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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난 네가 오늘 나타난 순간 널 용서했어.”
내 말이 그렇게 커다란 기쁨인거니, 그렇게 환하게 웃지 좀 마. 네가 정말 너무 예쁘게 보이잖아. 란 뜻이 담긴 눈이 그녀를 향한다. 그런 내 뜨거운 시선에 담긴 뜻을 이해한 것일까, 그녀가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다.
"고마워. 그걸로 됐어. 그럼 나 먼저 갈께."
떠나려는 그녀의 팔목을 붙잡았다.
"오늘 차도 안가지고 왔으면서 어떻게 혼자 간다는 거야. 함께 가자, 내가 집까지 데려다 줄께.“
"아니 괜찮아. 벌써 저기 친절하게도 날 마중 나온 사람들이 있어."
그녀가 말과 함께 고개를 옆을 보란 듯이 힐끔 거렸다. 나의 고개가 그녀가 가리킨 곳을 쫒았다.
"누구?!"
언제 왔는지 아님 아까 전 부터 계속 거기 있었는지 깔끔한 검은 슈트를 입은 건장한 체격의 두 백인남자가 우리가 있는 곳으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발치에 부동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 어두운 야밤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다는 건 아마도 멋으로 그런 것일 까 아님 자신들의 얼굴을 공공장소에서 노출하기 꺼려지기 때문일까. 그들이 풍겨대는 은밀한 기운을 느낀 나의 감각이 후자라고 말해준다.
"저...저 사람들은 누구야?"
그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자니 팔등에 소름이 돋는 기분이다. 마치 잘 갈아둔 서슬 퍼런 낫을 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좋지 않은 기운이다. 내가 사람이 풍기는 기운에 대해 잘 알거나 느끼는 건 아니지만 저들은 그 누가 일견한다 해도 나와 같은 기분일 것이다.
"박사님이 보낸 사람들이야. 그러니 내 걱정하지 말고 새우 너 조심히 잘 들어가. 내가 랩에서 나오면 바로 전화할게..조금만 기다려줘 조만간에 나올 거야, 그러니 오늘처럼 쓸데없는 짓 다시는 할 생각 하지 말고."
말 대신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아직 까지 내 두 눈이 그녀를 걱정하는 듯이 불안감을 담았을까, 아님 이렇게 헤어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담겨 있을까, 어째든 이런 나에게 위로가 필요하다고 생각이 되었는지 그녀가 다가와 날 꼭 안아준다.
"보고 싶을 거야."
그녀는 그 말을 끝으로 아직 흔들리는 눈빛을 지우지 못한 나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돌려 그 사네들에게 향했다.
"아한아! 나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 마!"
나의 외침에 걸음을 멈추고는 그녀가 뒤로 돌아 싱긋 웃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녀의 화사한 마지막 웃음이 그래도 이렇게 헤어져야 하는 것에 대한 진한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희석시킨다.
"바보야...정말 기다리는 게 싫단 말이야."
혼잣말이 끝났을 무렵 아한이가 그 사네들의 호위 아닌 호위를 받으며 사라진다. 스치듯 본 그 사네들이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무척이나 깍듯하면서 조심스러운 것으로 보아 역시 그녀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여자란 사실이 내 마음속 안에 소외감이란 바위를 만들어 무겁게 짓누른다.
"그냥 평범하기가 그렇게 어려운 거니?"
그녀가 사라져버린 곳에서 시선을 돌려 검붉은 강을 쳐다보았다. 마치 앞의 어둡고 캄캄한 강의 색이 내 마음속의 그것과 닮았다란 생각에 입가에 쓴 웃음이 만들어진다.
“제기랄!”
내 자신에게 커다란 분노를 느낀다. 난 어디까지나 정말 평범하다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내가 일부로 평범하게 살고 싶어 평범한 건 절대 아니었다. 정말 솔직히 말하는데 내가 내 자신을 이 세상위에 평범하게 맞추려고 한 게 아니라 이 세상이 나를 평범한 게 만든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조금만 더 나보다 잘났거나 못났으면 난 평범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 만족했다. 내가 평범한 것에 대해 단 한 번도 그 누구에게도 투정하지 않았고 때 쓰지 않았다. 그런대 인정하기 싫지만 아한이를 만난 이후로 평범한 내 자신이 너무나도 싫어진다. 그래 나와 반대로 너무나도 특별한 그녀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지는 내 평범함에 이젠 신물이 날 지경이다.
“휴...”
긴 한숨을 내 쉰 후 발 걸음을 집으로 돌린다. 시포트를 떠나 어느덧 큰 길로 접어들었다. 옐로캡을 부르려다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만 두었다. 생각보다 날씨가 그렇게 쌀쌀하게 느껴지지 않아서 그랬을까, 아님 복잡한 생각의 정리가 필요 했을까.
“그냥 걷자.”
시포트에서 내가 살고 있는 소호까지는 빠른 걸음으로도 삼십 여분 걸린다. 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느새 얼마 걷지도 않은 것 같은데 내 집으로 향하는 일직선 길인 브로드웨이 초입에 들어섰다. 아마도 깊은 생각에 빠져 시간을 잊은 것이겠지. 브로드웨이가 시작되는 맨하탄 다운타운은 파이낸셜 디스트릭이다. 바로 세계의 금융을 쥐락펴락 하는 중심가 이다. 주중 낯 시간에는 사람의 어깨를 스치면서 지나가야 할 정도로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지만 늦은 시간이라서 그런지 거리는 한산하기만 하다.
“여기는......”
브로드웨이를 따라 걸어 올라가다, 문득 월 스트리트가 만나게 되는 길목에서 걸음이 멈추어 졌다. 그리곤 무엇이 떠올랐는지 천천히 내 시선이 월 스트리트의 왼쪽 끝자락을 쳐다본다.
“월드 트레이드 센터…….”
이천일 년 구월십일일 미국 역사상 가장 처참했던 테러가 일어나 수천의 소중한 목숨을 앗아간 곳, 현재는 그라운드 제로라 불리며 다시 예전에 영광을 찾기 위해 재 재건축을 하고 있다. 단지 개인적으로 아쉬운 건 예전처럼 백 몇 십층 짜리 고층 빌딩이 아닌 쌍둥이 빌딩을 네 개로 나눠서 짓는 다는 점이다. 문득 아까 전 술집에서 그녀가 예전에 쌍둥이 빌딩의 테러를 예지했다고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믿어지지 않은 군…….이걸 보았더라고 했지.”
다시금 그녀는 정말 평범하지 않은 여자란 생각이 내 머릿속에 각인 된다.
“어떻게……. 사람이...그럴 수 있을까?”
고개를 흔들고는 다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녀의 생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내 자신 스스로도 납득할 수 없다. 이제 겨우 만난 지 세 번. 처음엔 그녀가 내가 좋다고, 그러니 사귀자고, 그래서 장난 반 시작한 만남이었는데. 내가 지금 그녀에게 느끼는 이 조급한 감정은 무엇인가. 이런 생각, 저런 생각 하면서 걸음을 얼마나 옮겼을까. 어느덧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앞에 다다랐다.
“철컥.”
집안으로 들어 선 후 거실 불을 켰다. 그리곤 신발을 벗으려고 허리를 굽히려는 순간 무언가 내 감각에 이질 적인 것이 잡혔다.
“헉?!”
난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내 아파트에, 혼자 거주 하고 있는 내 집에 정체 모를 중년의 백인 남자가 내가 평소 즐겨 앉은 의자에 앉아 나를 마주보고 있는 게 아닌가.
“누...누구...도둑?!”
나의 놀란 외침에도 느긋이 그 남자가 입가에 웃음을 만들며 손을 흔든다.
“헬로우 미스터 핸.”
나의 라스트 네임을 부르며 마치 날 기다렸다는 듯이 침착한 그의 물음에 단순한 도둑이란 생각이 사라졌다. 정신을 조금 가다듬고 보니 수려한 용모의 중년 남성이다. 그의 금발 머리는 단정하게 뒤로 넘겨져 있었고 백인이 아니랄까봐 오뚝한 코와 현기를 담은 듯 깊은 푸른색의 눈이 인상적이다. 약간은 마른 듯 얼굴이 날카로움을 가지고 있었으나 그가 쓰고 있는 검은 뿔테 안경이 그 날카로운 인상을 희석 시켜준다. 그가 입고 있는 고급스러워 보이는 깔끔한 모노 색깔의 정장의 차림새, 도둑 이라고 생각하기는커녕 오히려 내 집이 그의 럭셔리 한 모양새에 비해 초라한 느낌마저 든다.
“누...누구시죠?”
아직도 놀란 마음을 진정 시키지 못하고 있는 나를 미소로써 내 마음의 긴장을 풀어 주려고 했는지 그 중년 남성의 입가에 걸린 미소가 짙어졌다. 미소와 함께 그의 입가에 만들어 지는 보조개가 무척이나 잘 어울린다.
“우선 미안하네. 주인 없는 집에 이렇게 불쑥 찾아오게 되어서. 자 우선 그렇게 계속 서 있을 건가? 이리로 앉지.”
내 집을 마치 당신네 집 인양 주객이 전도된 상황에 얼떨떨한 표정이 만들어 졌다.
“먼저 정체를 밝히지 않은 다면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나의 협박이 어수룩했을까, 그의 입가에 만들어진 미소가 사라지더니 곧이어 난감 하다는 듯, 한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어루만진다.
“이런 생각지도 않게 불청객이 되어 버렸구먼, 하긴 뭐...그럴 수 있지....어쨌든 정체랄 것도 없고 난 단지 에이미의 아버지 되는 사람일세.”
"에이미의 아버지?!”
잠시 생각에 잠기었다. 하지만 내 주위엔 친구도, 회사 동료도 에이미란 이름을 가진 사람이 없다.
“뭐 잘못 찾아오신 거 아닙니까?! 전 에이미가 누군지 모릅니다.”
“아! 맞아! 그렇군...자네는 우리 에이미를 우아핸이라고 부른다고 했지...하하하 맞어! 우아핸!”
"!"
"그게 코리안 말로 뭐 엘리간트 하다는 뜻이었나 하여튼 뭐 그런 뜻이라 했는데...말이야.”
몹시 당황해 할 수 밖에 없었다. 아핸이면 우리 발음으로 바로 아한이 아닌가, 아한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 이 야심한 늦은 시간, 아무도 없는 우리 집안에 도대체 어떤 이유 때문에 몰래 들어온 것일까, 하물며 앞의 근사한 중년 백인 남성이 아한이의 아버지 되는 사람이라니, 일견해 보아도 앞의 있는 사람은 백인이고 아한이는 나와 같은 한국 사람이다. 이런 나의 의문을 눈치로 알아 차렸는지. 아한이의 아버지라고 밝히 그가 싱긋 웃으며 오해를 풀어 준다.
“하하. 당연히 난 생부가 아니라 양 아버지 일세. 그러니 그만 그렇게 의심을 접고 이리 와서 앉게, 내 천천히 다 애기해 줌세.”
"아?...아...네."
우선 아한이의 양아버지란 말에 어느 정도 적대감이 완화가 된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가 나를 찾아온 방법과 시간대에는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치에 맞은 것이 아니기에 반가움 보다는 적대감이 많았고 그 적대감 보다는 의아함이 더욱 컸다.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세우 한 이라고 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쨌든 양부라고 해도 그녀의 아버지다.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드리고는 그를 마주보고 앉았다.
"역시 코리안 들은 매번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참 예의가 좋아..하하 어쨌든 그래 뭐 사실 처음 만나는 건 아닌데 말이야. 하긴 오래 되었으니 자네가 기억을 할리는 만무하지....한 십 육년 만인가? 그래도 매번 자네의 대한 소식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와서 인지 그리 오랜만이란 생각은 들지 않은 군."
"!"
내 귀를 의심했다. 이게 첫 만남이 아니라니? 십 육년 전이라니? 내 소식을 귀가 따갑게 들어 왔다니? 두 눈을 치켜뜨고 있는 나의 모습이 부담스러웠는지 나의 의문이 터져 나오기 전 서둘러 화제를 바꾼다.
"여러 가지 궁금하겠지만 애기를 나누다보면 자연스레 옛날 애기가 나올 터이니 먼저 조금만 참고, 나의 대한 기억이 전무 한 걸 보니 내 먼저 자네에게 내 소개부터 해야겠네."
나의 고개를 끄덕임으로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나의 이름은 플린 아이젠 골드버그이네. 현재 뉴저지에 있는 유전공학 연구소에서 과분하게도 소장을 역임하고 있지."
"그러시군요. 전……."
그의 소개가 끝나고 나의 대한 소개를 하려다 멈칫 했다. 앞의 플린 이라고 자신의 이름을 밝힌 사람이 손을 들어 자신의 말을 끊지 말라고 한 제스처도 그렇지만, 아까 전 나의 대해 귀가 따갑게 들어온 남자에게 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것도 한 몫 했다. 문득 아한이가 나의 과거사를 꿰뚫고 있는 의문에 대한 실마리가 잡히는 느낌이다.
"자 소개가 끝났으니 거두절미하고 내가 지금 이 야심한 시간에 자네를 찾아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명해 주겠네. 뭐 사실 이유는 간단하네."
잠시 뜸을 들인다.
"내가 오늘 자네를 만나는 것을 절대로 에이미가 알아서 안 되기 때문일세."
"무엇 때문 입니까? 그녀가 알면 안 된다니……."
"왜냐하면……."
이번엔 뜸이 아니라 망설인다. 근데 말을 해야 하나 라는 느낌이 아니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을 해야 하나 라는 표정이다.
"그건 에이미가 알게 되면 상당히 내가 곤란해지거든."
고심한 끝에 나온 말이라고는 무척이나 단순한 대답이다.
"무슨 말인지는 알겠으나. 그 이유 때문이라면 굳이 오늘 이렇게……."
갑작스럽게 오셨어야 했습니까. 란 말을 흐렸다. 아무래도 그녀의 양아버지이란 사실이 적극적으로 묻지 못하게 한 것 같다. 어쨌든 의미는 충분히 잘 전달 된 것 같다.
"자네도 에이미에게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그녀는 사람의 미래를 볼 수 있지 않나. 그렇기에 평소에는 그녀가 혹여나 내가 자네를 만나게 되는 것을 미래를 통해서 보게 될까봐 그리하지 못했네. 사실 뭐 그녀가 알면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에이미 또한 내가 자네를 만나게 되는 걸 원치 않았거든."
플린 역시 짐작했던 대로 아한이의대해서 잘 알고 있다. 왜 그녀가 나와 플린이 만나게 되는 것을 원치 않았냐고 물어 보고 싶었지만 그의 말을 자르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그의 말대로 애기가 차차 나오면 알 수 있겠지, 플린이 짧은 한숨을 내쉰다. 왜인지 그 한숨 안엔 의붓딸에 대한 작은 허탈감이 내재된 것 같다.
"근데 오늘 에이미가 평소라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했네. 그렇기 때문에 자네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뜻하지 않게 생겼다고 할 수 있지."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뭐 별건 아니지만 오늘 그녀가 비주얼라이즈를 세 번이나 무리하게 한 것이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자네가 날 만나게 되는 것에 대한 미래는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데미지가 크기에 보고 싶어도 볼 수 없을 거야. 어차피 오늘이 지나면 내가 자낼 만난 사실은 과거가 되어 버리니, 이 찬스를 어떻게 내가 그냥 넘기겠나. 뭐 사실 그것도 그렇지만 시급하게 내 자네를 만나서 꼭 해주어야 하는 말도 있었고 말일세.”
이해 할 수 있다는 듯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런대도 아직 납득할 수 없는 것이 더욱 많았다.
"그렇게까지 하시면서 절 찾아와야 해 주셔야 하는 말이 무엇입니까?"
나의 물음에 그의 시선이 내 책상 모퉁이에 올려 진 재떨이로 향한다. 엊그제 연락이 없는 아한이 때문에 다시 시작한 담배와 함께 집안 구석 어디선가 내 팽겨져 있던 것을 찾은 거다.
"자네 담배를 피우는 것 같으니 괜찮다면 여기서 한대 피워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대답과 함께 책상위에 있던 재떨이를 가져다 그 앞에 놓아 주었다. 코트 안에서 빨간 말보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이고는 깊숙이 들이 마신다. 진한 니코틴 냄새에 나 역시 담배의 유혹을 느꼈지만 앞의 사람이 사람인지라 참을 수밖에 없었다.
"휴, 내가 자네를 찾아온 이유로는 첫째, 연구소 책임자로서 자네에게 몇 가지 경고를 하기 위함이고 둘째로는 에이미의 아버지로써 충고를 하기 위함이라네."
그 말이 그 말이다, 좋은 말로 하면 충고이고 심한 말로 하면 경고이다. 뭐 어쨌든 좋았다. 앞의 이 남자라면 분명 내가 알고 싶어 하는 것들을 속 시원하게 대답해 줄 것 같으니 말이다.
"말씀하시기 전에 제가 먼저 한 가지 물어도 괜찮으시겠습니까?"
나의 물음에 잠시 쉬웠던 담배를 입가로 다시 가져간다. 그리곤 고개를 살며시 끄덕인다.
"아까 전 저를 십 육년 전에 만났었다고 말씀하셨는데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두 눈을 똑바로 들어 응시했다. 아한이와는 달리 물어 본 것이 허무할 정도로 너무나 쉽게 대답한다.
"물론이네, 안 그래도 내가 자네에게 말하려는 것들은 어차피 자네 역시 모든 사실을 알고 있어야 이해 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럼 애기 해줌세……. 그 이야기를 하기위해선 우선먼저 에이미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하지 그래야 전반적인 이해가 쉬울 테니까."
또다시 담배 연기를 길게 내 쉰 후 그의 말이 이어졌다.
"에이미는 우리 과학 연구소에서 아주 어릴 적부터 자라 왔네, 아마 그녀가 보통사람들 보다 다른 특별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건 아마 십육 년 전쯤 그녀가 한 여섯 살 정도이었을 거네, 어쨌든 그녀가 가진 다른 사람보다 특이한 뇌의 활동 능력과 특이구조의 DNA 등장에 그 당시 우리 연구소 과학자들은 상당히 고무적이었지, 우리 연구소는 인체의 대한 유전공학 및 생명공학 이외에도 아주 오랜 시간 인간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해 연구 해 왔었기 때문에 에이미는 우리 과학자들에겐 희귀 하면서 또한 엄청난 연구 대상 이었지."
아한이를 마치 연구 대상을 위한 하나의 소재로서 말하는 듯 하는 인상에 내 미간이 좁혀졌다.
"그녀의 능력이 점차 밝혀지면서 우리 연구소가 무척이나 분주 해 졌지, 그녀의 대해 하나하나 알아 가면 알수록 뇌의 관한 모든 의학의 역사 와 새로운 발견에 대한 DNA 지도의 정의를 하루에도 몇 번씩 고쳐나가야 했으니까."
어느새 필터까지 피워진 담배를 재떨이에 문질러 끄고는 다시 나를 마주보며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런 소중한 에이미에게 문제가 생겼어 그녀가 우리 연구소로 오게 된 다음 몇 달 후 즘, 활발하고 명량하기만 했던 그 아이에게 우울증 증세가 발견 된 거야."
"우울증 말 입니까? 아니 무슨 어린 아이에게……. 그런……."
나의 물음에 그의 입가에 쓴 웃음이 만들어 졌다.
"표면적으로 먼저 이해하기 쉽게 말한다면, 알다시피 그녀는 평범한 아이가 아니지 않나...아마도 계속된 실험에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많이 지친게지, 또한 또래와 한창 어울리며 지내야 하는 나이에 지겨운 연구소 생활이 견디기 힘들었을 테야 물론 우리는 노력을 한다고 했지만 과학자의 새로운 것에 대한 학구열 같은 것이 어디 그 어린 마음을 다 헤아릴 수 있겠나, 언제나 웃기만 했었던 에이미는 어느 날 갑자기 말 수가 적어지더니 일체 말을 하지 않게 되었고, 끼니도 계속 거르게 되니까 우린 정말 난처해 할 수밖에 없었네. 지금 돌이켜 생각을 해보아도 우린 우리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에이미에게 정말 못 할 짓을 많이 했네."
안쓰럽다. 너무나 특별했기에 그런 힘든 유년 생활을 그녀가 보냈어야 했다니 말이다. 플린이 다시 코트 자락 안에서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담배를 필터까지 피운 게 방금 전인데, 그가 엄청난 체인 스모커 란 사실이 마음속에 각인된다.
"우리 연구소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상당히 난처해하고 있을 때 한국에서 연구소 의료 기기를 납품하는 세일즈 맨 한 사람이 우리 연구소에 찾아왔네."
"?!"
무언가 머릿속으로 번쩍였다. 그래 이건 충격이다. 곧이어 머릿속이 새 하얗게 되어 버린 것 같다.
"그...설마...그때 한국에서 온 세일즈맨이 혹시 저희 아버지 이었었나요?!"
나의 물음에 플린의 입가에 보조개가 만들어졌다.
"이제 기억이 조금 나는 모양이군, 그래 맞네. 그때 자넨 아버지와 함께 우리 연구소에 왔었다내, 그 땐 자네 역시 에이미와 같은 여섯 살 남짓한 꼬마였네."
"!"
그래 희미하고 불투명하지만 어렴풋이 기억에 난다. 아버지가 오래전 한국에서 의료기기를 납품 하시는 회사에서 근무 하셨을 때. 딱 한번 아버지를 따라 온 가족이 출장 반 여행 반 큰맘 먹고 뉴욕으로 간적이 있었다. 그리고 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때 아버지께서 어느 한 연구소에 사업차 방문 하셨을 때 내가 함께 했었다. 그래도 그렇지 그건 벌써 십육 년 전, 내가 여섯 살 때의 일이다. 정말 기억해 내려고 해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아버지와 함께 연구소에 갔었던 짧은 단편의 기억뿐이다.
"부탁드립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제가 어떻게 아한이 아니 에이미를 만나게 되었는지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의 외침에 플린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곤 두 눈을 흐릿하게 만들며 예전의 그 때로 돌아가는 듯하다.
* * *
[플린의 이야기]
십 육년 전 어느 무더운 여름 이었다. 세계 최대 규모와,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권의적인 과학자들이 포진 되어 있는 명망 높은 생명공학 및 유전공학 연구소가 뉴욕 맨하탄에서 차로 삽 십 여분 정도 떨어진 뉴저지 버겐 카운티, 헤켄섹 시티에 있다.
"그래 에이미는 조금 어떤가?"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플린이 깜짝 놀라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람의 인기척이 없었던 게 아니라 플린이 깊은 생각에 잠겨 있어서였다.
"아 소장님...아직....좋지 않습니다."
잠시 말을 끊고 난처하다는 듯 헛기침을 내뱉은 후 플린의 말이 이어졌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그녀의 여린 심정으론 견디기 힘듭니다. 시급하게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벌써 열흘째, 그녀가 현재 보여주는 우울증에 심각도는 현재 보통사람이라면 아무 때나 목을 매고 자살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 입니다."
"그래? 그럼 저렇게 된 이유는 밝혀졌나?"
"아마도 연속된 환경에 의한 변화와 지속된 검사에 대한 스트레스라고 밖에는 지금 딱히 드릴 수 있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도 그렇지 그동안 잘 견뎌 왔지 않나? 불평불만 하나 없던 아이인데, 참 신기하군. 어떻게 저렇게 하루아침에 백팔십도 다르게 변한단 말인가? 며칠 전까지 그렇게 환하게 웃던 아이가 자고 일어나 보니 죽음의 그림자를 얼굴에 뉠 정도로 우울증을 겪은 다라니.. 이런 건 나 역시 처음 보는군."
"죄송합니다."
플린의 풀이 죽은 모습에 소장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만들어졌다.
"자네가 죄송할 이유야 없지...어쩌면 그게 우리 욕심이 자초 한 결과 일 수도 있지 아닌가? 휴..하지만 이걸 어찌한다. 이번 정부 보고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말이야."
소장이 금테 안경을 고쳐 쓰며 유리벽 안쪽을 들여다본다. 소장의 시선이 닿은 곳엔, 하얀 침대 위에 앉아 있는 조그마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하얀 눈처럼 새 하얀 옷을 입고 있는 아이의 표정은 확인 할 수 없었다. 그녀가 고개를 무릎 안으로 깊숙이 넣었기 때문이다. 치렁치렁한 검은 생머리가 침대 위 시트에 닿을락 한다.
"식사는……."
소장은 밥을 먹었냐고 물어보려다 질문을 바꿨다. 저 멀리 침대 옆 테이블에 오른 그녀의 식사로 짐작 되는 것들이 가져다 준 그대로 있는 걸 본 것이다.
"언제 마지막으로 먹은 게야?"
플린이 긴 한숨을 내 쉬었다. 슬그머니 본 그의 얼굴 또한 에이미와 별 반 다를 거 없이 며칠사이에 무척이나 수척해 졌다고 생각하는 소장이다.
"어제 아침에 먹은 게 전부 입니다. 근데 그것도 소량만……."
소장이 플린의 말을 가로 막았다.
"에이미 말고 자네 말일세."
소장의 물음에 플린의 입가에 어색한 미소가 만들어 졌다.
"아..전 괜찮습니다만...에이미가……."
"에이미도 에이미지만 우선 자네부터 좀 챙기게, 주치의가 그래서야 환자를 제대로 돌보겠나? 좀 수염도 깎고 말일세."
소장의 말에 플린이 한손을 가져다 자신의 수염을 어루만진다.
"아..네. 알겠습니다."
"내가 나오미 박사를 불러 줄 테니까 우선 좀 쉬게."
"괜찮습니다. 걱정 감사하지만 정말 전 괜찮습니다."
그의 시원스런 대답에도 무엇이 못 미더운지 소장은 혀를 끌끌 차며 뒷짐을 하고선 뒤로 돌아선다.
"알겠네, 그럼 부디 무리하지 말고 에이미가 차도를 보이면 나에게 보고 해주게."
"네 알겠습니다."
플린의 대답을 끝으로 소장이 나가자 그가 풀썩하고 쓰러지듯 다시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뿔테 안경을 벗고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한참을 자신의 안면을 자해하듯 어루만지던 플린이 손가락 사이로 유리벽 너머를 쳐다본다.
"에이미..."
플린 역시 에이미와 마찬 가지로 지칠 대로 지쳐 있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진 간단한 MRA 와 CT 촬영는 고사하고 몇 시간씩 소요되는 CAT 스캐너를 이용한 검사 와 ADS, ATA 검사 또한 거기서 다가 아니라 심심하다 싶으면 유전자 감식원 으로 부터 호출되어 DNA 표본을 재확인 한다며 축출, 몇 십 가지의 이름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수많은 검사를 치러 왔고 또 치러 내야 한다.
"제기랄!"
그가 생각해도 이건 그녀에게 너무나도 가혹 한 짓이다. 성인이 치러도 힘겨워 할 이런 검사를 하루에도 몇 번씩, 인류의 새로운 DNA의 대발견이라는 명목아래 그녀를 몇 번씩 의료기기 안에 눕혀야 했던가. 오히려 플린은 우울증 정도로만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고마움 까지 느껴졌다. 에이미 보다 더 최악의 상황의 환자도 겪어본 플린이기 때문이다.
"에이미..."
플린이 무슨 결심을 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후 유리벽을 통하는 문 안으로 들어선다.
"스르륵."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한 발짝, 두 발짝 어리고 어린 그녀에게 다가선다.
"에이미……. 괜찮아? 배는 안 고파?"
"......."
어느덧 열흘째 이런 식이였다. 그가 묻고 그녀는 답이 없다. 무언가 재밌는 것을 티브이에 틀어주어도 아무런 반응이 없었고, 그녀가 처음엔 너무나도 좋아했던 뭐 코리아 스낵의 초코파인가를 힘들게 구해다 주어도 이제는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많이 힘들었지? 이젠 더 이상 검사 안 하게 할 게, 이 아저씨 믿어도 돼."
플린의 말에 이번엔 그녀가 반응 한다. 고개를 살며시 들고는 가로 젓는다. 그녀의 얼굴이 많이 야위어져 있다. 그녀의 눈물을 가득 담고 있는 커다란 눈동자가 바르르 떨리며 불신의 빛을 담는다.
"......."
플린은 에이미가 말을 하지 않아도 그녀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아마도, 이젠 그런 거짓말 따위는 믿지 않아, 난 더 이상 아저씨를 믿지 않는단 말이야 란 외침이다. 그래 차라리 그렇게라도 소리쳐 봐라 그렇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있지 말고 아니면 화를 내던지, 때를 쓰던지 그렇게 해라. 그런 외침 보다 더욱 무서운 게 너의 침묵이다.
"미안하다 에이미."
또다시 가슴속에 큰 바위가 자리한다. 사실 플린은 원하지 않았다. 그녀 좀 내버려 두라고 조금 쉴 수 있게 해 달라고 그렇게 외치고 외쳐도 그래 할 수 있는 건 고작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는 것 뿐 이었다. 마음 같아선 그녀를 등 뒤에 업고는 연구실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었다. 푸른 하늘 아래, 파란 언덕에 자유롭게 그녀를 놓아주고 이런 감옥이란 연구소에서 자유롭게 해주고 싶었다. 그런 연민 아닌 연민이 플린에게 있었고, 그녀의 고통을 함께 감수할 그런 애정이 이 연구소에서 그 누구보다 많았다.
"……."
하지만 플린은 그리 할 수 없었다. 에이미가 가진 잠재력에 대한 연구의 값어치가 인류 의학계의 새 역사를 쓰고 사람의 초자연적인 능력에 대한 비밀의 열쇠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녀가 아주 어릴 때부터 보아온 그는 그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노벨 생리의학상이라도 타고 싶은 건가, 그 비밀의 열쇠를 하루라도 더 빨리 풀고 싶어 하는 학구열에 반쯤 미친 수십의 연구원들이 이곳에 있고 자신 역시 그 중 한 사람이라는 것 또한 부인 할 수 없었다. 자신이 맡은 임무는 그녀가 언제나 최상의 컨디션으로 모든 검사에 차질 없이 치러 내도록 하는 것이다.
"에이미 아저씨 바로 저기 있을 테니까, 혹시 뭐 필요 하면 바로 불러줘."
"……."
예상 했던 대로 아무런 반응이 없다. 그런 그녀의 여린 등을 몇 번 토닥이고는 하얀 방을 나간다.
"정말 난감하군."
또다시 긴 한숨이 플린의 입가에서 내 쉬어 질 때, 책상위에 있는 전화기의 아홉 번째 라인의 불이 깜박 거린다.
"젠장!"
구번 라인이면 연구소 삼층에 있는 유전자 감식반이다. 필히 전화를 받지 않아도 이곳으로 전화한 이유를 알 수 있었기에 그의 입에서 욕지거리가 튀어 나온 것이다. 수화기를 들었다.
"골드버그 입니다."
"안녕하십니까. 과장님.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서……."
잔소리다. 더 이상 들어 봤자 어차피 짜증만 치솟는다.
"제인! 미안하지만 오늘도 안 되겠네. 지금 에이미에겐 그 무엇보다 휴식이 필요하네, 그녀가 괜찮아지면 내가 먼저 연락 하겠네."
그녀의 대답은 들을 필요 도 없다는 듯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또다시 머리가 지근거리는지 자신의 한 손으로 이마를 꾹 눌러본다.
"!"
또다시 전화기가 깜박거린다. 제인이 다시 전화한 건 아니다. 이번엔 칠 번 라인의 불이 깜박이니 말이다. 플린이 윗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왜냐하면 아마도 이번에 전화를 한 사람은 아까 제인처럼 그가 함부로 대 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기 때문이다.
"네 골드버그 입니다."
"수고하네 플린"
"안녕하십니까. 부장님."
"다름이 아니라, 저번에 에이미의 임상 혈액 채취 한 결과가 오늘 나왔는데 글세...보니까 백혈구 수치가 상당히 높더라고, 그러니 더 자세한 결과를 위해 골수 조직 검사를 해야 하니까, 오늘 오후 두시까지 준비하고, 아..아참! 그 H대학 병원에 연락한 다음 혈액종양내과의 스티븐 박사와 연계해서 함께 랩 F-3로 와주게나."
상사라도 마찬가지다, 일언지하에 거절한다.
"죄송합니다. 지금 에이미의 정신 상태가 언스테이블 합니다. 지금 이 상태로는 그 어떤 검사도 불가합니다."
잠시 부장의 말이 없다. 다혈질의 부장이 또 무슨 독한 말을 내 뱉을까, 뭐 두렵지는 않았다.
"자네가 지금 뭘 오해 하는가 본데 플린, 이건 부탁이 아니라 오더 일세. 자네는 자네가 맡은 봐 그녀가 언스테이블 하다면 스테이블 하게 만드는 게 자네 역할이고 우리는 우리가 맡은 바 그녀의 건강 상태를 첵크하는 게 우리 역할이야! 그러니 괜한 고집 부리지 말게! 역시 유태계 들은 정말 쓸데없이 고집이 세다니까!"
"쾅!"
플린이 수화기를 부서져라 내려놓았다.
"개새끼 정말!"
입에서 거친 욕지거리가 튀어 나왔다. 자신의 출신을 들먹거려서 화가 난 건 아니었다. 순간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터 콤을 눌렀다.
"린지! 지금 당장 랩 안으로 들어와!"
"네 교수님."
얼마 지나지 않아 꼬불거리는 갈색머리가 인상적인 귀여운 얼굴의 이십대 초반의 여성이 랩 안으로 들어섰다.
"에이미 좀 잠시 부탁해. 잠깐 소장님을 만나봐야겠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호출 넣어주고! 절대로 여기 내 허락 없이는 아무도 들이지마!"
"네 교수님."
그녀의 대답을 끝으로 플린은 하얀 가운을 걸치고는 책상 구석에 내 팽개쳐져 있던 그의 아이디카드를 목에 걸쳤다. 그리곤 서둘러 연구소 복도로 나왔다.
"개새끼 상사만 아니면!"
원래 플린은 입이 거친 사람이 아니다. 그가 지금 차지하고 있는 연구소 과장자리는 세계에서 알아주는 이곳 유전공학 연구소에서 학벌로만 절대로 앉을 수 없는 자리다. 언제나 자기의 감정보다는 이성적인 냉철한 사리판단이 앞서야 하며 또한 모든 이치에 적합한 덕망 깊은, 모든 사람들에게 추대된 인물만이 앉을 수 있는 자리인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이렇게 이성을 잃고 욕설을 퍼 부어 대는 것으로 봐서 플린이 얼마나 지금 감정적이 되었는지 짐작 할 수 있다. 소장실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이 빨라지고 있을 때 즘 이었다.
"쿵!"
그의 허리께 너머로 무언가 부딪혔다. 시선을 돌려 넘어진 것을 쳐다보니 그건 에이미 또래의 동양 아이였다.
"알 유 오케이?"
"네? 아네. 미안합니다."
코리안? 그 조그마한 녀석이 내벹은 말은 무엇인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다만 가끔 에이미가 토라질 때 뭐라 말하는 코리안 언어의 억양이 비슷한 걸 보니 아마도 코리안 인 듯 짐작 할 뿐이다.
"너 여기 어떻게……."
"휘리릭."
녀석은 당돌하게도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그가 체 뭐라고 하기도 전에 플린이 지나온 방향으로 뛰어 나간다.
"도대체 시큐리티 가드는 뭘 하고 있는 거야?! 신성한 연구소에 저런 아이를 보호자도 없이!"
무릎을 털고 자리에서 일어난 플린이 짜증이 난 듯 투덜거렸다. 평소였다면 바로 시큐리티 가드를 호출해 그 당돌한 꼬마 아이를 잡으라고 했겠지만 지금은 그보다 더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다. 다시 발걸음을 서둘러 소장실로 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소장실에 도착한 플린이 담당 비서에게 요청했다.
"지금 소장님을 뵈어야겠네."
다급한 과장의 요청에도 소장담당 비서는 담담하기만 하다.
"지금 외부에서 온 손님과 면담 중.....과...과장님?!"
"쿵!"
비서쯤의 말은 차라리 처음부터 무시하는 게 나을 뻔했다. 소장실 문을 박차고 열자 눈에 들어온 건 소장님이 소장실 중간에 위치한 소파에 앉아서 사십대 초반의 동양 중년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었다.
"세일즈맨?!"
소파 앞에 있는 탁자위에 오른 의료기기들의 팸플릿을 보게 되자 플린은 자기도 모르게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 에이미가 직면해 있는 다급한 상황에도 소장이란 사람은 태평하게도 세일즈맨 과 담소를 나누니 말이다.
"무슨 일인가? 프로페서 골드버그."
역시 소장의 인자한 성품이 그대로 묻어난다. 보통 그런 윗사람의 위치에 있다면 플린의 무래한 행동에 이게 무슨 짓이냐며 크게 호통을 쳐도 당연하게 생각될 텐데 호통은 고사하고 입가에 미소까지 만드는 여유까지 보여주니 말이다. 어쩜 소장의 이런 우유부단함에 더욱 답답함을 느끼는 플린 일지도 모르겠다.
"소장님!"
플린에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평소와는 다른 기세에 소장이 무엇을 느꼈는지 시선을 돌려 그 세일즈맨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역시 세일즈맨다운 눈치를 그가 먼저 선 보인다.
"아. 중요한 무슨 일이 있겠는데 잠시 나가볼께요. 대기를요 밖에서 합니다."
영어도 꽤나 서투르다. 하지만 뜻은 통했다. 그 동양인이 소장실 밖으로 나가자 마자 플린의 격한 외침이 소장실을 쩌렁쩌렁 울려 댔다.
"소장님! 지금 당장 에이미에게 내려진 모든 오더를 취소 해 주십시오! 에이미의 지금의 상태..."
플린의 외침이 소장의 한 손을 들음으로 멈추어 졌다.
"그만 하게, 그건 모두 다 내가 지시 한 걸세."
"소..소장님?!"
소장이 난처한 듯 그의 금테 안경을 벗었다가 고쳐 쓰며 말을 이어갔다.
"벌써 열흘이나 시간을 주었잖은가...이제 더 이상 시간을 끌 수가 없네, 이번에도 만족할 만한 연구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면 정부에서 감사가 파견 될 것이고 그 결과로 인해 내려오는 내년도 우리 연구소 예산이 또다시 감축 될 것이 확실 할 것이네."
"하지만 소장님! 지금 이것도 하나의 연구 과정입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결국 우리 연구는 실패 하고 말겁니다!"
"자네 마음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네. 플린, 자네 말대로 우린 과학자이기 때문에 그 과정이 좋아야 결과 또한 좋을 수 있다는 건 이 빌딩 안이 있는 사람 모두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네, 헌데 윗사람들이야 그렇게 생각 하겠나? 우리가 뭘 하든, 말든 결국 그들이 원 하는 건 결과 밖에 없지 않았나?"
플린은 답답했다. 물론 소장실에 들어오기 전 어느 정도 예상은 했었지만 소장이 연구소 예산까지 들먹이며 불합리적인 처사에 대한 소장의 결정에 자신 스스로 합리화를 부여 할 줄은 몰랐다. 역시 노련한 사람이다. 소장 또한 괜히 그 자리에 앉은 건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소장은 그 오더를 내리기 전 부터 플린이 찾아 올 것이라는 예상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휴고처럼 되어 버리면 누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겁니까?"
휴고에 대한 언급에 시종일관 인자한 미소만 띄우고 있던 소장의 얼굴이 이번엔 딱딱하게 굳어졌다. 아마도 휴고란 이름이 가진 파급력이 대단한가 보다. 왜 일까 소장의 웃음기가 없어진 얼굴을 보니 무언가 조금이나마 시원해지는 플린이다.
"에이미 하고 휴고는 태생부터 그 근본이 다르네, 휴고와는 달리 에이미는 처음부터 폭주할 위험 요소의 DNA는 모두 제거....."
"철컥!"
소장의 말이 체 끝나기 전에 또다시 소장실 문이 열렸다. 오늘 소장실 문의 일진이 안 좋은 가보다. 평상시였다 면 저렇게 함부로 예고도 없이 열리지 않을 테니까 말이다.
"저..죄송한데....소장님이 없어졌었어요 우리 아들이! 트러블 전에 일으키면 안 돼 찾아야 하는 말입니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 전 그 동양 세일즈맨이다. 제대로 말해도 알아듣기가 힘든데 뭐가 그리 급한지 안절부절 하며 말하는 그의 영어는 알아들을 수가 없다.
"무슨 말인가 미스터 한! 당황하지 말고 차근차근 말해 보게."
소장의 물음에 그 세일즈맨이 숨을 가다듬는다.
"제 아들이, 사라졌습네다. 문제를 일으키기 전에 찾아야 할 래요!"
"!"
이번엔 알아들었는지 소장이 입가에 또다시 인자한 미소를 만들었다.
"아하, 난 또 뭐라고..너무 걱정하지 말게 미스터 한. 한참 호기심 많을 어린아이가 아닌가? 뭐 이리저리 연구소 구경을 하고 있을 테지."
순간 플린의 눈이 이채롭게 빛났다.
'혹시 아까 전 그 꼬마?'
불현듯 무언가 불안해 지는 플린이다. 그 당돌한 꼬마가 뛰어가던 곳의 끝자락에는 에이미가 있는 랩이 아니던가. 하지만 금세 플린의 입가에 쓴 웃음이 만들어졌다. 린지에게 아무도 들이지 말도록 명령을 해 놓았으니 말이다. 하지만 무언가 찜찜한 건 사실이다.
"원장님! 전화 좀 쓰겠습니다."
"그리하게."
소장의 허락이 떨어지기 전 벌써 신호음이 울리고 있었다.
"띠이이익, 띠이이익, 띠이이익....."
한 번, 두 번, 세 번 신호음이 울린다. 무언가 잘 못 되었다. 플린의 개인 조교인 린지는 말괄량이 기질이 다분하지만 주위가 깊은 여자다. 이렇게 까지 신호음이 여러 번 울릴 때까지 소장실의 직통 전화를 안 받은 다는 것은 이 전화보다 다급한 문제가 생긴 거다.
"제기랄!"
"무..무슨 일인가?"
소장의 물음에 답변 할 여유도 없었다. 이번 역시 생각보다 몸이 빨랐다. 플린이 무엇에 홀린 듯 욕지거리를 내벹더니 소장실 밖으로 뛰쳐나가자 소장 역시 그의 뒤를 쫓았다. 어쨌든 플린의 행동을 보아하니 무척이나 안 좋은 일이 연구소 안에 생긴 것이고 어찌 되었건 당신이 이곳 연구소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과 사고에 대한 근본적인 책임자라는 걸 그 역시 잘 알고 있었다. 그 세일즈맨 또한 자기 아들과 관련 되었다는 걸 직감했는지 소장과 함께 움직였다.
"젊음이 좋구먼.."
복도 밖으로 나와서 보니 언제 달려 나갔는지 플린의 모습이 저 멀리 점이 되어 사라져갔다. 있는 힘껏 달리고 또 달렸다. 마지막으로 이렇게 달린 게 언제인지도 기억 못 할 정도로 달렸다. 달려 나가며 스쳐 지나가는 사람들이 의아한 듯 쳐다보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린지에게 분노가 치솟았다. 무슨 일이 생기면 담당자에게 먼저 연락을 해야 하는 게 이곳 연구소의 첫 번째 행동 매뉴얼이자 불문율 이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그녀는 매뉴얼대로 이행하지 않은 것이고 그 에 따른 무서운 책임을 물게 할 것이라고 굳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는 플린이다.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그의 랩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 멀게만 느껴진다. 초조한 만큼 그의 달리기가 빨라지고 있었다.
"실래합니다! 비켜 주세요!"
복도를 지나가는 사람을 헤집고 얼마나 뛰었을까, 아마도 열심히 달린 덕분에 소장실을 나온 후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아 그의 랩 앞에 도착했을거다. 뛰어 오느라 가파래진 숨을 고를 새도 없었다.
"쿵!"
"린지!"
문을 부셔져라 하고 열고 들어 온 랩 안에서 그는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며 먼저 린지의 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린지의 모습은 랩 안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의 고개가 다시 빰 맞은 듯 돌아가며 에이미가 있어야 할 곳을 쳐다본다.
"?!"
곧이어 앞의 유리벽 건너로 들어온 황당한 장면에 넋이 나갔는지 플린의 입이 어이없다는 듯 벌어졌다.
"도대체...왜?"
유리벽 너머엔 아까 전 그 세일즈맨의 아들이라고 짐작하는 꼬마가 침대 위 에이미의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장면이 연출 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장면 때문에 플린의 입이 어이없음에 벌어진 건 아니었다.
"에..에이미..."
그녀가 그 당돌한 꼬마 아이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모자라 웃고 있다. 그래 꼬마 아이들이 이야기를 하며 웃는 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에이미 상태는 우울증 말기 환자다. 근래 십일동안 웃음은 고사하고 말 한마디 조차 플린과 나눌려 하지 않았다. 아무렴 요즘 에이미가 플린에 대해 실망을 많이 했다고 해도, 거의 태어날 때부터 몇 년을 함께 동고동락을 하며 지내 온 그는 시선조차 주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녀는 처음 보는 저 아이와 저렇게 해 맑게 웃을 수 있단 말인가.
"교...교수님?! 헉?!"
뒤에서 문을 열고 나타난 사람은 바로 저승사자가 온다고 하여도 자리를 비우면 안 되었던 갈색머리의 주인공 린지 였다. 그녀의 손에는 빨간 사과와 파란 사과 여러개가 비닐봉지에 담겨져 들려져 있었다. 곧이어 린지가 생각보다 빨리 나타난 교수님의 등장에 놀라고, 그 교수가 멍한 얼굴로 쳐다보고 있는 유리벽 너머에 어느 동양 꼬마를 보고 더 놀란다.
"죄송합니다!"
눈치빠른 린지가 교수님의 호통이 쏟아지기 전에 서둘러 유리벽 너머로 들어가 얄밉게도 웃고 떠들고 있는 남자 꼬마아이를 잡아 오려는 찰나 플린이 손을 뻗어 린지의 하얀 가운의 끝자락을 붙잡았다.
"잠깐! 그냥 내버려둬 잠시 지켜보자..."
"네? 아...네 아..알겠습니다.."
"근데 린지 너!"
플린이 그 꼬마들이 웃고 떠드는 장면에서 시선을 돌려 책임을 추궁하는 눈을 만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넌 내 말 보다 이 사과들이 더 중요 했나보지?"
아직까지 린지의 한손에 어색하게 들려진 사과 봉지를 가리키며 물은 것이었다. 교수님의 무서운 눈빛에 그녀의 귀여운 얼굴이 울상이 되어 버린다.
"그...그게..아니라...이건 에..에이미가 먹고 싶다고 해서 구내식당에서 가져온 겁니다!"
"뭐?!"
이게 또 무슨 소리인가, 에이미가 가져다 달라고 했다니. 플린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진심이야?!”
“네..넵 정말입니다! 정말로 에이미가 가져다 달라고 했습니다!”
에이미에게 아침에 가져다준 음식 안에는 여러가지 섬유질과 단백질, 비타민 등이 풍부한 과일도 여럿 포함 되어있다. 바나나, 포도, 오렌지 등등, 흔한 과일 중 빠진 것이 있다면 사과다. 그런데 이상하다. 에이미는 사과를 그리 좋아 하지 않을 뿐더러 입이 그리 까탈 스럽지 않은 아이다. 있으면 있는데로 먹고 없으면 없는데로 있는것만 먹은 편식하지 않은 착한 아이 이기도 하다. 또한 결정적으로 우울증에 걸려 근래 열흘 동안 한마디 말도 안하던 그녀가 먼저 린지에게 사과를 가져다 달라고 시켰다는 말이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웠다.
"그러니까 에이미가 린지 너에게 사과가 먹고 싶다고 가져다 달라고 시킨 것이란 말이지?"
"네..그렇습니다. 정말이라니까요! 근데 교수님 저 남자 아이는 누구죠 혹시 교수님이 데리고 온 아이 인가요?"
플린은 대답대신 고개를 가로 저었다. 시선을 돌려 다시 에이미를 쳐다본다. 내가 언제 우울증 말기 환자 였었냐는 듯이 깔깔 거리며 웃고 있는 그녀의 믿을 수 없는 어이없는 광경에 또 다시 다물어진 입이 벌어지려고 한다. 다시 정색한 후 시선으로 계속 에이미를 살피며 물었다.
"근데 왜 보고하지 않았지? 소장실에 내가 있다는 걸 알면서도 왜 나에게 먼저 보고 하지 않았냐고?"
플린의 날카로운 물음에 또다시 린지가 이번엔 눈물을 뚝뚝 흘릴 얼굴로 대답했다.
"그...그건 하려고 했었는데.....에이미가 못 하게 했어요."
에이미를 주시하고 있던 플린의 고개가 빰 맞은 듯이 다시 린지에게로 돌아갔다.
"못 하게 했다니...무슨 말이야! 자세하게 애기해봐! 얼른!"
"그냥 못하게 했어요, 내가 사람을 시켜 가져다준다고 해도 싫다고 해서, 그럼 교수님께 보고 드리고 가져다 준다고 했더니 그럼 먹지 않겠대요.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에이미가 어제부터 아무것도 안 먹어서 난 그냥 먹은 다기에……. 죄송합니다. 교수님."
머릿속이 더욱 혼란스러워 졌다. 이건 린지의 잘못이 아니다. 물론 그녀가 매뉴얼대로 연락을 하지 않은 것이 잘못이긴 하지만 그녀 역시 나름의 여러 고민 끝에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다. 아마 나라도 에이미가 그렇게 물어 보았다면 그리 했을 것 이다.
"뭔가가 이상하군..."
플린의 혼잣말이 끝날 무렵에 드디어 소장과 그 세일즈맨이 랩 안으로 도착했다.
"플린 도대체 무엇 때문에..."
소장의 반응 역시 아까 전 린지와 그리 다르지 않았다.
"아니! 저 아이는 미스터 한의 아들 아닌가!? 어떻게 저 둘이....."
"세우야!"
그 세일즈맨이 아들의 이름으로 짐작되는 것을 외치며 방안으로 들어서려는 것을 눈치 빠른 린지가 앞을 가로 막았다.
"잠시 만요.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린지의 외침에 세일즈맨의 얼굴에 어리둥절함이 만들어졌다.
"호오! 에이미 저 아이가..저렇게 웃다니! 플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저 아이가 그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밖엔 들지 않습니다. 아마도 짐작하건데...소외 된 생활에 엇비슷한 또래를 만나게 되어....“
소장이 말을 자른다.
"며칠 전에 많은 아이들하고 함께 지내게 했을 때도 아무 반응이 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그렇습니다."
사실이다. 혹여나 에이미가 외로움과 소외감 때문에 그런 것이라 여겨 근처에 있는 학교의 도움을 받아 또래의 아이들을 이곳으로 초대 한 적도 있었고 반대로 에이미를 데리고 학교에 간적도 있었다. 하지만 다 필요 없었다. 그 수많은 아이들 중에서도 그녀는 혼자 있을 때나 함께 있을 때나 마찬가지로 얼굴에 죽음의 그림자만 만들었다. 그래서 결코 외롭거나 친구들과 놀고 싶어서 그런 건 아니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게 바로 엊그제 플린 자신이었다.
"어쨌든 뭐 영문은 모르겠지만 이것으로 일단락 된 것이 아닌가? 하하핫."
소장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소장을 보니 어쩌면 소장도 아까 전 소장실에서의 그의 말처럼 언제나 위란 곳은 과정 보다는 결과에 더 치중한다는 말이 맞는 구나라고 실감한다. 플린 역시 좋았다. 십 여일 만이지만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본 게 몇 년 만이라고 생각 될 정도로 에이미가 힘들어 하는 모습에 하루하루가 그녀 못지않게 힘들었던 그다. 하지만 무언가 이 모든 게 심히 조작된 것 같은 껄끄러운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스스로 자문하는 플린이다.
"무슨 말들을 하는지 통 모르겠군.. 린지 지금 이 아이들이 나누는 대화 녹음 하고 그리고 얼른 가서 코리안 통역 할 수 있는 사람 좀....."
플린이 말을 하다 문득 그 앞에 세일즈맨하고 눈이 마주쳤다.
“해드리죠 제가!”
플린이 무엇이 못 미더운지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첫댓글 오오.. 세우랑 아한이가 저렇게 만났던 거군요. 아한이가 안됐어요 ㅜ ㅡ ㅜ
오늘 문득 보니 핑크님 글도 있네욤. 바로 제글 위에 있어서 오늘에야 알았습니다-,,-;; 서둘러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