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호주라는 신기하고 재밌는 대륙에 와서 코알라나 캥거루보다 먼저 본 것이 범고래였는데, 밑에 포유류 포식자에 관한 여러 글 중에, 범고래에 관한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제가 일하는 곳이 동물원과 수족관도 소유를 하고 있는데, 수족관 쪽으로 일을 도울 것이 있어 갔을 때 잠시 함께 일한 전직 돌고래 조련사가 있었습니다. 이 사육사는 전에 일하던 곳에서 돌고래 사육을 주로 맡아서 했는데, 범고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더군요. 그 사람에게 들은 것들 중 기억나는 부분들이 있는데... 그 사람도 그러길, 자신은 돌고래를 사육했지만, 지구상에 있는 생물 중 가장 매력적인 동물은 범고래라고 했네요. 그 사람의 이름은 켈리라고 가정하고, 들은 사실 몇 가지를 주절거려볼까 합니다. (푸른 눈에 매력적인 금발, 잠수복을 입고 입수하면 그렇게 예쁘던 분이시죠+_+) 보통 대중에 의해서 오해되는 부분들도 좀 있길래요.
오해 1. 범고래는 고래 사냥꾼이고, 주식은 고래다?
보통 범고래를 Killer Whale이라고 부르는데, 수족관에서 일하던 사람들끼리는 blackfish, 보통은 Black이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정식으로는 Orca(오르카)라고 알려져 있고요. 켈리도 킬러 웨일이라는 말이 범고래에 대한 오해를 가장 많이 생기게 하는 것이라고 했어요. 마치 이름이 "고래를 죽이는 고래"라는 느낌을 많이 준다고요. 킬러 웨일이라는 이름은 이 고래종의 전형적인 성격을 반영하는 것일뿐, "고래를 사냥한다"라는 것과는 전혀 무관하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범고래의 주식은? 그 덩치 큰 고래를 사냥한다는 것이 대중의 뇌리에 크게 박혀서 그렇지, 범고래의 주식은 그에 비하면 아주 평범한 수준이라고 합니다. 다 비슷비슷하게 생겼지만 범고래도 종류가 나뉘는데, 그 때 들었던 바로는 북반구 쪽에 서식하는 범고래종은 생선을 주식으로 삼고, 남극 근처에 서식하는 범고래들은 바다표범, 펭귄, 그리고 오징어를 주식으로 합니다.
범고래가 덩치 큰 고래를 습격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합니다. 사실 이것 또한 상식적으로 봤을 때 고개가 끄덕여지는 것이, 범고래가 그렇게 똑똑하다면, 뭐하러 자신보다 덩치도 훨씬 크고 사냥 또한 힘든 고래에게 덤빌까요? 참고래급만 되도 범고래들이 사냥하는 데에 꽤 긴 시간과 힘을 들여야 합니다. 그럴 바에는 그 좋은 머리를 이용해서 작은 생물들을 사냥하고, 힘을 세이브하는 편이 낫겠죠. 실제로 범고래들이 고래를 사냥하는 경우는 두 가지라고 합니다.
- 덩치 큰 고래 옆에 있는 새끼 고래를 노리거나,
- 다 늙어서 기운이 빠진 고래를 습격하거나 정도.
또한 범고래가 고래를 습격하는 것이 대중에게 많이 알려진 것은 범고래의 위 내부에서 발견된 여러 고래 고기 종류 때문에 그렇다는 말이 많은데, 실제로 범고래가 고래에게 덤비는 사례는 그에 비교했을 때 많이 관찰된 편이 아니라고 합니다. 때문에, 집단으로 다니면 고래를 사냥할 "능력"은 있어도, 고래를 "주식으로 삼는" 정도는 아니라고 봐야겠죠.
오해 2. 고래는 모두 온순하고, 범고래는 해양 먹이 사슬 최정점에 서 있다?
고래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에 하나가 "온순"하다는 거랍니다. 그건 사람의 관점으로 봤을 때 물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게 여유롭게 보이니 나오는 말이고, 실제로 바다에서 마주쳤을 때 가장 위험한 존재가 고래라고 하네요. 켈리도 대학에서 공부할 때 연구팀의 일원으로 호주쪽 남태평양을 순양한 적이 있는데, 그 때 엄청난 크기의 향유고래와 마주친 적이 있다고 했습니다. 향유고래를 보는 건 정말 경이로운 우연인데, 그 고래가 워낙 포악하게 굴어서 "주변에 엄청난 폭풍이 일어난 것 같았다"라고 저에게 말해줬습니다. 지상에서 코끼리를 마주치면 위험하듯, 고래 역시 사이즈에서 비교가 안되는 인류에게는 꽤 큰 위협이라고 합니다. 다만 마주칠 확률이 아주 적은 것 뿐이죠.
그렇다면 범고래는 소위 말하는 "무적의 포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말을 들었을 때 살짝 충격적이긴 했습니다. 고래는 보통 크게 수염고래, 이빨고래로 나뉘는데, 범고래는 이빨고래에 속하며, 돌고래의 한 종인 고래입니다. 그런데 많고 많은 이빨고래(수십종 있다고 한 것 같네요)에서 "힘 자체만을 평가했을 때" 가장 강력한 고래는 우리에게 향유고래라고 알려진 Sperm Whale 이라고 하더군요.
네.. 이 녀석 맞고, 실제 사이즈 맞습니다..-_-
사활을 걸고 싸우면 범고래도 떡실신 당하는 그 고래입니다. 향유고래는 여전히 연구가 많이 되지 않은 고래 중 하난데, 개체 수가 그리 많지 않은 데다가 소리에 굉장히 민감하다고 합니다. 때문에 사람이 거대한 크기의 배를 타고 접근하면 그 소음에 질려 도망가버린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이 고래종에 대하여 확실한 사실이 하나는 있다고 합니다. 아까 켈리에 대한 사례를 들었듯이, 성질이 상당히 안 좋다는 점-_-.
성질이 상당히 안 좋은 이유는 이빨고래과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고 하고, 이 향유고래는 이빨이 난 포유류 중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덩치가 큰 녀석입니다. 성질은 더러운 녀석이 몸집은 산만하고, 거기다가 반사신경도 굉장히 좋다고 알려져 있어요. 수영도 워낙 잘하는 편이라(원래 이빨고래에 속하는 애들이 수영 솜씨가 대단하다고 합니다) 사이즈에서는 다소 차이가 나도 범고래에게 무차별적으로 습격을 당하는 정도는 아니라고 합니다. 이빨로 물거나 하지는 않는데, 힘이 워낙 좋아 왠만한 충돌로도 범고래를 기절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호흡을 해야 되는 바다 포유류인 고래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건 혼절을 해서 가라앉는 것이라고 했네요. 때문에 다 큰 향유고래, 그것도 보통 특히나 성질이 더러운 수컷은 범고래들도 왠만해서는 가까이조차 접근을 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켈리가 그러길 예전에 범고래 무리가 향고래를 잡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는데, 그게 학계에서 화제가 된 것도 범고래 때문이 아니라 "향고래가 범고래에게 당했다"라는 사실 때문이라고 합니다==. 향유고래가 쉽게 당하지 않는 이유 중 또다른 하나가, 향유고래는 자신이 불리하다 판단되면 그 즉시 잠수를 하는데, 정확한 수치는 기억할 수 없지만 범고래와 같은 종이 절대 따라올 수 없는 깊이까지 잠수가 가능하다고 합니다.
육지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있는데, 사자가 사파리 정점의 포식자이긴 하지만, 코끼리에게 덤비거나 하진 않죠.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사자보다 우월한 지능을 가진 범고래가 개체를 희생시키면서까지 덤빌 이유는 전혀 없다고 하네요. 범고래는 무리에 대한 엄청난 집착과 애정 때문에 굉장히 유명하다고 합니다.
때문에, 범고래가 강력한 것은 맞고, 최정점에 가까운 포식자가 맞지만, 그렇다고 적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향유고래는 육지의 코끼리, 아니 코뿔소라고 생각하는 편이 맞겠습니다.
재밌는 사실 1. 범고래는 어린 새끼를 교육시킨다.
요게 참 재미있는 이야기였는데, 켈리가 범고래 사육장을 찾았을 때 정말 신기한 것을 목격했다고 하네요. 투명한 유리 건너편으로 범고래가 실제로 새끼를 "교육시키는 모습"을 봤다고 합니다. 마치 어른이 아이를 가르치듯, 잠자코 새끼를 바라보며 끈기있게 대화를 시도하는 것을 보는데, 영락없는 사람의 그것이었다고 하네요. 실제로 범고래는 새끼들에게 말을 가르치듯 소리를 가르치는데, 서로 다른 무리끼리는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를 참 잘 이해하고 반긴다고 합니다. 굉장히 사회적이고 무리에 대한 애착이 강력해서, 새끼를 정기 검사 하기 위해 무리와 잠시 떼어놓으면 무리 전체가 대놓고 시위를 한다고 하더군요.
오해 3. 범고래는 사람을 좋아한다?
사실무근이라고 합니다. 프리 윌리에서 나온 범고래같은 경우는 훈련이 된 상태이기 때문에 그런데, 훈련을 받은 상태에서의 범고래 역시 사람에게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미국이었나 어디에서는 훈련사 한 명이 범고래에게 목이 물려 죽은 사례가 있었고, 켈리가 잠시 몸 담고 있었던 사육장에서도 다이버 한 명이 손을 물려 꽤 큰 수술을 받았다고 합니다.
범고래를 훈련시킬 때 다른 동물들이나 고래와 확연히 다른 점이, 절대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가르치지 않는다는 점이랍니다. 보통 동물을 사육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반복성, 그리고 상벌의 확실함인데, 범고래는 같은 행동을 반복해서 가르칠 경우 "스트레스"를 받음으로 상당히 예민해진다고 합니다. 이렇게 지속적으로 훈련시킬 경우 아예 사람 말을 대놓고 무시하거나(무시해도 어쩔 수 없죠. 덤비면 죽는데-_-;), 주위 물건을 부수는 등 반항을 한다고 하네요. 이건 새끼고 어른이고 관계없이 항상 일어나는 것이니, 범고래의 높은 지능에 대한 좋은 예가 아닐까 하네요.
오해 4. 범고래는 귀여운 동물이고, 사람 말을 잘 듣는다.
사람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켈리가 저에게 해줬던 그 말을 대충 기억나는대로 써봅니다.
"아주 더운 여름날이었는데, 그 날이 내가 범고래를 처음으로 가까이서 본 날이었어. 사육장 위로 올라가 모서리로 다가가니까, 물속에서 뭔가 아주 검은 게 서서히 뜨기 시작하는거야. 정말 천천히, 그런데 소리도 없이. 그게 뭔지 이미 알고 있는데도, 순간 다가오는 엄청난 공포에 나는 식은땀이 나는 걸 느꼈어. 그러다가 수면 바로 아래에서 잠시 나를 쳐다보는데, 정말 내 눈을 응시하는 것 같았어. 나를 가지고 장난을 치는 것 같았지(making fun of me). 사육사가 수면으로 올라오라는 신호를 계속 줘도, 그 녀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물 속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그러다가 물 밖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방금전까지와는 다르게 사육사가 시키는대로 내 앞에서 재롱도 부리고, 묘기도 보여주었어. 한 10분을 그렇게 물 밖에서 노는 녀석의 모습에서는 아까의 그 눈빛에서 받은 느낌이 전혀 없었고. 내가 잘못 생각했나? 아니야, 아니었어. 시범이 다 끝나고 그 녀석에게 인사도 하고 사육장을 내려왔는데, 뒤에서 뭔가 쳐다보는 듯한 느낌이 계속 드는 거야. 뭔가 싶어서 돌아봤는데, 아까 그 녀석이 유리 건너편에서 나를 쳐다보고 있었어. 방금전까지와는 또다른 그 느낌. 잠시 나를 쳐다보다가 몸을 돌려 어두운 물속으로 다시 사라지는 그 모습, 나는 아직도 생각하면 그 때처럼 다리가 후들거려....
...그녀석은 나를 위해 재롱을 부린 것도 아니고, 사육사를 위해 사육사의 말을 듣는 것도 아니었어. 어느 순간이라도 나를 해칠 수 있을 것 같은 그 모습, 그 원초적으로 느껴지는 살기는, 내가, 그리고 사람들이 평소에 알고 있는 범고래가 아니었어."
첫댓글 범느님 ㄷㄷㄷ 어디선가 읽었는데 저기 대양에 사는 범고래들은 근해에 사는 범고래들에 비해 엄청 포악하다고 하더군요.
보통 북반구 범고래보다 남반구 범고래가 사납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뭐 어쨌거나 범고래가 해양생물중에 최상위 포식자인건 변함이 없으니까요.ㅎㅎ
정말 영악 하네요.ㄷㄷㄷ
이미지가 안나오는것이 아쉽네요 ㅜㅜ 정말 재밌게 잘 읽고갑니다 !!!
안나오나요?나는 나오는데...
엑박이라서 아쉬워요
진짜 궁금한건 향유고래 vs 흰긴수염고래가 최후의 1:1배틀하면 누가 이길까요? 이 동물의 승자가 지금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물 넘버 1인것같은데..
네이밍포스로는 일단 흰수염고래.
포스에서 앞서는 흰수염...
육지에서 싸우면 개미가 이깁니다~ㅋㅋ
당연히 흰긴수염고래죠
그러다 검은수염고래가 등장하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라는 영화를 보면... 더 엄청난 사실을 알 수 있다는...
앗? 어떤거죠 저도 영화를 보긴 했는데 너무 오래 되나서 기억이 가물가물 ;;;
저는 범고래보다도 켈리라는 분의 사진이 너무 보고싶습니다. 화악 궁금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