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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開拓者)★
1. 노숙[196~200]
196
“김 사장님.”
긴장한 안국철이 전화기를 고쳐 쥐었다.
“그건 무슨 말씀입니까? 전쟁이라니요?”
김명천이 가만있었으므로 안국철은 말을 이었다.
“갑자기 무슨 말씀인지 이해가 안갑니다.”
“피터 일류신이 몇 시간 전에 제거되었습니다.”
불쑥 김명천의 말이 수화구를 울린 순간 안국철은 숨을 멈췄다.
김명천은 마치 날씨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말했다.
“간부급 3명과 경호원 12명이 같이 사살되었지요. 내가 직접 현장을 확인했습니다.”
“…....…”
“일류신은 한랜드의 이주자 쿼터 20만명 분을 할당해 달라고 나에게 강압적 요구를 해왔지요.”
“…....…”
“난 그 누구의 위협에도 굴복하지 않을 작정입니다. 한랜드는 독자적인 길을 걷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는 김명천이 자르듯이 말했다.
“따라서 안대좌께서 제의하신 내용 또한 듣지 않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그럼.”
안국철은 끊겨진 전화기를 들고 한동안 굳어진 듯 움직이지 않았다. 김명천의 말은 충격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피터 일류신이 이주자 20만명분의 쿼터를 요구했다는 사실도 그랬고 김명천이 직접 현장을 확인했다는 내용도 충격적이었다. 이제 일류신 조직은 와해될 것이었고 한랜드에 어떤 위협도 되지 못한다.
또한 김명천의 고려인 조직은 일류신의 조직 대부분을 흡수하게 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되면 북한측으로써는 김명천의 조직을 감당해내기 힘들 것이었다.
“이놈, 김명천.”
이윽고 이를 악물었다 푼 안국철이 눈을 가늘게 뜨고는 앞쪽의 벽을 향하고 말했다.
“재빠르게 선수를 쳤지만 네 뜻대로는 안될 것이다.”
그때 문에서 노크 소리가 들리더니 사내 한 명이 서둘러 들어섰다.
안국철의 응답도 듣지 않고 들어온 것이다.
“특무장 동지, 시내 사무실에 있던 조원 6명이 러시아 보안국 요원들에게 연행되었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놀란 안국철이 시선만 들었을 때 사내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마르크스 거리에 있는 고려인 영업장을 보안국과 경찰이 합동으로 수색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자리를 차고 일어선 안국철이 일그러진 얼굴로 말했다.
“이곳도 위험하다. 전원 중요한 물건만을 챙겨서 떠날 준비를 하도록.”
놀란 사내가 눈만 껌벅이자 안국철은 버럭 소리쳤다.
“10분 후에 출발한다! 비상!”
사내가 문을 박차고 뛰어 나가자 안국철은 벽장을 열고 가방을 꺼내었다. 보안국은 김명천과 맥이 통하고 있다고 봐야 될 것이었다. 따라서 시내 사무실이 기습을 받아 부하들이 연행된 것은 김명천의 사주에 의한 것이 분명했다.
“김명천, 이놈.”
가방에 서류를 챙겨 넣으면서 안국철이 잇사이로 말했다. 그러나 온몸의 기력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었으므로 곧 어깨가 늘어졌다. 이번 작전은 김명천에게 선수를 빼앗긴 것이다. 김명천은 계속해서 기선을 제압하고 있다.
가방을 챙겨든 안국철이 방을 나왔을 때 아직도 부하들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준비를 끝내지 못한 상태였다. 부하들의 얼굴은 불안감으로 어두워져 있는데다 풀 죽은 모습들이 마치 패잔군처럼 느껴졌다.
197
차에서 내린 김명천의 앞으로 윤성식이 다가와 섰다.
“일류신의 부하들이 조금 전에 고려신문사에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시선만 든 김명천의 옆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서면서 윤성식이 말을 이었다.
“숙소 근처의 거리에서도 일류신의 부하들과 총격전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측은?”
김명천이 묻자 윤성식의 목소리에 생기가 띄워졌다.
“보안국과 경찰들이 소탕 중입니다. 지금까지 약 20여명이 연행되었고 숙소 2개가 검문을 당했습니다.”
“안국철의 숙소는?”
“보안국 요원들이 기습했을 때 비어 있었습니다.”
머리를 끄덕인 김명천이 사무실의 소파에 앉았을 때 방으로 신해봉이 들어섰다. 오전 10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그들 모두는 한 숨도 자지 못했다. 일류신의 저택을 기습한 결과는 대성공이었지만 부하들의 반발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앞쪽 소파에 앉은 신해봉이 입을 열었다.
“사장님, 수슬로프가 들어올 겁니다.”
김명천이 머리만 끄덕였을 때 부하의 안내를 받으며 러시아인 하나가 방으로 들어섰다. 검은 머리에 육중한 체격의 40대였다.
“수슬로프씨, 잘 오셨소.”
자리에서 일어선 김명천이 손을 내밀고 악수를 청하며 말했고 신해봉이 통역했다. 수슬로프는 잠자코 김명천이 내민 손만 잡았는데 검은 눈동자가 음울하게 느껴졌다.
자리에 앉았을 때 김명천이 정색하고 다시 말했다.
“수슬로프씨, 지금 당신 조직원들이 산발적으로 우리들에게 대항하고 있는데 이렇게 계속되면 결국 모두 전력만 소진되고 조직은 붕괴되고 말거요.”
신해봉이 통역하자 수슬로프가 눈을 크게 뜨고 김명천을 보았다.
“내가 이 싯점에서 중재자로 나선다면 배신자가 됩니다. 모든 의심이나 분노가 나한테 쏟아질 테니까요.”
말을 그친 수슬로프가 입술을 비틀고 웃었다. 신해봉의 통역이 끝났을 때 수슬로프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며칠간은 내버려 두는 것이 낫습니다. 지금 당신들에게 부딪쳐오는 놈들은 일류신의 골수 추종자들이고 그 놈들은 이 기회에 싸우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 낫소.”
“그렇군.”
쓴웃음을 지은 김명천도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우리한테 일류신 추종자들에 대한 정보를 주시오. 수슬로프씨.”
“그 놈들의 명단과 근거지, 가능하면 작전 내용까지 알려드리지요.”
거침없이 말한 수슬로프가 번들거리는 눈으로 김명천을 보았다.
“그리고 일리아친을 빨리 제거해야 됩니다. 그 놈이 있는 한 조직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일리아친은 오늘 중으로 제거될거요.”
신해봉의 통역을 들은 김명천이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이 준 정보가 맞다면 말이요.”
일리아친은 일류신 조직의 고문으로 지금 상황에서는 수슬로프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인 것이다. 따라서 일리아친만 제거되면 수슬로프는 일류신 조직을 장악하게 된다.
김명천의 시선을 받은 수슬로프가 희미하게 웃었다.
“김, 일리아친은 조금 전에도 나하고 통화 했소. 오늘 저녁에 아무르 강가의 오두막에서 투숙하게 될 것은 확실합니다.”
일류신의 거처를 알려준 것도 수슬로프인 것이다. 소외된 2인자는 배신자가 될 가능성이 가장 컸고 그 예가 수슬로프가 될 것이다.
198
다음날 오후 5시가 되었을 때 아침부터 내리던 눈이 그친 대신으로 강풍이 몰아쳤다. 시베리아의 진면목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한풍이었다. 발목까지 덮였던 눈이 순식간에 얼어붙으면서 도로의 차량통행은 차단되었다. 그러나 자주 있는 일이었으므로 교통마비 현상 따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일리아친이 어젯밤 살해된 후에 일류신 조직은 수슬로프가 장악해 가고 있습니다.”
박철수가 조심스럽게 보고했으나 안국철은 창가에 서서 등을 보인채 대답하지 않았다. 이곳은 하바로프스크에서 남쪽으로 30여㎞정도 산길을 나가야 한다. 이미 창밖은 어두워져서 앞쪽에 민가의 등빛만 서너 개 보일뿐이다. 박철수가 말을 이었다.
“일류신 조직의 고려인들에 대한 공격이 멈춘 것이 아냐.”
안국철이 박철수를 향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웃어 보였다.
“김명천이 그 놈이 수슬로프와 손을 잡은 것이다. 일리아친까지 기습을 당해 피살된 것도 조직 내부에서 정보가 새었기 때문이지 정보를 준건 수슬로프일거야.”
입만 딱 벌리고 있는 박철수를 보자 안국철은 입맛을 다셨다.
“당연히 조직을 장악한 수슬로프는 고려인에 대한 공격을 중지 시켰겠지. 이제 앞으로는 일류신 조직이 고려인 조직의 통제하에 들어가게 될테니까 말이야.”
“그렇다면 특무장 동지.”
“아직도 기회는 있어.”
창틀에서 몸을 뗀 안국철이 박철수의 앞으로 다가와 섰다. 불빛을 받은 두 눈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앞으로 한랜드에는 사방에서 몰려온 수백만의 한민족이 이주해 갈테니까 말이야.”
안국철이 이만 드러내고 웃었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으므로 둘은 긴장했다. 벨은 탁자위에 놓은 안국철의 핸드폰을 집어 들고 귀에 붙였다.
“여보세요.”
“아, 안대좌인가?”
굵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안국철은 자신도 모르게 부동자세를 했다.
“예, 부부장 동지.”
보위부 부부장인 백남철 대장이었던 것이다.
백남철은 연로해서 거의 은퇴한 상태인 부장 오영산을 대신해서 보위부를 관리하고 있는 실세였다. 그때 백남철의 목소리가 수화구를 울렸다.
“내가 내일 그 곳에 도착할 예정이야. 물론 비공식 방문이다.”
“예? 예.”
놀란 안국철이 대답만 했을 때 백남철의 말이 이어졌다.
“넌 김명천과 나와의 단독 면담을 주선해 놓도록. 내일 밤이 좋겠다.”
“김, 김명천과 말씀입니까?”
“그렇다.”
자르듯 말한 백남철의 목소리가 더 굵어졌다.
“내가 만나 상의할 일이 있다고 정중하게 요청하도록. 알았나?”
“예, 부부장 동지.”
안국철은 침을 삼켰다. 고위층이 이렇게 나설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9
“예상했던 대로야.”
머리를 끄덕인 마쓰다가 이또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마쓰다는 둥근 얼굴에 혈색이 좋아서 동안이다. 거기에다 몸매도 둥글었으므로 앉아있으면 부처 같았다. 웃기라도 하면 영락없는 절의 부처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입을 굳게 다물어서 뜨거운 물에 데인 가게 주인같은 모습이 되어 있었다. 말을 이었다.
“수슬로프는 김명천의 지원을 받고 있는거야. 말하자면 둘이 연합한 것이지. 더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수슬로프가 김명천의 휘하에 들어간 것이라구.”
“그렇습니까?”
로니전자의 극동지역 사장 이또가 겨우 그렇게 말했다.
그로써는 조직세계의 판도를 관찰할 의욕도 없을 뿐만 아니라 능력도 없다. 전자제품의 시장 예측이나 판매에는 세계 최고급 수준이었지만 일류신 조직이네 김명천의 고려인 조직의 판도에는 먹통인 것이다. 마쓰다가 저 혼자 머리를 끄덕였다.
“따라서 다음 순서는 김명천의 고려인 조직과 러시아에 투입된 북한의 특무대 조직과의 전쟁이야.”
둥근 찐빵같은 모습으로 마쓰다가 말을 이었다.
“둘 다 주도권을 쥐려고 전력을 다하겠지. 저 아랫쪽 한반도에서처럼 말이야. 한랜드를 장악하면 거대한 한국이 탄생되는 것이니까 싸움이 더 격렬해지겠지.”
이또는 건성으로 머리만 끄덕이고는 입을 열지 않았다.
이노우에 겐지가 제거된 후에 야마구치조는 마쓰다를 파견했는데 그것으로 그들의 각오를 예측할 수 있었다. 마쓰다는 부회장으로 현 회장 오오무라의 뒤를 이을 제 2인자인 것이다. 그것은 야마구치조도 한랜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는 증거도 될 것이다. 사무실 안은 조용했다.
이 곳은 마르코스가 끝쪽에 위치한 5층 빌딩으로 마쓰다는 빌딩 전체를 임대하여 위장 회사의 간판을 걸고 부하들의 숙소겸 대기소로 이용하고 있다. 이또가 불안한 표정으로 자리를 고쳐 앉았다. 이곳으로 불러낸 마쓰다가 아직 용건을 꺼내지 않은 것이다. 그때 마쓰다가 입을 열었다.
“이또씨, 지금이 가장 중요한 시기야. 지금 기반을 굳히지 못하면 한랜드는 발을 붙이지 못하게 돼.”
“그건 압니다.”
겨우 이또가 대답했을 때 마쓰다는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는 김명천과 북한측을 전쟁터로 끌어내야만 해. 그래서 두 조직이 서로 치명상을 입도록 해야만 된다구.”
“그것도.”
“그래서 말인데.”
마쓰다가 이또를 똑바로 보았다.
“내일 오후에 북한 보위부 부부장 백남철이 이곳에 올거야. 물론 비공식 방문으로 가명을 사용하고 몰래 들어오는거야.”
놀란 이또가 눈만 크게 떴을 때 마쓰다가 입술만 비틀고 웃었다.
“우리 위성 탐지기가 북한 특무장 안국철과 백남철의 통화를 도청한 결과지. 전자장비는 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이니까.”
“그럼 어떻게 하실 작정입니까?”
이또가 묻자 마쓰다는 목소리를 낮췄다.
“백남철은 고려인이 저격한 총탄을 맞고 피살돼.”
숨을 죽인 이또를 행해 마쓰다가 말을 이었다.
“물론 김명천의 지시를 받은 행동이지.”
“그렇다면.”
“로니전자에서는 오늘 중으로 공작금을 준비해 줘야겠어.”
마쓰다가 이또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여기 적힌대로 돈을 송금시켜 주도록.”
200
그 시간에 김명천은 다시 한랜드로 날아가 안재성 회장을 만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동쪽 끝 지역이었다. 통나무 집도 없어서 능선 사이에 천막을 쳐놓았고 비행장 활주로는 얼어붙은 호수를 이용하는 열악한 상태였지만 안재성의 표정은 밝았다.
바깥은 영하 30도의 매섭게 추운 기온이었는데도 천막안은 훈훈했다. 난로가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었는데 연료는 부근에서 캐어온 석탄이었다.
“연료가 무진장해.”
난로를 바라보며 안재성이 웃음띈 얼굴로 말했다.
“석탄 광맥이야. 아마 지질조사를 하면 유정도 틀림없이 발견될 걸세.”
주위에 전기용의 표정도 밝았다. 왜냐하면 오늘 오전에 들렸던 E32지점에서 그들과 동행했던 지질학자가 구리 광맥을 찾아냈던 것이다. 안재성이 웃음띈 얼굴로 김명천을 보았다.
“이제 일류신 조직도 장악했으니 감개가 무량해. 내가 자네한테 어떻게 보답을 해야할지 모르겠어.”
“회장님.”
김명천이 불렀으나 안재성회장은 말을 이었다.
“목숨을 걸고 일해 준 사람한테 댓가 운운하는 것도 이 한랜드를 획득하게 만들어주고 또한 외부 압력에서도 지켜준 자네에게 어떻게든 보답을 해주고 싶단 말이네.”
“회장님, 북한측에서 저를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말을 자른 김명천이 정색하고 안재성을 보았다.
“내일 북한 보위부 부부장인 백남철 대장이란 사람이 러시아에 온다고 합니다. 그 사람이 만나자고 하는 겁니다.”
“백남철?”
안재성이 옆에 앉은 박수근과 전기용을 보더니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자가 왜?”
“아직 이유는 모릅니다. 안국철 대좌는 저에게 내용을 말해주지 않았습니다.”
“그자들이 급한 모양입니다.”
박수근이 나서자 전기용도 곧 동의했다.
“그렇죠. 일류신 조직이 붕괴되었으니 이제 둘이 승부를 겨뤄야 될 형편이니까요. 지금은 기세가 꺾인 상황일 것입니다.”
그때 안재성이 시선을 들고 김명천을 보았다.
“김사장은 어떻게 생각하나? 무슨 목적으로 자네를 만나려고 하는 것 같나?”
“타협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김명천이 말하자 박수근과 전기용이 동시에 머리를 끄덕였다.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전면전이 일어나면 양쪽 모두 치명상을 입게 될테니까요. 그것을 강조하면서 조건을 제시 하겠지요.”
“흐음.”
낮게 신음을 뱉은 안재성회장이 다시 시선을 들었다.
“만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물론 전쟁입니다.”
낮게 말한 김명천이 길게 숨을 뱉았다.
“그리고 우리 남북한의 전쟁을 기다리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러자 둘러앉은 세 사내가 일제히 머리를 들었다.
석탄이 타면서 불덩이가 튀는 소리가 들렸다. 그들의 시선을 받은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우리 정보원의 보고에 의하면 일본 야마구치조가 대폭 강화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물급 보스가 와 있습니다.”
김명천이 안재성을 똑바로 보았다.
“한랜드가 부강해지면 가장 위협을 받는 국가가 바로 일본입니다. 한랜드는 불론이고 한반도도 일본 옆에 위치하고 있으니까요.”
김명천이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8시경이었다. 이미 짙게 어둠이 덮인 저택에 드믄드믄 보안등만 켜져 있는 것은 습격에 대비한 경계태세 때문이었다. 응접실로 들어선 김명천을 민경아가 맞았다. 민경아는 김명천에게 불리워 온 것이다.
“한랜드에 자주 가시네요.”
저고리를 받으면서 민경아가 말하자 김명천이 얼굴을 펴고 웃었다.
“며칠 후에 사무실도 한랜드로 옮겨 갈 계획이야.”
“어머, 그러면.”
“그 일 때문에 경아씨를 만나자고 한거야.”
소파에 앉은 김명천이 눈으로 앞쪽 자리를 가리켰다.
민경아가 앞에 앉자 김명천이 정색했다.
“경아씨, 아직도 상황이 끝나지 않아서 언제 어떤 사건이 터질지 예측할 수도 없어. 난 내일 북한의 고위층을 만나야 할 것이고 또 일본의 야마구치조는 세력을 강화시키고 있는 상태야.”
긴장한 민경아가 두 손을 가지런히 무릎위에 놓은 채 김명천을 보았다. 맑은 두 눈이 불빛을 받아 반짝였고 윤기가 흐르는 단정한 입술은 굳게 닫쳐져 있다. 김명천이 똑바로 민경아를 보았다.
“경아씨가 숙소에 있는 것이 불안해. 그래서 당분간은 이 저택에서 나하고 같이 생활했으면 좋겠어.”
민경아는 눈만 크게 떴을 뿐 아직 입을 열지 않았고 김명천의 말이 이어졌다.
“북한이나 일본, 또는 일류신의 잔당까지 모두 나를 노리고 있어. 내 주변에 있는 사람까지 그들의 표적이 되어 있는 거야. 따라서 경아씨는 나 다음의 표적이지.”
그리고는 김명천이 쓴 웃음을 지었다.
“경아씨가 나와 가까운 사이라는 사실은 모두가 알고 있거든.”
“…....…”
“그렇게 해줄거지?”
김명천이 묻자 민경아가 시선을 들었다.
“그렇게 할께요.”
“오늘 중으로 짐을 옮기도록 하지. 경아씨는 이곳에서 가만있으면 돼.”
활기띈 얼굴로 말한 김명천이 문득 잊었다는 듯이 머리를 돌려 민경아를 보았다.
“경아씨, 나하고 결혼해 줄거지?”
민경아가 다시 눈만 둥그렇게 떠 보였을 때 김명천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
“난 경아씨하고 한랜드에서 여생을 보내고 싶어. 그것을 상상하면 가슴이 뛰고 활기가 일어나. 우리는 아들 셋에 딸 둘만을 낳아서 한랜드의 인구에 도움을 줄거야. 그 다섯명의 우리 자식들이 자손을 생산해서 3대쯤 지나면 200명쯤이 되겠지.
김명천과 민경아의 자손이 말이야.”
“그만.”
손바닥으로 김명천의 입을 막는 시늉을 한 민경아의 얼굴에 웃음기가 띄워졌다.
“아직 나한테서 결혼 동의도 받지 않았어요. 명천씨.”
“그럼 동의해줘.”
다시 정색한 김명천이 말하자 민경아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지워졌다.
“안세영씨는?”
불쑥 물은 민경아의 시선이 옆쪽으로 비껴났다.
“이미 회사 내부에서는 물론이고 외부에서도 명천씨는 안재성회장의 사위로 소문이 나 있어요. 그리고 안세영씨도 명천씨를 따르고.”
그리고는 민경아가 시선을 들어 김명천을 보았다.
“나, 당신의 장애물이 되기 싫어요. 당신의 호의만 가슴에 간직하고 있으면 안돼요?
내연의 여자라도 괜찮아요. 난 그쯤은 견디어 낼 수가 있어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