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미령 초대전
Homage to Pop
작가가 표현하는 미니멀한 화면은 고독 속에서 함몰되어진, 정신의 관조 속에서 배태된 것임은
그가 드러낸 거칠거나 회색빛의 초월된 시간과 공간성에서 알 수 있다.
글 : 長江 박옥생(미술평론가, 한원미술관 큐레이터)
2011. 10. 5 - 11. 2 나무아트 갤러리 (T.051-332-8376)
1. 소녀의 노스텔지아(Nostalgia)
어린 시절의 강열한 추억은 상상력의 시작이자 창조의 원동력이다. 작가 강미령의 예술세계 또한 작가의 소녀 적 모습을 추억하는 과거 시간으로의 여행으로써 창작의 기원이 되고 있다. 단정한 교복과 검은 단발머리, 때때로 등장하는 색동옷을 차려입은 소녀는 작가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주인공이자 자신의 소녀 적 시간보다 더 멀게 느껴지는 기억의 간극에서 탄생한 모습이기도 하다. 미령의 소녀 이미지와 그 소녀를 둘러싸고 있는 세계는 소녀의 나이만큼 과거로 되돌아간 시간으로의 복귀인 것이다. 그 시간에는 소녀 미령과 장님의 에쿠스가 등장한다. 피터 쉐퍼(Peter Shaffer)의 유명한 희곡 “에쿠스(1973)”에 나오는 에쿠스는 주인공 알렌에 의해 눈이 찔린 최초의 순간을 목도한 신성한 말의 이름인데, 이는 작가의 또 다른 자아로써 드러난다. 이는 작가가 연극 에쿠스에서 느낀 감동의 깊이와 폭이 작가의 전(全) 작품을 관통하며 그려지고 세계를 인식하고 살아가는 또 다른 존재로서 자리 잡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다.
2. 고독, 그 탈시간(脫時間)으로의 여행
작가의 조형의 근저를 이루는 것은 한국 전통 민화이다. 책가도의 면 분할을 몬드리안의 구획적인 면 분할과 동일시하거나(책가도에 관한 몬드리안적 사고), 책가도의 화면 분할을 기저로 일월오악병, 작호도와 같은 고전의 어법을 끌어와 작가의 기억에 뚜렷하게 각인시킨 워홀, 로버트 인디에나, 리히텐슈타인과 같은 작가들의 작품들을 자유롭게 구성시키고 있다(Homage to Pop). 그 구성은 민화의 역투시도법과 불교회화와 같은 화면에서 운용하고 있는 스토리를 쌓아 올리는 구축적인 화면이다. 따라서 작가가 추구하는 화면의 구성은 전통적이며 고전적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팝과 미니멀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맞물려 있으며 오히려 그 조형의 시원성을 우리의 전통에서 찾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러한 전통을 기저로 이루어진 화면에는 작가가 감동받고 있는 동서양의 미술의 중요 작품들로 반복되기도 하며 복제되기도 하고, 증식하거나 축소되거나 확장되기도 한다. 이것은 작가가 미술, 그 오래된 역사의 흔적을 추적하며 그 의미를 음미하는 것으로, 그것은 작가만이 향유하는 개인적인 감성을 넘어 미술 문화의 모든 사건들이 깊은 사색의 순간을 맞이하고 고요하게 자신의 본성을 드러내는 듯하다.
3. 사물이냐, 몰입이냐.
작가가 만들어내는 화면은 그 특유의 마티에르가 드러난 회색이거나, 마치 콘크리트의 거친 질료를 연상시킨다. 시멘트와 여러 화학재료들이 가공된 인공의 벽면과도 같은 작가의 화면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외치는 듯, 현대의 아파트와 같은 잿빛 도시 문화의 냉소적인 시선을 담고 있다. 이는 곧 현대라는 문화가 배태된 토양이며 고독한 화가의 몽상이 도달한 부유하는 시간의 기념비적인 장소의 모습이기도 하다. 이는 무대 위의 세트 같기도 하며 노스텔지아를 자극하는 떠다니는 기억의 덩어리들이 고착화되어 있는, 시간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자석판 같기도 하다. 작가가 표현하는 미니멀한 화면은 고독 속에서 함몰되어진, 정신의 관조 속에서 배태된 것임은 그가 드러낸 거칠거나 회색빛의 초월된 시간과 공간성에서 알 수 있다. 고독은 철저하게 작가의 현실과 단절시키며 몰입되어 그가 인식한 세계, 곧 현대미술 탄생의 순간을 목도하는 그 순간으로의 초월된 정신의 단계로까지 상승시킨다. 그 정신의 표정은 회색빛 도시의 잔해들 속에 무쳐진 조각으로 또는 입체로 완성된다. 따라서 제단위의 벽화와 같이 신성하고 고요하고 깊숙이 사고된 화면은 미니멀리즘 속에 포함된, 정신을 순차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양적이며 종교적인 정신의 과정을 담고 있다. 이는 개개의 사물들에 정신을 고정시키고 그 사물의 기원에서 현재까지, 고정되어 있는 본질에서 그 운용하는 세계의 움직임(體用說)에 이르기까지의 성찰이며, 이는 곧 관상(觀想)과도 같은 몰입된 순간의 종교적인 수행(Meditation)과 닮아 있다. 즉, 강미령의 화면은 서양화의 재료적 물성에서 출발하여 동양의 정신적 과정과, 승화되고 초월된 사유의 단계가 융합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4. 고전 팝(Classic Pop)의 귀환
이러한 작가의 예술세계에서 간취되는 모든 이미지들은 현대미술의 고전으로 경외(敬畏) 되고 있는 팝으로의 복귀를 보여준다. 사실, “나는 예술이라는 것과 이것은 예술이 아니다”라고 말하는 1960년대의 팝아트에 관한 첨예한 인식적 대립을 불식시키고, 작가는 현대미술의 대중성을 확보하고 하나의 역사가 되어버린 팝아트에 관한 경의와 그 경의를 기념하고자 함이 드러난다. 따라서 강미령의 화면은 팝아트 거장들의 작품들이 하나의 사실적인 오브제로서 등장하고 있으며, 복제와 반복, 기호(숫자, 표지)의 조형적 어법을 따르고 있다. 즉, 작가가 기념하는 것은, 팝과 미니멀리즘은 대중문화 속에서 나타난 반응들이며 이는 모더니즘이 갈구한 순수대상으로의 복귀이면서, 이전의 인식을 전복시키는 확장된 영역으로의 미술의 탄생이라는 것이다. 바로 할 포스터(Hal Foster)가 모더니즘의 미술이 갖는 숭고한 순간성과 시간성은 하나의 역사적인 패러다임을 넘어 하나의 미학적 본질조차도 훌쩍 뛰어넘어 영적인 명령이 된다고 썼듯이, 강미령의 작품은 현대미술에게 바치는 숭고한 제의와 기념비로써 기능하는 것이다. 종교적 정신의 승화를 담아내고 물질화되고 파편화된 현대미술을 서열화하고 동양과 서양의 접점을 찾아냄으로써, 그 안에서 작가는 탈시간화된 우주적 공간에서 창조와 안락의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그 시간은 퇴색되기에는 너무도 선명한 기억의 언저리에 붙어 있는 찬란한 유산들이며, 그 유산은 이미 고전이 된 팝의 숭고한 귀환으로 가시화된다. 그 숭고한 귀환은 강미령의 관조의 시선으로 사유되고 있으며 강열한 한국적 색과 전통의 도상으로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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