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보증보험 가입을 위해 보험공사를 다녀왔다. 신청 서류를 검토하던 보험공사 직원이
“납세증명서가 필요한 데요!”라고 말했다. 가기 전에 홈페이지에서 서류를 챙겼는데도 하나를
깜박하고 빠뜨린 거였다. 다시 집으로 가던지 세무서에 가서 서류를 떼어 오든지 해야 할
판이니 난감한 생각이 들었다. 내 눈치를 알아차린 담당 직원이 말했다. 근처 선릉지하철역에
가서 무인증명발급을 받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준비해온 서류를 검토하는 동안 직접 가서 발급
해오면 된다고 그 직원은 설명하였다. 지하철역에 무인 증명사진 찍는 곳은 본 적이 있지만
‘무인증명 발급’은 처음 듣는 이야기라 일단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지하철역 안에서 ‘무인증명발급기’라는 안내표지판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늘 그렇듯이
약간 긴장된 상태로 ‘기계’ 앞에 섰다. 필요한 민원 증명을 선택한 후 주민등록번호를 입력하니
엄지손가락의 지문을 대라고 한다. 지문 인식 화면에 엄지를 갖다 댔지만 실패를 거듭했다.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엄지의 위치를 위아래 옆으로 옮겨가면서
여러 번 시행착오를 한 후 드디어 증명서를 손에 쥘 수 있었다. 옆 부스에서 지문인식 실패로
애먹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조금 전 내가 터득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여유까지 보인 후 다시
보험공사 사무실로 귀환했다.
사람이 아닌 기계를 상대로 서류를 발급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내가 필요한 정보가
눈 깜짝할 사이에 국가기관에 의해 확인되고, 서류로 발급되어 내 손에 쥐어지는 이 시대에 내가
살고 있다는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납세증명은 민원인이 신청을 하면 최소한 3일 정도의
처리기간이 필요하였고, 담당 직원이 일일이 서류나 대장에 의해 수동으로 확인한 후에 기관장의
관인이 찍혀야 하지 않았는가. 민원인은 그것을 찾으러 또 기관을 방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서류발급에 대한 수수료까지 부담했었는데, 무료로 서류를 손에 쥐었으니 세상이 바뀌어도
어마무시하게 바뀐 것을 새삼 느꼈다.
얼마 전 조문상가에서 오랜만에 만난 옛 직장 선배 K씨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퇴직 후 십년 쯤 지나고
나니 관공서에 가서 민원서류 한 장 신청하는 것도 까먹었노라고 하던 이야기…. 퇴직한 뒤 공직시절
만졌던 일과는 전혀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분이다. 그때는 그럴 수도 있으려니 하며 대수롭잖게
들어 넘기고 만 이야기였다. 그런데 관공서의 민원서류 발급 과정이 이 정도로 편리해졌다는 것을
몰랐던 내가 창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는데 내가 너무 더디다는 것을 오늘 제대로
깨달았다.
첫댓글 친구의 경험을 우리 친구 여럿이 겪었을겁니다. 그래도 친구는 용케 발급 받았네.
편한 세상인지, 어려운 세상인지 헷갈려요.
음료수 하나 사 마시려고 해도 워낙 종류가 많아 무슨 맛인지를 모르니 어렵고,
커피점에 가도 아는 거라고는 '아메리카노' 밖에 없으니 늘상 그것만 마시게 되고....
점점 어려워지는 세상 같네요.
그래서, "죽으면(?) 늙어야(?) 한다."고 했다지요?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