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小說
배옥주
겨울이야기 한 마리를 소설小雪에 잡았다
노안을 호소하는 회원들을 불러 판을 벌였다 눈에 좋다는 머리말은 피데기처럼 말려 잘게 찢었고, 목록은 자작하게 볶아 내놓았다 행간에 들러붙은 살점들은 적당히 쫄깃했다 다들 탄력적이라고 엄지를 세웠다
작은도서관 회원답게 301호는 단편마다 추려낸 부속물들을 조목조목 품평했다 잡내를 잡으려면 기름기 번지는 복선을 걷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첫눈을 기다리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결말은 곱씹을수록 단물이 올라왔다
독서회를 세 개나 끌어가는 607호는 표제에 솟은 뿔부터 표사 꼬리까지 툭툭, 질문을 던졌다 정답 없는 서술형의 함정에 빠진 것 같았다 눈 덮인 장독에서 쩌억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발라 먹고 조려 먹고 소설 한 마리를 오지게 뜯어 먹었다 트림소리가 들리거나 소화불량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렸지만 살얼음이 녹을 때까지 우리의 겨울은 살냄새로 충만했다
----애지, 2024년 겨울호에서
배옥주 시인의 [소설小說]은 그가 참여하고 있는 독서회를 소재로 한 이야기 시이며, “겨울이야기 한 마리를 소설小雪에 잡았다”라는 시구에서처럼 그 품평회를 주제로 한 시라고 할 수가 있다. “겨울이야기 한 마리를 소설小雪에 잡았다”라는 다소 도발적이고 급진적인 발언은 만인들의 시선을 순식간에 사로잡고, 그리하여 그 겨울이야기 한 마리를 잡아 해부하고 요리하는 최고급의 명인의 솜씨로 보여주게 된다.
“노안을 호소하는 회원들을 불러 판을 벌였다”는 것은 독서회원들의 나이가 중년을 넘겼다는 것을 뜻하고, “눈에 좋다는 머리말을 피데기처럼 말려 잘게 찢었다”는 것은 독서회원들의 마음을 유혹하기 위해 아주 맛 좋은 미끼를 사용했다는 것을 뜻한다. “목록은 자작하게 볶아 내놓았다 행간에 들러붙은 살점들은 적당히 쫄깃했다”는 것은 다양한 요리와 그 솜씨를 뜻하고, “다들 탄력적이라고 엄지를 세웠다”는 것은 독서회원들의 마음과 그 미각취미를 사로잡았다는 것을 뜻한다.
“작은도서관 회원답게 301호는 단편마다 추려낸 부속물들을 조목조목 품평”했고,“잡내를 잡으려면 기름기 번지는 복선을 걷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겨울이야기가 다양한 부위와 그 부속물이 있는 생선인 것처럼, 소설小說은 여러 단편들로 이루어진 이야기책이고, 잡내와 기름기, 즉, 군더더기와 감정의 과잉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결과 “첫눈을 기다리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결말은 곱씹을수록 단물이” 솟아 나오게 되었던 것이다.
첫눈을 기다리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티없이 맑고 순수한 처녀일까, 아니면 어진 현모양처일까? 건강하고 꿈 많은 청년일까, 아니면 성인군자의 탈을 쓴 남편일까?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小雪에, ‘겨울이야기 한 마리를 잡는다’는 시적 주제는 배옥주 시인이 연출해낸 [소설小說]이 되고, 이 소설의 아름다움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직업이 얼마나 고귀하고 위대한 직업인가를 일깨워 준다. 고전이란 시대를 초월하여 살아 있는 작품이며, 그 사상과 이론, 즉, 그 삶의 지혜는 천하제일의 풍경과도 같다. 보고 또 보아도 저절로 탄성이 솟아나오고, 읽고 또 읽어도 그 이야기의 꿀맛은 새롭게 솟아나온다. “고전을 읽으라/ 참으로 고전다운 고전을 읽으라”는 명언의 참된 이유가 여기에 있고, 시대와 인종과 민족의 편견을 넘어서서 전 인류를 감동시킬 소설의 존재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가장 정교하고 세련된 언어,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문체, 페이지, 페이지 마다 만인들의 심금을 울리는 명장면, 어느 누구도 반박하거나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심오한 주제와 그 철학 등은 시와 소설은 물론, 우리 인간들의 삶의 전부면을 장악하고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머리말과 목록과 행간과 행간의 살점들은 ‘겨울이야기’의 가장 중요한 메뉴(이야기)가 되고, 그밖의 부속물들은 맛보기 메뉴가 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쓸모없는 군더더기, 즉, 기름기 번지는 복선을 걷어내면 “첫눈을 기다리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겨울이야기’가 완성되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남은 것은 “독서회를 세 개나 끌어가는 607호” 회원처럼, “표제에 솟은 뿔부터 표사 꼬리까지 툭툭, 질문을” 던져보고, “정답 없는 서술형의 함정에” 빠져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첫눈을 기다리다 눈사람이 되어버린” 사람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 그는 과연 만인들의 이상적인 사람이었을까, 아니면, 만인들의 동정과 연민의 대상이었을까? 이 세상의 삶과 자연의 이치는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고, 정답과 오답의 문제도 아니며, 그 어떠한 해답도 없는 형이상학적인 문제라고 할 수가 있다. 무엇이 아름답고 추한 것이며, 그 어디가 천국이고 지옥이란 말인가?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형이상학적인 문제들 앞에서 영원한 어린아이들이고, “눈 덮인 장독에서 쩌억쩍 금 가는 소리가 들려”왔던 것이다.
배옥주 시인의 [소설小說]은 아주 깊이가 있고 주도면밀하게 구성된 시이며, 그 시로서 쓴 소설이라고 할 수가 있다. 첫눈, 즉, 소설小雪은 소설小說이 되고, 소설은 시가 된다. 소설은 겨울이야기가 되고, 겨울이야기는 거대한 생선이 된다. 이야기는 요리 음식이 되고, 요리 음식은 작은도서관 회원들의 미각과 입맛을 사로잡는다. 요컨대 “발라 먹고 조려 먹고 소설 한 마리를 오지게 뜯어” 먹게 된 것이다. “트림소리가 들리거나 소화불량으로 화장실을 들락”거릴 수도 있었겠지만, 그러나 그것은 겨울이야기의 아주 작은 매운맛(잡음)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문학, 즉, 이야기의 역사이며, 이야기의 역사는 전체 인류를 살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라고 할 수가 있다. 좋은 책은 영원한 건강식품이며, 우리 인간들의 정신과 육체의 건강과 행복을 가져다가 준다. 이야기에 의해서 젖과 꿀이 흘러나오고, 이야기에 의해서 만물이 탄생한다. 이야기에 의해서 만물의 열매를 수확하고, 이야기에 의해서 “살얼음이 녹을 때까지” “우리들의 겨울은 살냄새로 충만”해진다.
첫눈이 소설이 되고, 소설이 시가 되고, 시가 겨울이야기가 되는 ‘나무아미타불의 기적’이 배옥주 시인의 [소설小說]의 시적 성과라고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대로, 모든 시대마다 모든 민족에게는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는 이야기의 천재가 있는 것이다.