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
예은이 엄마의 구슬프지만 힘있는 노래가 모두의 마음을 울렸다. 2022년 9월에, 역대최강이라는 '힌남노' 태풍이 오는 가운데 열린 '윗동네, 아랫동네, 가족on' 행사. 기획회의에서 몇 번이나 행사를 취소해야 하는 것이 아닌지 검토하고 의논하였다. 어렵게, 어렵게 열린 '위아家' 행사는 예은이 엄마가 부른 노래의 가사처럼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바램이었던 것이다.
"자, 이제부터 각 가정에 따스한 온기를 불어 넣는 '윗동네, 아랫동네 가족on'행사를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와~~" "여러분 지난 한달동안 잘 지내셨나요? 오늘은 아쉽게도 다은이네가 못왔습니다.""태풍때문임까?" "아니요. 다은이가 갑자기 열이난다고 하네요." " 아이구, 코로나 비루스때무니 아이가?" “ 혹시 윗동네에 사시는 분들은 오늘 행사 끝나고 다은이네 들려서 안부를 물어 주세요. 저도 한번 가보겠습니다."
행사 시작과 함께 오늘 참석하지 못한 가족들의 근황을 챙긴다. 다은이네, 다산댁, 하은이네, 승민이네, 제법 불참자들이 많다. 다가오고 있는 태풍 '힌나노'의 영향도 있겠지만, 매번 추석 이맘때는 북향민들을 위한 잔치들이 곳곳에서 열린다. 어떤이는 오랜만에 고향 사람들을 만나러 갔고, 어떤이는 파주 임진각 망향단에 방문하여 고향을 바라보기도 한다. 얼마나 보고 싶을까? 얼마나 외로울까? 모두가 귀향하는 명절에는 더 생각 날 것이다.
북한의 명절은 민족이 오랫동안 지켜온 민속명절보다 국가를 기념하는 명절을 휴일로 지정하였다. 그들의 명절은 태양절이라 하는 김일성 생일과 김정일 생일, 그리고 조선인민군 창건일, 노동당 창건일 등이다. 우리와 같은 날도 있다. 바로 8월 15일 광복절이다. 세계 노동자의 날인 5월 1일과 국제여성의 날인 3월 8일도 그들은 기념하고 있다.
반면 민속명절은 과거에는 양력 설 하나만 인정했다. 그들은 보통의 사회주의 국가가 그렇듯 노동자, 여성을 위한 국가체제에 집중하고 민족의 명절은 봉건의 잔재로 보았다. 하지만 한반도 기후에 맞게 맞춰진 농경의 절기문화를 어떻게 바꿀 수 있으랴! 1972년 추석을 맞이해 성묘를 허용하고, 1988년에는 추석 명절을 허용한다. 2003년에는 양력설이 아닌 음력설을 기념하고, 정월대보름과 단오날을 휴일로 지정했다.
물론 민속명절을 복원하는 것은 순수한 목적만이 아닐것이다. 이는 1990년 전후로 무너진 동구권 사회주의와 전통적인 사회주의를 이탈한 중국과 차별성을 두기위한 조치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그 동안 흥청망청, 허례허식을 말하며 민속명절에 대해 강도높게 비판했던 것을 다시 부활시키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살아남기 위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민속명절을 자신들의 입장에 맞게 부활 시킨 것이다.
북한은 명절을 간소화시켰다. 우리의 명절은 어떠한가? 고유의 명절인 설날과 추석은 모든 가족들이 모이는 날이다. 국가에서 3일씩 휴일로 지정하여 온가족이 지역간 경계를 넘어 만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줬다. 가족들은 각자가 챗바퀴 돌듯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모처럼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시간이다. 반면 북한은 하루만을 쉰다. 그들은 자신들이 사는 지역을 벗어나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자연스레 대가족 문화는 깨어진지 오래되었다.
그들이 말하는 가족은 사회주의대가족이다. 수령을 어버이로 말하며 집단주의 원칙을 구축한 세상, 그것이 바로 북한이다. ‘하나는 전체를 위해, 전체는 하나를 위해’라는 구호는 이러한 집단주의 원칙에 근거한다. 명절에는 당으로부터 특식이나 물품을 배급받는다. 이렇게 북한사람들은 부모가 아닌 어버이되신 수령에게 충과 효를 다할 것을 다짐하며 살아왔다. 이러한 체제에서도 풍성하지는 않지만 가족들은 모여 밥도 먹고 보름달도 보고, 가족애를 느낀다.
"예은이 엄마, 자한이 엄마. 오늘 와 줘서 고맙다." "고맙긴요. 당연히 와야죠. 자한이 자란이도 그렇지만, 저도 지난 한달 간 얼마나 이 시간을 기다렸는데요." "맞아요. 자한이 엄마는 나만 만나면 이 모임에 대해 이야기를 해요. 누구 언니, 누구 엄마 이야기도 하고, 봉사해주는 아빠들 때문에 주말에 밥도 안하고 너무 좋다고" 하하하하 "길티요~. 여기 아바이 동무들이 성심껏 봉사할테니, 여기 오마니 동무들과 안가이들은 맘음껏 즐기라우~" 하하하하. 윗동네 사람을 따라하는 내 말투가 서툴렀는지 모두가 한바탕 웃어 제낀다. 이렇게 민속놀이가 시작되었다.
윷놀이, 투호놀이, 제기차기.. 준비한 민속놀이는 당연 팀대항이다. "자 지금부터 팀을 정하겠습니다. 경상도와 양강도에서 오신 분들 이쪽으로 와서 한팀이 되어 주세요. 전라도와 옌벤에서 온 팀도 저쪽으로 모여 한 팀이 되어 주세요. 아. 오늘은 함경도와 평안도에서 오신 분들이 빠지셨네요. 아쉽지만, 경기도와 충청도는 한 팀이 되어 주세요. 서울은 경기도 안에 있으니 같은 팀이 되어 주시구요." 자란이 엄마는 자신의 고향을 모른다. '고난의 행군'. 북한의 어려운 시절 태어나 어릴때 중국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팀의 이름이 신박하다. 양강도의 백두산과 경상도의 지리산이 만났다 하여 '백두지리'팀. '우리는 가족이다'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싶다는 '패밀리'팀. 우리의 일상이 항상 오늘만 같기를 바란다는 '한가위'팀. 각 팀의 결속력도 대단하다. 언제부터 알았다고 언니, 오빠, 이모, 삼촌이 되었다. 각 팀들은 깔깔거리며, 상대팀을 야유하고, 자신의 팀을 응원하며 금세 하나가 되어 있었다. 팀을 위한 열정은 막을 수가 없다. 여기 저기서 몸개그가 펼쳐진다. 저 분이 원래 저런 분이셨나? 제기를 하나도 못차면서 어떻게 해서든 3개를 차려고 애쓰는 저 뒷태. 팀을 위한 위대한 희생덕에 아이들은 까르르르.
한바탕 추석명절 놀이 후 모두가 한상에 둘러 앉아 명절음식을 먹는다. 오늘은 음식도 풍성하다. 부페로 준비한 잡채, 전, 고기, 과일 등 특별히 맞춘 명절음식. 누구하나 빠지지 않고 맘껏, 풍성히 갖다 먹으며 왁자지껄 명절놀이의 뒷풀이를 한다. 우리는 흥의 민족, 한민족이 맞는가 보다. 그렇게 땀흘리며 신명나게 놀았는데, 어느정도 음식을 먹고나니 가무가 이어진다. 아이들이 한 명씩 나와 요즘 유행하는 동요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이어 신호등이라는 동요를 부르고, 한창 분위기가 무르익어가는데 엄마들이 나서기 시작한다.
"저는 고향을 떠난지 오래되었지만, 그래도 명절때가 되면 갈 수 없는 고향이 너무 가고 싶고, 거기의 가족들이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외롭지 않습니다. 제가 여기 모임에 참여하면서 여기 계신 분들이 저의 또 다른 가족같이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 모임이 계속 되었으면 좋겠고, 가족이 되어준 여러분들께 너무 감사하단 말씀 드리면서 이 노래를 부르겠습니다." 예은이 엄마만이 아닌, 여기 모두의 얼굴이 상기되었다. 어떤이는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 밖은 여전히 힌나노 태풍으로 인해 비바람이 몰아치고 어두 컴컴하지만, 여기 모인 가족들에게는 따스하고 밝은 온기가 함께 하고 있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냐, 그것은 우리의 바램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