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 세가지 독에 갇힌 인간에 의해 희생된 뭇 생명들에게 참회하고 새만금 갯벌과 이라크 민중들을 살리기 위해 기도수행을 나섭니다.”
국제적 보전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새만금 갯벌에 대한 간척사업의 중단을 위해 해창바다에서 광화문까지 800리(305㎞)를 온몸으로 걷고 있는 ‘새만금 갯벌과 생명·평화를 염원하는 3보1배’ 순례단(<한겨레> 3월29일치 14면>이 9일로 13일째 행군을 계속하고 있다. 세 걸음마다 한 번씩 절을 하며 답사하고 있는 문규현 신부와 수경 스님의 기도수행길에는 전국 각지에서 자원한 연인원 2천명이 넘는 지지자들이 뒤를 따랐다.
특히 새만금 간척사업이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된다며 지지해온 전북지역 주민들과 종교인들이 “목숨을 건 문 신부와 수경 스님의 숭고한 기도수행에 감동했다”며 눈물을 흘리며 동참하는 등 여론의 격려와 반향이 커지고 있다.
이번 순례단의 간사인 환경운동연합 장지영 부장은 “우리 행렬이 차선 한개를 막아 곳곳에서 교통체증이 일어나지만 짜증을 내기보다는 미안해하거나 격려를 보내주는 운전자들이 더 많고, 거리나 장터에서 만나는 주민들도 박수로 환영하거나 눈물로 지지를 보내줘 큰 힘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첫날 출범행사에 틱낫한 스님이 참석해 지지와 동참의 걷기 명상수행을 한 데 이어 지난 1일에는 국제적 환경단체인 지구의벗 리카르도 나바로 국제본부 의장이 반나절 동안 성직자들의 뒤를 따르며 한국 종교인들과 환경단체들의 헌신적 투쟁을 전세계에 알릴 것을 다짐하기도 했다.
출발 때 준비한 새 신발이 닷새 만에 닳아 떨어지고 날마다 면장갑을 바꿔 끼어야 하는 강행군으로 무릎과 손목을 상하는 등 3보1배 성직자들의 육체적 고통도 커지고 있다. 특히 감기에 걸린 몸으로 수행에 나선 수경 스님은 사흘째부터 무릎에 물이 차 다리를 절고 있지만 “쓰러지는 순간까지 계속하겠다”며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동안 아침 8시면 어김없이 행군을 시작해 하루 평균 6~8㎞씩 걸은 뒤, 노상 천막에서 새우잠을 자며 이동하고 있는 수행단은 구간마다 천주교 성당, 원불교 교당, 불교 사찰, 기독교 교회 등 4대 종단과 지역주민들의 식사와 물품 지원 덕분에 11일 만인 7일 전북 구간 일정을 예정대로 무사히 마쳤다.
환경운동연합 사이트(kfem.or.kr)의 ‘새만금 3보1배 하루소식’은 순례단이 겪고 있는 갖가지 어려움과 함께 감동어린 지지 물결을 네티즌에게 생생하게 전달해 호응을 얻고 있다.
△3월28일=800여명이 참석한 출범식이 끝난 뒤 외로운 기도수행이 시작됐다. 바닷바람이 추위를 느끼게 했지만 3보1배를 하는 4대 종단 성직자들은 금방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29일=문정현 신부가 함께 걸으며 동생 문 신부와 의형제를 맺은 수경 스님을 격려했다. 부안성당 학생 등 50여명이 뒤를 따랐다. 지나가던 트럭에서 딸기 2상자를 내려놓고 갔다. △30일=수경 스님이 다리를 절룩거리기 시작했다. △31일=이슬비가 그친 뒤 성심유치원 꼬마들이 몰려와 신부님과 스님의 아픈 다리를 주물러줬다. △2일=3보1배 성직자들의 신발을 새로 샀다. △3일=전주에서 온 맹인안내견 ‘찬미’와 시각장애인 송경태씨가 하루종일 동행했다. △5일=영하의 날씨로 새벽에 하얀 서리가 내리더니 오후엔 세찬 바람으로 천막이 쓰러져 못쓰게 됐다. 9살 어린이 2명이 3보1배를 함께 했다. △6일=간밤에도 얼음이 얼었다. 순례단이 120명으로 불어났다.
순례단은 8일 금강하구둑을 넘어 9일 충청남도 서천에 입성한다. 문 신부와 수경 스님은 금강하구둑을 경계로 충청도~경기도~서울로 향하며, 전북 교계를 대표해 수행에 동참해온 김경일 교무(새만금·생명살리는 원불교사람들 대표)와 이희운 목사(기독생명연대 사무처장)는 군산~익산~전주 전북도청까지 3보1배를 계속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