野의원 "사업권 기간 줄이자"… 1분만에 통과된 '면세점 5년法'

[강헌]

[오늘의 세상]

'면세점 특허 10년→5년 단축法' 심의한 2012년 12월 21일, 國會선 무슨일이…

법안 발의했던 野 홍종학 "롯데·신라 어쩔거냐" 다그쳐
기재부 "기존 1만5000명 고용 승계에 문제" 우려에
"언제 고용 신경 썼나" 면박… 당시 與의원들은 지켜보기만

정치권이 면세점 사업권 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의 관세법 개정안을 2012년 대선과 경제 민주화 분위기에 편승해 졸속 심의·처리했던 것으로 20일 나타났다. 특히 최근 문제가 된 '5년 단축' 조항은 상임위에서 1분 정도만 논의됐다. 이번에 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롯데월드타워점과 SK워커힐 면세점에선 직원들의 고용 등이 문제가 되고 있으며, 규제로 인한 경쟁력 약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국회속기록과 당시 관계자들에 따르면 2012년 11월 2일 새정치민주연합 홍종학 의원이 발의한 관세법 개정안은 제안 두 달 만에 기획재정위, 법사위를 거쳐 2013년 1월 1일 본회의까지 통과됐다. '5년 단축안'이 실제 논의된 것은 2012년 대선 직후인 2012년 12월 21일이었다. 금요일에 모인 국회 기획재정위 조세소위 위원 10명은 "오늘 늦게 끝나면 토요일인 내일 또 나와야 한다"는 얘기를 주고받았다. 11월 초부터 156가지 세법 개정안을 심의해 온 의원들이, 대선 이틀 뒤 다시 막바지 심사에 들어간 것이다.

관세법 개정안 심의에 접어들자, 홍종학 의원이 정부 관계자들을 몰아붙였다. 홍 의원은 "지금 국민은 면세점을 최악의 특권, 특혜라고 생각한다"며 "가장 중요한 건 현재 있는 저 롯데와 신라를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문제다. 그것에 대해서 (정부가) 답을 달라"고 했다. 홍 의원의 관세법 개정안에는 면세점 갱신제를 매번 신규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경쟁 체계로 바꾸고, 기간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하지만 이날 여야는 면세점 내의 중소기업 제품 판매 비율 확대 등 다른 규제를 심의하는 데 상당 시간을 보냈다. 특허 기간 문제는 회의 마무리 단계에서야 다뤄졌다. 기재부는 "면세점 사업의 지속성이 떨어질 수 있고, 신규 사업자 교체 때 고용 인력 1만5000명 승계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며 부정적 의견을 밝혔다. 그러나 홍 의원은 "기재부가 언제부터 그렇게 고용에 신경 썼느냐"고 했다. 여당 의원들은 이런 광경을 지켜보기만 했다.

홍 의원은 기재부 관계자들에게 "보세 판매장 특허 기간 5년 이것은 받아주세요. 지금 일본도 6년(자동 갱신)이라면서요? 그러니까 이것은 받자고요, 그냥" 하며 독촉했다. 이에 기재부는 "알겠습니다" 하며 수용했다. 이처럼 특허 기간을 절반으로 줄이는 문제를 논의하는 데는 불과 1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앞서 11월 16일 조세소위에서도 면세점 문제가 일부 논의됐으나, 이날은 법안을 소개하고 정부 측 의견을 간단히 듣는 데 그쳤다. 1979년 고시 제정으로 1980년부터 면세점 사업이 시작된 후, 33년 만에 면세점 업계의 명운을 좌우할 중요한 결정이 이런 식으로 이뤄진 것이다.

롯데소공점·신세계·두산… 5년 뒤엔 또 어떻게 될지 몰라 - 지난 14일 서울 면세점 사업자로 선정된 롯데면세점 소공점, 신세계백화점 본점, 두산타워(위부터). 현재법에 따르면 이들은 5년 동안만 사업을 할 수 있고, 더 오래 사업을 하려면 5년 뒤 다시 입찰에 참가해 선정돼야 한다. 이 같은‘5년 한시법’은 사업 안정성을 떨어뜨려 한국 면세점 산업 전체의 경쟁력을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김연정 객원기자·조선일보 DB·두산 제공

면세점 허가 기간이 짧아질수록 국내 유명 브랜드의 대외 인지도가 떨어지고, 실내장식 비용이 운영 비용으로 떠넘겨져 업체들의 경쟁력이 떨어진다. 롯데월드타워점은 시설 투자비 3000억원, 워커힐은 1000억원을 날릴 상황이다. 5년마다 면세점 직원들은 고용 불안에 떨 수밖에 없다. 현재 롯데월드타워점과 워커힐의 파견 직원은 약 1900명이다. 면세점 업계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은 백화점과 달리 장기간 판매할 상품을 직매입해야 하고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영업하기 때문에 대규모 자본 투자와 운영 노하우를 가진 기업이 경쟁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며 "그러나 정치권에서 '재벌 때리기의 아이콘(상징)'으로 면세점을 겨냥했다"고 했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이후 야당 의원들이 발의한 면세점 규제 관련 관세법 개정안만 6건이다. 이 가운데는 '한 사업자의 시장점유율을 50%로 제한한다'거나 '특허 수수료를 현재의 100배로 인상한다'는 조항도 있다. 새누리당 소속의 한 기재위원은 "면세점 특허 기간을 10년으로 되돌리려면 거꾸로 '재벌 키워주기'라고 공격받을 수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선정민 기자 |

원선우 기자

[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