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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와 남편의 사랑(발렌타인 데이 기념) 백살공주님 드려요. | |
번호 : 29374 글쓴이 : 베로니까 |
조회 : 74 스크랩 : 0 날짜 : 2006.02.11 03:48 |
런던의 블랙캡 (삿가스님 부탁사항)
운전면허와 남편의 사랑 남편은 셀린 디온의 ‘The Power of Love'를 참 좋아한다. 그녀의 목소리는 감미롭고 부드럽고 강해서 남편을 포함한 모든 남자들이 참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침마다 셀린디온의 노래 가사처럼 감미롭게 남편을 깨우면 남편이 참 행복하겠지만 나는 그러기에는 아침 잠이 너무나 많다. 아주 오래 전에 쉽게 면허를 딴 남편은 면허 딴 지 일주일도 못되어 시부모님을 모시고 13박 14일의 유럽 여행을 여유있게 다녀오는가 하면, 토요일 새벽이 되면 “‘일어나봐, 지금 리치몬드 파크에 가면 차가 별로 없을거야. 내가 연습 시켜 줄께” 또 일요일 오후 2시쯤이 되면 “Brent Cross 쇼핑 센타 바깥 주차장이 지금 한가할거야, 내가 연습시켜줄께 " 이렇게 말하곤 하였다. 하지만 나는 잠이 더 좋았던지 일단 귀찮아서 한번도 따라가질 않았다. 또 남편은 “다른 여자들은 남편이 운전하면 지도도 보아주고, 실수할까봐 간섭이 심하다던데, 너는 왜 옆에 앉자마자 코까지 골면서 잠만 자니?” 라고 불평을 하곤 하였는데 그럴 때마다 별 대꾸할 말이 없어서 “응, 당신이 운전하면 참 편안해서” 하지만 나는 언제나 우선 쉬고 싶었고,학교 다닐 때 지리가 평균 99점이었을지라도 지도 보는 것마저도 귀찮기만 하였다. 그렇지만 운전을 않자니 너무나 불편하였다. 첫째 나는 참을성이 없는 편이어서 버스나 기차가 연착을 하면 우선 마음이 상하였다. 둘째 어떤 여자분에게 “왜 운전을 하게 되셨나요.” 하고 물었더니 “걷자니 너무 다리가 아파서요”라고 하셨는데 정말 걸어 다니자니 너무나 다리가 아팠었다. 셋째 영국의 대중 교통 수단인 Tub(지하철)와 버스값도 의외로 비싸고, 미니 캡을 타자니 너무 비쌌다. 그래서 슬슬 남편도 배웠던 BSM(운전학원)에 연락을 해서 할아버지에게 운전을 배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너는 도무지 들은대로 하지 않으니 가르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남편은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은 다른 사람이라고 했지만 수소문 할 수도 없어서 AA(다른 운전 학원)에 전화를 하여 다시 연습을 시작하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30대 초반의 영국 남자였는데, “나는 세 살 때 술취한 운전사에 의해 구른 트럭의 바퀴에 오른쪽 발등을 받히었으며 그래서 트럭에 대한 공포가 있고, 영원히 운전을 안 하려 했는데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라고 하였더니, 나를 데리고 주로 M1(고속도로)을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친절하게도”영어는 spraking을 천천히 해야 배울 수 있다. 그것이 기본이다.“ 라고 영어 교습까지 해주었다. 6 번을 연습하고 교습교사가 반대했지만, 혹 중간에 돌아오지 못할까봐 운전 선생까지 싣고 첫 시험을 치르었는데, Reverse Parking (뒤로 후진하여 방향바꾸기)에서 실수하여 떨어지고 말았다. 운전 선생은 그래도 잘했다고 칭찬해 주었지만, 그동안 쉬었던 무역업을 계속하게 되었다며, 더 이상 교습은 해주지 못한다고 하였다. 나는 좀더 싼 또 다른 교습 센타로 바꾸어 보았다. 머리가 벗겨진 인도인이었다. 교사는 그 동안 수많은 여자들과 운전 교습을 하며, 동침한 경험을 말해 주었고, 지금 부인도 그래서 만났고, 아직도 다른 여자들과 관계를 갖고 있다고 했다. 남편에게 이야기했더니 남편은 토요일마다 차 뒷좌석에 따라 와 앉아 있곤 했었다. 노력한 보람도 없이 헨돈센타에서 두 번을 더 떨어지고, 남편이 시험을 치루었던 모던(남쪽)센타로 바꾸어 다시 두 번을 떨어졌다. 한국말까지 하던 흑인 운전교습 교사는 참 친절하게 잘 가르쳐 주었지만, 나는 어찌된 일인지 두 번째 시험치기 前부터는 꼭 구토가 시작되었고, 시험 치를 때는 헛생각만 들어, First Turning Left 라고 하면, 두 번째 골목으로 들어가고, 앞 Mirror(거울)를 분명히 보고 출발하였는데도 시험장을 나서자마자 오토바이가 나타나 시험관도 보지 못하였다가 함께 놀란 적마저 있었다. 사실 인생에서의 커다란 도전은 미리 피하며 살아오던 나에게 5번의 운전 시험 실패는 그동안 쉬운 길만 밟으며 살려 하였던 나의 참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해주었다. 내가 신체상의 약점 때문에 감이 약하여 악세레이터를 조금 더 밟았더라도 그것은 변명되어질 수 없는 것이며, 또한 누구의 간섭도 받기 싫어하는 내가 시험관의 Order에 의하여 35분을 견뎌야하는 고역 또한 피할수 없는 지극히 당연한 “현실”인 것이었다. 또 회사는 매니저가 운전을 하는 것은 필수라고 못을 박고 있었고, 버스를 타면 1시간 30분 걸리는(버스를 바꾸어 타고 또 종점에서 종점을 가야한다). 하지만 차로는 A406을 관통하니 20분밖에 되지 않는 출근길을 아래 직원들도 있는데 항상 지각을 하며 빙빙 돌아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납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영국 세일즈맨과 남자직원들에게 손님의 차 대접을 당연히 하도록 하는 내가 직원 모두 운전을 할 줄 아는데, 나는 트럭 공포증이 있다. 또 여자이니까라고 하여 운전을 피해 나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또 후진을 할 때 급한 성격 때문에 천천히 가지 못하는 조급함이 첫 번째 이유인 것을 알고 이를 악물었다. 영국은 ‘Give Way (양보)’가 운전의 골자인데 나는 내 갈 길만 급한 것이지 남을 돌아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고, 그것은 운전에서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무성의 했던 이웃에 대한 나의 삶의 태도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어서 이번 기회에 꼭 고쳐야만 한다고 생각하였다.
1년에 한번 꼴로 떨어지는 동안 결국 필기시험이 생겨 버스 안에서 ”High Way Code 두 번, BSM에서 나온 ’첫시험에 pass 하는 법‘(실기) (세 번) ’ “필기고사 대비용 책 (세 번)‘을 읽고 8분에 시험을 다 치를 수 있었다. 그 때가 4년 전이었다.
다시 시험 날짜를 잡은 나에게 남편은 ”내가 이번에는 무슨 수를 써서라도 합격하도록 도와줄께“ 하더니 6번째 시험 치르기 전 날 목욕탕에서 담배를 꼬나 물고 큰 종이를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를 응원하기 위한 ”프랜 카드’를 구상 중이라는 것이었다. 나는 또 떨어질까봐 펄쩍 뛰며 시험장에 오지 말라고 하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교습 교사가 길을 잘못 인도하여 운전 시험장에 25분이나 늦게 도착을 하였고, “왜 사람도 없는 한적한 길을 적정 속도인 30mile로 가야지 25mile로 바꾸어 갔느냐”고 Tick를 하여 결국 또 떨어졌다.
힘없이 돌아온 나에게 남편은 이제 중고차 한 대 값은 날렸으니 네 차인 “현대 소나타”로 시험을 치루라고 하면서 , RAF 뮤지엄에서 일요일 날 후진을 직접 가르쳐주었고,또 새벽 2시에 M1(고속도로)에서 연습을 시켰다. 그리고 드디어 운전 시험 날이 돌아왔다.
먼저 소나타 앞 뒤에 ‘L'자를 붙인 남편과 나는 아침식사도 거른 채 시험 치기 한 시간 前에 시험장에 도착했다. Hendon 시험장은 쇠 울타리가 정문인데 우리는 닫힌 정문 밖에서 20분을 기다렸고, 문이 열리자 남편은 차의 뒤 부스에서 걸레를 꺼내더니 시험관은 창 안에서 보고 있고, 시험치르는 사람들과 가족은 대기실에서 모두들 남편을 보고 있는데 30분도 넘게 유유히 중고 차를 번쩍이도록 닦고 있었다. 그 동안 나는 여느 시험때처럼 화장실에 가서 계속 구역질을 하다 시험관이 호명할 때에야 밖으로 나왔다. 시험관은 연세가 많으신 인도 분이었으며, 내게 “긴장이 되면 나 긴장하고 있어"라고 말하라고 하면서 웃어 주었다. 또 Reverse Parking을 할 때는 눈까지 감아 주었다. 시험 시간은 25분밖에 걸리지 않았었다. 다른 운전자는 아직 아무도 돌아오지 않은 시험장에 도착하자 시험관은 “You Passed'라고 한마디만 하면서 악수를 해주었다.
너무 기뻐서 차 안에서 큰 소리로 대기실 밖에서 기다리는 남편을 불렀더니 “일찍 돌아와 합격한 줄 알았더니 울음소리 때문에 또 떨어진 줄 알았어, 아직 면허증이 없으니 가는 길도 내가 몰아 줄께. 시험관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와서 ‘L ’자를 눈에 띄는 곳에 부치라고 할 때, 네가 화장실 안에서 토하는 소리가 밖에까지 들렸지만 나는 네가 합격할 줄 알았지. 그렇게 생각하며 30분 넘게 계속 차를 닦고 있었어. 정말 축하한다.“ 남편은 일주일도 넘게 벙실거리며 나보다 더 기뻐해 주었다. 운전 시험 ! 겨우 일곱 번째에야 합격한 나는 마음 속으로 외치고 있었다. ‘운명아, 비켜라, 나는 간다’ 어린 시절부터 가지고 있던 트럭의 공포로부터, 또 오른쪽 발등 때문에 혼자 마음 속에 간직해온 열등감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던 좋은 경험이었다. 또한 ‘Give Way'가 이웃과 내 생명에 대한 사랑이라는 새삼스러운 깨달음과 걸레를 들고 하염없이 차를 닦으며 무언으로 나를 응원한 남편의 나에 대한 진실된 마음도 엿볼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된다. 운전 면허에 합격한 날은 1999년 6월 9일이었다.! 혹 이 날 시험을 치루시는 분, 모두 합격하시길 기도합니다!
박 혜경 (국제 펜클럽 회원) 2002년 6월 4일자 한인신문 백살공주님께 드려요. 무우국 다시 끓이세요... 죄송 발렌타인데이를 맞아 Y에게 이 글을 바쳐요!!! 박 혜경 드림 09.02.2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