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엊그제 내렸든 폭우가 언제 있었느냐 한듯 구름 한점 없는 맑은 하늘이다. 기상청일기예보에 의하면 오늘 최저기온은 섭씨19도, 최고기온은 섭씨30도라고 한다. 한여름에 접어든 폭염속이지만 그런대로 산행하기엔 견딜만한 날씨인듯하다.
아침 9시45분 서울대공원역에 올라서니 송희경이 친구들을 기다리고 있다. 곧이어 오세민박사가 나타난다. 오래간만에 맞이하는 반가운 모습이다. 오늘도 12명의 대인원이다. 아무리 폭염속산행이지만 5~60년전 티없이 자랄때의 친구들이라 마냥 즐거울 뿐이다. 10시정각 서울대공원역출발, 12명의 대인원이 쉴만한 장소가 마땅치 않아 산림욕장후문을 지나 밤나무골 산막으로 가자고한다.
날씨가 무더워짐에 가다가 쉬고, 가다가 쉬는 횟수가 늘어난다.밤나뭇골산막에 도착하니 11시40분이다. 시원한 막걸리를 한잔씩 드리키고 나니 새로운 기운이 솟는다. 동물위령비앞 산막에서 합류하기로 하고 김병철, 박희;성, 박찬운, 주재원, 윤영중 등 기운이 넘치는 5친구는 계속산행, 나머지7친구는 하산, 동물위령비앞산막에 도착하니 오후12시15분이다. 이미 두팀이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하고 있다. 마땅한 장소가 없어 내려가다보니 숲이 욱어진 그늘 속에 넓은 공터가 나타난다. 계속 산행하든 박희성, 박찬운이 도착하고, 조금 지나니 윤영중, 김병철, 주재원이 도착한다.
12명의 대인원이 넓게 자리를 잡고 막걸리를 반주로 하여 잔을 부디치며 점심을 들면서 떠드니 지나가든 관람객이 힐끗 힐끗 쳐다본다.점심을 들고나서 더위도 식힐겸 쉴만한 장소를 찾아 내려가다보니 또 넓은 산막이 나타난다. 산막마루에 올라서서 떠들다보니 주재원, 오세민, 윤영중, 조남진은 코를 골며 깊은 낮잠에 든다. 1시간의 휴식을 끝내고 오후3시 30분 서울대공원역을 향하여 출발, 7/8(금)다시 서울대공원역에서 만나기로하고 헤어지다.
7/5산행참가자명단(12명);박찬운, 박희성, 송재덕, 송희경, 한현일, 한철상, 김병철, 윤영중, 주재원, 오세민,조남진, 조원중
7/8(금)산행일정; 서울대공원역, 10시정각, 도시락지참
7/12(화)산행일정; 서울대공원역, 10시정각, 도시락지참
‘어느 노인의 죽음’. 노인의 자살을 다룬 글이다. 요즘 같이 고령화 사회에서 노인 복지가 잘 되어있는 데에도 노인의 자살 사건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인이 삶의 끝자락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고 마음을 굳히는 데는 복지차원이 아닌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말하자면 사회적인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라 가정이나 개인에서 비롯되는 무언가가 있을 것이다. 벌써 16년 전에 한 칼럼니스트가 지적한 글이 있다. 그 글은 아직도 유효하다. 지금부터 300 몇십 년 전, 1660 몇 년이든가, 네덜란드의 수도 암스테르담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어느 항구도시. 행색이 남루한 노인 한 사람이 힘없는 발걸음, 지친 모습으로 터벅터벅 걸어간다. 길바닥에는 바다에서 금방 돌아온 어부들이 어시장으로 옮기다 흘린 멸치 몇 마리가 흩어져 팔딱팔딱 뛰고 있다. 노인은 허리를 굽혀 멸치 몇 마리를 집어 날것 채로 입에다 넣고는 우물우물 삼킨다. 그 노인이 누구였던가. 렘브란트. 아! 그 유명한 렘브란트. 그가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호화극지의 생활을 누리던 그가 왜 이 모양으로 전락해버렸는가. 한 때는 나라의 보배로 떠받들던 대화가 렘브란트,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던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비길만한 네덜란드의 렘브란트. 레오나르도 다 빈치와 더불어 17세기 유럽회화사에서 최대의 화가라는 그가 왜 그렇게 패잔(敗殘)해버렸는가. 인생이란 소중한 것이긴 해도, 인생이 별것이 아니라면 또한 그렇다. <그게 인생이지, 그런 게 인생이지….> 이렇게 읊어버리면 그만일까. 생활면에서나 명성에 있어서나 대단한 영광을 누리던 그가 어찌어찌 하다가 그만 몰락의 길로 들게 되어 살기도 어려워지다가 드디어는 파산선고를 받고 사랑하는 아내와 살던 대저택도, 그의 예술적 영감을 무한히 자극하던 온갖 미술품도 모두 그의 손을 떠나게 되었고 말년에는 길거리에서 거지 같은 모습을 보이다가 유대인구의 초라한 집에서 아무도 지켜보는 사람 없이 숨져갔다. 렘브란트에게만이 노경(老境)의 비극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땅에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노인의 슬픔이 있다. 열흘 전, 경남매일신문 사회면에 실린, 한 토막의 기사는 우리를 몹시 우울하게 만들었다. 그 노인이 어떻게 그렇게 죽을 수 있을까. 죽더라도 좀 쉽게 죽지, 너무 잔인한 죽음이었다. 아들 내외로부터 냉대를 받아오던 70대 노인이 가출 6개월 만에 무덤을 파고들어가 음독자살한 시체로 발견된 것이다. 경남 울산군 범서면 입암리 뒷산 꼭대기에서 김교정이란 칠순된 노인(언양면 동부리)이 가로 2m, 세로 1m, 깊이 1m 남짓의 무덤을 파고 나뭇가지를 얹고 흙을 덮어 봉분을 만든 다음 흰옷으로 갈아입고 들어가 극약을 먹고 숨져있는 것을 부인 이정수 할머니(65)가 8일 오전 발견, 경찰에 신고했다는 것이다. 이런 처참한 죽음도 있을 수 있는가. 흔히 도시의 높은 아파트에서 투신하는 수도 있고, 극약을 먹고 죽는 수는 있어도, 이렇게 가련한 죽음은 근래 볼 수가 없었다. 무덤을 팠다니, 한두 시간에 파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노쇠한 노인의 힘으로는 며칠이 걸렸을지도 모른다. 죽음을 눈앞에 두고 그 긴 시간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칠순까지 함께 살아온 아내를 두고 숨져가는 신세에 한없이 눈물을 삼켰을 것이리라. 그리고는 구박을 해오던 아들 며느리에게 이를 갈면서 원망을 했을 것이다. 고인에게는 안 된 말이지만 구박은 그렇게 심하지 않았는데도 정신분열증을 일으켰을지도 모른다. 심하게 얘기해서 노망인지도 모른다. 또 한편으론 그 노인이 정상적인 정신상태였다면, 얼마나 아들 며느리의 구박이 심했기에 그렇게 처참한 죽음까지 생각했을 것인가. 어떻든 그 한 토막의 기사로는 그 노인의 깊은 마음의 갈등을 헤아릴 길이 없는 채로 이 생각 저 생각이 얽히고설키는 것을 막을 길이 없다. 꼭 이러한 처참한 죽음이 아니더라도, 노인과 젊은 아들 며느리의 갈등은 이 땅 도처에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노인들이 대가족제에로의 아련한 회상과 노인을 거추장스럽게 여기는 젊은이들의 핵(核)가족으로의 집착이 갈등에 갈등을 낳아 이런 죽음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대가족제의 윤리 습관이 완전히 무너지지 않은 채, 핵가족으로의 벽을 쌓으려는 젊은이들의 이기심이 두 제도를 적절히 조화시키지 못한 데서 나온 사회제도의 파탄이리라. 핵가족제도가 벌써부터 뿌리내린 서양의 노인들은 이렇게 죽지 않는다. 그들의 생활습관과 생활의식이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자식들은 결혼하면 완전히 부모에게서 독립한다. 부모는 결혼한 자식에게 경제적인 원조는 일절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머리와 몸에 배어있기 때문이다. 그대신 결혼한 아들 딸은 부모의 뒷바라지를 할 의무도 관습도 없다. 부모도 자식들에게서 도움을 바라거나 뒷바라지를 기다리지는 않는다. 핵가족화가 극단적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구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부산에 코오롱지하상가와 롯데지하상가가 생기고 한가운데에 깨끗한 벤치가 줄지어 놓이게 되자, 언제부터인가 그 많은 벤치는 노인들의 천국으로 변했다. 용두산공원으로 가던 노인들이 모두 이곳으로 모였으리라. 겨울에는 난방이 되어 따뜻하고 여름에는 냉방이 되어 시원하니 이 이상 좋은 데가 없을 것이다. 돋보기 안경을 끼든 안 끼든 무수한 노인이 그저 멍하게 앉아 별 대화도 없이 무엇을 생각하는지 지루하지도 않은 듯 하루종일 앉아 있다가 해거름이 되면 하나 둘 빠져나가 어디론지 사라진다. 집에는 귀여운 손자 손녀들도 있을 텐데 손자들과 놀지 않고 이렇게 집을 나와 하루를 무료하게 보내는 것이다.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며느리 눈치 보기 싫어 이렇게 나온 노인들도 상당수 있으리라. 요새 손자들도 그렇다. 과자나 장난감 많이 사주고 용돈 많이 주는 할아버지 할머니를 따르지 그렇지 않으면 곁눈질이다. “자식들에게는 그들 나름의 생활이 있지요. 늙은이들에게 간섭받고 싶지 않을 테고, 우리도 같은 길을 걸어왔으니까….” 서양 노인들의 생각이다. “노인들에게는 그분들 나름의 생활이 있지요. 몸만 늙었지 마음은 젊은이들보다 더하지 않겠어요. 우리도 곧 늙으면 저렇게 되는 것을….” 이 땅 젊은이들이 가져주어야 할 생각이라면 탓할 젊은이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이 땅의 많은 노인은 가난과 고독에 싸여 있다. 아니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노인들은 그들대로 젊은이에게 기대지 않으면서 가난을 이기고 고독을 이기려는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고, 젊은이들은 그들대로 “우리도 곧 늙어 노인이 될 텐데…” 이런 생각을 하고 주위의 노인들을 아직은 보살펴야 할 것이 아닐까. 세월은 더딘 것이 아니다. 세월은 화살과 같다. 렘브란트, 그의 최후가 이렇게 비참했구나. 1991년 당시 한 노인의 죽음, 그것도 엽기적인 죽음을 계기로 렘브란트를 끌어들인 건 적절치 않다는 생각이 들지만 렘브란트의 죽음이 그렇게 비참했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생각을 하게 한다. 정치적인 이유 때문일까. 방탕한 생활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김 주간의 표현대로 그냥 절로 몰락해버린 것일까. 이름에 걸맞은 죽음은 무엇일까. 렘브란트는 어떻게 최후를 맞이해야 그의 이름에 걸맞은 걸까. 렘브란트의 말년이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아서 비참했던 것일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그런 최후를 보내야 했던 것일까. 김 주간이 끌어들인 렘브란트 최후에 관한 표현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어느 소설에서 따온 것일 수도 있고 입방아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누군가 기록하면서 왜곡되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울산의 70대 노인의 자살은 사실이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 극약을 마시고 숨진 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왜 그랬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경찰이 조사한 결과 추정한 내용은 가정문제로 그같은 일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그 추정이 사실이 아닐지라도 개연성은 충분하다고 본다. 스스로 무덤을 파고들어가 세상을 등지는 행위는 아주 엽기적이지만 그것이 자신이 키운, 키웠다고 말할 자격이 없을지도 모르지만 자식들에게 보복하는 심정으로 그같은 짓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다. 갈수록 이기주의로 변하고 있는 사회의 분위기에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고 핵가족을 강요하다시피 하고 있는 사회의 구조에서 원인을 찾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근본적인 분석이 아니다. 해결책을 내놓기 위해 편리한 대로 갖다붙인 분석일 뿐이다. 진짜 그 영감탱이가 엽기적인 죽음의 방법을 선택한 이유는 미쳤기 때문이다. 사람의 생각은 한가지로 지속적일 수 없다. 순간에도 오만 가지의 생각을 한다지 않은가. 나는 오만 한 가지라고 표현을 한다마는. 그렇게 수시로 무한히, 어쩌면 극과 극의 생각까지 오갈 수 있는데 하필이면 부정적인 사고가 극에 달했을 때 순간을 넘기지 못하고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버린 게 남들로부터 비참한 죽음으로 보이게 되고 그의 자식들은 손가락질을 받게 된 것이다. 미쳐도 곱게 미치지. 과연 그 영감탱이가 죽음을 선택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스린 후 여러 날이 지났다면 어떤 상황이 됐을까. 알 수 없다는 것은 희망적일 수도 있다는 얘기므로 더이상 논하지는 않겠다. 내 결론은 김 주간이 그 영감탱이의 죽음을 핵가족제의, 사실 핵가족이 무슨 제도냐 싶기도 하지만 그 문제와 접목한 것도 억지다 싶고 또 그 영감탱이의 엽기적인 죽음을 렘브란트의 비참했던 최후와 연결지은 것도 썩 내키지 않는 비유다.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인지는 알겠는데 공감하지는 못하겠다. 그래 결론은 공감 못하겠다는 것이다. 산 자에게 죽은 자의 행위가 타산지석이겠지만 정확히 이유도 모르면서 글쓴이의 편의대로 갖다붙이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다. 아니라면, 가족이 입을 상처는 더 클 수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내 사설(私說)은 각박해가고 있는 세상을 인정하고 나도 그 속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제도를 탓하거나 흐름에 원인을 찾기보다 순간의 극단적인 판단을 바로 실행하지 말고 한 발 물러서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지혜를 가질 것을 권한다는 것이다.
어느 노인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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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두 코스 중 쉬운 코스를 택한 친구가 7명, 정상 코스를 택한 친구가 5명이니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백수 건아들의 현재를 실감하겠구려. 그래도 현장에 나올 수 있는 건강은 축복이라오. 70대에는 한달이 다르다고 한 옛말을 생각하며 이 무더위에 절대 무리하지 않도록 서로서로 격려하면서 이 여름을 잘 넘깁시다. 조처사님 등산기에 좋은 영상과 글 올리느라 수고가 많았어요.
등산기 올리느라 조스님의 등산기를 오늘 보니 그날의 생생한 기록이라 더욱 소중하다오. 코를 골며 쉬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아름다운 시간인지 남은 모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