 되고, 그 신분과 권세를 자신의 직업을 통해 누리게 되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인간이 복음을 만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 땅에서 달란트와 기능을 가지고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 것인가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자기가 서있는 모든 곳이 선교지이며,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모든 이들에게 전도를 해야 하는 '평신도 선교'의 사명을 삶의 비전으로 삼는다. 평신도들은 성경에 이름도 없이 전도자를 돕고 세계복음화에 쓰임 받던 가이오, 브리스길라, 야손, 다비다, 루디아와 같은 이들을 기억하며 그 안에서 모델을 찾는다. 즉 인간은 복음을 깨닫고 난 뒤 자신의 기능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찾게 된다. 사람을 살리고, 복음을 위해 쓰임 받을 때 우리는 직업을 사실적으로 전문화시킬 이유를 깨닫고,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전도의 도구로 활용하게 된다.
믿음과 기능을 통해 하나님의 계획을 보게 하는 TBS(Team Bible Study)는 다락방이 시작됐던1990년대 이후 10여 년 동안 상당히 발전되었다. TBS가 발전되어 지금의 전문사역, 기능선교, 산업선교, 평신도 선교로 발전을 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믿음과 기능으로 세계복음화
먼저 TBS일꾼의 정확한 개념은 첫째로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믿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사람을 말한다. 우리는 대부분 TBS 일꾼이라고 하면 기능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TBS 일꾼은 자기가 기능이 없어도 된다. 이 사람은 자신이 기능이 없어도 기능을 가진 사람을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 믿음과 기능이라는 두 가지를 통하여 세계복음화할 수 있도록 인도해주는 사람이다. 그러면서 기능을 가진 사람이 복음으로 확립되면 그도 TBS 일꾼이 되는 것이고, 그의 영향으로 같은 기능을 가진 일꾼들이 모여지게 된다.
예를 들어 다락방 말씀운동을 하다 보면 기능 있는 A라는 사람이 영접을 하고 새 신자로 들어오게 된다. 그러면 이 기능 있는 A에게 같은 기능 있는 사람 B를 붙여주어서 A가 믿음과 기능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TBS에는 EBS적인 요소도 포함하고 있다.
▶두 번째로 이 기능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락방 말씀운동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 모임을 TBS(Team Bible Study)라고 한다. 이 기능 있는 사람들의 특징은 대부분 혼자가 아니다. 불신자 세계에서도 기능 가진 사람은 팀이 있다. 기타 잘치는 사람은 기타를 잘치는 사람끼리의 팀이 있고, 컴퓨터 잘하는 사람은 컴퓨터 잘하는 사람끼리의 팀이 있다. 그러면 그 팀을 배경으로 해서 한 명의 TBS일꾼이 기능 가진 한 사람을 하나님의 계획으로 변화시킴으로서 그 팀들에게까지도 변화를 줄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이후 이 팀들은 한 지역을 복음화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 것이다.
▶세 번째로 류광수 목사는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TBS를 움직여서 기능전도를 펼쳤는데 특히 팀 사역을 할 때 마지막 3주차 기간에 찬양, 기능, 의료사역을 통하여 한 지역에서 다락방을 10군데 이상 열어갔다. 즉 지역에 다락방 문을 동시에 터뜨릴 때 TBS 요원들을 활용한다.
◆전도 문을 여는데 TBS 활용
초기 류광수 목사가 하는 다락방 말씀운동이 본격화되면서 제일 먼저 등장하게 된 대표적인 기능인들이 찬양인들이었다. 이와 함께TBS가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계기점이 된 것은 1990년도 부산 사상공단에서 청년들을 중심으로 했던 찬양집회와 1990년과 1991년 두 해에 걸쳐 고신대 대학교 강당을 빌려서 부산에 있는 청소년들 대상으로 제 2회까지 찬양집회를 했을 때였다.
▶그것보다 앞서 류광수 목사가 부목사 시절 삼화고무 공장에서 말씀운동을 펼칠 때였다. 아르바이트 학생이었는지 기타를 아주 잘치는 청년 한 명이 복음 안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이 사람이 기타를 너무 잘 쳐서 많은 여학생들이 감동을 받기도 했다고 하는데 류 목사는 이 청년을 기점으로 회사 안에서 찬양전도를 하며 많은 열매를 맺기도 했다. 즉 이 사람에게 기능을 가지고 복음 전파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람, 바로 류광수 목사가 TBS일꾼의 역할을 한 것이다.
▶1990년에는 백운규 목사가 사상공단에서 공단사역을 하고 있을 때 류 목사의 지도로 찬양전도집회가 준비됐었다. 백 목사는 밤새도록 포스터를 준비하여 공단 벽에 붙이고 홍보를 했다. 그런데 류 목사는 찬양집회 하루 전에 공단 안을 돌아보고 백 목사를 부르더니 "내일 한 명이라도 오면 내 손에 장을 지지겠다"라고 말을 했다고 한다. 밤새도록 포스터를 붙이고 선전했던 백 목사는 속으로 '류 목사님의 불신앙을 결박시켜달라'고 기도까지 했다고 하는데…, 결과적으로 다음날 류 목사가 말한 대로 정말 한 사람도 찬양집회에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유인즉 그 날은 공단에서 일하는 학생들이 산업체 학교에서 시험치는 날이었다고 한다. 백 목사는 그것도 알아보지 않고 찬양집회 날짜를 잡았다고 류 목사에게 꾸지람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하나님이 백 목사를 긍휼히 여기셨던지 그 날 밤 산업체 학생들이 시험을 치는 그때 갑자기 정전이 일어났고, 공단 안에서 찬양집회를 하는 그 건물만 남기고 모두 전기가 끊어지는 사태가 벌어졌다.
학생들은 시험을 치다 말고 모두 밖으로 나왔는데 결국 찬양집회를 하는 그 건물로 한 명씩 한 명씩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 날 찬양집회에 청년들이 50-60명이 참여하게 되었고 다락방 문이 10군데가 열렸다.
▶찬양은 전도의 문을 여는데 굉장한 힘을 발휘했다. 1990년도와 1991년도 고신대 대강당에서 진행된 청소년 찬양 집회에서 청소년들의 마음의 문을 여는데 복음을 가진 찬양의 위력은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께 돌아오는데 큰 역할을 했다.
▶1990년도 제 1회 찬양집회는 임마누엘 교회(구 동삼제일 교회)의 개 교회 차원에서 진행되었다. 찬양은 이성훈 목사를 리더로 임마누엘교회의 예수생명 찬양전도단이 맡았다. 영도지역의 청소년들이 600여 명이 모인 가운데 반 이상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한다.
▶그리고 1991년도 10월 3일 진행된 찬양집회는 준비된 집회가 됐다. 91년도 2월 수영로교회에서 집회가 이뤄진 뒤 류 목사는 그 해 3-4월부터 부산 지역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전도훈련을 진행하며 중고등부 사역을 위한 조직을 갖춰갔다. 이것을 바탕으로 제 2회 찬양집회가 준비되었기 때문에 전도의 문을 열고 양육할 수 있는 후속조치까지 예상을 한 집회였던 것이다.
▶"그때 당시 부산의 교회들과 연합을 해서 함께 힘을 모아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 포스터를 수 천장 뿌렸습니다. 청소년들에게는 관계 전도로 친구들을 데려올 것을 미리 기도하게 하였고, 어느 학교에서 전도 문이 열릴 것인가를 예상해서 교회마다 학교를 담당할 것 등을 미리 후속조치까지 다 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당시 행정을 담당했던 백운규 목사는 고신대 강당이 세워진 이래 제일 많은 숫자가 모였는데 찬양집회에 1700명이 모여들어 학교측까지 놀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아이들이 무려 500여명이었고, 부산 시내 학교에만 125군데 다락방이 열렸다고 한다. 당시 함께 참여했던 목사들은 감격을 이기지 못해 서로 끌어안고 울기도 하고, 참으로 성령의 역사는 대단했다.
▶"그러면 여기에서 TBS에 대한 정의가 내려지는데 그때 찬양인도를 했던 이성훈 목사가 TBS일꾼이냐? 아닙니다. 그 기능을 보고 부산 시내에 다락방 문이 열릴 수 있다고 본 류 목사님이 TBS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백 목사는 반복하며 'TBS는 전체를 바라보면서 기능을 이용하여 전도의 문을 볼 수 있는 사람'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고신대 찬양전도 이후 부산의 신평공단에서 또 다시 찬양전도 집회가 있었는데 류 목사가 기초메시지를 하고 24개 회사에서 전도 문이 열렸다고 한다. 그러고 난 뒤 24개의 다락방 문을 다 감당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 이런 시각으로 현재의 산업선교를 보십시오. 그리고 평신도 선교회를 보세요. 이것은 세계 구석구석에 동시에 문을 열겠다는 것입니다. 그 TBS의 발달이 전문사역이고 산업선교, 전문사역, 렘넌트, 치유사역, 문화사역 등 다섯 가지 목표입니다." 백 목사는 5가지 목표에 대한 다락방의 역사를 보면 TBS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전문사역의 모태가 된 TBS
백운규 목사는 초창기 TBS 일꾼들의 모임이 한 작은 모임의 다락방 말씀운동 구조 안에서는 잘 안되어졌다고 한다. 결국은 기능을 가진 사람끼리 모이게 되면서 팀이 되어 또 다른 그룹형 다락방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물론 다락방안에서 모인 사람들의 각자의 달란트 및 기능을 찾는 작업은 된다. 그리고 원래 다락방 안에서 TBS 일꾼을 포함시켜서 전도운동이 되어지도록 하는 것이 원칙인데 사실상 잘 안되어졌다고 한다. 결국 TBS들은 따로 모여지게 되는 것이다.
▶류 목사는 찬양 팀이 구성되자 이성훈 목사에게 자연스럽게 Bible Study를 위임했다. 그러면서 TBS는 찬양 팀에서 시작되어 미용, 의료 팀으로 뻗어나갔다.
▶찬양 팀은 이성훈 목사를 시작으로 찬양선교국이 세워지기도 했고, 의료사역은 현재 다락방 사역을 하지 않지만 K집사를 통해서 시작했고, 여기에 김성자 사모와 같은 인물들이 의료사역에 동참하여 치유사역의 모태가 되었다. 또한 K집사를 통해서 의사 다락방이 열렸는데 그 전도의 확산으로 임권일 집사(임권일신경과의원·임마누엘교회 대학부 부장)가 복음을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지역복음화를 위한 외곽전도 전략
한편 류 목사가 본격적으로 TBS에 대한 세미나를 1993년도에 진행했는데 그때 나온 메시지가 '지역복음화를 위한 외곽전도전략 3단계'라는 교재로 정리됐고, TBS일꾼을 훈련시키기 위한 교재가 '지역복음화를 위한 다락방전도전략'이라는 책이다. 이 교재의 내용을 보면, 믿음과 기능적인 부분으로 두 개로 나뉘어졌다. 현장에 기능 가지고 들어가 보면 양육해야 할 대상들이 보인다. 기능선교에 들어가기 전에 이 교재로 일꾼들을 양육하면 된다. '외곽전도 3단계'는 팀 합숙 훈련의 전신이 되었다. 그러니까 팀 사역 기간 동안 3주차에 실시하는 것이 기능선교이다.
"저도 이 교재 사용을 많이 한다. 내용이 참 좋다. TBS를 떠나서 그룹모임 할 때도 사용하고 특히 팀 합숙 훈련을 할 때 사역자들을 준비시킬 때 이 교재를 사용한다." 백 목사는이 교재에 대해 "일반적으로 일꾼들이 자신의 기능을 어떻게 하나님의 방향에 맞출 것인가에 대해 점검하는데 유익한 교재"라고 덧붙였다. /김경수 기자
▶"찬양을 하는데는 기교와 기술이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기교를 부리면 사람의 귀를 즐겁게 하지만 영혼을 움직일 수 없습니다. 복음적인 찬양이 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찬양입니다." 이성훈 목사는 찬양의 기능을 가진 이들이 가장 기억해야 할 메시지라고 말했다.
▶1991년 찬양집회 이후 이성훈 목사와 찬양 팀을 중심으로 다락방이 구성됐고 류 목사는 찬양 팀들에게 찬양의 의미와 그 기능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했던 것이다.
그 다락방이 이성훈 목사에게, 그리고 현재는 김영곤 전도사에게 전달이 되었다. 1991년 김영곤 전도사 외 7-8명으로 구성된 '예수 찬양전도단'은 지금도 청소년들의 영혼을 살리기 위해 자신들의 기능을 믿음과 복음 안에서 발현하고 있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8)- GBS ① ♠ |
◆GBS 上
GBS(Group Bible Study)는 한마디로 그룹이 모여 전도를 위해 성경 공부하는 '다락방'이다. 그러니까 앞에서 설명해 온 다락방 안의 조장, EBS, TBS의 형태를 갖춘 GBS가 다락방인 것이다.
흔히 다른 기독교 단체에서는 GBS를 소그룹 성경공부라고 한다. 일반 교회나 선교단체에서는 제자훈련을 위해 소그룹 성경공부를 GBS라고 한다. 즉 6-7명이 성경공부 하는데 제일 좋은 최적의 인원이라고 정의하며 최소한 12명을 넘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메신저가 어디에 앉고 오른편과 왼편에 누가 앉아야 하며 창문의 개폐 여부까지 조건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성경적인 근거가 있겠지만 다락방에서 말하는 GBS는 소그룹 성경공부라는 개념과는 다르다. 장소가 크면 많이 모이면 되고, 작으면 작게 모이면 된다. 문제는 '이 다락방 모임이 복음을 전하기 위한 모임인가?'라는 것이다. 그렇게 되었을 때 조장, EBS, TBS가 생기고 그 안에 어린이들, 젊은이들도 있을 수 있고, 점차 은혜가 되어지면 이들이 저절로 현장에 메시지를 들고 나가는 것이다.
◆지역다락방이 먼저 회복되어야…
요즘 대부분 GBS를 계층별 다락방이라고 알고 있다. 그러나 GBS가 '계층별 다락방'이라는 개념도 갖고 있지만 이 개념을 갖기 전까지 베이스가 된 것이 '지역다락방'이다. 그러니까 GBS는 넓게 '전도하는 다락방'인데 그 안에 계층별 다락방, 지역 다락방 등 복합적으로 모든 그룹 단위의 '전도하는 다락방'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류광수 목사(임마누엘교회·21세기 세계선교연맹총재)도 임마누엘교회 초창기에 처음 6개 지역다락방으로 시작한 것이다. GBS의 하이라이트는 사실상 지역다락방이다.
▶만약 어떤 곳에서 지역다락방이 지속되다 보면 어느 날 방학이 되어 아이들이 참여하기도 한다. 그러다 은혜를 받으니까 은혜 받은 것을 가지고 자기 학교, 회사 등의 현장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학, 공단 등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되는 것이다. 또 학교, 공단 현장의 같은 사람들끼리 모이게 되어 이것이 계층별 다락방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다락방은 전도의 장이다. 그것이 기본 사상이다.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받은 사람이 처한 곳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다. 그러면 그 처한 곳에 하나님의 목적이 있음을 알고 그곳에서 전도의 활동을 벌리기 위한 성경공부 활동이다. 그것이 다락방이다. 앞에서도 누누이 설명을 했지만 다락방에서는 언제든지 불신자가 오고 실제 전도가 되어져야 한다.
▶전도의 개념을 가지고 기도해야 지속할 수 있다. 또한 만나는 사람마다 복음을 전하겠다는 개념으로 모일 때 열매가 열려지게 되며 이러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의 모임을 가지고 하는 성경공부 하는 것을 '다락방'이라고 한다. 그러한 사람들이 흩어져서 또 복음 전하고 그러면 '세계복음화'는 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말 다락방이 되어져야 미션 홈이 되어지고 실제 지교회가 되어진다.
▶그래서 GBS 가운데 회복될 것이 지역다락방이다. 지역다락방이 회복되어야 다 회복된다. 예를 들어 백운규 목사가 공단 복음화를 위해 공단 현장을 뛰면서 메시지 자료는 류 목사가 운영했던 지역다락방에서 참여하여 거기서 은혜 받은 메시지를 들고 공단으로 간 것이다. 백 목사가 생활하고 있던 곳이 공단이므로 공단으로 이 복음이 옮겨진 것이다. 그러나 백 목사가 인도하는 다락방은 '계층별 다락방'이다. 공단이라는 계층이지만 시발점은 지역이라는 다락방에서 시작했다.
▶앞으로 교회마다 회복되어야 할 것이 이 지역다락방이다. '구역'은 선이 나뉘어져 있다. 내가 담당하는 지역말고 다른 지역에 들어가고 싶어도 구역이라는 것 때문에 못 넘어간다. 다른 사람 눈치를 보아야 한다. 구역이라는 개념에서 오는 한계다. 그러나 다락방은 전도라는 개념을 가지고 구역을 뛰어넘는다. 임마누엘 교회가 부산 영도를 벗어 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개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락방 단체에서도 구역이란 것을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 만약 다른 구역을 담당하는 전도사가 우리 구역에 오면 그 사람은 완전히 제명되거나 라이벌로 여겨진다. 각 교회마다 이것이 문제이다.
▶또 예를 들어 부산에 있는 모든 교회가 부산 대학교 안에 다 들어가도 부산대학교복음화는 될까 말까 할 정도다. 다락방이라는 정신이 희미해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말 그대로 GBS에 대한 맛을 잃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구역예배가 모두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아니다.
◆전도기초가 훈련된 사람을 중심으로 6-7명이 모여야…
류 목사도 부산 영도에서 지역다락방으로 시작했다. 그리고 말씀운동을 벌릴 때 일 대 일로 시작한 적이 없다. 6-7명이 모여지고 사역자를 보내달라고 요청할 때 다락방을 시작했다. 즉 한 명의 힘을 가지고 기도하고 말씀운동 하는 것과 두 명과 모여서 하는 것과는 두 배의 차이가 아니라 네 배의 차이가 있다.
▶한 사람을 양육시키고 도와주어서 뿌리를 내리게 하고 그 한 명을 배경으로 해서 복음전파를 발판으로 삼는 것과 두 사람을 기도하게 하는 것은 네 배의 차이이다. 그러니까 6-7명이 모여서 전도라는 방향을 가지고 한 다락방을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하다.
▶류 목사는 지역 다락방을 이룰 때 어떤 식으로 했는가 하면 교인들이 다락방을 해 달라고 할 때 시작했다. 또한 예전에는 부산 임마누엘 교회 자체 내에서 전도기초훈련을 12회까지 했는데 이 전도기초 훈련을 마치고 난 뒤 다락방을 하고 싶은 사람에게 신청을 받았다.
▶그러니까 다락방을 시작하는 사람은 이미 기초훈련도 모두 받은 상태였고, 전도에 대한 사명이 이미 심어진 사람이었다. 그래놓고 다락방을 여니까 전도하는 다락방이 된다.
▶쉽게 말하면 교회가 자체가 움직이는 자체합숙훈련이 있었다. 여기에서 류 목사가 직접 3회를 강의했었다. 12기까지 진행됐는데 류 목사가 바쁘게 되어 중단이 되었다. 그래서 초창기에 30군데 지역다락방이 시작되었다. 또 전도기초훈련 7기가 끝난 뒤 1992년에 우리 지역에서 전도하는 다락방이 165개였다.
▶다락방을 열겠다고 신청을 하면, '정말로 당신이 다락방을 연다면 당신은 조장역할을 해라. 사역자를 보내겠다'라고 하면서 다락방이 시작됐다. 이렇게 배경이 된 것이 지역다락방이다.
◆그룹을 단위로 한 다락방의 확산
이렇게 다락방이 열리면 일대일 다락방으로 확산되는 것이 아니라 그룹을 형성한 다락방이 계속 확산된다. 쉽게 말하며 다락방에서 한 명이 은혜 받으면 어떻게 전도할까? 다락방에서 은혜를 받은 한 사람은 여러 명에게 이미 복음을 전하고 6-7명을 모아놓고 다락방을 열어달라고 신청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요즘 한 명만 영접해도 다락방을 도와달라고 한다.
▶류 목사에게서 파생된 다락방에서는 꼭 숫자가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여러 명이 구성이 될 때까지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략 6-7명이 모이는 다락방이 형태가 이뤄질 때까지 무슨 메시지를 주었는가 하면, 현장복음메시지를 전했다. 다락방 형성이 뿌리내리기까지 현장복음메시지 제 5과까지의 메시지를 가지고 복음을 전한 것이다. 그래서 GBS를 말할 때 현장복음메시지를 말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룹형으로 시작하기 위해서 한 개인이 6-7명 정도의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 사람들이 복음의 뿌리를 내리기까지 메시지가 필요한데 그 메시지가 현장복음메시지 1-5과인 것이다. 그 5개 메시지를 들고만 가도 다락방이 형성이 되었다.
▶백 목사도 공단현장에서 전도하여 훈련시킨 허연화 자매를 다른 현장으로 파송했을 때 복음편지와 현장복음메시지 5가지를 들고 가게 했다. 그런데 허 자매는 이미 다락방 내용을 보고 간 것이다. 허 자매는 고등학교 졸업하고 졸업선물로 공단 선교사로 자신을 파송해 달라고 했다. 그래서 공단 자체 내에서 허 자매를 삼양통상이라는 다른 회사로 파송했다. 허 자매는 삼양 통상으로 처음 가서 기숙사에서 동료들에게 인사를 하며 복음편지 1과를 다 돌렸다고 한다.
"왜 인간에게 행복이 없는가? 이것을 위해 내가 이곳에 온 전도자 허연화이다"라고 소개를 하며 복음편지를 가지고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인사하는 첫날 기숙사 안에서는 한 명을 제외하고 다 영접을 했다고 한다. 영접 안 한 사람은 여호와의 증인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허 자매가 들어가자마자 그룹형 다락방이 열린 것이다. 이후 작은 기숙사 방에서 30-40명씩 모여서 기도하고 복음이 계속 확산되었다.
▶이처럼 이 다락방은 공단에서 이뤄져서 '계층별 다락방'이라고 말할 수 있다. 허연화 자매는 이러한 것을 어디서 봤는가 하면 백 목사가 진행하는 다락방에서 보았던 것이다. 그러면 백 목사는 류 목사의 다락방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것을 그대로 현장에 전달한 것이다. 이것을 보고 '다락방 단위의 확산'이라고 한다.
◆여러 명을 살릴 수 있는 메시지가 있어야
벌써 현장 복음메시지를 만들 때 류 목사는 여러 명을 모을 수 있는 메시지를 만들게 된 것이다. 현장 복음메시지는 계속해서 복음과 전도의 내용이 나올 수밖에 없도록 구성되었다. 앞에서 이미 설명되었던 것이지만 GBS에서는 늘 불신자가 오면 늘 구원의 메시지가 선포되어야 하고, 새 신자는 같이 양육되어야 하고, 사명자는 사명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그러한 것이 한 메시지에서 나와야 한다. 그것을 보고 다락방 메시지라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확산이 일어나지 않는다. 빨리 회복시켜야 한다. 원래 다락방이 GBS이다. 류 목사는 엄격하게 말하면 일대일 다락방이 무슨 다락방이냐고 말을 했다. 양육은 당연히 교회에서 해주어야 할 기본적인 것이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9)- GBS ② ♠ |
◆GBS 中
하나님 말씀의 능력 체험하는 GBS 회복해야
▶치열한 영적 현장인 부산 영도를 배경으로 형성된 현장복음메시지는 임마누엘 교회 교인들을 믿음과 확신으로 키워온 신앙지침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진은 임마누엘 교회가 지난 1994년 현재의 교회당으로 이전하고 입당예배를 드리는 모습>
▶백운규 목사(부산 임마누엘 교회)는 지난 호에 GBS(Group Bible Study), 즉 우리가 흔히 인식하고 있는 ‘계층별 다락방’은 지역 다락방이 활발하게 진행된 상태에서 자연적으로 확산되어지는 것이며, 이것이 바로 그룹형 다락방이라고 정의했다. 또 전도는 일대일 양육보다는 그룹 단위로 전파되어졌던 사실을 밝혔다. 그렇다면 이번 호에는 류광수 목사(21세기 세계선교연맹 총재 · 부산 임마누엘교회)가 현장에서 GBS 사역을 하며 전했던 ‘현장복음메시지’의 배경과 구성에 대해 살펴보기로 한다.
◆동삼동 현장을 바탕으로 쓰여진 ‘현장복음메시지’
다락방의 승패는 현장을 살릴 수 있는 메시지라고 볼 수 있다. 메시지에서 묻어져 나오는 철학, 배경이 너무 중요하다. 류 목사가 부산 영도구 동삼동이라는 지역적인 배경을 통해 시작해서 이 지역에 대해 설명이 되어져야 한다. 다락방이 확산될 수밖에 없었던 메시지가 나오게 된 배경은 지금으로부터 15년 전 1988년, 부산 임마누엘교회(구 부산 동삼제일교회)를 중심으로 시작되었다.
▶불신자들의 말에 의하면 영도의 산에는 삼신 할매가 있는데 그 할매가 산 전체를 팔을 벌려 안고 영도를 쳐다보고 있다고 한다. 불신자들은 지금도 영도에 있다가 영도 밖으로 이사를 가면 어려움이 걸린다고 한다. 그래서 영도에는 택시운전사도 들어오기 싫어했다. 그런 동네가 영도라는 동네이다. 1900년 초부터 영도는 말을 키우는 목장지대였다. 한마디로 말하면 사람 사는 동네가 아니었다.
▶다른 지역에서 지내다가 사업에 실패한 사람들이 돈을 다 잃고 들어오는 곳이 영도였다. 그리고 한번 들어오면 영적인 굴레에 쌓여서 헤어 나오기도 힘들었고, 영도를 빠져나가려면 자기가 살던 집을 자기의 명의를 두고 나와야 별 무리 없이 살 수 있다고 했다.
▶사람들은 영육 간에 힘들고 경제적으로도 힘들었기 때문에 무속의 힘이나 보이지 않는 힘에 의지해서 살 수 밖에 없었다. 동삼동은 골목골목마다 무당 집이 많았다. 류 목사가 다락방을 시작할 때 동삼동 분위기가 그런 분위기였다.
▶그런 배경 속에 류 목사는 영적싸움을 하며 일주일에 한 장씩 현장에서 전도하며 기록한 것이 현장복음메시지이다. 내용 자체가 그래서 영적이고, 치유적이다.
▶류 목사가 현장에서 부딪히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껴진 것은 두 가지였다. 첫째 신자들이 아예 확신이 없었고, 둘째 신자들이 전도할 생각이 아예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신자들의 확신에 포커스가 많이 맞춰진 것이 현장복음메시지이다. 그러면서 ‘신앙생활이라는 것이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하나씩 발전시켜나가면서 전도의 축복까지 다루었다.
▶GBS 사역자는 언제든지 불신자가 복음을 받아야 한다는 전도에 방향을 잡고 있어야 한다. 현장복음메시지는 뒤로 갈수록 발전되어 가는 듯 하지만 언제든지 새 신자가 영접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불신자에게는 복음을, 새신자에게 양육을, 기존신자에게 확신을, 사명자에게 사명을 심어주며 말씀이 적용되어야 한다.
◆신자의 확신부터 전도에 대한 내용을 담은 신앙생활 지침서
67과까지의 현장복음메시지가 처음부터 한 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한 장씩 나온 것이므로 사역자들은 하나 하나 현장에서 메시지를 받았다. 현장에서 되어지는 것을 보고 은혜 받기는 했지만 현장복음메시지가 어떤 구조로 형성되어졌고, 하나님이 류 목사를 통해 어떻게 이 메시지를 주셨는지에 대해 정리가 될 수 없었다.
▶그런데 1991년 다락방 전도훈련원이 개원이 될 무렵 현장복음메시지가 처음으로 책자로 만들어졌다. 백 목사가 이렇게 묶여진 현장복음메시지를 처음 보니 예전에 류 목사로부터 한 장 한 장 받았던 메시지와는 달리 순서가 뒤죽박죽이었다고 한다.
▶백 목사가 건의를 해서 현장복음메시지가 다시 순서를 갖추었는데 백 목사는 이때 현장복음메시지가 그냥 현장에서 순간순간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하나님은 류 목사를 현장에서 쓰게 하셨지만 하나의 방향과 하나의 흐름으로 끌어오셨다는 것을 알았다.
▶현장복음메시지의 목차는 대략 10가지 주제로 형성되었다.
▶첫 번째 주제는 다락방 확립이 되는 5가지의 메시지를 비롯해서 기본적인 확신을 심어주는 메시지가 대략 15개가 초반에 형성되어 있다.
▶두 번째 주제는 16과부터 21과까지 신학적으로 보면 기독론을 다루고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죽으심, 부활까지 나와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우리에게 어떻게 영향을 미치며, 그 비밀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즉 영적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맺어주는 메시지인 것이다.
▶세 번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의 바탕 위에 본격적인 승리와 확신을 심어주는 것이다. 워낙 기존신자들이 흔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 22과에서 33과까지 전반부는 확신에 대한 내용이고, 후반부는 승리에 대한 내용이다.
▶네 번째 주제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해야 하는데 우리 힘으로 이길 수가 없다. 그러면 하나님이 이길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성령이다. 우리 속에 성령이 있다고 하는데 그러면 도대체 성령이 누구인가? 성령과 성령 충만과 나와의 관계를 말하고 있는 부분이 34과에서 39과까지 잘 나타나 있다.
▶다섯 번째 주제는 ‘이런 귀중한 일들을 하나님이 어디에 주셨는가?’ 하는 것이다. 어디서 은혜를 받고 확인될 수 있는가? 우리는 바로 기도를 통해 확인 할 수 있다. 그래서 기도에 대한 주제가 40과에서 49과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 다음 여섯 번째는 우리가 기도를 마음대로 하다 보면 엉뚱한 데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 말씀에 뿌리내려야 한다. 하나님 말씀이 우리 속에 확인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다음 주제로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무엇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이냐?’에 대한 주제가 나오게 된다. 50과에서 53과까지 말씀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후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을 해야 하는데 순종에 대해 오해를 많이 한다. 대부분 희생한다고 생각한다. ‘순종의 의미가 무엇인가, 실제로 순종이 무엇인가? 순종이 이루어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가?’라는 내용이 54과에서 56과까지 이어진다.
▶그 다음 57과에서 59과까지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야 하는데 지속해서 만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아홉 번째 주제는 ‘하나님의 백성이 힘을 얻어서 살아가야 하는데 그 힘의 원천을 어디서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힘의 원천이 무엇인가?’ 이런 내용에 대해 60과에서 62과까지 다루고 있다.
▶열 번째 주제는 전도에 관한 것이다. ‘왜 전도해야하는가? 어떤 사람을 전도에 쓰시는가?’라는 주제가 마지막으로 63과부터 67과까지 정리되어 있다.
▶이렇게 현장복음메시지는 10가지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면서 네 가지 포인트로 메시지가 진행된다.
▶다시 말하면 현장복음메시지에는 한 명의 불신자가 신앙인으로 세워져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져 있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 메시지가 다른 것이 아니라 복음의 메시지였고, 사람이 힘을 얻는 메시지였던 것이다. 이것이 GBS 다락방 메시지의 특징이고, 현재 우리 시대에 다시 살아나야 하는 메시지인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살아나야 GBS가 성공되어 질 수 있다.
◆말씀의 능력을 깊게 체험하는 GBS 회복 되야
현재 다락방안에서GBS 사역이 살아나지 않고 있다. 류 목사는 현재 전체 메시지 할 때 윤곽과 전체 뼈대를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밑의 사역자들이 구체적으로 새신자들에게 창3장과 해결책에 대해 실제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현재 이 부분이 취약하다. 이유는 현장에서 이뤄지는 GBS 사역을 놓쳐버렸기 때문이다. 이것이 살아나지 않으면 다락방 사역의 성공의 맛을 보기에는 어렵다고 한다. 결국은 메시지가 중요하다.
▶다락방은 어찌 보면 소그룹 성경그룹 같은데 조직도 없고 무질서 해 보이기도 한다. 또 어떤 때는 30명이 모이기도 하고 일대 일로 진행되어 규모가 없어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결국 다락방의 성패는 조직이 아니라 메시지에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조직과 메시지도 필요하지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면 메시지이다. 현장에서 이것이 빨리 살아야 한다.
▶이 땅의 수많은 문제의 근원은 창세기 3장의 문제이다. 죄악 속에 사단 속에 빠진 것이 고통의 원인이다. 그 근본 원인 때문에 전 세계 60억 인구에게 일어난 문제는 60억 개의 문제라고 할지라도 60억 개의 문제를 하나님의 말씀이 치료해주고 해결해 줄 수 있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이 창세기 3장의 근본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락방에서 메신저들이 근원문제만 터치를 하지, 거기에서 파생되어 있는 사람들의 실제 문제에까지 영향을 못 주고 있다. 왜 그런가? 그것은 GBS 사역을 놓쳤기 때문이다.
▶백 목사는 늘 농담 삼아 현장복음화 메시지의 위력을 모르는 사람은 다락방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현장복음메시지에는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현장복음메시지300구절만으로도 누구든지 살릴 수 있어
현장복음메시지를 보면 성경구절이 늘 반복되는 것 같지만 모두 합치면 300구절이 넘는다. 그300구절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현장에서 사역하며 반복되다 보면 자연적으로 암기되어진다. 자신이 현장복음메시지로 다락방하며 이해되고 소화가 되면 말씀 성구가 성경책을 덮어도 기억이 난다. 현장복음메시지의 성경구절 300구절만 가지고 있으면 누구든지 도와줄 수 있다. 부산 임마누엘 교회에서GBS 사역이 성공한 이유는 현장복음메시지에 있는 300 구절이상의 말씀이 성도들에게 적용이 되어 치유가 안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장복음메시지의 또 다른 특징을 보면 다른 교재보다 서론이 강하다. 제목과 큰 1번 사이의 글이 어느 교재보다 많다. 서론이 결론이다. 많은 이들이 큐티 할 수 있는 책을 많이 찾는데 이것만큼 좋은 큐티 책이 없다. 현장복음메시지 서론만 가지고 큐티를 해도 어마어마한 은혜이다. 대단한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지역다락방을 하는데도 현장복음메시지만큼 좋은 것이 없다. 이 메시지가 부산 임마누엘교회의 성도들을 키워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룹 다락방의 활성화가 교회부흥으로 이어진 것이다.
◆다락방 말씀운동을 펼칠 때 해결되는 33가지
우리는 현장에서 다락방 말씀운동을 하다보면 자연적으로 회복되어지는 것이 있다. 바로 5가지 기초이다. 다락방 말씀운동을 펼칠 때 해결되는 33가지에 대해 짧게 정리해 본다.
(1)다락방은 전도에서 제일 어려운 접촉점이 해결된다. : 사실 다락방이 되어지면 입에서 입으로 전달되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 은혜 받은 것을 이웃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접촉점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2)다락방은 말씀으로 현장을 확보하는 운동이다. : 하나님이 살아 계신다면 내가 사는 현장에 하나님의 임재가 나타나는 것이 당연하다.
(3)다락방은 새신자 성장을 시키는데 제일 좋은 방법이다. : 다락방안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교회에 들어오기 때문에 새 신자의 성장이 빠르다.
(4)다락방에서 언제든지 말씀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5)다락방은 모든 병든 자를 기도해서 고치는 곳이다.
(6)다락방은 충성된 자를 찾아 성장시키고 파송 하는 일(운동)을 한다.
(7)다락방은 사명자를 찾아 말씀운동을 편다.
(8)다락방은 말씀으로 지역을 장악한다.
(9)다락방에서 성도의 교제가 이루어진다. : 사람은 누구나 교제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다락방에서는 말씀중심의 교제가 회복된다.
(10)다락방은 기도응답의 장이다.
(11)다락방은 제자훈련의 장이다.
(12)다락방은 전도의 문이 항상 열려있다- 수준 높은 사람 하나님이 주신 응답 앞에 어쩔 수 없다. 전도의 문이 항상 열린다.
(13)다락방은 교인을 안전하게 보호한다.
(14)다락방은 기존신자를 확립한다.
(15)다락방은 모든 기관에 생명력을 공급한다. : 이 다락방의 축복을 본 사람이 기관으로 들어가면 교회가 회복된다.
(16)다락방은 언제든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할 수 있는 현장이다.
(17)다락방은 지하작전, 누룩작전을 하는 곳이다.
(18)다락방은 눈에 안 보이는 소 교회를 전지역까지 확대하는 것이다.
(19)다락방은 모이는 교회와 흩어지는 교회의 다리 역할을 한다.
(20)다락방은 심방의 장이다.
(21)다락방은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대한 순종의 장이다.
(22)다락방은 말씀운동의 실천의 장이다.
(23)다락방은 가장 효과적인 선교의 방법이다.
(24)다락방은 마지막 시대를 살리는 전도방법이다.
(25)다락방은 영적인 치료를 하는 곳이다.
(26)다락방은 성령 임재의 현장이다.
(27)다락방은 모든 사상과 학문체제를 꺾을 수 있는 운동이다.
(28)다락방은 로마를 살린 전도방법이다.
(29)다락방은 개인을 살리는 양육방법이다.
(30)다락방은 가정교회, 개인교회 현장이다.
(31)다락방은 그룹교회 현장이다.
(32)다락방은 사명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중보 기도의 현장이다.
(33)다락방은 지속적인 전도방법이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10)- GBS ③ ♠ |
◆GBS 下
예수 권세가 선포되고, 전도가 되어지는 다락방
영적인 생명의 흐름은 영원한 것이다.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부활하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성령으로 역사하시며 그 증인된 제자들을 통해 세계역사가 돌아가고 있다.
2천년 전 마가다락방에서 로마, 그리고 21세기 다락방 전도운동이 펼쳐지고 있는 이 시대에까지 모든 문제의 해결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언약은 전도의 시간표 속에서 흘러가고 있다. 하나님의 참된 빛이 비춰지는 가운데 개인, 가정, 지역, 문화가 새롭게 살아난다.
역사를 바라보며 전도합숙 시대에 전도자들은 ‘예수 제자’의 한(恨)을 품게 된다. 문화와 지역을 살리는 방법은 그 속에 복음과 전도에 방향을 맞춘 70인 제자를 꼽아 놓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방법은 ‘그리스도’를 깨닫고 ‘함께’의 비밀을 누리는GBS(Group Bible Study) 일꾼에게서 파급이 시작되며, 그와 같은 제자들을 곳곳에 세워놓아 흑암 세력을 무너뜨리는 것이다.
▶우리는 지난 달까지 백운규 목사(부산 임마누엘교회 부목사)의 강의를 통해 GBS의 출발과 개념, 그리고 그들의 사상, 생명을 살리는 현장 복음메시지의 탄생과 배경에 대해 살펴보았다. 이 번 호에는 처음 부산 임마누엘교회를 중심으로 퍼져 갔던 GBS 운동 가운데 몇 가지 실례들을 살펴보는데 한 명의 일꾼이 어떻게 GBS, 그룹별 다락방에서 은혜를 받고 훈련받으며 또 다시 GBS 사역자로 세워져서 전도가 확산되는지 그 과정을 추적해본다.
◆동삼 여중에서의 교사 다락방, 지역다락방에서 출발
부산 동삼 여중에서 다락방이 시작되어 수많은 학생들과 교사들이 복음이 받고 돌아왔다. 학생들은 물론, 전국의 교사들이 그물 망처럼 퍼진 것도 이 학교에서 시작된 다락방 말씀운동의 여파가 영향을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참고로 기억해야 할 것은 동삼 여중에서 다락방 말씀운동이 시작되었던 것은 89년도 류광수 목사가 나경숙 집사 집에서 지역다락방을 하다가 나 집사의 집에 세 들어 살던 모 교사와 말씀운동을 하며 열려지게 된 것이다.
▶장옥선 집사(41?부산 임마누엘교회?부산여중 교사)가 92년도에 동삼여중으로 발령을 받아 왔을 무렵, 이미 그곳에서는 다락방 말씀운동이 펼쳐지고 있을 때였다. 교사들 몇 명과 당시의 황 모 전도사가 다락방을 인도하고 있었다.
“처음에 찾아갔을 때 참 힘이 났어요. 아직 전도에 대한 눈이 안 뜨인 상태였고 단순히 ‘예수님이 좋다’하는 정도였지요. 그러나 전도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이 주신 것 같아요. 다락방이 끝나고 사명자를 보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이후 동삼 여중에는 어릴 때부터 선교사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던 김정숙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가 발령을 받고 오는데 장 집사는 교무실에서 성경책을 읽고 있는 김 집사를 발견하고, 복음에 대한 사명이 서로 뜨거운 것을 확인하게 된다. 이 후 이 두 사람은 방과후에 매일 모여서 동삼여중 복음화를 위해 기도회를 열었다. 그러면서 이 두 사람은 학생들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하며 종례, 조례시간을 이용하여 말씀을 가르쳤다. 20명씩 모이기도 했고 그 중에는 학부모가 자기에게도 메시지를 전해달라고 찾아오기도 했다.
그러다가 93년도 후반기에 김정숙 집사의 집에서 김숙희 전도사가 인도하는 다락방이 열렸고, 장 집사와 김 집사는 이 다락방을 통해 불신자가 영접하는 현장을 보게 된다.
“참 놀라웠던 것은 메시지를 전하고 불신자들에게 영접 초청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그 불신자가 영접을 한 뒤 얼굴이 변화되는 모습을 보고 저희들이 학교에서 영접을 시키지 않았던 것을 발견하게 되었죠.” 장 집사는 그 이후 매일 2명 이상을 만나 복음을 전하고 영접운동이 일어났다고 한다. 이와 함께 교사 다락방이 동삼 여중에서 함께 병행됐다.
▶94년도에는 동삼 여중에서 서수복 집사(부산 임마누엘 교회)가 전도할 사람만 따로 모아 사명자 다락방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장 집사와 김 집사는 ‘복음이 이런 것이구나’를 깊이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함께 두 사람은 서수복 집사의 인도로 전국과 세계에서 진행되고 있던 류광수 목사의 전국 집회에 참여하여 복음에 대해 더욱 구체적으로 깨닫게 되며 훈련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복음이 확산되어 교사 GBS 형성
장 집사와 김 집사는 나름대로 학교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인 전도운동을 벌였다. 그러다가 96년도에는 장 집사가 남여중으로, 김 집사가 해사고등학교로 각각 발령을 받은 뒤에도 교사들의 미션홈은 지속되었고, 특히 두 사람은 부산 시내의 전체 교사 명단을 놓고 그들에게 복음이 증거 되도록 기도 모임을 시작했다.
▶이 무렵에 연결된 인물이 박은희 교사(現 워싱턴 한마음교회)과 양혜연 교사(現 임마누엘 서울교회)이다. 김정숙 집사가 팀사역 훈련의 사역자로 참여했다가 영도여고에서 만나 영접한 사람이 박은희 교사이고, 김 집사가 베델 기도원에 갔다가 만나게 된 일꾼이 당시 중리 초등학교 교사였던 양혜연 교사다. 그런데 박 교사와 양 교사는 서로 아는 사이였고, 어느 날 박 교사가 양 교사와 함께 김 집사의 집에 찾아와 김 집사는 양 교사의 집에서 직접 다락방을 하다가 양 교사를 교사 다락방으로 초청했다.
이와 동시에 전도에 대해 사명이 있었던 박 교사는 자신의 제자들을 이 다락방에 불러 은혜 받게 하였고 이때 함께 은혜 받던 박 교사의 제자가 이우련과 윤정원이라는 학생이다. 복음은 또 전파되어 이우련 자매(現 아산병원근무)를 통해 부산외국어대학교 오스트리아 출신 영어교수인 쉬메르 교수가 복음을 받고 외국인 다락방이 열렸다. 또한 이 무렵 전교조운동을 하고 있던 이순남 선생님이 복음을 받고 변화되어 현재에도 다락방 사역자로 뛰고 있다.
▶장 집사와 김 집사가 가는 현장마다 하나님은 예비 된 영혼들을 붙이셨다. 서미화 집사가 합숙 방장으로 들어갔다가 합숙훈련을 받은 어떤 이의 소개로 천주교에 30년 동안 다니던 류경수 교사가 영접을 하고 다락방 문이 열렸다. 이렇게 연결되었던 교사들은 때로 서수복 집사가 인도하는 사명자 다락방에 인도되기도 했고, 개인다락방으로 지속적인 양육이 되어졌다.
◆전도대상자를 놓고 기도하며 응답 받는 GBS
장옥선 집사가 어느 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운전 기사에게 짧게 5분 메시지를 전하고 류 목사의 비디오 테이프를 전달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운전 기사의 부인이 장 집사에게 전화를 해서 자신의 집으로 와달라고 요청을 해서 찾아갔다. 그 부인은 남편과 이혼을 하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어느 날 남편이 어떤 테이프를 가져와 한달 동안 보면서 사람이 변화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궁금해서 장 집사에게 연락을 했고 이혼을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물어왔다. 약간 신비주의 적이었던 이 부인은 장 집사가 전하는 복음을 듣고 영접했다. 영접 후에 이 부인은 자신의 남편이 마약을 하고 가족을 너무 괴롭혀서 이혼을 하려고 했다고 고백을 했다. 또한 아버지로 인해 상처가 많았던 그 집의 딸 정인 자매가 영접을 하고 그 자매와 지속적이 다락방 운동이 열렸다. 영도여중에 다니던 정인이는 이후 은혜를 받았고, 그 친구들을 하나, 둘씩 다락방으로 초청하여 그룹형 다락방이 열렸다.
이후 남 여자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하게 된 정인이는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다락방에 와서 은혜를 받았고 장 집사가 정인이의 학업을 알아보기 위해 정인이의 학교에 찾아갔다가 만난 사람이 권기양 교사였고 권 교사와도 다락방이 지속 되다가 권 교사는 다른 학교로 발령이났다.
▶2000년도 장 집사는 부산여중으로 발령이 나서 그곳에서도 전도할 제자를 찾고 있었다. 학교에서 학생들을 상담하던 중 정유리 자매가 ‘예수님은 어떤 분이세요’라며 질문을 해오는 것이었다. 유리 자매는 장 집사에게 복음메시지를 듣고 영접, 다락방 문이 열렸는데 매주 새로운 친구들을 데리고 오며 조장역할을 하고 있다.
▶작년 대심방 때의 일이다. 장 집사는 부산 여중에서 예비 된 사명자를 위해 기도하고 있던 중 전교인 수련회를 참석했다가 누군가 부산여중의 어떤 교사에게 복음테이프를 전했던 소식을 듣고 찾아갔는데 만난 교사가 윤정화 교사였다.
윤 교사는 평상시에도 ‘어떻게 하면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할까’ 기도하던 사명자였고, 장 집사와 다락방을 하게 되었는데 윤 교사는 자신의 반 아이들 가운데 복음을 전해야할 학생들을 장 집사에게 계속 소개하고 있다. 다락방을 통해 기도응답을 체험하는 가운데 윤 교사와 장 집사가 학생들을 위해 기도하고 있었는데 하나님은 우연히 장 집사와 어떤 학생을 만나게 하셔서 복음을 전했는데 바로 그 학생이 윤 교사가 기도하고 있던 학생이어서 하나님의 놀라운 인도를 날마다 체험하고 있다.
▶다락방에서는 매주 영접운동이 일어나는 것이 정상이다. 윤 교사가 가족의 복음화를 기도하던 중 최근에 윤 교사의 남동생이 영접을 했고, 교회에 오기도 했다.
▶장 집사의 집에서도 다락방이 진행되고 있는데 하나님은 주로 교사들을 만나게 하신다. 장 집사는 딸 김예지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김난경 교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그러데 실력도 있고 인격도 갖춘 김 교사가 어느 날부터 3주 동안을 연락도 없이 스터디에 오지 않은 것이었다. 의아하게 생각했던 장 집사는 3주 후 찾아온 김 교사에게 화를 내기보다는 복음을 먼저 전했고, 알고 보니 가정의 문제로 김 교사는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영접을 한 뒤 복음편지로 다락방이 되어졌고 10과가 되어 갈 무렵, 지역에서 또 한 영혼이 연결되었다. 예전에 박은희 교사의 제자였던 윤정원의 언니 윤성라 자매가 장 집사의 같은 구역에 살고 있었고, 임마누엘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은혜를 받지 못하고 있던 상태였다. 장 집사가 주일 강단메시지가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가를 설명하자 윤 자매는 관심을 보였다.
장 집사는 지역복음화의 사명자를 위해 기도하다가 윤성라 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고 윤 자매와 다락방이 열려, 장 집사는 김 선생과 윤성라 자매를 함께 묶어 다락방을 하고 있다. 현장복음메시지가 5과 정도 진행되었을 때 윤 자매는 “이 복음을 알게 되어 너무나 행복하다”고 고백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복음의 은혜를 받은 윤 자매와 김 교사는 복음을 전하고 싶은 사람의 명단을 기도제목으로 놓고 기도하던 가운데 응답의 축복을 보고 있다. 한 달에 역술인에게 전화상담을 해서 전화비만 100여 만원이 나온다고 하는 윤 자매의 친구 이현숙 자매가 지난주에 복음을 받고 영접을 했고, 김난경 선생이 기도하던 학부모가 영접을 했다.
현재 장 집사는 부산 여중의 7-8명의 학생들과 지속적인 다락방 말씀운동이 지속되고 있으며, 학교에서 ‘성경연구반’을 개설하여 학생들에 복음을 깊이 있게 전달하고 있다.
▶복음편지와 현장복음메시지를 주로 다락방에서 전달하는 장 집사는 “구원에 대한 감격과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권세를 전달하다 보니 이것이 엄청난 축복임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구원을 받고 메시지를 받는 다락방에 온 영혼들은 당연히 구원받지 못한 사람을 보며 안타까워하고 그들을 위해 흑암이 꺾이도록 기도하게 됩니다”라며 다락방 전도운동을 통해 전도의 확산이 어떻게 확산되는지 밝히고 있다. 이 다락방에서는 장 집사는 현장복음메시지와 주일 강단 메시지를 함께 연결하여 한 주간 동안 어떻게 성취되는지 포럼하며 인도 받고 있다.
◆새 신자를 통한 새생명 운동 일어나는 GBS
최혜경 전도사(45 · 임마누엘교회)의 집에서는 다락방 말씀운동이 7-8년 동안 지속되었다. 최 전도사의 어머니가 18년 동안의 알코올 중독으로 시달렸던 영적인 문제로 인해 복음을 알게 된 최 전도사는 90년 경 부산 임마누엘교회에서 류광수 목사가 전하는 복음메시지를 들으며 인생의 해답을 얻었다고 한다.
“사단이 정말로 살아있고, 하나님을 만나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메시지를 들으며 어머니를 생각하니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사단이 우리 가문을 이렇게 짓밟았고, 어머니를 고통 가운데 빠지게 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 이가 갈릴 정도였어요.” 최 전도사는 이때부터 김종구 목사와 이동희 권사와 함께 현장을 다니며 말씀을 확인하고 복음을 전했다.
▶임마누엘 교회에서 한참 선교관 운동을 펼치고 있던 93년도 였다. 김종구 목사는 담대하게 최 전도사의 어머니에게 찾아가 복음을 전했고, 최 전도사의 어머니는 상상외로 순종적으로 복음을 받고 치유되었다. 현재 임마누엘 교회 집사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고 한다.
그때 이후 최 전도사는 불신자들을 7-8명을 모아 다락방을 해달라고 교회에 요청했다. 처음에 강호인 목사(現 임마누엘 경인교회 담임)가 오고, 이성훈 목사(부산 임마누엘교회)가 몇 번 인도하더니 아프다며 최혜경 전도사에게 다락방을 인계했다. 그리고 현재는 임정희 집사(부산 임마누엘 교회)가 이 다락방을 인도하고 있는데 다락방 합숙훈련이 있을 때 참관다락방으로 이용되고 있다.
최 전도사의 다락방에서는 새 신자들의 영접운동이 지속적으로 일어났고, 가족 단위의 구원의 역사가 진행됐다. 어떤 이는 피아노 학원 원장이었는데 가정의 문제로 남편과 별거하던 상태였다. 최 전도사를 만나 복음을 만나고 회복되어 이제는 구역장으로 전도합숙훈련까지 다녀왔다.
새신자 였던 최OO 씨는 자신의 남편 동료가 뇌출혈로 병원에 입원하여 누워있다고 하며 최 전도사에게 복음을 전해줄 것을 부탁했다. 사연을 들어보니 입원한 K 씨의 부부는 함께 살면 누군가 죽는다는 사주로 별거를 하다가 자녀 때문에 합친 뒤 3일 만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했다. 가족 모두는 병원에서 거의 울음바다였고, 최 전도사는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고 온 가족이 복음 안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또한 의처증에 시달리는 남편에게 구타를 당해 매번 피를 흘리며 고통 속에 살던 새신자가 복음을 받고 이제는 남편까지 전도 신학원에 출석하고 있다고 한다.
“현재도 제가 다락방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사실은 부끄럽지만, 기존신자, 사명자, 새신자, 불신자들이 모두 은혜 받고 날마다 전도가 되어지고 새 생명이 넘치는 것이 다락방 전도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전도사는 다락방의 온전한 모습이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 백운규 목사의 다락방 전도 개요 (11)- GBS ④ ♠ |
◆GBS 끝
GBS 사역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소원을 품은 전도자의 중심과 동기이다.
▶‘전도는 되어진다’, ‘전도는 하나님이 하신다.’ 전도의 갈급함이 있던 이들에게 가장 충격이 되었던 다락방 메시지 중의 하나이다. ‘-되어진다’는 것. 그 동안은 인간의 힘으로 불신자의 마음을 바꾸려고 했고, 교회에 데리고 오려고 했지만 사실상 진정한 열매는 맺혀지기 힘들었다. 그러나 성령의 배에 탄 듯 정말 믿음 속에서 하나님을 따라가면 일꾼은 세워져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누리다 보니 현장에 죽어 가는 영혼들이 보이고, 안타까운 마음이 열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살려야 한다는 열정이 생기고, 복음만 전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야 하고 시간과 장소를 열어놓고 생명운동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서수복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 부산 전도신학원 서무과장?선교사 훈련원 총무처장?46)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전도를 하는 사람이 어떤 동기와 중심을 가지고 지속하는가 중요하고 거기에 따라 하나님의 역사도 움직여진다고 말한다.
▶서수복 집사는 91년도 12월 가나안 수양관에서 류광수 목사(21세기 세계선교연맹 총재, 임마누엘 교회 담임)의 메시지를 처음 접하고 삶의 현장에서 지속적으로 말씀운동을 펼쳤는데, 한 지역에서 시작한 다락방은 10여 군데의 지역 다락방으로 확산이 되었고, 그 다락방에서 복음을 받은 이들은 현재 중요한 일꾼들로 세워져 각자의 현장에서 또 다시 서 집사와 같은 전도의 역사를 체험하고 있다.
▶기능 가진 자가 복음을 만났을 때
GBS(Group Bible Study) 사역자로서 말씀사역을 했던 이들 가운데 서 집사의 사역은 ‘기능 가진 자가 복음을 올바르게 깨달았을 때 하나님이 그 사람을 통해 한 지역을 어떻게 변화시키고 전도하게 하시는지’를 보여주는 모델적인 사역으로 인식되어지고 있다.
“어릴 때 하나님을 만나고 불신가정에서 자라 우상숭배하면 어떻게 망해 가는지를 보니까 영혼에 대한 갈망이 일어났습니다.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봉사하는 차원이 아니라, 많은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로 데리고 오지만 그들이 교회 안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럴 즈음 다락방 메시지를 접했고, 은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집회에 계속 따라붙게 되었습니다.” 서 집사가 처음 은혜를 받게 되었던 메시지의 내용은 류 목사가 전하는 전도의 3요소 였다고 한다. 그 메시지는 전도하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한데, ‘전도하고자 하는 일꾼’과 ‘현장’이 있어야 하고, ‘전도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메시지를 듣고 서 집사는 자신에게 일꾼을 양육시킬 메시지가 부족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지속되어지지 않았던 이유를 번쩍 알게 되었던 것이다. 당시 서 집사는 크로마 하프 부산지부장으로 부산전역에서 크로마 하프 그룹 레슨을 하다보니까 200여명 정도의 수강생이 있었다.
처음 다락방 메시지를 접하고 서 집사는 그들에게 처음으로 전도 메시지를 전했던 것이다. 거기에서 교회생활과 사회생활에서 이중생활을 하면서 누리지 못하고 있던 신자들이 인생의 답을 얻고 일꾼으로 세워졌다. 이 다락방이 서 집사의 집에서 크로마 하프를 가르치며 시작된 남천동 다락방(A)의 출발이다.
“남천동에서 일꾼을 키울 때 메시지 자체가 영적인 메시지이니까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표시 안 나게 구역을 통해서 현장다락방을 하니까 영혼들이 힘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서 집사는 당시 남천동 M 교회를 다니고 있었는데 그 교회의 목회자는 자신도 사역을 하지 않는데 평신도가 그러한 사역을 하니까 이상하게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 서 집사의 다락방에서 일어나는 역사들이 소문이 나게 되어 교단에서까지 알려지게 되자 M 교회 목사에게 압력이 들어오고 그 결과 M 교회 목사는 서 집사의 다락방을 저지했하게 됐다. 이에 따라 서 집사는 결단을 내리고 93년 4월에 부산 임마누엘 교회로 이동하게 되었다.
서 집사의 집에서 시작한 남천동 다락방(A)은 서 집사가 95년 그 집에서 이사를 할 때까지 계속되었다. 수많은 사역자들이 그 다락방을 거쳐갔고, 새로운 전도의 문을 여는데 바탕이 되었다.
▶지역 다락방에서 공단 다락방 연결
서 집사는 남천동 다락방(A)에 정확하게 누가 와서 은혜를 받았는지 조차 잘 모를 정도로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와서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94년 류 목사의 메시지 가운데 공단복음화에 대한 메시지가 나올 무렵, 서 집사는 다락방에서 공단 복음화를 놓고 기도를 시작했다고 한다. 특히 공단을 복음화 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기숙사의 사감을 만나야 한다고 생각하여 그렇게 기도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그 남천동 다락방(A)에 ‘송월 타월’ 공단에 다니고 있던 청년이 참가하여 은혜를 받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공단 기숙사의 사감은 기독교신자인데 다락방을 좀 싫어한다고 정보를 제공해주었다.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을 절묘하게 느낄 정도로 또 그 사감의 친구인 H교회의 사모가 그 남천동 다락방(A)에 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서 집사는 H교회의 사모의 소개로 송월 타월의 기숙사 사감을 찾아가게 되었다. 기숙사 사감은 처음부터 크로마 하프에 관심을 더 가졌다. 크로마 하프를 가르쳐 달라며 서 집사에게 몇 명을 모아 놓을 테니 일주일에 하루씩 와달라고 했다. 그러나 서 집사는 복음부터 얘기하지 않을 수가 없었고, 다락방을 먼저 밝혔다. 그랬더니 그 사감은 정색을 하며 다락방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며칠 후 자기 혼자만이라도 크로마 하프를 가르쳐 달라며 전화가 왔다. 서 집사는 사감을 찾아가 기도하며 크로마 하프를 몇 번 지도했더니 이 사감은 ‘서 집사 같은 경우라면 다락방이 괜찮겠다’며 말씀도 함께 듣길 원했다.
송월타월 공단 다락방은 이렇게 시작되어 이곳에서 영접운동이 일어났고, 신자였던 그 사감은 영접운동을 보고 놀라게 되었고 방송을 하며 청년들을 불러모았다. 그때 복음을 받은 자매들이 부산 임마누엘 교회에 연결되어 사역자로 세워지기도 했다.
▶병원, 학교, 지역으로 다락방 파급
남천동 지역다락방(A)을 계속 진행하면서 서 집사는 94년 전국 순회팀 훈련의 팀장으로 섬기기도 했다. 순회팀에서 현장을 나가는 날, 부산 대학병원을 나가기로 했는데 또 재미있게도 남천동 다락방에는 부산 대학병원의 방사선과 과장의 아내 K 집사가 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K 집사의 소개로 그 과장을 중심으로 현장을 파고들기로 했다. 서 집사는 한번도 그분을 만난 적이 없기 때문에 현장에 가면 완벽하게 만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병원을 찾았다. 맨 처음 원목실에 가서 예수 믿는 선생님들이 계시면 소개해달라고 했는데 해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 예수 믿는 선생은 누가 있는가? 하고 물었는데 한태성 선생이 있다고 소개를 받았다. 한 선생을 만나려고 했지만 이미 그때는 퇴근하고 못 만난다고 했다. 그러면 서 집사는 다음에 와야지 생각하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다. ‘분명히 여기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는데 이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 원합니다. 하나님, 만나게 하지 않을까요?’라고 하며 기도를 하고 내려오는데 K 집사의 남편을 병원 마당에서 만난 것이다.
또 그 방사선과 과장 선생님을 만나고 있는데 한태성 선생도 만나게 되었다. 서 집사는 두 사람과 모두 초면이라 그들은 선뜻 문을 열지 않는 듯 했는데 ‘크로마 하프를 가르치는 사람인데 복음 받고 이렇게 변화되었다’고 짤막하게 간증하자, 이 두 사람은 ‘크로마 하프요?’ 하며 놀라며 자기들이 너무 배우고 싶으니 크로마 하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부산대학병원에 다락방이 열리고 간호사들에게도 복음이 연결되었다. 한태성 선생은 이후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고, 거기서 만난 신혜경 간호사도 복음을 받고 힘을 얻었다.
“저는 GBS와 TBS(Team Bible Study) 사역자의 역할을 동시에 했던 것 같습니다. 남천동의 지역 다락방을 중심으로 하면서 10개 지역으로 다락방이 확산되었죠.” 그러면서 서 집사의 다락방에서 조장과 사명자들은 자연스럽게 일어섰다고 한다. 새신자를 키우면서 또 다른 다락방을 열어갔던 EBS의 사역도 동시에 일어났던 것이다.
김정숙 집사(부산 임마누엘교회)와의 만남도 크로마 하프로 만나게 되었다. 서 집사가 김 집사가 근무하던 학교에 크로마 하프를 가르치러 갔다가 만나게 되었다. 물론 김 집사는 이미 다락방을 하고 있을 때였다. 대신동 지역다락방에서는 남옥희 집사의 가정에서 진행되어 남 집사의 남편 강신대 집사가 복음을 받고 영접을 하기도 했다.
▶학원, 문화센터에도 말씀운동이…
96년, 97년을 거치면서 서 집사는 한 때 개인적인 일로 힘든 과정을 거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서 집사는 불신앙을 하지 않고 생명운동을 지속했다. 95년 남천동의 서 집사의 집에는 김정숙 집사가 이사를 가서 그곳에서는 또 새로운 지역다락방과 교사다락방이 진행되고 있다. 이후 용호동으로 이사를 가게 된 서 집사는 용호동을 중심으로 또 다른 지역 다락방이 열리게 되는데 다락방은 아주 예측 못할 정도로 산발적으로 일어났다.
먼저 P 집사의 집에서 남천동 지역다락방(B)이 시작되었다. 그곳도 예전처럼 복음을 듣기 위한 갈급 한 영혼들이 많이 찾아왔다. 어느 날 P 집사를 통해 남천동 지역 다락방(B)에 누가 찾아왔는데 이 영혼은 ‘만약 당신이 지금 하늘나라에 가서 하나님이 너는 그동안 무엇을 하다가 왔는가 하고 질문을 하면 무엇이라고 대답을 하겠는가?’라는 메시지를 듣고 도전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 간이 안 좋아 목숨까지 위태했던 C 집사는 복음을 받고 광안리에 있던 자신의 카페를 문화센터로 내놓았다. 아쉽게도 C 집사는 한동안 은혜를 받고 질병도 많이 회복되었으나 현재는 다락방을 하지 않고 다른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 그래도 한동안 광안리 문화센터에서 서 집사는 다락방을 오랫동안 지속했고, 이곳에서도 청소년 사역이 활발히 진행된 바 있다.
용호동 지역에서는 세명학원에서 복음운동이 활발히 진행됐다. 어느 날 팀사역 훈련의 팀장으로 들어가 있던 서 집사는 강의 중에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 살짝 빠져 나왔는데 교회 사무실에서 전화가 와서 받았다고 한다. 당시 전화를 했던 세명학원 원장 S 집사는 다락방이 무엇이냐고 물으며 관심을 표했다. 그래서 서 집사는 다음날 용호동 지역에 가겠다고 약속을 했다. 서 집사는 그 지역에서 이사를 하고 난 뒤 루디아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던 기도가 생각이 났다.
다음날 찾아간 서 집사는 S 집사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이며, 전도는 어떻게 하는가’ 하는 내용을 전하며 다락방이 열렸다. 학생과 선생님들도 많이 도전 받았다. 그 한 교사 가운데는 남편이 류 목사를 이단이라 지목하고 따라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사람이 부인 통해 영접하고 현재는 총신연구원을 가려고 준비하고 있다.
▶하나님의 가장 큰 역사, 전도제자 일어나는 것
부산 용호동에서 송림 어린이 집을 경영하며 현재 어린이 전문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홍민희 집사(36, 부산 임마누엘 교회)는 1998년 그 지역에 팀사역 훈련을 하며 현장에 나왔던 다락방의 일꾼들을 통해 복음메시지를 접하게 되었다. 선교단체에서 훈련을 받다가 잠시 교회를 안 나가고 있던 홍 집사는 원색적인 복음에 매료되었고, 그들의 소개로 용호동의 세명학원에서 다락방이 진행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세명학원 다락방에 가서 제가 도전을 받은 것은 현장에서 말씀운동을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홍집사는 당시 송림 어린이 집의 교사였다고 한다. 다락방 메시지를 받고 홍 집사는 어린이 집에서 다락방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인도하고 있다.
이 어린이 집에서는 불신자, 기존신자였던 교사들이 복음을 받고 다락방 훈련을 받고 5인1조 기도팀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지교회 사역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진 기숙 집사(부산 전도신학원, 선교사 훈련원 간사, 46)도 서 집사가 교회 내에서 크로마 하프를 배우고 싶은 사람들을 모집했을 때 만난 일꾼이다. 남천동 다락방(B)에도 하루도 안 빠지고 참여하고 서 집사가 남산동에서 토요일 아침 핵심멤버 모임을 할 때도 많은 은혜를 받았다고 한다.
“당시 다락방에 모였던 이들이 거의 은혜를 받았다. 개인을 띄우기 위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나는 그곳에서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믿음과 깊은 복음의 비밀을 깨닫게 되었다.” 진 집사는 당시 다락방의 분위기를 회상하며 서 집사와의 만남의 축복에 감사했다.
이외에도 알로에 마임 산업전문교회를 운영하고 있는 최옥자 권사도 서 집사와 함께 해온 일꾼이다.
▶서 집사의 다락방은 전국의 일꾼들이 찾아올 정도로 모델적인 다락방 사역이 진행되었던 곳이다. 서 집사가 복음메시지를 전하는데 특히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고 기도응답도 참 많이 일어났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합숙훈련을 왔다가 식중독이 일어나 온몸에 두드러기가 났는데 서 집사가 그날 따라 자기의 안 좋은 부분에 손을 얹고 기도하자고 했다.
‘예수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찬양을 하는데 그 사람은 식중독이 물로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다락방에는 은밀하고 말 못 할 문제를 가진 사람도 많이 오고 그런 것이 치유되기도 한다고 한다.
“육신치유도 중요하지만 다락방 사역의 가장 중요한 것은 제자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일꾼으로 변화되었습니다.” 서 집사는 당시 복음을 들었던 사람들이 각 지역에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하나님의 역사라고 말했다.
서 집사의 사역을 통해 ‘복음 안에 모든 것이 다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닮은 한 믿음의 사람이 성령의 인도를 받을 때, 생명이 살아나는 기적의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