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하기로 결심하고나니 그동안 여러 사람들 밥해 준 것이 공을 쌓은 것이 아니라
내공을 연마한 것이란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동안 지었던 그 많은 밥과 음식들...
다 주방장의 필수과정이란 생각이 들지만...
항상 부족한 2%를 채우기 위해(사실은 2%가 아니라 98%다) 개업을 앞두고
잘나가는 한정식집에 위장취업(?)하려다가 이실직고(!)하고 정식으로 채용되었다.
물론, 일 배우는 조건으로 무보수 채용이다.
그리하야 몸부림 예비주방장은 일산의 솔띠딩 한정식집에 일 배우러 아침 일찍 출근했다.
*제일 처음 한 일은 설거지. 하루에 수 백 개를 넘어서 천여장씩 나오는 접시, 공기, 컵과 수저
들... 물론 대충 헹구어 자동세척기에 넣고 문만 닫으면 쏴아아~ 90초만에 씻고 헹구고 말려
나온다. 좋은 세상이다. 하지만 무거운 접시들 내리고 올리고 제자리에 가져다 놓고...
하루 죙일 진종일...허리가 휜다.
-몸부림 주방장 이런 생각을 한다. 너무나 많은 음식, 너무나 많은 설거지...
어떡하면 줄이겠나? 아하! 한 접시 요리 만들기는 어떨까? 딱 한 접시에 먹을만큼 적당히...
음... 도시락이겠군... 식당 이름도 <딱 한 그릇> 어떨까? 설거지 걱정 없을텐데...
*그 다음 날은 주방 보조가 하는 잡다한 밑요리 준비. 오이선에 고명 끼워넣기, 떡선에
고기 말아놓기, 새우냉채에 야채말기, 편육쌈 돌돌말기, 채썰기, 다지기, 빻고 찧고 자르고...
꼬부리고 앉아 몇시간이고 반복된 일을 한다. 하품 계속 나오고 머리 부겁고 어깨 무너지고
손톱에 까만 때 엄청 껴서 비누칠 정도론 절대 안 빠진다.
-몸부림 주방장은 나중에 이런 자질구레한 음식은 안하겠다고 결심한다.
이런 쪼잔쩨쩨하고 손 많이 가는 요리는 다 빼버리겠다고 다짐한다.
조리과정이 간단한 요리, 음... 상추쌈이나 찐 감자같은...?
*다음 날은 전체요리 서빙을 맡았다. 객실의 서빙을 맡은 금향이와 선주가 몰려오는 주문을
주방에 대고 외친다. 띵4, 띠5, 딩8... 뭐? 띵이 몇이고 딩이 몇이라고?
머리 나쁘면 평생 고생한다는 말 진리다. 나만 나쁘면 다행이지만 불쌍한 우리 딸들...
무슨 죄랴...
서빙에도 법칙이 있다. 오는 순서대로, 적당한 시간차로, 차가운 음식에서 뜨거운 음식순으로...
갯수 헷갈리고, 순서 꼬이고, 시간 뒤범벅되고, 요리 뒤섞여 주인 아저씨 눈총 엄청 받았다.
-몸부림 주방장은 그래서 또 결심했다. 무조건 단품으로 승부한다. 뭘로 할까? 국밥, 비빔밥,
이참에 가격까지 다 통일이다. 헷갈리지 않게 오직 한 가지로 통일한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이니까!
*대망의 날, 주방장님 쉬고 대신 내가 주요리를 맡았다. 떨리는 마음으로 아침 일찍 갔다.
너무 일찍 가서 식당 앞에서 기다렸다. 종업원들이 하품하며 귀찮은 표정으로 문 열어준다.
앞치마 둘러입고 드디어 불앞으로 서서 찜과 전과 찌개와...
근데... 업소용 가스불 너무 너무 무서워. 일단 가스구가 허벌 크고 화력도 엄청나다.
왼손으로 잠금고리를 당긴 후에 가스라이터총으로 불을 붙이는데 시간을 잘못 조절하면
펑!~하고 불길이 치솟는다. 겉보기완 달리 심약한 몸부림 주방장, 심장이 벌떡거리고
등골이 짠하고, 오금이 마구 저린다. 풍물 안쳐도 저절로 오금이 저린다.
이러다 가스 폭발...?
<솔띠딩 식당서 가스 폭발로 정체불명의 아줌마들(나 말고 모두 조선족 아줌마들이라서) 중태>
쳇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바짝 차린다. 수능시험 볼 때도 이렇게 정신 바짝 차리진 않았다.
하루 종일 불 앞에서 지지고 볶고 찌고 삶았더니... 그대로 익어서 저녁 무렵 보쌈덩어리 되었다.
-몸부림 주방장 드디어 메뉴를 결정한다. 그냥 생으로 먹을 수 있는 요리를 하겠다고...
샐러드와 생절이, 모듬 과일?,... 아예 생식은 어떨까?
몇일 간의 고된 노동을 끝내고 한참 혼란스럽다. 도대체 식당에서 뭘 팔아야할까?
너무 많은 음식, 너무 복잡한 조리과정, 너무 많이 남는 음식말고...
이런 식당은 어떨까?
각자 먹고 싶은 식단을 고른 다음, 거기에 맞는 재료를 각자 골라서, 각자 요리를 해 먹는다.
그럼, 주방장의 역할은?
우헤헤~ 총감독!
먹으면 먹을수록 건강해지고 맛있고 즐거운 요리를 가르쳐주는... 음식 맛만 보는 식당이 아니라
요리하는 즐거움까지 만끽하는, 새로운 요리를 배우는 식당.
먹고 난 상은 각자 치우고, 설거지하고 가기. 남은 음식은 몽땅 싸가지고 가기.
하지만 남기면 벌금.
그런 식당이라면 피곤치 않겠다. 설거지 걱정도, 남은 음식 처리도,
하루 종일 똑같은 요리하지 않아도 되고... ㅋㅋㅋ
근데 나, 지금 식당하려는 사람 맞아?
첫댓글 그런 식당이 일산에도 있으면 외식하고 싶어지겟네요. 왠지 집에서 하는 가사노동과는 다른 느낌일것 같아요. 한번 생각해 보세요.
진짜 맘에 드는데... 한표 찍습니다. 동업 어때요?
그래요? 그럼, 저 그렇게 밀고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