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삶의 날들이 매일 색다르게 펼쳐진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대부분의 일상들은 쳇바퀴 돌듯 반복되지요.
어제는 손님이 AS 맡긴 걸 찾으러 오셨다기에, 기록도 없고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아 CCTV를 한참을 되돌려도 안 보였어요.
근데 돌아보니 어느새 그분이 사라져 버렸던데, 본인도 긴가민가 했었나 봐요.
CCTV를 보며 느낀 것이? 저의 일상이 쳇바퀴 돌듯 너무나 반복되고 한 곳에 멈춰있어서 충격이었습니다.
다양한 삶에 투자를 하란 말이 실감 났으나 현실에 투자나 전업이란 꿈일 뿐 출근한다는 것에 감사해야 할 것 같았죠.
작금에 중산층이 무너지고 일부 무산층에는 인고의 상태까지 왔다`라고도 하더군요.
리더들에게 나랏 살림을 맡겼지만 나라가 조용할 날이 없는 걸 보면 성군[聖君]이려면 하늘의 감도가 필요한가 봐요.
추이를 보면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버리는 자다."(루카 11, 23)처럼
대부분의 위정자들이 욕망이란 울타리 속에 이해득실을 따르다 보니 차츰 기현상이 나타나는데, 이 좁은 땅에 이익이 지역에 편중되고 서로 편을 갈랐으며 복지마저 그들의 정책에 따라 변해갑니다.
노동 현장에 보면 “실업자는 많아도 일할 사람은 없다.”라는 기이한 현상이 있지요.
소위 3D업종에 외국인 노동자가 자리한 탓이기도 하지만, 자칭 엘리트 국민이라 반듯한 직업이 아니면 일을 안 하려는 풍토였을까? 아니면 가족이 단조로워 평생 일구어놓은 부모에게 기대서 그런지? 또는 험한 일을 부끄럽게 인식한 건지?
직업에 대한 편향된 인식이 가치관을 저해하는 것처럼, 삶의 질은 떨어지더라도 긍지를 가지고 열심해야 하는데도
직업의 조건 속에 멋과 자존심까지 포함되어야 하는 것이? 직장도 하나의 “과시”로 생각했기 때문일까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의 배달 오토바이가 붐비는 것 또한 합법적 직업인데도 혹시 부정적인 생각을 할까 봐 복면까지 썼더군요.
직장에 예속됨이 싫어서 종일 컴 앞에 먹을 것을 놓고 앉아 몸피가 상당해진 그들의 폐쇄적인 삶 역시 절망적입니다.
젊고 유망했던 바오로 사도의 직업은 "천막을 만드는 일"(사도 18,3)이었다는데, 그는 일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평등의 교훈을 일찍이 들어왔으면서도 실상 탓에 인정 않았고 “신분에 맞는 처세는 하지 못하고 신분에 따른 대우는 받으려 했던 편견”을 버려야 하겠죠.
우리야 다 살아가지만 시대는 변하므로 현실이 힘들어도 엘리트의 긍지를 가지고 나의 직업에 감사하며 살다 보면 살만한 세상은 오리라 생각됩니다.
첫댓글 어쩜 이리도 맞는 말씀을 해 주시는지요... 특히 '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평등의 교훈을 일찍이 들어왔으면서도 인정 않았고' 라는 말씀에 더욱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