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무엇을 집을지 아무도 모른다.' 요즘 내가 가장 공감하는 영화 대사다. 1년이란 상자에 들어 있는 365개의 초콜릿이 각각 어떤 맛일지 궁금하지만 한가지만은 확실하게 안다. 달콤한 맛만 들어 있지 않다는 것. 하지만 쓴맛을 보더라도 이젠 그리 실망스럽거나 슬프지 않다. 흰머리만큼 많아진 나이가 주는 특혜다.
어제까지 한 행동이 오늘의 나를 만들고, 오늘의 선택이 내일을 결정짓는다는 무서운 예견을 나는 수많은 경험치로 믿지 않을 수 없다. 무심히 버린 시간은 사라지지 않고 틀림없는 결과로 나타난다는 건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수십 번 맞이하면서 알게 된 순리다. 그동안 높은 자가 낮은 자가 되고, 낮은 자가 높은 자가 되는 것을 보았다. 느리지만 시작만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도착하는 거북이의 시간도 겪었다. 이정표가 가리키는 곳이 아닌, 예정에 없이 도착한 곳에서 불현듯 삶의 의미를 깨달을 때도 있었다. 모두 특별한 날들이었다. 달든 쓰든 하루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간이란 깨달음이 마음 깊이 다가오는 요즘, 얼마 전부터 나만의 재밌는 일기 쓰기를 시작했다. '하루 이름' 짓기다. 탁상 다이어리의 날짜칸에 이름을 적고 두세 줄 정도로 일과를 메모하는 나만의 루틴이다. 그저 사소한 메모일 뿐이지만 이름을 불러 주니 꽃이 되더라는 시구처럼 이름을 얻은 매일매일은 더욱 빛이 났다. 봄이 온 날, 요가 첫날, 우중 산책, 분노 폭발, 월급 입금…. 이름 중에는 '운수 좋은 날'이 제법 많다. 출근길에 신호등이 연속으로 파랗게 켜지면 무조건 운수 좋은 날로 여긴다. 점심에 내가 좋아하는 반찬이 나와도 마찬가지. 퇴근길에 땡처리하는 채소를 사면 그야말로 운수대통이다. 행운은 이렇게 자주 나를 찾아온다. 행운 지수가 높은 날은 제법 특별한 날이 되어 내 기분을 한층 끌어올린다. 그럴 때면 나는 아껴둔 그릇을 꺼내 조식 뷔페처럼 식탁을 꾸며본다. 달걀프라이와 방울토마토, 샐러드를 한 접시에 담고 아끼는 잔에 진한 커피를 한 잔 내리면 분위기가 호텔처럼 근사해진다. 이름값을 하는 하루가 완성되는 순간이다. 최근에 추가된 이름표는 '요가 시간'이다. 집에서 몇 분 동안 요가를 했는지 적기 시작하면서 나는 더욱 부지런한 사람이 되었다. 몸이 무거운 날도 애써 일어나 매트 위에 앉으면 꾸물꾸물하던 몸이 어느새 부드럽게 풀리고 게으름 피우던 심장은 부지런해진다. 온몸의 근육을 기분 좋게 풀어준 다음 아직도 두근거리는 심장을 안고 '23분 요가'라고 달력에 쓰면 기분이 훨씬 개운하다. 하루하루 요가를 실천한 지 어느덧 100일을 향해 가고 있는 지금, 나 자신이 대견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대부분 어두운 감정들이 먼저 손을 내민다. 두려움, 귀찮음, 어려움, 걱정, 불안 등이 앞 다퉈 악수를 청한다. 직장에서 해야 할 업무도 많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의 약속이 잡혀 있는 날도 있기 때문이다. 어두운 감정들의 북새통 속에서 나는 애써 감사함을 찾아 손을 내민다. 밤새 아무 일이 없었고, 어제 끓인 국이 남아 편하게 아침 식사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해 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하루의 시작이지만 '좋은 일이 기다릴 거야'라고 속으로 외치기도 하고 '하하하' 하고 괜히 소리 내서 웃어 보기도 한다. 하루는 느끼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굴러가므로 이렇게 기분 좋게 맞이한 날은 퇴근길까지 감사함이 사라지지 않는다. 도시의 빌딩숲 사이를 비추는 석양과 만난 적이 있는가? 퇴근길에 석양을 만나는 일은 수많은 행운이 따라야 가능하다. 퇴근 시간이 해 지는 순간이어야 하고, 구름이 많지 않아야 하고, 걷다가 서쪽 하늘을 바라봐야 하고, 비가 오지 않아야 하고, 빌딩이 해를 가리지 않아야 한다. 자연이 공들여 빚은 석양이란 작품을 감상한 황홀함을 가득 안고 귀가한 내 방에서 나는 하루를 정리하며 긍정의 이름표를 단다. 내일에는 또 어떤 이름이 붙을까. 매일 주어지는 하루하루를 사람들은 새털처럼 많다고도 하고, 눈 깜짝할 새 사라진다고도 한다. 해가 지면 사라지는 시간이지만 직접 지어준 이름을 부르면 다시 다가온다. 내 기억 속 특별했던 그날이. 최정선 두 딸, 남편과 함께 매일 새로운 경험을 하자고 다짐하며 사는 57세 워킹맘입니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을 좌우명 삼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열심히 달렸는데 요즘은 달라졌습니다. 내일보다 오늘에 더 집중하기로 하고 수첩에 적힌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실천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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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의미있게 사는 분이군요.
내일 보다 오늘을 잘 살겠다는
다짐이 마음에 다가 오네요.
좋은글 감사 합니다
안녕 하세요....망실봉님
좋은 글 담아 주셔서 고맙습니다.
무더위에 건강 조심 하시고
맛있는 점심 드세요
오후 시간도 행복하시길 소망 합니다
좋은글에
마음쉬어갑니다
감사합니다
더위에도 더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