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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보라의 찬송과 기적
삿5:1-9
1. 기독교 예배의 특징 중에 하나는 찬양이 많다는 것입니다.
매일 새벽기도회에 부르는 찬양, 주일오전예배전에 찬양, 예배시간에 찬양, 오후예배전에 찬양, 오후예배시간에 찬양 수요예배전에 찬양, 예배시간에 찬양, 금요기도회에 찬양..찬양으로 충만합니다. 기쁠 때도 찬양하지만, 슬플 때에도 찬양하고, 건강할 때도 찬양하지만 아플 때에도 찬양합니다. 결혼식에도 찬양하고 장례식에서도 찬양을 많이 합니다. 어제 장호철이 결혼예식에도 찬양이 있었습니다. 신랑 입장하는데 장가간다고 싱긍벙글 웃으면서 입장합니다. 신부는 자세히 못 봤지만 울면서 입장하는 것 같더라고요. 친구들이 축가를 부르면서 처음에는 꽃다발을 하나씩 선물하더니 나중에 신랑에게 설거지 잘 하라고 고무장갑 목에 걸어주고 설거지 도구를 손에 하나씩 들려주는 것을 보고 이벤트가 재미가 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어느 결혼식에는 주례를 마치고 신랑신부가 새 출발을 하는데 후배들이 퇴장 길을 막고 “나는 아줌마다”를 세 번이나 외치게 합니다. 그 후배들 아줌마 무서운 줄 몰라서 그렀습니다. 서울 연동교회 이성희 목사님이 쓴 ‘아줌마 영성’이란 글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래 전 이야기로 ‘아줌마와 조폭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들은 떼거지로 몰려다닌다”, “그들은 서로 형님이라고 부른다”, “그들은 문신을 한다. 조폭은 등에 하지만 아줌마는 눈썹에 문신을 한다”, “제 식구를 끔찍이 챙긴다”, “밤만 되면 무서워 진다”, “그들은 칼을 잘 쓴다”. 유머스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있습니다. “며느리가 주는 돈은 서서 받고, 아들이 주는 돈은 앉아서 받고, 영감이 주는 돈은 누워서 받는다”는 말 아시지요? 결혼하고 나면 아줌마는 힘이 있습니다. 아무도 무시 못합니다. 열정이 있습니다. 아줌마 특유의 강인함이 있습니다. 아줌마에게는 야성이 있습니다. 이런 아줌마의 특성을 영성적으로 다듬으면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교회는 아줌마들을 들을 통해서 부흥되어 왔습니다. 아줌마를 힘 있게 만드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 여성인력을 복음적 인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미래교회의 중요한 역할입니다. 교회의 미래는 아줌마에게 달려 있습니다. 아줌마의 영성은 미래교회의 핵심 영성입니다. 우리교회도 아줌마들이 성령충만 받아서 가정과 교회가 부흥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경의 인물들의 찬양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큰 은혜를 경험했을 때, 그 감사와 감격을 노래로 만들어서 불렀습니다. 그 대표적인 노래가 출애굽 후 홍해 바다를 기적적으로 건넌 후 불렀던 찬양입니다. 이 찬양은 출애굽기 15장에 나오는데요,
모세의 모래, 또는 모세와 미리암의 노래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15:2절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시리이다” 사무엘상 2장에 보면, 한나의 노래 또는 기도가 나옵니다. 한나는 아기를 낳지 못하다가 주님께서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아들을 얻었을 때, 너무 감사해서 화목제물도 많이 드리고 사무엘이라는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고, 감사하는 찬송까지 지었던 것입니다. 이 한나의 기도도 굉장히 유명한 찬양과 기도가 되었습니다. 삼상 2장 2절에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술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한나는 역전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습니다. 가난하고 비천한 자를 높여 주시고 권력자들을 낮추시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신약 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의 노래, 기도>도 유명합니다. 마리아가 하나님께서 비천한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낳게 하심에 대해 찬양으로써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리아의 찬가가 누가복음1:46-48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3. 드보라의 찬양
구약의 사사들 중에 드보라에게서 배울 점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드보라는 시대를 내다보는 눈이 있었으며, 시대를 앞서갔던 사람이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300여전 전에 여성 리더가 될 수 있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입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여성 대통령이 나오지 못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영적 리더십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권력이나 부나 자리나 직책에 근거한 리더십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나오는 영적 리더십의 본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독단적인 리더십이 아닌, 역할을 분담하고, 함께 일하는 팀 리더십의 본을 보여 주었습니다. 사사였지만, 전쟁에 있어서는 더 경험이 있고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앞장세우고, 자신의 뒤에서 격려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것이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습니다. 드보라는 권위주의적인 리더가 아니라 굉장히 겸손한 사람이었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나요? 바락이 전쟁터에 드보라에게 같이 갈 것을 간곡하게 부탁하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있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다면, 같이 가자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겸손한 사람은 같이 있으면 편하고 좋습니다. 그러나 거만하거나 교만한 사람은 불편해서 사람들이 피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드보라가 주님을 닮은 가장 위대한 사사였다는 것을 또 잘 보여주는 것은 사사기 5장입니다. 드보라는 사사 중에서 찬양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렸던 사사였습니다. 다른 사사들도 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지만, 드보라처럼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사사는 없습니다. 드보라가 유일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는 것이 쉬운 것 같지만 쉽지 않아요. 감사를 잊어버릴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열에 아홉은 잊고 사는 것 같아요. 복음서에 보면, 예수님이 나병환자 10명을 고쳐 주시잖아요. 그런데 예수님께 돌아와서 감사를 표현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람은 하나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열 명이 깨끗함을 받지 않았느냐, 그런데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17:17)는 질문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놀라운 승리를 주셨을 때, 잊지 않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들의 영적 질병 중에 하나는 감사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 않는 것입니다.(롬1:21) 드보라의 노래는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찬양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 본문은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의 노래라고 되어 있습니다만, 드보라가 지은 것이 분명합니다. 삿5:1절에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이르되” 드보라는 이스라엘 사람들만의 능력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에 너무 기뻐서 하나님께 찬송을 올려 드리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락과 함께 스불론 지파와 납달리 지파 사람들로 구성된 1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다볼 산으로 올랐지만, 철 병거 구백 대와 수많은 군사들로 이뤄진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가 이끄는 군대를 싸워서 이길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철기 문화 시대에 살며, 철제 신무기로 무장하고 있는데 반해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직 청동기 문화 속에 살고 있었습니다. 군사들이라고 모였지만 싸울만한 변변한 무기도 없었습니다. 삿5:8,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그런데 하나님께서 앞장서서 싸워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기가 아닌데도 많은 비를 갑자기 내려주셔서, 기손 강에 모여 있던 철병거가 아무 쓸데가 없게 만든 것입니다. 그리고 적장 시스라를 겐 사람 하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파셔서, 여인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의 상식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드보라는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드보라는 승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서, 자신이 하나님을 찬송하겠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하나님을 찬송하라고 반복해서 권유하고 있습니다. 드보라는 왜 하나님을 찬송했을까요? 왜 우리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하는가? 왜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가? 드보라는 오늘 본문에서 세 가지 중요한 이유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4.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삿5:2, “이스라엘의 영솔자들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전쟁이 얼마나 두렵습니까? 전쟁의 나팔이 불면 많은 사람들은 무서워 도망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 특히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에서 1만 명의 군사들이 도망치지 않고 전쟁에 즐거이 참전하게 된 것입니다. 드보라는 이것이 기쁘고 감사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고 반복해서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목회자로서 무엇이 가장 감사한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드보라와 똑같은 심정입니다. 여러분의 즐거운 헌신에 감사드립니다. 여러 성도들의 수고와 헌신이 없다면 목회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주의 전에 올라와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불철주야 기도하는 성도들의 뜨거운 기도가 주님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남보다 일찍 나와서 열심히 찬송을 준비해서 부르는 찬양단, 아이들을 돌보고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들, 주방에서 성도들의 교제를 위해 음식 준비로 봉사하는 분들, 치열한 생활현장에서 힘들게 벌어온 온 마음과 정성이 담긴 귀한 헌금을 드리는 분들, 보이는 곳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모양으로 즐거이 헌신하는 여러분의 헌신이 없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도들의 정성과 희생이 있을 때, 하나님이 그 헌신을 통해 일하시는 것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앞장서서 나갔지만, 병사들이 즐거이 헌신하지 않았다면 이스라엘이 가나안의 철 병거 부대를 이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헌신에는 큰 헌신, 작은 헌신이 없습니다. 헌신 자체가 중요한 것입니다. 자동차는 작은 부품이라고 중요하지 않은 것이 아닌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작은 헌신이 소금과 같이 귀한 것입니다.
5.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고, 통치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 삿5:4-5절에서 자연 만물이 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땅도 하늘도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리고 구름도 물을 내렸나이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더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세일과 에돔 들은 이스라엘의 동쪽에 위치한 지역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지날 때, 시내산에 강림하실 때의 모습을 노래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높은 산들, 시내 산까지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다, 라는 것은 모든 자연 만물이 다 여호와의 통치 가운데 있다, 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주 만물이 얼마나 광대합니까? 그런데 이 모든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당신의 뜻대로 운행하게 하시는 분이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요나서에 보면, 하나님이 명하시면 폭풍도 불어오고, 하나님이 명하시면, 다시 폭풍이 잔해지고, 하나님이 명하시면 물고기가 요나를 삼키고, 다시 명하시면 육지에 요나를 토해냈습니다. 드보라는 다볼 산에서의 승리가 자연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었다면 불가능하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기도 아닌데 많은 비를 내려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드신 모든 것은 참 신비롭습니다. 그 중에 인간이 가장 신비롭습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날에 인간을 주인공으로 만드셨습니다. 이 점에 대해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 언제나 감사하고 찬송을 올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다윗은 시편 8편에서 이 놀라운 진리를 시와 찬양으로 잘 표현했습니다. 시8: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시8:3-4,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다윗은 자연 속에서 창조주 하나님을 보며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긍휼히 여기셔서 큰 어려움 가운데서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구원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의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삿5:6-8절에서 당시 이스라엘의 비참한 상황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자유와 기회의 땅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있지만, 다시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새 신들(우상)을 섬겼기 때문입니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한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의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도다. 이스라엘에는 마을 사람들이 그쳤으니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그쳤도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이르렀으나 이스라엘의 사만 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가!” 여기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는 이스라엘이 블레셋의 압제를 받을 때를 의미합니다. (삿3:31) 야엘의 날은 야엘에 의해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가 죽고 가나안 왕의 심한 학대로부터 이스라엘이 해방되기 전까지의 시대를 의미합니다. 이스라엘은 수 십년 간 철제 무기로 무장한 블레셋 사람들과 가나안 왕 야빈의 압제로 심한 고통을 받아 왔음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블레셋이나 가나안 왕의 압제 때문에 사람들이 대로로 다니지 못하고 숨어서 오솔길로 몰래 다녔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얼마나 겁에 질여 있었으면, 그렇게 했겠습니까? 하지만 이스라엘은 스스로 구원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막을 방패나 공격할 창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빠져 나올 수 없는 함정과 같은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도와 주셔서 구원해 주신 것입니다. 사사를 일으키시고, 비를 통해 기손 강을 표류시키고, 자원하여 싸우러 나가는 군사들을 통해서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구약에 나오는 모든 위대한 승리의 사건, 구원 사건은 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출애굽과 유월절 사건도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홍해 바다에서의 승리와 기적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예표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드보라 시대의 다볼산 전투에서의 승리도 물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승리와 구원을 미리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을 경험한 성도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고,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보라가 경험한 것보다 더 엄청난 구원을 우리는 경험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에서 하나님을 긴 문장을 통해 찬송하고 있습니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엡1:3-5)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여 불러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으심을 생각할 때 하나님을 찬송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복 중의 복은 하나님의 자녀됨의 복입니다. 골로새서 1:13-14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죄로부터 속량해 주신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겼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도다.” 여러분,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것은 평생 한 번도 빛을 보지 못하던 시각 장애인이 어느 날 개안 수술을 통해 눈을 뜨는 것보다도 더 놀라운 일입니다. 그래서 한 때는 노예 상인으로 살았던 존 뉴톤(1779년)은 회개한 후 만든 ‘어메이징 그레이스’에서 이렇게 노래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워,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찬송과 감사는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을 그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와 찬송을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세요. 그의 서신 마다 서두에서 항상 감사와 찬송을 잊지 않았습니다. 특히 옥중 서신에서도 감사로 편지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평안할 때 밝은 낮에만 찬양한 것이 아닙니다. 밤중에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할 때, 죄수들이 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빌립보 감옥에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지진이 나고 수갑이 풀리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큰 기적은 그 사건으로 인해 빌립보 지역에 전도의 문이 활짝 열린 것입니다. 감옥의 간수와 그의 가족들, 죄수들이 복음을 듣고 구원을 받을 수 있었으며, 빌립보 교회가 든든히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행16장) 이것이 찬송의 능력입니다.
7. 죄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일반적으로는 감사는 좋은 일이 있을 때 하는 것이요, 찬송도 기쁠 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를 깨달은 사람은 환경과 상관없이 범사에 감사할 수 있고, 고난 중에도 밤중에도 찬송할 수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섭리를 믿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위장된 축복이라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편 기자처럼 고난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시119:71) 우리는 광야에서도 하나님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광야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를 ‘미드바르’라고 하는데, 말씀을 ‘다바르’라고 합니다.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광야는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더 분명하게 들을 수 있는 곳이라는 것입니다.로마서 8:28절의 말씀대로 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가 다 아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 진리를 아시죠! 우리가 다 경험하고 있는 진리라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믿는 사람은 기도할 때도, 미리 감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리 감사하면서 기도하면 그대로 이뤄지는 것을 또한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에 대해 어떻게 말씀했습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6-7) 이 말씀에서 중요한 말씀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것과 구할 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는 말씀입니다. 믿음으로 미리 감사함으로 구하면, 하나님께서 기도 응답의 싸인(sign)으로써 마음의 평강을 주신다는 것입니다.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놀라운 평강이 마음 속에 부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때가 되면 기도한 것이 이루어져 있는 것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은 하나님이 앞장서서 싸워 주시는 전쟁을 경험한 후에 하나님을 찬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도 잊어버릴 수 있었지만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찬송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현하고 영광을 돌린 것입니다.
영국에서 윌리엄 4세가 죽던 날 밤에 궁중의 한 처녀가 이튿날 왕으로 간택됩니다. 이 여인이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빅토리아는 64년 동안 영국을 통치했습니다. 영국에는 건축이나 의복 등에 ‘빅토리아 풍’이라는 말이 많을 정도로 그녀의 역할은 대단했습니다. 빅토리아는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무릎을 꿇고 성경을 쥐었습니다. “주여, 내가 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치를 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하고 기도하였습니다.
인도의 한 왕자가 여왕을 알현하러 와서 물었습니다. “정치를 잘 하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여왕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성경을 펴들고 “바로 이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적 담대함은 성경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들도 신앙적 담대함으로 깨어나야 합니다. 사사기 5:11에는 “깰지어다 깰지어다 드보라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라고 합니다. 드보라가 깨어날 것을 노래합니다. 드보라가 일어나면 나라가 일어납니다. 드보라가 일어나야 나라가 희망이 있습니다. 한 여성이 깨어나면 나라가 다시 섭니다. 여성이 깨어야 나라가 된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살아야 교회가 산다”, “남성이 살아야 교회가 산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어머니가 살아야 교회가 삽니다”. “여성이 살아야 나라가 삽니다”. 여성이 깨어나면 가정이 깨어나고, 교회가 깨어나고, 민족이 깨어납니다. 여성이 살아나면 환경도 살아납니다. 여성이 살아나면 건강도 살아납니다.
드보라는 사사기 4장에서 5장까지 나타난 여성입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에서 왕정 시작 까지 약 300년은 이스라엘의 혼란기였습니다. 이 와중에 사사라고 하는 12명의 카리스마적 지도자가 나타납니다.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범죄하여 고난당하고, 회개하여 구원을 얻고 평화를 얻는 순환이 연속되는 역사였습니다. 이 혼란기의 유일한 여성 사사가 드보라였습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였을 때,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송을 잊지 않아야 하겠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찬송을 받으시게 합당하신 분이십니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우리 인생들에게 온갖 좋은 것으로 만족하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영생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귀를 기울이시며, 모든 기도에 응답해 주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좋으신 하나님을 지금부터 영원히 찬양하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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