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여성시대 어머님은 짜장면에 밥까지 드셨어
때는 병자호란 직후......
청나라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인조가 죽은 후
인조의 아들이 왕위에 올랐음
그가 바로 효종임
효종은 즉위하자마자 골치아픈 문제를 맞이하게 되는데
청나라 황제를 대신해서 섭정하고 있던
도르곤이라는 사람이 왕에게
"어이 조선왕 나 장가가고 싶음
너네 왕족이나 귀족 여인들 중에 하나 뽑아서 공녀랑 같이 보내 ㅇㅇ
공주면 좋고^^"
이런 ㅅㅂ
효종은 도르곤에게
"어...공주가 있긴 있는데 두살이라 시집 못 보냅니다..^^;;;;"
라고 거짓말을 침
사실 효종에겐 다섯명의 공주가 있었는데
큰딸 숙안공주는 이미 혼인했고 네명의 공주들은 11살 9살 5살 3살이었음
그중둘째인 숙명공주는 11살이었으나 당시 나이로는 결혼할 수 있는 나이....
하지만 자기 딸을 청나라에 인질로 보낼 수 없어 거짓말을 함
도르곤의 명령을 전한 사신 파흘내가 멍청해서
아 ㅇㅇ....하고 넘어가게 됨.
"뭐 조선왕 딸들이 다 어리다고??
흠...어쩔 수 없지
그러면 왕의 가까운 친척들이나 양반집 규수들로 추려보라고 해"
하ㅡㅡ...벌써 빡침
급하게 대신들이 소집되었고
효종은 대신들에게 결혼적령기의 딸들을 내놓으라고 함
하지만 다들 우물쭈물;;;;;;
하긴 누가 자기 딸 청나라로 시집보내고 싶겠음?ㅠ
그러던 중 어느 신하가 나섬.
"전하! 소인의 딸을 기꺼이 청으로 보내겠습니다."
그는 왕실 종친 중의 한명인 금림군 이개윤이란 사람이었음.
금림군은 성종의 4대손이었음
효종이 성종의 6대손이었기 때문에
항렬로 치면 할아버지가 되고 금림군의 딸은 고모뻘이 되지만
효종은 뛸뜻이 기뻐하며 금림군의 딸 이애숙을 자신의 양녀로 삼았음.
효종은 이애숙을 공주로 봉작하고 봉작명을
'의순'이라고 지음.
나라를 위해 사사로운 감정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대의에 순종했음'을 높이 기리자는 의미였음.
사실 의순공주는 아버지 금림군의 뜻을 잘 알고 있었음.
금림군은 충신으로 유명했는데
아버지와 사이가 돈독했던 의순공주는 기꺼이 금림군의 뜻을 따랐음.
의순공주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순순히 청나라 시집길에 올랐음
효종은 의순공주에게 약 서른명 정도 되는 하인들을 보내주었음
하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았고 미안했던 효종은
서대문 밖 모화관이라는 곳까지 나가 의순공주를 배웅함.
당시의 기록에 따르면 의순공주는 용모도 빼어났을 뿐만 아니라
몹시 주도면밀하고 조국에 대한 충성심도 큰 여성이었음.
무오연행록이라는 역사서에는 의순공주와 관련된 일화가 기록되어 있음.
정명수란 사람이 있었는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들어가 벼슬을 얻은 후
조선만 오면 온갖 악행을 일삼았음.
의순공주가 청나라로 시집가기 며칠 전에 정명수가 또 조선에 들어와 은화를 약탈했는데
보다못한 의순공주가 정명수를 부름.
"내가 청으로 가 섭정왕(도르곤)에게 요청하면 네 목숨이 당장에 끊어질 것이다.
이 말을 듣고도 네가 맘속으로라도 조선에서 악행을 저지른다면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하고 정명수에게 당장 곤장형을 내리라고 명했으나
정명수가 바로 꼬리를내리고 아이고 살려줍쇼 하며 싹싹 빌었다고 ㅋㅋㅋㅋㅋㅋ
그뒤론 조용히 살았다고 함 ㅇㅇ
냄져새끼가 조신하지 못허게ㅡㅡ
그렇게 청으로 간 의순공주는 열여섯의 나이에 서른아홉의 도르곤과 결혼함;;;;;;;;;
하...진짜
도르곤은 아름다운 의순공주를 보고 첫눈에 반해 이렇게 말했다고 함.
"자태가 백승골(날렵하고 매끈한 흰 빛깔의 매) 같구나!"
그러나 도르곤이 혼인 7개월만에 죽어버림
의순공주는 팔려다가시피 한 결혼이었지만 도르곤을 싫어했던 것 같지는 않음
이덕무의 '청장관전서'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음
'의순공주가 이미 과부가 되었으니 마침내 조선으로 돌려보냈다.
의순공주는 훗날 도르곤을 그리워하여 무당을 시켜 혼을 불러내
무당의 힘에 의거하여 간곡하고도 정겨운 말을 한번 듣고자 하였다.
그러나 끝내 신이 내리지 않았다.
그러자 의순공주가 경대 상자를 열고 도르곤이 쓰던 가죽 모자를 꺼내서 무당 앞에 던졌다.
그렇게 하자 무당에게 신이 내렸다.
(중략)
내가 금림군 이개윤의 외손인 조 아무개를 만난 적이 있는데 그 때 이런 말을 들었다.'
도르곤은 사후에 역적 누명까지 쓰게 되어 재산은 몰수되고
부인들은 고관대작들에게 억지로 팔려감
의순공주는 그 다음해에 청나라 황족인 박락의 부인이 됨
그러나 박락도 1년 후에 세상을 떠나고 맘..
의순공주는 낯선 청나라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림 ㅠㅠ
그렇게 의순공주가 청으로 떠난지 6년이 지나 아버지 금림군이 청으로 찾아감
금림군은 청 황제에게 의순공주를 조선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함
청 황제는 순순히 허락해주었고
마침내 의순공주는 그리운 고향에 돌아가게 됨
청으로 간지 6년만의 일이었음
그러나 오랜만에 돌아온 고향은 공주에게 차디차게 변해있었음
사람들은 공주에게
"오랑캐에게 두 번이나 몸을 더럽힌 여자!"
"화냥년!"
이라고 손가락질함...
여기서 화냥년이란 욕은
의순공주를 비롯해서 청나라에 강제로 끌려간 조선여인들이
다시 조선으로 돌아오면 '환향녀(고향으로 돌아온 여인)'라 불렀는데
사람들은 오랑캐에게 몸을 더럽혔을 것이라 생각하고
환향녀!환향녀! 이렇게 부르다가 화냥년이라고 부르게 된 것임
설상가상으로 이제 정치적으로 필요없어지자 대신들도 금림군과 의순공주에게 등을 돌리고 외면함
아 내가 쓰면서도 존나 빡치네 ㅅㅂ
심지어 공주의 봉작을 파직하라고 조정이 들끓음
마지막 양심이나마 남아있던 효종은 조정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계속 공주 대접을 해줌.
공주의 봉작 유지와 동시에 매달 곡식을 하사함
그러나 얼마 후 효종이 죽고 현종이 즉위하자
의순공주는 공주의 봉작을 파직당하고
그저 '이개윤의 딸'로 불리게 됨.....
조국을 위해 기꺼이 타국에 시집 갔다가
남편을 두번 잃고 돌아온 고국에서
화냥년,더러운년이라는 욕을 얻어먹고 공주의 호칭까지 파직당했던
의순공주는 현종3년 1662년 8월 6일 스물일곱의 나이로 병들어 사망함
경기도 의정부시 금오동에 있는 의순공주의 묘
의순공주의 이야기를 책으로 읽었을 때 마음이 갑갑해왔어.
의순공주가 조국에 돌아오고 죽기까지의 약 사오년의 시간이 얼마나 갑갑했을까...
병사한 이유도 분명 사람들의 곱지 못한 시선이었을꺼야
조국을 너무 사랑했는데 그 조국이 자기에게 등돌렸을 때 기분이 어땠을지 상상도 안간다...
반응 좋으면 다른 기구했던 공주들의 이야기도 들고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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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뭔죄야 진짜
마음아파..ㅠㅠ
ㅠㅠㅠㅠㅠㅠ
넘빡쳐시팔ㅜ
나는 진짜 화냥년이라는 단어가 너무 싫어ㅋㅋㅋㅋ 좆같은 새끼들 정작 더러운 사람이 누군데
참 안타깝다
아.....
진짜 남자들 언제 멸종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
하...개빡쳐
맘아프다ㅜㅜ
읽는데 진짜ㅠㅠㅜ하 화나
하..ㅠㅠ 너무 안타깝다
냄저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