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극논쟁, 존재론, 가치론
후한 말, 유학이 시대를 대변할 힘을 잃은 채 도가와 불교에 밀려난 시기가 있었다. 위진 남북조, 그리고 5호 16국. 전란의 시대. 현실 문제와 시련을 해결해주지 못하는 유가는 결국 도가와 불교에게 밀려날 수 빆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뒤 유가의 현실적 대안의 취약함을 말하던 도가는 현학이 극으로 치달은 뒤 오히려 아나키스트적 면모를 띄게 되어 자신들이 유가에 지적했던 실수를 그대로 답습하게 되어 현실감각을 잃어버린채 밀려나게 된다. 송 시기에 다시 주된 학문이 된 유가는 자신들의 부족한 면을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그래서 그들은 도가-불교의 형이상학적 색채를 자신들의 가치론적 시각으로 녹여낸 태극도설로 세상의 이치를 설명하려 함과 동시에 이를 윤리 도덕적으로 풀어내고자 했다.
그런데 이를 수용한 조선에서는 이러한 태극도설을 도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견해가 충만했다. 주희에 도달해 자연과학적시각이 밑바탕이 된 송 시대와는 달리 당시 조선은 아직 그러한 점이 충족되지 못했다 본다. 그래서일까, 당시 사람들은 태극도설을 해석하는 방향에서 이것을 자꾸만 이전까지 주류로 존재해 익숙한 시선으로 자리잡은 형이상학 존재론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저 너머에 있는 것을 상정하고 초월을 말하고…
이언적의 입장에서 구체적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한 이 모습은 탐탁치 않을 뿐더러 심한 잘못으로 비춰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편지에서 ’구체적 현실과 떨어지면 안되는 것‘ 이라는 의지를 내비친다. 가치론적 시각. 유가는 항상 구체적 현실에 주목하고 여기서 비춰지는 문제점에 윤리적 대안을 주며 현실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이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초월이나 사후의 세계는 중요한 것이 아니며 언급할 일도 아니었다. 그들의 이상향은 현실의 여러 난관을 해결하여 현실에서 이뤄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가는 당연히 가치론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일어난 학문이며 그 이상을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삶을 벗어난 경계의말은 그들에게 공허할 뿐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며 힘들거나 지칠 때 삶이 주는 고통에 좌절하거나 고꾸라질 때가 있다. 이번 학기를 살았던 나조차도 번번히넘어지고 잦은 잘못을 저질렀다. 이러한 어려움 속에서, 삶이 주는 불합리함과 고통 속에서 유학을 배운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초월을 말하기보다 속세에 몸을 던지고, 구체적 현실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지만 다시 돌아가야 하는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는 잠깐 삶의 치열함에서 벗어날 수 있지만 다시 돌아올 수 밖에 없다. 힘든 삶. 그렇지만 이를 딛고 일어날수 있는 힘. 이것은 유가가 태극논쟁, 존재론적 시각이 아닌 가치론적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우리의 삶을 끌어 안을 때 볼 수 있는것을 아닐까. 결국 우리가 다시 우리 삶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렇게에 태극논쟁에서 볼 수 있는 모습에서 우리의 현실에 눈돌리지 않는 법을 배워보면 어떨까.
첫댓글 확인했습니다. 동계 방학 즐겁게 지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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