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대담회] 어두운 질병의 밤에 예방의 등불을 켜다
허준과 루이 파스퇴르
2023년 01월
계묘년 정초, 염라대왕은 특별한 감사 연회를 열었다. 사신들에게 “평소 감사를 표하고 싶은 인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한결같은 대답이 들려왔다. “인류를 병으로부터 구해낸 위인들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큰 고마움을 표해야 하는 존재들입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사신들의 업무가 폭증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동서의 두 위인을 선정해 그들 업적을 기리는 트로피를 건넸는데, 그 모양이 재미있다. 하나는 동양의 의학서, 다른 하나는 백조 모양의 유리 플라스크였다..
글. 이명석(문화비평가) 일러스트. 장명진
의학과 생물학의 두 선구자
허준. 파스퇴르 박사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손에 든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자연 상태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는 걸 증명하셨죠.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수많은 사람을 살려내셨고요. ‘가장 위대한 프랑스인’으로 뽑히신 것도 당연합니다.
파스퇴르. 허허, 과찬이십니다. 의원님의 <동의보감>이야말로 예방 의학의 중요성을 깨달은 선구적인 의학 서적이죠. 조선이라는 신분제 사회에서 중인 출신으로 사셔서 기록이 많지 않더군요. 그래서 더욱 의원님의 삶이 궁금합니다.
허준. 저는 조선 중기에 현재 한반도 군사분계선 부근인 경기도 장단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대대로 무인 집안이었지만, 서자 출신이라 관직의 꿈을 버리고 의술을 익혔죠. 거기에서 나름의 재주를 찾았나 봅니다. 원래 왕실의 내의는 잡과 시험으로 뽑지만 저는 추천으로 선발됐죠.
파스퇴르. 그만큼 의원님이 실력이 탁월하셨던 거죠. 저는 1822년 프랑스 작은 마을의 가난한 제혁업자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릴 때는 공부보다 낚시와 그림을 좋아했죠. 하지만 아버지는 교육열이 높아 저를 파리의 고등사범학교에 보내셨습니다. 그곳에서 위대한 화학자 뒤마의 강의를 듣고 화학 연구에 빠져 당시 난제였던 주석산의 정체를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허준. 제게도 중요한 전환점이 있었는데, 왕자가 천연두에 걸려 사경을 헤매게 된 일이죠. 당시 천연두는 살아남기 힘든 병이었고, 전염의 우려로 어의들도 다가가기 어려워했습니다. 다행히 저의 치료로 병을 이겨내자 임금이 그 공로로 중인 신분을 벗어나게 해주셨죠.
파스퇴르. 릴 대학에 있을 때 양조업자로부터 와인의 맛이 빨리 변질되는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니 발효를 일으키는 건 효모인데, 술통의 다른 세균이 나쁜 영향을 준다는 걸 알았죠. 그래서 60~65℃에서 균을 죽이는 방법을 개발해 맥주나 포도주가 상하지 않게 했습니다. 이 방법이 지금은 우유에 많이 쓰이는 저온살균법이죠.
수많은 생명을 구한 위대한 업적
허준. 때로는 시련과 기회가 함께 오기도 합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선조가 피난을 떠났고, 저는 옆에서 의술로 보필했습니다. 왜란이 끝난 뒤에는 호성공신에 책정되고 양평군이라는 호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정1품의 최고 품계를 주려는 임금의 생각에 저를 질시한 신하들이 반발하기도 했습니다.
파스퇴르. 세상의 소음을 피하기에는 연구실만한 곳이 없죠. 저의 관심은 화학에서 생물학으로 옮겨갔습니다. 백조목 플라스크로 미생물이 자연발생한다는 설을 부정했고, 누에의 미립자병으로 비단산업이 어려움을 겪자 청결만이 이를 이겨낼 수 있다고 역설했습니다. 손의 위생을 중요시 여겨 악수를 거절하기도 했죠.
허준. 전쟁의 와중에 많은 사람이 다치고 죽었습니다. 의서들이 불타버리기도 했고요. 선조는 우리 실정에 맞는 의학책을 편찬하라고 명하셨죠. 그래서 한글 번역을 더한 민간응급서 <언해구급방>, 천연두 예방 치료서 <언해두창집요>, 산부인과서 <언해태산집요>를 펴냈습니다. 허나 선조가 승하하시자 저는 왕을 구하지 못한 책임을 지고 귀양을 갔고, 귀양지에서 비로소 <동의보감>을 완성했습니다.
파스퇴르. 질병의 원인, 증상, 진단, 처방까지 체계적으로 기술한 예방의학의 선구적 의학서입니다. 17세기에 국가가 공공의료를 책임진다며 책을 편찬했다는 것도 놀랍고요.
허준. 하지만 여러 전염병의 원인을 정확히 밝히고 치료하는 방법은 19세기에 들어서야 가능해졌습니다. 바로 박사님 덕분이죠.
파스퇴르. 우연의 도움도 컸습니다. 1880년 조류 콜레라를 연구하다 휴가를 가며 조수에서 닭에게 주사를 놓으라고 지시했습니다. 그런데 조수가 게으름을 피우다 나중에 병원균이 약해진 주사를 닭에게 놓았죠. 그때 제너의 종두법 실험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닭들에게 강한 콜레라 주사를 놓았는데 병에 걸리지 않더군요. 인공 백신을 통한 질병 예방이 가능하다는 걸 알았죠. 그 연구를 토대로 나중에 광견병에 걸린 소년을 구했고요.
허준. 제가 천연두로부터 구해준 왕자가 새로운 왕인 광해군이 됐습니다. 덕분에 저는 귀양에서 풀려나 복권됐지만, 벼슬도 없이 남은 삶을 살았습니다. 좀 더 기회가 있었으면 새로운 의술을 연구할 수 있지 않았나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파스퇴르.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 것 투성이죠. 저는 다섯 아이를 낳았지만 셋은 어른이 되기 전에 병으로 보냈습니다. 저 역시 40대 중반에 뇌졸중으로 몸의 한쪽을 제대로 쓸 수 없는 상태가 됐고, 72세에 큰 병을 얻어 이듬해 눈을 감았습니다.
허준. 후회는 항상 늦지요. 그러니 제가 <동의보감>에서 썼던 말을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몸을 지켜 병을 예방하는 것이 병에 걸린 후 치료하는 것보다 낫다.”
<인물정보>
허준(1539~1615)
조선 중기의 의학자. 30여 년 동안 선조와 광해군의 어의를 지내며 수많은 의학서적을 집필했다. 특히 ‘동양의 의학 백과’로 불리는 <동의보감>은 일본과 중국에까지 전해졌으며, 200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됐다.
파스퇴르(1822~1895)
프랑스의 화학자, 생물학자. 생물의 ‘자연발생설’을 부정하고 ‘생물속생설’을 확립하며 생물학의 패러다임을 새롭게 구축했다. 예방 백신을 만드는 데에도 힘을 쏟아 탄저병 백신, 광견병 백신 등을 개발했다.
어두운 질병의 밤에 예방의 등불을 켜다 – 지금 서울교육 (sen.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