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집 식당
“어서 오세요. 척야산에 놀러 오셨나요.?”
말이 고픈 ‘고향식당’ 주인아주머니는 반갑게 우리 부부를 맞이해 주면서 주저리주저리 질문을 한다. 이런 질문이 어색하였는데 손님이 그리웠나보다 생각하니 이해 되었다.
면사무소 주변에는 식당이 한 곳밖에 없고 ‘치킨집’이 있었다. 대낮에 치킨으로 점심을 먹기엔 적당하지 않아서 두루 주변을 살펴보았지만 없었다.
물론 주변에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 사는 마을이 한적하기 이를 데 없이 고요하다. 한낮인데 적막강산이다. 점점 사람이 사라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 농촌 인구가 노인들만 있겠구나! 생각하니 쓸쓸한 농촌 풍경이 추수 끝난 가을 들판을 보는듯했다.
그러니 식당 아주머니는 우리가 들어가니 반가울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이 식당에서 무엇이 맛있어요?”라고 내가 물으니 ‘만둣국’이 맛있다고 한다.
주방으로 들어간 아주머니는 손수 빚은 만두를 우리가 볼 수 있도록 만두를 손에 올려놓고 “내가 만든 것입이더” 말한다.
나는 기다리면서 식당 실내를 위생 검사하듯이 눈에 들어오는 곳마다 매의 눈으로 살펴보았다. 손님도 없는데 주변 정리 좀 깔끔하게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생각보다 ‘만둣국’이 빨리 나왔다.
나는 일행들과 가보았던 곳을 남편과 다시 가보았다.
그곳은 내륙지방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5월 초순인데 경량패딩을 입어도 될 정도로 쌀쌀했다. 따끈한 ‘만둣국’을 먹으니 몸이 따듯해 좋다고 말하면서 먹었다.
주인아주머니는 경상도 말씨를 심하게 하였다.
아주머니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니 ‘부산’이라고 한다. 따듯한 부산에 살다 여기서 살기에는 춥지 않냐고 물으니 물 만난 고기처럼 말을 쏟아놓는다.
외지 사람들이 이곳 살기가 어떠냐고 물으면 두 손 들고 반대한다고 말한다.
겨울엔 전국에서 가장 춥고 여름엔 가장 더운 곳이 여기라면서 사람 살 곳이 못 된다고 진저리치듯이 말한다. 부산에서는 10년에 한 번 정도 눈이 오는데 여기는 하루걸러 눈이 내리고 쌓인 눈 때문에 문이 열리지도 않고 문고리에 손이 쩍 달라붙어 문을 열 수도 없다고 한다. 겨울에 수돗물이 얼지 말라고 졸졸 흐르게 틀어놓아도 얼고 더운물과 함께 졸졸 흐르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따듯한 부산에 살다가 적응이 쉽지 않아서 더 그러하겠지만 춥기는 추운 모양이다.
개도 얼어 죽고, 닭도 얼어 죽는 곳이 이 고장이라고 말한다.
“세상 살다가 털 달린 짐승이 추위에 얼어 죽는 곳이 이곳 입니더.”힘주어 말했다.
나는 그 말에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춥기는 엄청 추운 곳인가 보다. 유난히 추위를 타는 나로서는 이런 고장에서는 살 수 없을 것이다.
21년째 이곳에서 장사를 했는데 1년 중 4개월 장사하여 먹고 산다는 말을 하면서
추석 때까지만 장사하고 읍내로 옮길 것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둣국을 먹고 있는데
아주머니는 TV를 보면서 얘기를 하는데 나는 어떤 얘기보다 재미있게 들어주었다.
아주머니는 한겨울에 쓰는 털모자를 쓰고 있었고 두툼한 쉐타에 바지도 한겨울 바지를 입었다.
철쭉이 만발한 5월인데 아주머니의 복장은 한겨울이었다. 말이 봄이지 초겨울의 기온이었다. 우리가 식사를 다 마칠 무렵에 중년의 부부가 식당으로 들어왔다.
아주머니가 모르는 것으로 볼 때 외지인 같았다.
두 사람은 ‘감자전’과 ‘막국수’을 주문했다.
우리는 계산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아주머니는 바빠지기 시작했다.
천천히 하시라고 말하고 휴대폰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서 여유있게 앉아 있는데
말없이 앉아 있던 방금 들어 온 부부 중 남자가
“감자껍질 벗기는 것 제가 하겠습니다. 이리 주세요. 가만히 앉아 뭐 합니까? 집에서도 자주 합니다.”라고 말하니 식당 아주머니는 매우 미안해 하였지만, 감자 세 개와 칼을 주면서 빠르게 주방으로 들어갔다. 아내 되는 사람인지 모르나 여자는 집에서도 잘해요. 라고 말했다. 참 재미있고 센스 있는 남자라 생각했다.
시골 식당이라서 그런지 정감 있고 사람 귀한 대접을 받는 기분이었다.
여자는 약해도 어머니는 강하다고 하는 것처럼 모든 어머니들은 생활력이 강하다.
서울역 지하도에 노숙자가 300여 명 있는데, 여자는 한두 명도 찾기 어렵다고 한다.
그처럼 여자는 무엇을 하건 생존력이 강하고 가정을 이끌어가는 원동력 역할을 하기도 한다. 식당 아주머니는 남편이 군인이었는데 일찍 사별을 하여 식당을 운영하면서 가족을 이끌어 온 것 같았다. 남편의 직업 때문에 강원도 내륙지방까지 왔다가 추운 곳에서 남편 잃고 강한 어머니로서 살아온 억척스런 어머니였다. 따듯한 고향 ‘부산’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가장 춥다는 내륙지방에서 또다시 식당을 옮겨서 하신다 하니 같은 중년의
여성으로서 마음이 짠했다. 총각김치가 맛있다고 말하니 1회용 용기에 넉넉한 인심으로 가득 담아 주셨다.
고향 집 식당에 온 듯하다.
첫댓글 주책없이 글을 마구 올리게 되는군요
다른님들의 글을 읽고 싶어서 제 글을 올려봅니다.
깊은 밤인데 낮에 마신 커피때문인지 잠이 오지 않아서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글을 쓰고 올리게 되었어요
좋은 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송 작가님 덕분에 카페가 환해짐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고맙습니다.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