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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 GPT가 ‘와인은 여인’이라는 은유법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는?
/유영만 페북 펌
의미 없는 질문에 대한 의미 있는 답을 상상하는 존재는 인간밖에 없다. 동물은 질문 자체가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생존욕구 충족에 한정될 뿐이다. 경쟁자를 따돌리고 먹고 살아가는 질문에 대한 본능적 질문과 답변을 내놓을 뿐이다. 인간의 지혜는 의미 없는 질문에 대해 뜻밖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비상하는 대답에서 창조된다. 질문 자체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이상을 엉뚱하게 연결시켜 놓을 때 엉뚱한 상상력이 발동되면서 생각지도 못한 가능성의 문이 열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시인들의 낯선 질문, 익숙한 일상에 대한 낯선 상상력의 질문은 인간의 상상력이 무한함을 증명해 주는 촉발점이다.
“질문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이며, 홀연히 ‘처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이고, ‘끝없는 시작’ 속에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시적 질문은 생각과 느낌의 싹이 트는 순간으로 타성/습관/확정 속에 굳어 있던 사물이 다시 모태의 운동을 시작하는 시간이다.”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 실린 정현종 시인의 ‘옮긴이의 말’ 중에 나오는 말이다. 질문이 시작되는 순간 자기도 모르는 사이, 모르는 자리로 돌아가 태초에 꿈꿨던 이상과 자신의 본질적 모습을 바라보기 시작한다. 타성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하는 것도 질문이며,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려는 몸부림도 질문에서 비롯된다.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는 총 74편의 질문으로 이루어진 시가 등장한다. 예를 들면 “벼룩들과 문학적인 하사관들은 왜 나를 물지?”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 질문을 챗 GPT에게 물어보았다. 잠깐 고심하다 이렇게 대답을 내놓았다. “이 질문은 일종의 말장난으로 보입니다. "벼룩(fleas)"과 "하사관(literary corporals)"을 이해해야 이해할 수 있습니다. "벼룩"은 작고 빠르게 움직이며, 흔히 인간이나 동물에게 물리는 작은 곤충을 가리키는 말이며, "문학적인 하사관(literary corporals)"은 문학 작품에서 등장하는 군인 중에서 하위 계급을 뜻하는 표현입니다. 따라서 이 질문은 "왜 나는 이런 작은 것들에게나 큰 것들에게나 관심을 받을까요?"라는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확한 답변을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가 필요합니다.”
벼룩과 문학적인 하사관은 챗 GPT의 머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낯선 만남이다.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이질적 실체가 만나 둘 사이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물어보니까 일종의 말장난으로 재단해 버린다. 이 세상에 관계없는 건 없다. 관계없다고 재단하는 주체의 머릿속에서만 관계없다는 생각만 존재할 뿐이다. 낯선 질문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익숙한 두 가지의 낯선 만남에서 비롯된다. 벼룩과 하사관은 익숙한 일상 언어다. 익숙한 일상 언어에서 낯선 상상력이 싹이 트는 시점은 예상치 못한 뜻밖의 우연한 만남이다.
진짜 질문은 알고리듬 밖의 사유를 지향한다
챗 GPT에게 두 번째 질문을 던져보았다. 파블로 네루다의 《질문의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질문이다. “나였던 그 아이는 어디 있을까, 아직 내속에 있을까 아니면 사라졌을까?” 챗 GPT는 어렵지 않게 바로 대답을 내놓았다.
“제가 이해하기로, 이 질문은 과거에 존재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담은 것으로 보입니다. 어린 시절의 경험과 기억은 우리 삶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환경과 상황도 변화하게 됩니다. 이전의 자신과 현재의 자신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였던 그 아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변은 없습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경험했던 것들은 여전히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자신의 성장과 발전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전형적인 알고리듬에 근거한 대답임을 직감할 수 있다. 뜻밖의 대답은 뜻밖에도 하지 못했다. 빅데이터 기반 알고리듬의 논리로 대답하는 챗 GPT에게 전형성을 깨는 의의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예측 가능한 논리적 답변이라서 뜻밖의 상상력을 잉태한 질문은 빅데이터 기반으로 생기기 어렵다는 점을 반증해 주는 대답이다. 나였던 그 아이가 내 속에 있는지, 아니면 밖으로 사라졌는지는 물리적으로 관찰해서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 질문은 오로지 본인만이 알 수 있는 인문학적 헤아림의 문제다. 헤아림은 수학적 논리나 과학적 논증으로 해결할 수 있는 증명의 문제가 아니라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면서 질문을 던져 부단히 이전과 다른 대안을 끊임없이 모색하는 안간힘이다. 애정과 열정이 담긴 지식은 반드시 특정한 공간에서 몸이 개입되는 시간의 사회역사적 산물이다. 몸이 관여하는 신체성이 없는 논리적 지식은 머리를 공략해서 이해시킬 수 있지만 심장을 공략해서 의미심장하게 만들기 어렵다.
시적 질문은 타성의 늪에 빠진 우리를 건져 올리는 두레박이다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사실을 챗 GPT에게 물어보았다. “사람의 손가락은 왜 10개일까?” 누구가 손가락과 발가락이 10개인지는 알지만 왜 10개인지는 호기심을 품고 질문을 던져보지 않았다. 챗 GPT는 예상대로 논리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인간의 손가락이 10개인 것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입니다. 인간의 진화 과정에서 땅에서 걷는 능력을 갖춘 사람의 조상들은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두 다리와 발바닥을 사용하면서 일어선 상태였습니다. 그 후, 상체가 자유롭게 움직이게 되면서 손이 더 유연해졌고,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사람이 사용하는 손은 더욱 발전하면서 손가락이 5개에서 10개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손가락이 늘어나면서 인간은 더욱 복잡한 도구를 만들고, 문화적으로 발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손가락이 10개인 것은 진화 과정에서 발생한 결과이며, 손가락이 더 많았다면 다른 문화적 발전과정이 생겼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
함민복 시인의 ‘성선설’이라는 시를 보면 전혀 다른 뜻밖의 답을 만난다. “손가락이 열 개인 것은/어머님 배속에서 몇 달 은혜 입나/기억하려는/태아의 노력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임신기간이 10개월인 점을 감안한 시인은 아이가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기다리면서 손꼽아 기다리다가 손가락이 10개가 되었다는 시적 상상력은 아직 인공지능의 지능으로 상상하기 어려운 연상능력이다. 시인의 상상력은 역지사지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기 위해 신발을 바꿔 신고 그들이 경험하는 세계 속으로 몸을 던진다. 역지사지는 머리로 이해하는 능력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공감능력이다. 공감은 경험적 공통분모가 없으면 잘 생기지 않는 관계론적 역량이다. 인공지능의 언어가 몸으로 겪으며 깨달은 신체성의 언어가 아니라 논리적 연관성으로 편집한 머리의 언어다. 인공지능의 언어가 이해는 되지만 감동이 오지 않는 이유다.
질문은 본래의 자리에서 처음을 맞이하는 모태 운동이다
자전거 국토완주 그랜드 슬램을 달성하면서 마지막 코스를 제주도 환상 자전거길 완주를 한 적이 있다. 그때 자전거를 타면서 보고 몸으로 느낀 감각적 깨달음이 실종되기 전에 글을 하나 썼다. 글 제목을 “바다는 바위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다”로 잡았다. 바다는 왜 바위에게 술 한 잔 사주지 않았을까요? 챗 GPT에게 물어보았다. 대답은 말장난이라고 했다. “이 질문도 일종의 말장난으로 보입니다. "파도(wave)"와 "바위(stone)"가 각각 자연 현상과 무생물적 대상이므로, 그들 사이에 상호작용이 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따라서 파도가 바위에게 술을 사줄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파도는 자연 현상 중 하나로서 바위와 같은 무생물적 대상들과 함께 자연환경에서 공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파도와 바위는 서로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구의 지형을 형성하고 변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전형적인 과학자의 눈, 뇌안(腦眼)으로 질문에 응답했다는 표현을 감지할 수 있다.
독서와 피클은 무슨 관계인지를 챗 GPT에게 물어보았다. 은유적 사유에 대한 챗 GPT의 연상능력을 알아보기 위해서다. “독서와 피클은 일상생활에서 별개의 것들이지만, 놀랍게도 함께 연관될 수 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독서와 함께 피클을 즐기는 것을 좋아합니다. 이는 일종의 문화적인 관행으로서, 미국에서는 'pickleback'이라는 술잔에 피클 주스를 담아 술을 따르는 것이 대표적입니다. 이외에도 피클의 신맛과 독서의 집중력 향상에 대한 연관성을 언급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한, 피클은 건강에 좋은 음식 중 하나이며, 독서를 하면서 스낵으로 즐기기에도 좋은 선택입니다. 특히 집중을 돕는 미각적인 자극을 제공하면서, 독서를 하면서 뇌를 활성화시켜 주는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독서와 피클은 서로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함께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적인 습관이 되어갈 수 있습니다.”
독서와 피클은 겉으로 보기에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인다. 책을 읽기 전에는 오이였지만 책을 읽고 나서 피클로 바뀌는 순간, 책을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비가역적 변화가 일어나는 게 독서다. 독서는 이런 점에서 위험한 행동이다.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는 사고의 혁명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독서라는 추상명사와 피클이라는 보통명사는 피상적으로 생각해 보면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지만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연관성을 발견하는 사유가 은유적 사유다. 은유는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가 만나 경계를 넘나들며 상호 침투해서 이종결합을 통해 생각지도 못한 시유가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기반을 제공해 준다. 추상명사가 보통명사를 만나는 순간 추상적 사유가 구체적 일상에서 보고 만지며 느낄 수 있는 감각적 각성을 촉발시켜 준다.
미래의 인재상은 전대미문의 문제를 일으키는 문제아다
챗 GPT는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눈, 즉 뇌안으로 기존 데이터 기반 분석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에는 탁월하다. 하지만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 이질적 사물이나 현상을 연결시켜 공통점을 찾아내는 은유적 사유에는 취약하다. 은유를 의미하는 메타포(metaphor)는 배움의 대포다. 배움은 관계없는 두 가지 이상의 이질적 개념이 연결되면서 공통점을 발견하는 탐색이 시작될 때 폭발한다. 챗 GPT가 참고하는 데이터베이스 안에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방대한 이질적 개념이나 문장이 존재한다. 사람과 다르게 챗 GPT는 이전까지 연결되지 않았던 이질적 개념을 연결시켜 생각 너머의 생각을 촉발시키는 상상력에는 취약하다. 두 가지 개념이 만나는 순간 인간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이전에 존재하지 않았던 가능성의 문을 열기 위해 애쓰기 시작한다. 그 순간 이질적 두 가지 개념이 상호침투하고 경계를 넘나들면서 낯선 메시지와 이미지를 창조한다.
“와인은 여인이다. 와인과 여인은 어떤 관계인가?” 와인과 여인은 전혀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두 가지 실체다. 챗 GPT는 예상했던 대로 답을 내놓았다. “"와인은 여인이다"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서 사용되는 비유적인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와인과 여인 모두 우아하고 섬세하며 매력적이며 유혹적인 특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실제로 와인과 여인은 서로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와인은 포도주를 발효시켜 만든 술이고, 여인은 인간 중의 한 성별입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단순히 예술적인 비유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예술적 비유라는 말은 맞지만 챗 GPT는 그 이상의 비유적 사유를 하기 어렵다. 와인바에 가면 와인은 누워서 보관하기 때문에 와인(wine)은 누울 ‘와(臥)’자를 써서 ‘와인(臥人)’이라고 표기하는 순간 와인은 여인과 놀라운 공통점이 발견되면서 상상력은 폭발하기 시작한다.
챗 GPT에게 틀에 박힌 질문을 하면 틀에 박힌 답을 내놓는다. 틀을 벗어난 뜻밖의 질문을 해도 챗 GPT는 한 참을 고민하다 틀에 박힌 답을 내놓는다. 기존 사용가능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편집해서 논리 정연한 답을 제공한다. “가장 심각한 실수는 ‘틀린 답’에서 비롯되지 않는다. 가장 심각한 위험은 ‘틀린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경영철학자, 피터 드럭커의 말이다. 누구나 답을 잘 못 찾는 실수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틀린 답을 찾는 실수보다 더욱 심각한 실수는 틀린 질문을 던지는 데 있다. 틀린 질문은 틀에 박힌 질문이다. “정답은 찾아내는 능력보다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플라톤이 질문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일찍이 던진 말이다. 이제 인공지능을 능가하는 인간의 지성을 쌓기 위해서는 타성에 젖은 질문은 폐기하고 낯선 생각을 잉태하는 날 선 질문을 던져야 한다.
챗 GPT는 틀을 벗어난 질문에 대해 틀을 벗어나는 뜻밖의 대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즉흥적 상상력은 부족하다. 모든 질문에 대한 답변은 언제나 기존 데이터를 중심으로 편집한 응답이다. 데이터에 의존하지 않는 응답은 불가능하다. 상상력은 기존 경험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되, 그걸 초월하여 발동되는 연상능력이다. 범주에 갇힌 연상능력을 넘어서는 방법은 전혀 연상되지 않는 이질적 두 가지를 연결시키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사람이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연상 장벽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연상 장벽을 깨는 한 가지 방법은 관계없다고 생각되는 두 가지를 연결시켜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인공지능의 상상력과 인간의 상상력의 차이는 정형화된 패턴을 벗어나는 뜻밖의 연상 작용에서 시작된다.
질문하는 사람의 능력 수준이 얻을 수 있는 답의 수준을 결정한다. 결국 인공지능이 대답하기 어려운 전대미문의 색다른 질문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세상을 이끌어가는 리더의 핵심역량이다. 누구도 쉽게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디자인하거나 문제를 제기하는 문제아가 우리 시대가 앞으로 추구해야 될 인재상이다. 문제를 던져 사람들을 곤궁에 빠뜨리고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머리를 쓰게 만드는 사람이 누구도 걸어가지 않은 낯선 관문을 열고 미지의 세계로 도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