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전염병을 유포합니다.
(사도행전 24 : 1-9)
오늘날 인간 사회 네트워크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세상에는 부정적인 것들이 훨씬 더 강력하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전염시킵니다. 이를테면 전염병, 돈, 폭력, 비만, 음주. 흡연, 이혼, 우울증, 자살, 분노, 범죄행동 등등이 더 빠르게, 더 많은 사람을 전염시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거룩한 전염병을 유포하여야 합니다.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을 유포합니다. 범사에 기뻐하고 범사에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감사는 ~~~ 때문에 감사가 있습니다. ~~~이루어지니 감사합니다.~~~에도 불구하고 감사합니다.
어떤 상황속에서도 감사할수 있어야 합니다.
하박국이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예수님 때문에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예배와 감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바울을 율법 모독자로 규탄하는 변호사 더불로의 송사입니다.
1. 고발하는 인생은 악한 인생입니다.
3차 선교여행을 마친 바울은 가이사랴에 있는 헤롯 궁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때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총독에게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그들은 의인을 모함하고 고발하는 일에 집중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을 방해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왜 이런 일을 합니까? 기득권에 침해를 받기 때문입니다. 신학적인 차이, 생각의 차이 때문입니다. 오늘날도 서로 다투고 싸우다가 안 되면 법정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더구나 신앙을 가진 사람들 안에서도 진리나 정의 때문에 싸운다고 포장을 하지만,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단지 이권의 문제임을.
바울은 악은 그 모양이라도 버리라고 경고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악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돈을 주고 변호사인 더둘로를 고용했습니다. 더둘로는 벨릭스 총독 앞에서 바울을 강력하게 고소했습니다. 그는 노예출신으로서 자유인이 되어, 급기야 총독의 자리까지 올라간 자수성가한 사람입니다. 사람을 움직이는 설득술까지 골고루 갖췄어요. 빌라도에 이어 8년간 유대 총독으로 다스렸지만, 그는 아주 부도덕하고, 무자비하고, 음흉한 자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자신의 능력을 좋은 일에 사용하지 않고, 악을 조장하는 일에 사용했습니다.
변호사 더둘로가 거짓으로 고소할 때 유대인들은 거기에 동조했습니다. 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바울을 죽이기 전에는 먹지도 아니하고, 마시지도 아니하겠다."(23:12) 대단한 결심과 각오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결연한 결단이 오히려 더 큰 과오를 불러왔습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하지 않고, 함께 동조했습니다. 때때로 유대인들처럼 잘못된 각오와 결단을 내릴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 빨리 돌이켜야 합니다.
고발은 고발을 낳습니다. 사람을 죽일려고 하는 사람은 망합니다. 사람을 살리려고 하는 사람이 흥합니다.
2. 거룩한 전염병을 유포하는 인생은 은혜로 선물로 살아갑니다.
사도 바울이 벨릭스 총독 앞에서 대제사장 아나니아와 장로들, 그리고 변호사 더둘로로부터 고발을 당하였습니다. 이들은 사도 바울을 가리켜 ‘전염병 같은 자’라고 말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참으로 고발하는 내용이 흥미롭습니다. 바울을 그냥 내버려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나사렛 예수로 전염시키니, 하루 빨리 조치하여 처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졸지에 '사회를 어지럽히는 사람'으로 몰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십자가 복음으로 '거룩한 전염병'을 유포시키고 있었습니다.
바울 때문에 예수님을 영접하는 사람이 전염병처럼 퍼져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복음으로 전염된 사람들은 돌변했습니다.
바울 한 사람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그냥 내버려두면 주변에 있는 사람들까지 나사렛 예수를 믿는 자로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시 대제사장과 장로들이 인정하는 내용입니다. 그러니 더둘로가 그들을 대변하여 “이 사람은 염병입니다. 아주 위험한 사람입니다. 악한 선동가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입니다. 이 사람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유대는 물론 로마 전체가 나사렛 이단으로 전염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하루 빨리 이 사람을 죽여야 합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물론 반대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주변 사람들을 예수로 전염시키는 몹쓸 사람, 당장 재판을 하여 처단해야 할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의 입장에서 보면 바울은 정말 본받아야 할 모델입니다. 도대체 바울의 삶이 어떠했기에 그가 주변 사람들에게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했을까요? 우리도 이왕 예수를 믿는 성도로, 그분을 따르는 제자로, 하나님의 교회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다면 우리 역시 전염병 같은 자가 되어 가장 가까운 가족과 친지들에게, 친구와 이웃들에게, 직장 동료들에게 나사렛 예수로 전염시켜야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다시 말하지만 성경의 역사나 오늘날 우리 사회를 보아도 좋은 것보다는 좋지 않는 것이 훨씬 더 빨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염된다는 것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가 인류 전체를 죄로 전염시켰습니다. 로마서 5장 12절에서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많은 사람이 아니라 아담 한 사람의 죄로 시작된 것입니다.
15절에 “그러나 또한 한 사람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한사람이 순종하지 않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고 한사람이 순종하여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한 이후에 홍해를 건너 광야에서 머물고 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경험했음에도 불구하고 얼마간의 날이 지나가자 먹을 것이 없다고, 마실 물이 없다고, 고기가 먹고 싶다고 몇몇 사람들이 불평하기 시작합니다. 그 불평이 나중에는 이스라엘 공동체 전체에 전염되어버렸고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켰습니다. 불평은 또 다른 불평을 낳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한 지 2년 만에 가나안 땅이 바라보이는 가데스 바네아에 이릅니다. 그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12지파에서 한 명씩 12명의 정탐꾼을 선발하여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그런데 12명의 정탐꾼들은 돌아온 후에 정탐 결과를 보고하면서 둘로 나누어집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능히 그 땅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지만, 나머지 10명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으로 보고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2명의 보고가 아니라 10명의 보고를 더 신뢰하면서 자기들은 그 땅에 들어갈 수 없다고 단정하여 미리 절망해 버렸다는 것입니다. 물론 양쪽 보고자의 숫자에도 큰 차이가 나긴 했지만,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긍정적이고 좋은 것에 영향을 받기 보다는 부정적이고 좋지 않는 것에 더 많은 영향을 받기에 일어난 현상입니다. 결국 10명의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말에 이스라엘 백성들 전체가 전염되어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바람에, 쉽게 들어갈 수 있는 가나안 땅을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무려 40년 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염시켜야 하겠습니까? 내가 예수를 믿고 그분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고 살아가면서 느끼는 행복을 전염시켜야 합니다. 가정에서 가족들에게, 신앙공동체 안에서 다른 성도들에게, 직장에서 동료들에게, 캠퍼스에서 친구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행복을 전염시켜야 합니다.
우리 역시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사렛 예수를 전염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모두가 예수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어서 우리의 삶을 통해 다른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변화시켜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우리의 삶의 현장이 더욱 아름답게 변하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께 소망을 가졌으니 감사합니다.
사도행전 24장 15절에 “그들이 기다리는 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곧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니이다”
요한복음 5장 29절에 “선한 일을 행하는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하는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오랜 세월을 무신론자로 지내다가 구원받은 영국의 화가가 있었습니다.
이 화가는 요한복음 8장 12절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이 말씀을 더 깊이 묵상해 작품으로 승화하고 싶었던 화가는 이집트와 이스라엘을 여행하며 예수님이 거니셨던 곳을 똑같이 거닐었습니다. 여러번 그림을 그리다가 심판하고 마침내 그림을 그렸습니다.
윌리엄 헌트의 ‘세상의 빛’입니다.
그림에는 어두운 밤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이 환한 등불을 들고 손잡이가 없는 문을 두들기고 계십니다. 문에 손잡이를 그리지 않은 것은 실수가 아니냐는 질문에 헌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 문의 손잡이는 안쪽에만 있습니다. 밖에 예수님이 계셔도 우리가 열지 않으면 예수님이 들어오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구원과 진리의 등불을 들고 우리 마음의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고 우리의 구원을 위해 기다리셨던 예수님께 감사하며, 이웃이 예수님을 영접하도록 전합시다. 아멘!
부활로 죽음을 이깁니다. 빛으로 어두움을 이깁니다. 생명으로 사망을 이깁니다. 감사로 불평을 이깁니다.
감사의 생활입니다. 감사는 마음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표현할 때 완성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9명의 문둥이같이 먹튀 인생을 사는 것은 바른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감사 표현하는 한 문둥이에게만 주님은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치료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여 주십니다.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승리교회가 좋은 영향을 주는 교회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거룩한 영향력을 끼치는 교회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